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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39화 (139/153)

천체가 그를 위해 움직인다

나는 문별과 샛별의 능력도 확인해보았지만, 그들은 원흉으로부터 받은 능력이 따로 없다.

그저 별로서 고유의 능력만 있을 뿐.

서서히 쌓였던 음식이 바닥을 보이는 걸 보며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아까는 멸망의 별들이 몰려오지 않았었네.”

조금 전, 이들이 지구로 올 때 멸망의 별들은 몰려오지 않았었다.

한별은 하루가 지나면 수백에 이르는 멸망의 별들이 몰려와 그들을 파괴할 수도 있다고 했었는데.

멸망의 별들은 단 한 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한별은 쉬지 않고 음식을 먹으며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더니 내게 답했다.

입안에 한가득 있던 음식은 어느새 다 삼킨 후다.

“...저는 원흉이 멸망의 별들을 한꺼번에 보내서 우리를 공격하게 할 거라고 여겼는데. 원흉은 고수를 생각보다 경계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하긴, 만일 그들이 몰려오면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두고 그림으로 그릴 생각이었다.

별들이 한꺼번에 몰릴지라도, 내게 승산이 있는 것은...

시간 능력의 스탯이 꽤 오른 탓에 이전처럼 시간에 쫓기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수의 별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은 노가다가 되긴 하겠다.

원흉은 이 사실을 아는 까닭에 나와 정면대결을 피했던 거고.

그가 멸망의 별들을 파괴할 생각까지 했던 것이다.

그는 내 능력을 압도할 만큼 강해져야만 한다고 여겼던 거다.

“너희들, 다른 별들의 위치를 알고 있어?”

이번에는 문별이 답했다.

그녀는 입가에 잔뜩 묻은 치킨 소스를 혀로 한 번 핥고서 말했다.

“우리가 있던 곳에서 제법 먼 곳일 거예요. 그들이 우리가 있던 곳으로 오려면 하루 정도 걸릴 거라고 했던 건, 제법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만 지구 근처에 머문 건, 인간형 별로서 진화를 앞두고 있어서였어요.”

다른 멸망의 별을 찾는 건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

지구에서 꽤 멀다면 그곳까지 가는데도 시간이 걸리는 데다, 그 사이 원흉은 별들을 전부 파괴해버릴 것이었다.

하지만 내겐 아주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나는 시간을 되돌릴 능력이 있으니까.

시간을 되돌리되 창조의 별들이 내 매개체로 되었을 즈음으로 되돌려야겠다.

그 전에 가장 가까운 멸망의 별의 위치를 알아두어야겠지.

내 방법이 성공할지 모르겠지만 시도는 해볼 수 있다.

나는 운별에게 물었다.

“너희가 있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별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줄 수 있어?”

그러자 그들은 멸망의 별이었을 적의 기억을 가늠하더니 내게 위치를 일러주었다.

* * *

저녁 무렵, 시간 능력을 발현하여 하루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렸다.

시간의 흐름이 멈추고 거꾸로 거슬러 흐르다가, 그 흐름이 멈추었을 때.

나는 서재에 머물고 있었다.

멸망의 별들을 창조의 별로 바꾸고 회복시킨 직후로 되돌아간 것이다.

아직 시간이 정지한 까닭에, 이곳 세계에서 오로지 나만 살아 숨 쉬며 움직이고 있다.

그러할 때 느껴지는 적막함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이 광활한 우주에 나 홀로 생존해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나는 디스플레이를 한동안 응시하다가 시간 능력을 풀었다.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자, AI 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수, 지금 우주 드론을 당장 회수해.”

<네, 알겠습니다.>

AI 수는 우주 드론을 빠르게 회수했다.

시간을 되돌리기 전에는 우주 드론을 한동안 우주에 머물게 했었다.

하루가 지나고 나면 멸망의 별들이 몰려올 거로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창조의 별들이 아직 인간형으로 성장하기 전이라서, 한별과 그들은 여전히 우주에 머물고 있었지만.

우주 드론만 서재로 돌아오게 했다.

그사이, 나는 우주 드론 한 대를 더 그려서 완성했다.

그리고 그것을 실물 전환하여 공간 이동 능력을 심었다.

조금 있으니, 우주 드론이 서재로 돌아오자 나는 그것에 심어둔 능력을 회수했다.

대신 새 드론에 회수한 능력을 심었다.

지금은 능력 스탯이 오른 만큼 사물에 3가지 능력 정도는 충분히 심어둘 수 있다.

“수, 지금 보여주는 좌표로 우주 드론을 비행해.”

그러자 디스플레이에 수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곳에 멸망의 별이 있는 건가요?>

“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위잉-

우주 드론은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것은 창밖을 나가 금세 저택에서 멀어졌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수님이 일러주신 좌표로 설정하여 우주 드론의 도착지를 설정합니다. 이제 곧 우주 드론의 비행을 재시작합니다.>

<목표 지점까지 비행시간은 11시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는 표정을 조금 찌푸렸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공간 이동 능력을 사용해서 가면 얼마나 시간이 단축되지?”

<드론이 심어둔 공간 이동 능력을 사용하면 비행시간은 최대 6시간 안팎으로 단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고수님이 극심하게 탈진할 수 있습니다. 현재 고수님의 상태를 감안하면, 공간 이동 능력을 적절히 절충해서 사용하여 목표 지점까지 이르는 걸 추천합니다.>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으로 줄인 비행시간은 9시간입니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래도 오래 걸려. 그 사이 원흉이 먼저 행동할 가능성이 높아. 6시간으로 줄이는 게 무리라면, 7시간으로 타협을 보지. 그림도 그리고 실물 전환 능력도 사용해야 하고. 매개 능력도 사용해야 하니까.”

<괜찮겠습니까?>

“한 번 시도해보는 게 좋겠어. 쓰러지진 않겠지. 이럴 상황을 대비해서 유하준 박사에게 부탁해둔 영양제도 있거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영양제를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유하준이 전문가에게 부탁해서 만들어둔 영양제.

그것은 효과가 무척 빠른 고함량 영양제였다.

“...그리고 멸망의 별을 창조의 별로 바꾸는 데 성공하면, 능력 스탯이 오를 테니 컨디션이 좀 나아질 거야.”

<네. 그럼 우주 드론의 비행을 시작합니다.>

우주 드론은 저번에 했던 비행 방식대로 카운트다운을 하더니 우주 모드로 변환하여 빠르게 비행을 시작했다.

나는 그 광경을 디스플레이 영상을 통해 보다가, 한별에게도 마음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별! 이젠 창조의 별들을 인간형으로 진화시켜서 이곳으로 데려오는 게 어렵지 않을 거야.’

‘한별? 그건, 제 이름인가요?’

아, 시간을 되돌렸으니 한별에게 아직 이름을 지어주기 전이다.

‘그래. 한별, 그게 네 이름이야.’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조만간 창조의 별들을 저택으로 데려가겠습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나는 한시름을 놓으며 타블렛 디스플레이에 눈길을 주었다.

이제 우주 드론들을 추가로 스무 대를 더 그려낼 생각이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잠시만 쉬어야지.

드론이 도착하기까지 어차피 기다려야만 하니, 음식 좀 먹고 눈을 붙여야겠다.

* * *

이른 아침 무렵, 서재에 켜둔 디스플레이의 영상을 확인했다.

잘 먹고 잠도 조금이나마 자두었는데 여전히 피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순간부터 내게서 에너지가 꾸준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우주 드론이 공간 이동 능력을 때로 사용해가며 비행하고 있었던 탓이다.

1초에 공간 이동 능력을 10차례나 발동하기도 하는 것 같다.

화면에 수의 메시지가 나타나 있다.

<30분 후에 목표 지점에 도착합니다.>

“후.”

나는 문득 긴장감이 들어서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1층 주방으로 내려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지난 저녁에 한나가 만들어둔 주먹밥이 있다.

그걸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과일 주스와 함께 들고 서재로 향했다.

가는 도중, 침실에서 수호의 울음소리와 루나가 달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런저런 일로 수호와 루나를 제대로 못 챙기고 있는 것이 새삼 미안하게 여겨졌다.

조금 상황이 나아지면 가족 여행을 다녀올까.

루나를 위해 근사한 곳에서 외식도 하고 영화도 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 서재로 돌아왔다.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고 나니, 화면에 다시 메시지가 나타났다.

<목표 지점에 도착하기 1분 전입니다.>

이내, 우주 드론의 비행이 멈추고 영상에 드론이 촬영하는 멸망의 별 모습이 나타났다.

<고수님이 전송해주신 드론 그림들을 실물 전환하겠습니다.>

AI 수가 드론 그림을 실물 전환할 때, 영상을 통해 보이던 멸망의 별이 반응하는 게 보였다.

쿠구구구-

멸망의 별은 다른 곳으로 피하거나 드론을 공격하려는 대신, 크게 진동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뭐 하려는 거지?

의아한 기색으로 보던 찰나.

갑자기 내가 선 서재에서 거대한 멸망의 힘이 감지되었다.

그때 핸드폰의 벨소리가 울리며 동시에 까톡 메시지가 들어왔다.

띠리리링-

까톡!

AI 수의 메시지도 나타났다.

<2052년에서 온 전갈입니다. 충격 전이입니다. 시간을 멈추...>

수의 메시지는 미처 끝맺지 못했다.

콰과과과쾅-

영상 속 멸망의 별이 돌연 폭발을 일으켰다.

200미터에 가까운 크기의 별 하나가 폭발한 것이다.

그런데 그 폭발의 파괴력과 충격은 고스란히 이곳 저택의 서재로 전이되었다.

나는 미처 무슨 상황인지 파악할 새도 없이 폭발에 휩쓸렸다.

그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한줄기 스치듯 든 생각은...

이대로면 다 죽는다.

내 아기도, 나도.

그렇게 되면 이곳 세상은 끝장나게 된다, 였다.

아포칼립스를 막을 희망은 영영 사라지는 것이고.

미래는 없어지는 것이다.

충격 전이?

먼 곳의 파괴력을 원하는 목표 지점에 그대로 전달하는 능력인 모양이다.

충격 전이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드론이 연결 고리가 되었던 것 같다.

모르는 새, 원흉은 이런 새로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나 보다.

진화를 거듭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원흉도 진화를 거듭하며 날로 강해진다.

내가 안일했다.

시간 능력을 사용하여 원흉을 공격하고 별을 강탈할 생각을 했던 나였는데.

오히려 이러한 내 생각은 꿰뚫렸다.

원흉은 내가 짐작하지 못했던 새로운 능력으로, 되려 나와 아기인 수호를 없앨 생각을 한 것이다.

별의 폭발은 대단한 위력이었다.

단숨에 올차드 저택과 그 일대를 죄다 날려버릴 만한 것이었다.

이곳에 있던 모든 이들은 즉사할 수밖에 없다.

내가 시간을 멈추거나 되돌릴 틈도, 겨를도 없다.

하지만 이곳에 폭발이 이루어지는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내 무의식은 간절한 염원을 품었다.

제발! 모두를 위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지금 이곳에 닥친 비극을 멈출 수 있기를.

그 순간, 이곳의 시간이 기적처럼 멈추었다.

서재에서 시작된 거대한 충격파가 이미 내 육신을 갈가리 찢어놓았으나.

그 파괴와 충격은 아직 서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한 채로 시간이 멈춘 것이다.

만일 수호에게까지 충격파가 닿아서 목숨을 잃게 되면, 시간의 흐름은 비틀리고 비틀려서 내게 머물던 능력부터 먼저 사라지게 할 터였다.

나는 시간이 정지한 이곳을 잠시 둘러보았다.

육신은 이미 엉망이나 내 의식은 생생하게 사고를 했다.

방금, 나의 뇌리에 어떤 내용이 떠올랐었다.

어느 책에 기록된 까마득한 오래전의 이야기.

어느 장군이 대적을 모두 멸하기를 바랐을 때, 천체가 멈추었다고 했다.

해가 중천에 멈추어 대적을 멸하기까지 내려가지 않았다는 그 이야기가 내 뇌리에 돌연 떠올랐다.

그 이야기가 섬광처럼 뇌리에 스쳤을 때.

이곳 세계의 시간은 나의 간절한 염원에 따라 능력이 발동하여 멈추었던 것.

나는 참혹하게 변했을 내 육신의 상황을 일부러 인지하지 않았다.

다만 시간 능력을 사용하여 다시 이전으로 조금만 되돌렸다.

대략 1분 정도.

그러자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별이 폭발하기 이전으로 되돌려져서 정지했다.

나는 도로 멀쩡해진 몸으로 타블렛 디스플레이를 보며 별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굳이 정밀한 사진을 찍을 필요도 없다.

영상을 통해 보이는 내 육안으로도 실물 전환에 성공할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

내게 있는 ‘절대 창조력’은 싱크로율이 완벽하지 않은 그림일지라도, 절대적으로 실물 전환을 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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