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별 4
우주 공간에서 별이 하는 말은 AI 수가 굳이 전하지 않았어도, 내게 전달이 되었다.
설마 우주 공간에서도 전달이 될까 싶었는데.
매개체와의 소통은 지구 밖을 벗어나도 이루어졌다.
나는 재빨리 능력 스탯을 확인해보았다.
멸망의 별을 제거한 셈이나 마찬가지이니.
멸망의 별 3개를 창조의 별로 바꾸어버린 결과로 내게 보상이 들어왔을 거였다.
나는 매개 능력의 수치가 올라간 만큼 매개체의 숫자를 늘릴 수 있었다.
내가 멸망의 별 하나를 창조의 별로 만들 때마다 보상이 들어왔던 터라.
별 3개에 매개 능력을 거는 것에는 무리가 없었다.
어쨌든 코인 보상도 들어와서 매개 능력을 한 차례 더 올렸다.
『창조 능력자 55레벨
시간의 문 : 82
재능과 능력의 주인 : 82
절대 창조력 : 82
공간 이동 : 29
매개 능력 : 24
그랜드 코인 : 362831.』
능력 스탯이 제법 올라서 그런지 내게 깃드는 에너지도 훨씬 짙어졌다.
실물 전환할 수 있는 스케일이 이전과는 달라진 듯하다.
나는 곧바로 별에게 마음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별을 회복시키는 데 네 에너지와 힘을 쏟지 마. 네 힘은 별을 성장시키는 데 써야지.’
그러자 별에게서 답이 왔다.
‘달에서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네가 힘들 것 같은데?’
매개 능력 수치가 올라간 덕분에, 지구 밖에 존재하는 별들의 상태가 어떠한지 내게 분명하게 전해졌다.
‘별들의 회복은 내가 그림으로도 해결할 수 있어.’
별들을 회복시키는 건, 이제 그림 한 장으로 충분하다.
그림 한 장으로 별을 파괴하거나 복구시키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나는 별에게 계속 마음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네가 있는 곳으로 멸망의 별들이 몰려오기 전에, 창조의 별들을 인간형으로 성장시키는 게 중요해.’
‘네.’
그의 대답을 들은 나는 타블렛 디스플레이에 빠르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AI 수가 이미 창조의 별을 정밀하게 찍은 사진을 보내왔던 것이다.
* * *
2052년의 한반도 통일 시.
그곳은 인구 천만 명에 가까운 미래적인 대도시였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일 것이다.
세계에서 한반도는 가장 안전한 곳이었고.
회색 폭풍에 의한 오염도 거의 없는 지역이었다.
그렇기에 아포칼립스 이후, 세계 곳곳에서 무수한 이들이 한반도로 이주해왔었다.
천재 공학자 유하준 박사가 줄곧 생존해서 무수한 발명품과 무기, 방어 시스템을 개발해내니.
한반도 통일 시는 세계에서 가장 첨단 도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 통일 시, 주변에는 위성 도시가 존재했다.
총 12개 정도 작은 도시가 통일 시를 둘러 있고.
그 외에 한반도 곳곳에 군사 기지와 쉘터, 지하벙커 연구소가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한반도 통일 시 주변으로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츠츠-
며칠 전부터 작은 징후를 보이던 이상 현상은 마침내 변화를 가져왔다.
통일 시를 둘러싼 작은 위성 도시들의 풍경이 변화한 것이다.
통일 시와 위성 도시는 이전보다 더 활기를 띠는 모습으로 바뀌었고.
그 규모가 커졌다.
한반도의 인구는 이제 2000만 명이 훌쩍 넘는다.
각 도시에는 대학들이 생겨나고 평범한 마트, 학교, 관공서, 교회... 그런 것들이 더욱 생겨났다.
그리고 올차드 쉘터에 머물던 수호의 기억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었다.
홀로 지휘실 안에 머물던 그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건물 밖 정원 풍경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삭막하기 그지없던 이곳은 초창기 저택의 정원 풍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요새 느낌이 강했던 이전 모습은 사라지고, 고풍스러운 저택 분위기가 물씬 감돌았다.
수호는 뭔가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느낌에 이마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다 저만치 정원 정자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요히 앉아 있던 그는 수호를 돌아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수호는 그를 본 순간, 알 수 없게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왈칵 일었다.
사무친 그리움과 따뜻함, 애틋함이 그의 내면에 오래도록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의 안에서 새삼 일렁였다.
고수에 관한 수호의 감정이 이전과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수호의 내면에 이런 변화는 아마도 정자에 앉은 저 존재 덕분일 것이다.
수호가 다가가자 정자에 앉아 있던 그는 물었다.
“수호,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
그는 첫 번째 창조의 별인 ‘한별.’
30대 초반의 젊은 남성 외모를 지녔고, 눈동자는 초록빛이다.
그를 보니 수호의 안에서 일었던 기억의 폭풍은 차츰 정리되면서 가라앉았다.
수호는 말없이 그의 옆에 앉았다.
이전 시간선에선 없던 존재, 창조의 별인 ‘한별’.
한별은 수호가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왔던 이였다.
2026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그는 한별을 제법 의지해왔던 것 같다.
2026년, 고수의 생명이 다한 후에도 그의 의지는 한별을 통해 쭉 이어지고 있었으니.
한별은 고수의 의지를 따라 이제껏 행동하고 때로는 필사적인 전투를 해왔었다.
그리고 수호를 지키고 그를 보호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기도 했다.
그만큼 한별의 내면에 깊이 새겨진 고수의 의지는 강렬한 것이었다.
수호는 한별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태어난 직후, 아버지는 줄곧 나를 지켜 왔었더군.”
“그래. 고수는 네가 태어나던 날부터 그래왔었지. 원흉은 계속 너를 죽이길 원했었거든.”
크리스마스 무렵, 수호가 아직 신생아실에 있다가 위험 가운데 놓였을 때도.
고수는 시간 능력을 처음으로 사용하여 수호를 지켜냈었다.
수호를 지키는 일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었다.
올차드 저택에서 어린 수호를 구해야 했던 일이 몇 번이었는지.
이제는 그 횟수를 다 가늠하기 어렵다.
이렇듯 원흉의 공격이 어린 수호에게 이어졌던 것은, 그가 죽어야만 고수의 엄청난 능력도 사라질 것으로 여겨졌던 탓이었다.
이전의 시간선에서 수호는 부모 없이 외로이 자랐었다.
고수를 생각하면 원망이 들 수밖에 없었던 비통한 기억이다.
하지만 현재 시간선에서는 다르다.
고수가 어린 수호를 지키기 위해 무수히 애썼다는 이야기를, 한별에게 들으며 성장해왔던 기억이 그에게 있다.
수호는 그에게 말했다.
“내게 대학을 다녔던 기억이 있어. 내가 오래도록 꿈꾸던 일 중 하나가 이루어진 거지. 그러한 삶은 아포칼립스를 온전히 막은 후에야 이루어질 줄 알았거든.”
“오래도록 꿈꾸던 일 중 하나가 이루어졌다면, 너는 이전보다 행복해진 건가?”
한별이 묻자 수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여전히 나는 공허한 기분이다.”
“공허한 기분?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
수호는 피식 웃었다.
“여전히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이지.”
한별은 고개를 살짝 갸웃하다가 뭔가 알겠다는 듯 대꾸했다.
“혹시 이런 건가? 사람의 행복은 여건이나 환경보다 관계에 있다고 들었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말이야. 오래전, 고수가 그렇게 말했거든.”
“......”
수호가 그를 바라보자 한별은 짤막한 웃음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고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네가 했던 말도 그러한 맥락인 것 같다. 네가 성장해가며 유년 시절을 지나고 청소년기를 지나는 동안, 너는 이러한 말을 하곤 했었지. 지금의 네 모습을 여전히 아버지가 자랑스레 지켜봐 주면 행복할 것 같다고 했었지.”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한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적 넌 그랬었어. 그래서 고수가 했던 말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 인간은, 원하던 조건이 있어도 그 모든 걸 함께 누릴 소중한 사람이 없다면 행복할 수 없는 거지. 그래서 네가 공허한 거야.”
수호는 앉았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와 대화해야겠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저택 건물로 성큼 걸어 들어가다가 우뚝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정자에 있는 한별을 돌아보았다.
츠, 츠츠-
하늘과 올차드 저택, 그리고 한별까지.
또다시 이상 현상 나타나고 있다.
과거의 뒤틀림은 아직 멈추지 않은 것이다.
* * *
이튿날, 지하벙커 안에서 나는 4명의 먹보들이 엄청난 음식을 먹어치우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들의 주변에는 내가 실물 전환해서 만들어낸 음식이 한가득 쌓여 있다.
켜켜이 쌓인 피자 박스, 치킨 박스.
그리고 빵과 밥, 고기, 음료수, 생수, 샐러드, 만두 등등.
그들은 그 모든 걸 행복한 얼굴로 흡입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이젠 괜찮아?”
그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들에게 이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너희를 구별해야 하니까 앞으로 이름으로 부를게. 음, 넌 첫째니까 한별. 너는 달 근처에 있었으니까 ‘문별’, 너는 별의 모습일 때 유난히 빛이 났었으니까 ‘샛별’, 넌 구름을 보며 신기해했으니까 ‘운별’이라고 할게.”
“......”
그들은 내가 지은 이름이 썩 마음에 든 표정이 아니다.
‘별’자 돌림으로 이름 지은 게 촌스러워 보였나?
그들은 조금 전, 가까스로 이곳으로 왔던 터다.
다들 어린 모습이다.
문별은 2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외양이었고.
샛별은 18살 소녀, 운별은 조금 더 어린 17살 소년으로 보였다.
전부 초록색 눈동자를 지녔는데, 운별만 황금빛 눈동자를 가졌다.
내가 운별에게 시선을 주자 그는 입안에 든 것을 열심히 씹어 삼킨 후에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알려줄 게 있어요.”
“응?”
“원흉은 이제 매개 능력을 사용하지 않을 거예요. 더는 고수에게 빼앗길 수 없으니까요.”
“매개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여기 있는 저희 중에서 아마도 내가 원흉의 의지를 제일 강하게 담았었을 거예요.”
“그래?”
“멸망의 별로서 죽음 직전에 이르렀을 무렵, 마지막으로 감지할 수 있었던 원흉의 의지와 생각이 있었어요.”
“그게 매개 능력에 관한 건가?”
내가 묻자 운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흉은 수백 개의 이르는 멸망의 별들을 파괴할 겁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문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뭐라고?”
“별 중에서 가장 강력한 몇 개만 남겨두고 파괴하는 거죠. 수백 개의 별에 나뉘어 존재하던 원흉은 이제 몇 개의 별 안에서만 존재하게 될 거예요. 이제 별은 매개체가 아니라 원흉의 육신 중 하나로 존재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 갈래로 흩어졌던 그의 힘과 능력이 압축되는 거겠군. 근데 원흉의 힘과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어? 전보다 더 강해졌을까?”
“원흉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져요. 점차 진화하고 강력해지는 거죠. 하지만 능력의 진화 속도를 보자면 고수가 더 빨랐을걸요. 아무래도 미래에서 지원을 받은 까닭이겠죠.”
“자세히 알고 있네?”
운별은 해맑은 표정으로 씩 웃었다.
“전에 원흉의 기억이 제게 흘러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의 능력은 진화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능력이 때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음, 그래?”
“원흉의 능력 중에서 저는 염력을 받았어요.”
운별은 자랑하는 투로 말한다.
그러다 그의 어조는 조금 심각해졌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원흉이 다시 고수를 공격해온다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모습일 거라는 점이에요.”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나는 그렇게 답하며 ‘재능과 능력의 주인’ 능력을 사용해서 운별의 능력을 확인했다.
『창조의 별
생명의 바람 : 51
별의 시야 : 52
염력 : 57.』
생명의 바람과 별의 시야는 고유의 능력일 것이고.
염력은 원흉에게서 받았던 능력일 터다.
나는 한별의 능력도 확인해보았다.
『창조의 별
생명의 바람 : 55
별의 시야 : 57
공간 이동 : 79
외형 변형 : 29.』
한별은 공간 이동 능력의 스탯이 유독 높다.
그래서 그토록 빠르게 우주까지 도달할 수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