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별 2
그가 일으키는 바람은 평범한 바람처럼 보였다.
무슨 입자가 보이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별은 내게 말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내일 즈음 이 자리에 나와보면 나무가 회복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새삼스러운 생각에 그에게 물었다.
“너는 기억은 그대로일 텐데. 본성이 달라졌다고 말투도 달라졌네? 전에는 이렇게 깍듯하게 말하진 않았잖아.”
그가 나를 보았다.
“그건 고수의 의지와 생각, 당신의 성품 그런 게 내게 흘러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치 잘 벼려진 칼과 같습니다. 누가 그 칼을 잡느냐에 따라 사람을 행복하게 할 음식을 만들 도구가 되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는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군. 근데 넌 원래 어디에 있던 별이었지? 별은 저마다 하늘에 머무는 위치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는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원흉은 한반도를 증오합니다. 한반도에는 애플 수라 불리는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별 중에서 첫 번째로 빠른 진화를 했던 나는 한반도의 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주로 서울에 머물 것이고 활동반경은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원흉의 계획도 혹시 알고 있어? 또는 그의 약점이라거나.”
그는 자신의 기억을 가늠하듯 눈매가 조금 가늘어졌다.
“원흉은 자신의 계획 전부를 내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에게만 할당된 목표나 목적이 주어졌을 뿐이죠. 나는 고수의 아들을 죽여서 당신이 이제껏 미래에서 받았던 지원을 무효화 할 생각이었습니다.”
“......”
“만일 고수의 아들을 죽이는 데 성공하면 즉각 한반도에 회색 스모그를 일으킬 작정이었죠.”
그는 내 아들과 한반도를 해할 목적이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나는 쓴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그럼 다른 멸망의 별들은 어떤 상황이지?”
“조만간 한반도에 멸망의 별이 또 하나 나타날 겁니다. 멸망의 별들은 현재 지구 대기권 밖에서 자신의 힘을 키우는 중입니다. 대부분 태양 에너지로 성장하며 진화하고 있을 겁니다.”
“......”
“원흉은 이번 일을 계기로 섣불리 접근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내 생각엔 저들이 충분히 무르익었을 즈음, 내 아들을 첫 번째 표적으로 삼고 인간형 별들이 한꺼번에 나타나 공격할 것 같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 시기는 언제쯤이 될까?”
“별들의 성장과 진화 속도를 유추해보면, 인간형 별들이 한꺼번에 나타날 시기는 내년 초가 될 듯합니다.”
하긴 현재 시간선에서 본격적인 아포칼립스 발발은 2024년 초가 될 것이라고 했었다.
문득, 어제 수호가 톡 메시지로 했던 말이 떠오른다.
- 2050 : 네. 제가 겪은 시간에서 과거 아버지가 남기신 기록이 있습니다.
- 2050 : ...이후 창조의 별은 아포칼립스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만.
- 2050 : 이후 2024년도에 멸망의 별들과의 전투에서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군요.
나는 고개를 돌려 별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창조의 별은 진화한 별들과 싸우다가 죽게 될 거다.
그렇게 될 때까지 무력하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다가올 적들과의 싸움을 대비해야 할 듯하다.
* * *
다시 며칠이 흘러갔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하고 지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다.
겉보기에 무탈하고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흘러갔던 것이다.
하지만 내게 있는 이 평화는 온전한 평화가 아님을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광고 촬영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개인 작품도 그렸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무기와 식량 그림도 그려놓았다.
그림 작업 속도가 74배속인 데다 창조력도 수치가 좋으니.
그림을 완성하는 일은 별 부담이 없었다.
나는 강민철과 정테이, 유하준과 논의하기 위해 ‘애플 쉘터스’ 건물의 회의실로 들어섰다.
애플 쉘터스.
이젠 명목상으로만 유지되는 회사다.
나는 회의실에 먼저 와 자리에 앉으며, 어제 나노카와 통화했던 내용을 상기했다.
그녀는 자신이 보았던 최근 예지 환영을 내게 말해주었었다.
<대략 시기로 보자면 내년 초인 것 같고요. 겨울인 듯했어요. 제가 보는 예지 환영은 조금씩 달라지곤 해서, 가장 최근에 보았던 환영이 현재로선 가장 정확할 것 같아요.>
그녀가 보는 예지 환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말은, 그만큼 미래가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첫 번째 시작은 올차드 저택이 될 거예요. 그곳에 강력한 자들이 나타나 아기를 죽이려 했어요. 물론, 화가님은 아기와 가족을 다른 곳으로 빼돌렸고, 그들을 상대로 저택을 지켜내며 승리하긴 했지만 피해가 있었어요.>
“피해요?”
<올차드 저택은 그 어느 곳보다 방어 시스템과 시설이 탁월해서 안전하지만. 저택에 나타난 적 중에서 화가님과 똑같은 용모를 한 이들이 있었거든요. 그들이 다소 피해를 만들어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여전한 수법이군.”
<하지만 적들처럼 강력한 어떤 자는 화가님을 구별하는 듯했어요. 초록색 눈동자를 지녔던데. 그는 적들과 싸우다가 결국 죽고 말았어요.>
아마도 창조의 별이 멸망의 별들과 전투하다가 죽는 것을, 나노카가 보았나 보다.
나는 나노카가 했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테이가 회의실로 들어섰다.
“일찍 와 있었네요.”
테이가 먼저 회의실로 들어오고, 그다음엔 강민철과 유하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다 모이자 나는 현재 상황과 정보를 그들에게 공유했다.
그러다가 그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내가 이 자리에서 논의하고 싶은 것은, 지구 대기권 밖 어딘가 있을 멸망의 별들을 우리가 좀 더 일찍 찾아내서 제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음, 그래야겠죠.”
나는 유하준을 바라보았다.
그가 한나와 결혼한 이후, ‘형님’이라 호칭하고 있었다.
“형님, 눈에 띄지 않는 초소형 우주 비행체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요? AI가 조종할 수 있는...”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런 걸 제작하려면 개발 기간까지 해서 몇 년은 걸립니다. 올해 안에는 무리죠.”
“저번처럼 설계를 해서 완성된 이미지만 저에게 주시면 됩니다. 설령 올해 안에 설계가 완성되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이후 초소형 우주 비행체를 개발하는 데 주력해 주시면 됩니다.”
유하준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내가 개발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결국 그건 현재에 쓰이게 되겠군요.”
테이가 훗 하고 웃으며 말했다.
“아, 미래에서 연구 결과물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네, 그렇죠. 하지만 우주 비행체를 개발하여 멸망의 별을 찾는다고 해도 광대한 우주에서 티끌만큼 작은 것을 찾는 일입니다. 이 또한 수년, 혹은 수십 년이 걸릴 일일 텐데요.”
“대략 별의 위치는 알 수 있습니다. 별을 찾아 헤맬 일 없이 그곳으로 초소형 드론을 바로 보내면 됩니다.”
별들은 서로 교통하고 있다고 했다.
자세한 정보까지는 아니어도 서로의 위치는 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창조의 별은 그에게서 멸망이라는 근원이 사라진 순간, 다른 별과 교류하는 게 끊기긴 했지만.
이전 기억만으로, 멸망의 별들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유하준이 내게 말했다.
“그럼 오늘 즉시 연구 센터에 다녀와야겠습니다. 현재에 충실에야 미래에 결과물이 있을 테니까요.”
지하벙커 기능이 있는 건축물로, 기계 공학 연구 센터가 경기도에 진즉 완공되어 있었다.
그곳에 유하준이 끌어모은 연구원들이 있다.
강원도에는 환경 연구 센터를 완공했었는데.
그곳 역시 유하준에게 관리 권한을 맡겼다.
그 외, 애플 쉘터스는 정테이가 책임자다.
나는 그 모든 연구 센터에 물질적인 지원을 하고 있었다.
또한 강민철의 IT 사업에도 투자를 하는 중인데.
최근, 강민철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활용한 탓에 사업 결실이 좋아서 내게 혜택에 돌아오기도 했었다.
어쨌든, 이 시점에서 유하준이 초소형 우주 비행체를 개발하는 것을 시작한다면...
그가 이룬 연구 결과물을 나는 현시점에서 받아볼 수 있었다.
이래저래 시간은 우리 편이다.
문득, 테이가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다들 세상을 위해서 각자 큰 몫을 해내시는데 저는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저는 지하벙커 건축과 시설에만 탁월할 뿐이라서요. 이젠 연구 센터와 아프리카에서 진행되는 병원 건축도 끝난 상태라 한가해졌어요.”
나는 그녀에게 눈길을 주었다.
“테이 씨의 역할은 그저 건물을 완공한 것으로 끝난 게 아닙니다. 이제껏 진행하며 완공했던 건축물의 관리는 테이 씨 몫이니까요. 그것 말고도 애플 쉘터스는 평화로운 세상에서도 어떤 몫을 해 나갈지 차츰 생각해볼 참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다가 수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원흉이 그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고 했다.
‘애초에 인간인 존재가 죽음을 죽일 수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 말이 내내 내 마음에 걸렸었다.
지금도 그 말에 떠오르던 참에 강민철이 말을 꺼냈다.
“그런데 원흉을 제거하는 일 말입니다. 그, 멸망의 별이라는 걸 죄다 제거하면 온전히 뿌리 뽑을 수 있을까요?”
그의 질문에 나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반문했다.
“죽음 자체를 형상화한 존재가 있다면 말입니다. 그 존재를 끝장내고 죽일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죽음을 죽일 방법은 잘 모르겠고. 음... 죽음을 형상화한 존재를 끝장내려면 먼저 그 존재를 상대할 수 있어야겠네요. 죽음을 두려워해선 안 되겠죠. 죽음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무엇이겠습니까? 두려움 아니겠습니까? 죽기를 무서워하지 않을 때, 죽음은 힘을 잃을 것 같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죽음을 끝장내는 일에 한 걸음 나아간 게 아닐까 싶군요.”
유하준이 말을 꺼냈다.
“내 생각에는 죽음의 죽음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그 의미가 다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말에 우리의 이목이 그에게 쏠렸다.
“의미가 다르다고요?”
“예.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은 생명을 잃게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잖아요. 하지만 죽음은 그 반대가 아닐까요?”
“어,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테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억거리면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죽음에겐 생명이 곧 무덤이 될 수 있겠네요.”
* * *
그날 밤, 2024년 즈음에 유하준이 완성해놓은 초소형 우주 드론의 이미지를 수호에게서 이메일로 받았다.
나는 건네받은 이미지 파일을 열어서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투명한 빛깔의 초소형 드론.
생김새는 기존의 드론과 달랐다.
대기권까지는 기존 드론처럼 비행하다가 이후로는 레이저 빔으로 우주를 비행하게 될 드론이었다.
나는 우주 드론의 그림을 실물 전환했다.
그러고는 AI 수에게 조종을 맡겼다.
“수. 붉은 유성이나 멸망의 별 생김새, 알고 있지?”
내 옆에 떠 있던 3D 디스플레이에서 AI 수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물론입니다. 지금 우주 드론을 조종할까요?>
“잠깐. 그 전에 이 드론에 내 능력을 걸어두어야지.”
나는 우주 드론에 실물 전환 능력과 공간 이동 능력을 걸어두었다.
아직은 능력 스탯이 충분하지 못해서 여러 대의 드론을 보낼 수 없는 게 아쉽다.
잠시 후, AI 수는 우주 드론을 조종했다.
위잉-
그것은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내 앞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3D 디스플레이에 나타난 영상에 눈길을 주었다.
드론이 촬영하는 영상을 보니, 우주 드론은 어느새 저택에서 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