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별
그날 늦은 오후, 공간 이동 능력을 사용해서 의식을 잃은 별을 지하벙커로 데려갔다.
저택으로 데려가면 가족들이 놀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내 외모를 다시 되돌리고 근처 피범벅이 된 흔적도 말끔하게 내놓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사실, 별은 심장이 뚫린 상태라서 인간이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는 비정상적인 치유력으로 훼손된 심장을 먼저 회복했다.
나는 지하벙커에서 한동안 그를 지켜보았다.
그의 괴물 같은 회복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굳이 그를 치료해주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원흉도 머리가 잘린 상태에서 다시 회복했었으니.
이 존재도 그만한 회복력이 있지 않을까 여기긴 했다.
아까 별에게서 멸망 속성이 지워졌을 때, 보상이 들어왔었다.
멸망의 별을 제거한 것과 마찬가지라서 보상이 들어온 모양이다.
나는 내 능력 스탯을 확인했다.
『창조 능력자 54레벨
시간의 문 : 74
재능과 능력의 주인 : 74
절대 창조력 : 74
공간 이동 : 21
매개 능력 : 15
그랜드 코인 : 5731539.』
내가 별에게 매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건, 매개 능력 스탯을 한 단계 올렸던 덕분이었다.
2052년도에서 생존자가 이전 시간선보다 많아졌던 탓에 코인이 어느 정도 채워졌었다.
나는 그의 곁에 앉아 그림을 그리면서 한동안 그를 지켜봤다.
그러다 자정이 지났을 즈음, 별이 조용히 눈을 떴다.
그는 눈을 두어 번 깜박이다가 눈동자를 움직여 나를 보았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정신이 들어?”
“......”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전해지는 것이 있었다.
사과나무와 내가 교감했던 것처럼.
이제는 ‘창조의 별’로 속성이 바뀌고 내게 속하게 된 그의 감정과 의식이 내게 전해졌다.
‘아파.’
아프다는 그 말은 단어 형태로 전해지지 않았다.
마음 형태로 내게 감지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상태를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감정만이 아니라 그의 육신 상태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상처는 피가 멎었다.
피가 거의 빠져나가서 인간이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지경이었는데도.
그는 별이었기에 뚫렸던 심장마저 금세 메워졌다.
인간형 별은 내가 만든 사과나무보다 몇 단계는 진화된 존재라서 그런지.
그에게서 전해지는 것은 이처럼 구체적이고 분명했다.
‘목말라.’
그의 마음이 또 전해졌다.
지금은 인간의 몸이고 피를 잔뜩 흘려서 체액이 부족한 상태이니.
그것이 목마름으로 느껴지는 것일 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놓인 생수병을 가져왔다.
그에게 다가가 몸을 조금 일으키고 물을 마시게 했다.
괴물 같은 회복력이라고 해도, 그가 회복되고 완치되려면 며칠이 걸릴 터다.
500리터 생수 한 병을 다 비운 그를 보다가 사과했다.
“아프게 해서 미안.”
그의 고통이 내 마음에 전해지니 사과의 말이 절로 나왔다.
“......”
“하지만 아프게 할 수밖에 없었어.”
별은 메말라 갈라진 입술을 떼며 말했다.
“당신 말대로 나는 죽었었군요.”
“응?”
“멸망의 별이던 나는 죽게 될 거라고 말했었죠. 그 말대로 멸망에 근원을 두었던 내 본질이 사라졌으니 멸망의 별이던 내 삶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에 가득하던 증오와 사나운 기질이 사라진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 넌 이제 창조의 별이 되었지.”
그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이더니 도로 눕고 눈을 감았다.
기력이 부족해 보였다.
그러해도, 이틀 정도만 지나면 그의 상처는 온전히 아물게 될 것 같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너는 에너지원이 뭐야? 지금은 인간 모습이니 밥 같은 걸 먹나?”
별은 눈을 뜨더니 침을 꼴깍 삼켰다.
“밥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습니다. 어제 인간으로 처음 된 거라서.”
“음, 그렇겠네.”
“전에는 주변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닥치는 대로 흡수하며 존재했습니다. 태양 에너지나 바람 같은 것에도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었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서 에너지를 빼앗아 흡수하기도 했습니다.”
“그랬군.”
나는 언젠가 그려두었던 음식 그림을 실물 전환했다.
음심 냄새가 나자 누웠던 그의 코가 벌렁거렸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근데 지금의 너는 계속 배고프다고 내게 마음을 전하고 있네.”
그러자 그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제가요?”
“왜 아닌 척해. 난 너의 모든 걸 감지하고 알 수 있는데.”
“......”
“배고프지? 우선 먹어. 그래야 회복하지.”
그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내가 실물 전환한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너를 굳이 살린 이유는 넌 진화된 매개체이기 때문이야. 내 매개 능력으로는 만들 수 없는 그런 매개체.”
우걱우걱.
“너를 죽이면 나는 그냥 별 하나를 없앤 것뿐이고. 보상만 얻을 수 있겠지. 하지만 너의 본질을 바꿔버리면, 나는 멸망의 별 하나를 제거한 동시에, 내 능력 수준으로는 얻기 어려운 매개체를 얻게 되는 거야.”
우걱, 쩝쩝.
눈 깜짝할 사이에 도시락 1인분을 해치우는 그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조금 전에 내가 먹으려고 가져다 놓은 샌드위치 두 개를 냉장고에서 꺼내 왔다.
“이것도 먹어라.”
그는 사양하지 않고 냉큼 받는다.
“어쨌거나 나는 창조의 별 하나를 얻게 된 셈이지.”
별은 샌드위치의 소스를 입에 다 묻히며 입안에 전부 욱여넣었다.
입안이 볼록해져서 그는 내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내게 전해졌다.
‘살려줘서 고맙게 생각해요. 사실, 나는 살고 싶었어요. 멸망의 의지를 따라 움직였지만. 그래도 아프거나 죽는 건 원하지 않았어요.’
나는 흐릿하게 웃었다.
“그래.”
그는 두 번째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그의 먹성을 보니 슬슬 불안해진다.
저택 안에 있는 음식물이 죄다 털리는 게 아닐까.
그는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입을 열었다.
“맛있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거라서. 하지만 나는 음식물을 굳이 먹지 않아도 됩니다. 원하면 태양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 하지만 자연에서 생명 에너지를 흡수하는 건 안 돼.”
“네, 물론입니다. 이제 내 본성은 그걸 원하지 않아요. 지구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에 해악을 끼치는 건, 제 본성에 위배됩니다.”
“그렇구나. 본성이라... 사실, 나는 널 살린 이유가 또 있어.”
그는 두 번째 샌드위치도 금세 해치운 채 볼록해진 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 음식이 한 번에 입안에 다 들어가는 것을 보니, 언젠가 보았던 다람쥐가 생각난다.
볼때기에 도토리 여러 알을 마구 욱여넣던 작은 다람쥐.
하지만 눈앞의 그는 다람쥐처럼 귀여운 외양은 아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남성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너에겐 멸망의 별이었던 기억이 남아 있겠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걸 너에게서 듣고 싶었어. 나는 멸망의 별들이나 너희를 통제하고 조종하는 아포칼립스 원흉에 대해서나, 정보가 부족하거든. 하지만 지금의 넌 회복과 쉼이 필요한 것 같으니 우선 쉬어. 내일 듣도록 하지. 여기 지하벙커엔 침실과 욕실, 그와 같은 편의 시설이 있으니까 불편한 건 없을 거야.”
그는 입안에 든 것을 열심히 씹으며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서 돌이켜 벙커를 나왔다.
* * *
다음날 오전.
나는 침실에서 수호와 잠시 톡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 고수 : 수호야, 그곳에 뭔가 달라진 거 없어?
- 2050 : 있습니다. 지금 외부에서 계속 정보를 수집하는 중이지만, 지금 대략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별의 개체 수가 소폭 풀고 생존자 수가 조금 늘었다는 것입니다.
- 고수 : 그래? 큰 변화는 없나 보군. 그래도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잘된 일이지.
- 2050 : 네. 제가 겪은 시간에서 과거 아버지가 남기신 기록이 있습니다.
- 고수 : 어떤 기록?
- 2050 : 창조의 별에 관한 기록입니다. 아버지는 2023년 봄, 멸망의 별 하나를 창조의 별로 바꾸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후 창조의 별은 아포칼립스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만.
- 2050 : 이후 2024년도에 멸망의 별들과의 전투에서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군요.
- 고수 : 그래...
나는 말끝을 흐리듯 답변을 보냈다가 그에게 물었다.
- 고수 : 2052년의 상황은 어때? 그곳 멸망의 별들이 강하다고 해서 걱정이네.
- 2050 : 멸망의 별이 중국과 일본으로 계속 몰리고 있지만. 한꺼번에 몰리거나 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 2050 : 저 지금 나가봐야 합니다. 다음에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수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말이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나는 저택을 나왔다.
내 손에는 옷이 몇 벌 들려 있다.
내가 입던 옷이다.
정원을 나오니 분홍빛 벚꽃이 만발한 게 보였다.
조금 걷다가 벚꽃 나무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벚꽃 나무 아래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따금 흩날리는 분홍 꽃잎이 물빛 하늘과 색이 대비되어 아름답게 보였다.
나는 타블렛 펜을 작동하여 3D 디스플레이를 열어 AI 기능을 활성화했다.
“수, 별은 지하벙커에서 얌전히 있나?”
“어제 데려오셨던 창조의 별은 아침이 된 후 저택을 나갔습니다.”
“나갔다고?”
“멀리 간 것은 아니고 근처에서 일광욕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AI 수는 화면에 창조의 별을 촬영한 영상을 띄웠다.
투명한 초소형 드론으로 비행하며 공중에서 그를 촬영한 것이다.
별은 길바닥에 우두커니 앉아 무릎을 세워 턱을 받치고 있다.
그는 따스한 햇볕 아래 늘어진 고양이처럼, 반쯤 뜬 눈으로 봄 햇살을 만끽했다.
나는 영상을 보다가 그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저택의 정원이 넓어서 한참 걸어야 했다.
정문을 나오니 저만치 별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나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태양 에너지를 흡수 중입니다. 제 상처를 회복해야 했거든요.”
“알아.”
나는 그에게 옷을 건넸다.
“이따가 이 옷으로 갈아입어. 체격이 비슷하니 얼추 맞을 거야.”
그가 내 옷을 받자, 나는 그의 곁에 털썩 앉았다.
그는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회복력이 꽤 빨랐던 것이다.
그는 잠잠히 있다가 말을 꺼냈다.
“어제, 멸망의 별과 아포칼립스라 불리는 자에 관한 정보를 듣고 싶다고 했었죠?”
“그래.”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당신이 아포칼립스 원흉이라고 말하는 그자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의 의지와 생각이 내 존재와 자아를 결정짓듯 수시로 제게로 흘러들었습니다.”
“그리고?”
“원흉이라 하는 자는 육신이 존재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저는 그자에게서 능력 일부를 받았습니다. 공간 이동 능력, 외형 변형 능력은 그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흠, 그래?”
“그 외에 뛰어난 신체 능력과 여러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원흉에게 받았다기보다는 모든 별이 갖는 공통적인 능력입니다.”
“그 공통적인 능력은 어떠한 것들이 있지?”
그는 시선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가 무엇을 보는지는 모르겠다.
“모든 별은 서로 교통합니다. 많은 걸 공유합니다. 별로서 존재할 때, 우리의 재질은 지구에서 가장 강한 물질보다 더 견고하고 강합니다. 쉽게 파괴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쉼 없이 진화를 반복합니다. 그러다 저처럼 인간 형태까지 이르게 됩니다. 인간형에 이른 별은 아직 제가 유일합니다.”
“그렇군.”
“우리는 수명에 제한이 없습니다. 회복력도 강한 편입니다. 흡수할 에너지만 충분하다면 회복은 빠르게 이루어집니다. 그 외에 우리는 지구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 멸망의 별이었을 때는 회색 스모그나 폭풍을 일으키기도 했지.”
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그렇게 회색 입자로 지구 생명체를 변질시키게 되면, 우리는 그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때는 멸망의 별이었을 때지만. 지금은? 지금 넌 창조의 별이잖아.”
그는 맑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전엔 회색빛이던 그의 눈동자가 지금은 초록빛이다.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그가 앉았던 곳에서 일어나자 나 역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저택 부근에 있는 나무와 수풀을 눈으로 훑었다.
그러다 뭔가 발견했는지 말을 내뱉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나는 그를 따라 조금 걸었다.
그는 어느 나무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병들어서 죽어가는 나무였다.
“멸망의 별은 회색 입자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변질시키지만. 나는 오염되거나 죽어가는 생명체를 본래 원형의 모습으로 회복시킵니다.”
그러더니 그는 능력을 발하는 듯했다.
초록색이던 그의 눈동자가 백색의 빛을 머금었다.
그에게서 어떤 바람 같은 것이 일어났다.
그의 짧은 흑발이 조금씩 흩날렸고, 내 머리카락과 옷자락도 조금 날렸다.
부드러운 봄바람이 연상되는 바람이다.
그가 병든 나무를 향해 손을 뻗자 바람이 그쪽으로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