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사과나무 4
내가 매개 능력을 사용할 매개체로 사과나무를 선택한 이유.
화명이 애플 수이기도 했지만, 사과나무 자체는 눈에 띄지 않고 평범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눈에 띄는 매개체인 것이 좋을 거로 생각했다.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벽 별이 총총히 떴다.
평화롭고 고요하며 아름다운 하늘 풍경이다.
나는 저택 안으로 돌아가며 핸드폰으로 조금 전에 왔던 메시지 톡을 다시 확인했다.
- 2050 : 내일 오후 2시입니다.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장시간 접속해 있어야 할 겁니다.
- 고수 : 괜찮아. 그때 아바타 접속할게.
내일... 아니, 오늘이겠다.
2052년의 세상에서 치러지는 대규모 전투에 참여할 예정이다.
장시간 아바타 접속은 항상 신체에 무리를 가져왔었으니.
2시 전까지 컨디션 관리 좀 해두어야겠다.
* * *
그날 오후 2시.
나는 2052년의 세상에 아바타 접속해 있었다.
이곳 세상을 인지하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비행선 지휘 통제실의 풍경과 그곳에 있는 수호였다.
나는 비행선의 유리 금속 창밖을 내다보다가, 디스플레이로 보이는 화면에도 눈길을 주었다.
한반도군의 비행 전투력이 내 눈에 들어왔다.
상당히 규모가 커져 있는 한반도군.
대형 전투 비행선이 4대.
무인 전투기가 600대였다.
전투기들이 비행선을 호위하듯 나아가고 있다.
아마도 비행선 내부에는 지상 전투 차량과 전투 로봇이 가득 실려 있을 터였다.
수호는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곧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어, 응.”
나는 눈앞에 떠 있는 3D 디스플레이와 타블렛 디스플레이를 손으로 터치했다.
저택에서 미리 그려 전송해두었던 그림들을 전부 열었다.
그때 AI 2050의 음성이 들려왔다.
“중국 Y 영역에 5분 후에 도착합니다. 리더 장위의 군대가 집결한 지역에 방금 도착했습니다. Y 영역 상공에는 7개 영역에서 몰려든 공중 괴수들이 대략 9500마리 집결해 있습니다.”
수호는 미간을 조금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너무 많군.”
한반도군은 주로 공중 괴수들을 담당할 것이었다.
“예측한 숫자보다 4000마리가 더 많습니다. 이 중에서 S급 이상 괴수는 70마리, A급 이상 공중 괴수는 600마리, B급 이상은 2500마리가 넘습니다.”
“현재 인간형 멸망의 별들이 괴수들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별들은 총 10명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AI 2050의 음성은 모두 비행선의 지휘 통제실에 전달되고 있었다.
각 지휘 통제실의 모습이 이곳 디스플레이를 통해 여실히 보여졌다.
그들의 말소리도 들려왔다.
“생각보다 적의 숫자가 많습니다. 적의 군대 규모 예측마저 이토록 빗나가다니! 오늘 느낌이 안 좋습니다.”
“러시아와 유럽 쪽에서 건너온 괴수들 같습니다. 거기다 멸망의 별들이 10명이나 된다는 건, 우리에게 위험합니다.”
“고 사령관님, 오늘 전투는 다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좀 더 전력을 구축한 다음에...”
수호는 단호한 목소리로 일축했다.
“오늘 공격은 감행합니다.”
“네? 하지만 적이 너무 강합니다.”
“더 미루면 저들은 더 강해집니다. 또한, 저들이 언제 기습을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중국의 방어선이 무너지면 우리 한반도도 위험해집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력은 지금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다들 그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우리 군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습니다.”
“......”
“우리 한반도군의 숨은 전력, 이제 나타내겠습니다.”
수호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수호야, 괜찮겠어?”
“네.”
나는 앞에 떠 있던 디스플레이를 수호에게 손으로 밀어 보냈다.
그러자 그는 그걸 손으로 턱 잡더니 내가 그렸던 그림들을 전부 실물 전환하기 시작했다.
* * *
적의 진영에선 언뜻 흉측해 보이는 피부의 인물들이 모여있었다.
여자 모습이거나 젊은 남자 외형을 지닌 그들.
그들은 인간형이 된 멸망의 별이었다.
그들의 외양은 제각각이었다.
흉측함이 심한 자도 있었고 평범한 사람의 외모에 가까운 이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깨끗한 몰골을 한 젊은 남자.
그는 별 중에서도 강한 축에 속했는데, 이는 아포칼립스 원흉의 능력 중 한 가지를 받은 까닭이었다.
그에겐 시간을 가늠하는 능력이 있다.
그가 가늘게 찢어진 눈을 들어 저 멀리 허공을 응시하더니 입을 뗐다.
“조심해. 과거에서 온 자가 있어. 잠시 시간의 흐름이 균열이 있었다.”
“과거에서 온 자? 고수?”
“이번에도 그인가?”
“그래도 걱정할 건 없어. 이제껏 패배하기도 했지만, 이번엔 우리의 병력이 압도적이니까.”
그러자 찢어진 눈의 남자는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머저리들.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마라. 고수는 무에서 유로 군대를 창조해내기도 하는 자이지 않던가.”
“그럼 어쩌자는 건데?”
“만일 승패가 불리하게 기울면 우리는 피하도록 하지.”
회색 피부의 여자가 으르릉거리듯 대꾸했다.
“우리가 피하자고? 겁쟁이로군. 우리 군대를 이대로 내주자는 건가?”
남자는 서늘하게 답할 뿐이었다.
“우리의 패배를 최소화하자는 거다. 이번 전투에서도 저들이 승리하면 고수는 더 강해질 거다.”
“그래도 끝까지 싸워봐야지. 우리 개별 능력은 하나의 군대와 같아.”
“성급할 건 없어. 어차피 수호는 조만간 죽게 될 거니까. 그러면 고수는 그의 한쪽 날개가 꺾이는 셈이 될 거다.”
그때 멸망의 별 중 하나가 공중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길 봐. 저들의 군대가 모습을 드러냈어.”
그의 말에 별들은 공중으로 시선을 향했다.
저 멀리 한반도에서 몰려온 비행 병력이 보였다.
그런데 전투 비행 병력 앞에 뭔가 홀연히 나타나는 게 있다.
츠츠-
회색 피부의 여자는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동공에 푸른빛으로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불새가 비쳤다.
“저건 또 뭐야?”
“저들의 능력이 벌써 저만큼이나 진화한 건가? 이전엔 아주 작은 불새만 나타나곤 했었는데.”
으득, 그녀는 입을 갈았다.
“생각보다 강해졌어.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저들에게 유리하도록 뭐든 흘러가는 기분이야.”
“고수에게 시간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는 탓이다.”
집채만 한 크기의 거대한 푸른 불새가 연이어 7마리가 실물 전환되어 나타났다.
몸체가 A급 이상으로 분류되는 공중 괴수와 비슷했다.
그것 말고도 원격으로 조종되는 대형 전투 로봇도 홀연히 나타났다.
그것의 크기는 S급 괴수의 몸체와 맞먹었다.
쿠에에에엑-
쿠구구구구-
드디어 전투가 시작되었다.
대형 불새 중에서 두 마리는 접전 지역을 벗어났다.
그것이 거대한 날개를 한 번 퍼덕일 때마다 단숨에 멀리까지 나아갔다.
열풍을 일으키며 불새가 빠르게 지나가자 지상 부근까지 열기가 짙게 전해졌다.
찢어진 눈매의 남자는 냉정한 시선으로 전투 양상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전투가 중반으로 치닫고 있었을 때, 그의 동료들에게 입을 열었다.
“결국 군대를 버려야 될 것 같군. 이후론 저들과 정면 승부하는 건 삼가야 할 듯하다.”
회색 피부의 여자가 고집스레 외쳤다.
“아냐, 아직 승산이 있어!”
“군대 따윈 얼마든지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를 내줘서 고수의 능력이 강해지게 만들 수는 없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일말의 망설임 없이 돌이켜 자리를 떴다.
다른 멸망의 별들도 별수 없다는 듯 그를 뒤따랐다.
회색 피부의 여자는 보랏빛 힘줄이 크게 불거지도록 주먹이 꽉 쥐었다.
그녀의 눈에는 분노가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 * *
대규모로 치러진 전투는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되었다.
내가 아바타 접속한 지 4시간 정도 되었을 때 전투는 이미 마무리 단계였다.
작은 빌딩만 한 대형 전투 로봇을 50대나 실물 전환했고.
대형 불새를 10마리 정도 실물 전환했었다.
내가 이것들을 그림으로 그려내느라 또 얼마나 노가다를 했었는지.
대형 전투 로봇의 성능은 대단했다.
그것들은 영화에서나 보던 광경을 마구 연출했다.
D급 공중 괴수를 두 손으로 찢거나 날개를 꺾어버리거나 했던 것이다.
워낙 공중 괴수의 숫자가 많았던 탓에 하급 괴수를 죽이는 일은 단순 노동에 가까웠다.
S급 이상 공중 괴수도 감당할 만했다.
후방에서 전투 병력이 합세해주니 상대가 되었다.
여하튼 적의 영역에 있던 탑들을 전부 파괴했고.
공중 괴수들도 대다수 멸하게 되자, 나는 불새들을 다시 그림으로 되돌렸다.
물론, 대형 전투 로봇은 그대로 두었다.
수호가 내게 말했다.
“아버지는 이만 아바타 접속을 끊는 게 좋겠습니다. 이제 잔당을 청소하듯 쓸어버리기만 하면 됩니다.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잖아도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탓에 꽤 지치고 있던 터였다.
자잘한 괴수들을 청소하는 건, 어차피 꽤 시간이 걸릴 터.
AI 2050의 보고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모든 비행선이 아니라 수호에게만 하는 보고였다.
“4대의 비행선 중 1대가 일부 파손되었습니다. 무인 전투기는 182대가 격추되었습니다. 오늘 실물 전환했던 대형 로봇 전투는 3대를 잃었고 20대가 파손되었습니다. 인명 피해는 중국 군대에서 7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한반도군은 인명 피해가 없습니다.”
나는 2050의 음성을 듣다가 수호에게 말했다.
“근데 멸망의 별들을 놓쳐서 아쉽네.”
멸망의 별들은 전투 중반을 넘어갈 즈음, 전장에서 사라졌었다.
그래서 전투가 조금 더 빨리 마무리된 부분도 있었다.
“멸망의 별 10명 중 한 명만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서 가장 약한 개체였던 것 같습니다. 기대했던 만큼 보상을 얻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오늘 성과가 커. 적의 영역 7개를 정복하게 되었으니까. 별도 하나 제거했고, 우리 인명 피해는 없었으니 이만하면 놀라운 성과지. 수호야, 오늘도 함께할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좋았다. 또 보자.”
“네, 곧 연락 드리겠습니다.”
늘 변함없이 담담하면서도 굳건한 그의 얼굴.
그런 그를 내 눈에 마지막으로 담으며 아바타 접속을 끝냈다.
* * *
자정이 지났을 무렵, 나는 서재에서 내 능력 스탯을 확인했다.
보상이 들어온 게 있다.
코인도 마찬가지.
어느덧 2052년에서는 적의 영토를 정복하는 일이 끝이 났나 보다.
정복하고 별 하나를 제거했던 만큼 그만한 보상이 들어와서 아주 아쉽진 않다.
나는 그랜드 코인을 소모하여 매개 능력을 한 번 올렸다.
그랬더니 내 능력 스탯이 이처럼 되었다.
『창조 능력자 53레벨
시간의 문 : 72
재능과 능력의 주인 : 72
절대 창조력 : 71
공간 이동 : 18
매개 능력 : 11
그랜드 코인 : 539.』
나는 서재에서 정원으로 공간 이동을 했다.
어느 정도 오른 매개 능력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과나무 앞으로 다가가서 나뭇가지에 손을 살며시 가져다 댔다.
역시 이번에도 사과나무의 감정 같은 게 전해졌다.
아니, 감정이라기보다 이번에는 마치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 우린 여기가 마음에 들어요!
- 당신의 이름은 고수?
- 우리는 알 수 있어요. 여긴 오래전에 사과나무 과수원이었다는 것을.
- 모든 사과나무의 고향 같은 곳에서 우리가 태어난 거예요.
나는 옅게 미소지었다.
“그래. 여기가 네 고향이긴 하지. 하지만 너흰 여기 계속 머물 수 없어.”
사과나무들이 내는 마음의 소리 같은 게 내게로 마구잡이로 전달되었다.
- 어? 왜요?
- 우린 떠나야 하나요?
- 그건 싫은데.
- 여기 있어야 행복해질 것 같아요.
이들과 나는 대화가 가능해진 것 같다.
사과나무의 마음을 듣게 되니, 그저 매개체로만 여겼던 이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겨난다.
“너흰 여길 떠나서 멀리 가서 존재해야 해. 너희에겐 각자 주어진 임무가 있어.”
나무들은 슬픈 듯이 마음을 전했다.
- 알아요. 이젠 알겠어요.
- 우리는 고수와 마음이 통하니까 이젠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요. 우리가 왜 존재하게 되었고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고 고수와 헤어지고 싶지 않지만. 당신의 마음을 아니까 감수할래요.
- 때가 되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겠죠. 그리고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을 땐, 우리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그리고 나는 너희가 위험하지 않도록 최대한 지킬 거야.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게 될 뿐만 아니라, 너흰 온전히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 그럼요!
- 물론이에요.
- 고수는 우리를 강하게 만들 거라는 것도 알아요.
“그래. 너희는 강해지게 될 거지. 나는 너희가 궁금해. 능력도. 너는 나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어?”
내가 묻자 사과나무들은 앞다투어 떠들었다.
- 우리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요! 음, 우선은 지금처럼 고수와 대화할 수 있어요.
- 우리끼리 수다 떠는 것도 가능해요. 셋째는 너무 말이 많아요.
- 내가 뭐! 둘째도 만만치 않아.
나무들은 저들끼리 첫째 둘째 그렇게 호칭하며 부르고 있었다.
매개 능력 수치가 아직 낮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나무가 아직 묘목 상태라 그런 걸까.
나무들은 어떤지 어린아이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우리는 모든 오염에 강해요. 특히 멸망의 별이 일으키는 회색 입자에 면역이 있어요.
- 우리는 다른 식물보다 생명력이 강해요. 그래서 다른 식물과 우리가 머무는 땅을 지켜줄 수 있어요.
- 우리가 강해지면 회색 폭풍도 삼켜버릴 수 있어요. 멸망의 별이 생태계에 영향을 주어 별이 있는 지역을 멸망으로 치닫게 했듯이. 우리 역시 생태계에 영향을 주어요.
- 멸망의 힘을 감지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후에는 우리의 감지 능력을 고수와 공유할 수 있을 거예요.
나무들이 전하는 내용을 듣던 나는 불현듯 드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입을 뗐다.
“그럼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