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29화 (129/153)

창조의 사과나무

붉은빛이 옅은 하늘.

멀리 파괴된 도시가 보이고 곳곳에 뿌리내린 기괴한 식물들이 눈에 띄었다.

저 멀리 공중을 날아다니는 괴수들이 보이기도 했다.

영상을 촬영하는 드론이 높이 비행했다.

대기의 중간권까지 올라간 듯했다.

나는 영상을 유심히 보다가 의구심 어린 얼굴로 수호에게 물었다.

“저긴 어디지?”

“중국 베이징입니다.”

“베이징? 멸망의 별은 안 보이네. 그러면서도 도시는 여전히 정리가 안 된 것 같고.”

“2052년에는 멸망의 별이, 별 형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뭐?”

“전부 인간 형태로 존재합니다.”

내 표정이 조금 심각해졌다.

“그럼 멸망의 별이 더 강해졌다는 거잖아? 멸망의 별이 인간형으로 변했다는 건, 진화의 최종 단계 아니었나?”

“네. 멸망의 별이 전부 강해진 상태입니다.”

“그럼 아포칼립스 난이도가 더 올라간 건가? 원흉이 더 강해지기라도 한 거야?”

원흉을 두 번이나 죽이고, 심지어 그의 육신마저 세상에서 지워버렸는데도.

아포칼립스의 상황이 더 안 좋아진 거면, 좀 심각하다.

수호는 나를 물끄러미 보며 입을 뗐다.

“아포칼립스의 난이도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2026년 이후에 높아졌습니다. 원흉이 강해졌다기보단, 원흉이 이전처럼 한 명의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원흉은 모든 멸망의 별을 통해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멸망의 별을 통해서?”

“네. 원흉의 능력은 특정 몇몇 별에 나누어진 것 같더군요. 이제껏 한반도의 전문가들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허.”

“그 탓에 멸망의 별은 진화가 더 빨라졌고. 인간형의 별들이 이전보다 더 빨리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인간형 별들이 나타나는 시기는 언제쯤인데?”

“이전 시간선에서는 2051년부터 인간형 별이 나타났었지만. 다시 바뀐 시간선에서는 2027년부터라고 해야겠습니다. 2027년에 최초 인간형 별이 출현했고. 2032년 이후 모든 별이 인간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흠.”

“인간형 멸망의 별이 머무는 지역은 꽤 위험해진 셈이죠. 하지만 한반도와 그 인근의 생존자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 멸망의 별을 제법 제거했던 덕분입니다.”

나는 시선을 조금 떨어뜨린 채 가라앉은 어조로 대꾸했다.

“그렇군.”

“아버지는 한반도와 일본, 중국의 하얼빈과 베이징, 칭다오시, 한반도와 인접한 러시아 경계 지역까지. 멸망의 별을 파괴하셨습니다. 덕분에 그 지역은 피해가 적고 생존자가 많이 있습니다.”

나는 수호의 말을 들으면서 영상에 눈길을 주었다.

영상은 장면이 바뀌어서 일본 일부와 중국 하얼빈 지역의 풍경이 보였다.

하늘빛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간혹 푸른 하늘도 보이고 했으니까.

파괴 흔적만 남은 옛 도시 외에, 새로 건축된 쉘터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생존자들도 제법 있다.

하지만 그들은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느 쉘터에선 백인만 모여있는 게 보였고.

또 다른 쉘터에선 흑인이나 유색 인종이 모여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외부에서 온 생존자들이 꽤 있었나 보군.”

“네. 2024년에서 2026년까지. 각 나라에서 생존자들이 밀려들었습니다. 한반도 역시 해외에서 온 생존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2052년의 한반도 인구는 천만 명에 가깝습니다.”

“제법 되네?”

“한반도로 유입된 외부 생존자 중에는 최초 능력자도 몇 명 있습니다.”

“그래?”

“미국과 캐나다, 유럽, 인도 출신의 최초 능력자입니다. 최초 능력자들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한반도로 와서 정착하길 원한 탓에, 그들 중에서 능력 있는 자가 한반도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한반도 방비에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겠군.”

“땅의 면적에 비해 한반도만큼 생존자가 많고 방어와 전투력이 강한 곳이 없습니다. 2052년의 세계는 생존자의 80%가 한반도와 중국, 일본에 몰린 상태입니다. 그 외의 나라는 생존자가 전무한 곳도 있고 대체로 생존자가 희박합니다.”

“그렇군. 근데 외부에서 온 최초 능력자들의 능력은 어때?”

내가 묻자 수호는 영상을 가리켰다.

“마침 저들에 관한 정보가 나오는군요.”

나는 영상에 시선을 주었다.

『한반도 최초 능력자 정보(2052년 기준)

- 톰 밀러 : 미국, 56세, 괴력

- 제시카 벨 : 캐나다, 50세, 사이코메트리

- 라훌 데비 : 인도, 61세, 식물 가속 성장, 정화

.

.

.

- 루카스 알비치가 : 이탈리아, 63세, 괴력.』

나는 그 내용을 보면서 수호에게 말했다.

“한반도의 특이 능력자가 너까지 하면 총 10명인 것 같네. 근데 식물 가속 성장? 이건 아포칼립스 시대엔 꽤 유용한 능력으로 보이는데?”

“네. 그가 있어서 식량 문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만. 그의 능력은 중요한 만큼 유용해서, 한반도 내에서 그의 위치가 꽤 공고합니다. 그의 세력을 구축할 만큼 되죠. 저로서는 조금 골치 아픈 자입니다.”

“왜?”

“그는 자신의 위치와 능력을 간교하게 이용하곤 합니다. 번번이 저와 대적합니다. 현재 한반도 통일 시에서는 최초 능력자를 주축으로 세력이 나뉘어 있는 상태거든요.”

“음.”

나는 생각에 잠시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라훌이란 작자가 득의양양한 까닭은 그의 능력이 중요하면서도 유일한 까닭이겠지. 생존자들이 그의 능력을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까.”

“네.”

나는 싱긋 웃었다.

“그럼 간단해. 그의 능력 희소성을 약화하면 돼.”

“그게 무슨 말씀인지?”

“현재 네 능력은 리더 통솔력과 창조력, 두 가지일 테지?”

“네, 그렇습니다.”

“거기에 내가 능력을 더해 줄게. 지금의 나는 또 하나의 능력을 줄 수 있게 되었어. 2026년의 내가 너에게 창조력을 부여했던 것처럼.”

“아.”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재능과 능력의 주인’이라는 능력은, 내 능력 한 가지를 그대로 복사에서 타인에게 부여할 수 있더라. 그래서 네가 겪은 시간선에서 나는 너에게 창조력을 부여할 수 있었을 거야.”

“아버지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 능력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이전 시간선의 아버지보다 현재 아버지의 능력이 훨씬 강해졌다는 증거군요.”

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지. 그래서 2023년의 너에게 ‘재능과 능력의 주인’이라는 능력과 ‘창조력’을 부여할 생각이야. 2023년의 너는 아직 갓난아기라서 미루고 있었거든. 아직 연약하니 조심스러웠지. 하지만 지금 네 이야기를 들으니 마냥 미룰 수가 없네.”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입매를 살짝 늘렸다.

“그 능력이 저에게 주어진다면 꽤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일단 능력을 부여하되 스탯은 전혀 올리지 않을게.”

수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전보다 부드러워 보이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아버지는 아십니까?”

“응?”

“지금 이 자리에서 하게 된 대화만으로도, 이후 30년의 세월은 또다시 변화를 보이게 될 거라는 것을요. 세계역사를 변화시킬 만큼 대단한 영향을 주게 될 겁니다.”

“그렇겠지.”

“이런 식으로 아버지를 만나는 건 과거에 크게 간섭을 하는 것이라서, 늘 저는 신중해야 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넌 처음부터 신중한 태도를 보였었지. 처음엔 내게 아포칼립스가 된 세상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았었으니까. ”

수호는 앉았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이만 일어나야겠습니다.”

“벌써?”

“참, 아버지에게 나타난 능력 중에 ‘매개 능력’이 있을 겁니다.”

“응. 이번에 원흉을 죽이고 나니 그 능력이 생겼네.”

“매개 능력은 창조력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제가 겪은 시간선에선 아버지는 그 능력에 그다지 투자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선택을 하십시오. 매개 능력을 올려보십시오. 어쩌면 생각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 알았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대화를 마무리한 수호는 깍듯이 인사하고는 아바타 접속을 끊었다.

생각해보면, 수호의 태도도 그사이 많이 변한 것 같다.

전에는 차가우면서도 사무적이고 냉랭한 태도를 유지했었는데.

이젠 제법 부드럽고 깍듯해졌다.

딱딱한 구석은 여전했지만, 그건 성격 탓인 듯했다.

나는 아바타 기계 전용 스마트 안경을 벗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능력을 다시 확인해보았다.

능력 스탯이 조금 올라 있다.

그랜드 코인의 숫자는 전부 ‘9’.

일단 매개 능력을 한번 업그레이드했다.

그랬는데도 여전히 코인 숫자가 ‘9’라서 또 한 번 매개 능력을 올렸다.

『창조 능력자 52레벨

시간의 문 : 66

재능과 능력의 주인 : 66

절대 창조력 : 65

공간 이동 : 12

매개 능력 : 4

그랜드 코인 : 163582.』

나는 서재 밖으로 나가 침실로 들어갔다.

마침, 아이는 아기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다.

가만히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고요히 잠든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한동안 보다가 ‘재능과 능력의 주인’을 발현하여 아이에게 능력을 부여했다.

‘재능과 능력의 주인’은 여러 능력을 발현할 수 있다.

타인의 능력을 일깨우는 게 가능하고.

그 일깨운 능력을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능력 공유할 상대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말이다.

그 외에 사물에 능력을 심는 것도 가능하고.

지금처럼 수호에게 능력을 주는, ‘능력 부여’도 할 수 있었다.

능력 부여는 상대의 잠재 능력을 일깨우는 것과 다르다.

내 능력을 고대로 복사하여 상대에게 부여하는 것이기에.

‘재능과 능력의 주인’ 능력 중에서 최고의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잠든 수호에게 능력을 부여한 나는 아이의 스탯을 확인했다.

『리더 통솔자 1레벨

리더 통솔 능력 : 1

재능과 능력의 주인 : 1

절대 창조력 : 1

그랜드 코인 : +9999999.』

아이의 스탯을 확인한 나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비록 스탯 수치가 ‘1’이긴 하나 능력 명칭이 ‘절대 창조력’이고, ‘재능과 능력의 주인’이다.

애초에 그 능력의 시작은 ‘그림 재능’과 ‘창의력’이 아니었던가.

수호는 아기인데도 능력 개화를 감지했는지 새근새근 자다가 눈을 떴다.

평소라면 울음을 터뜨렸을 아이인데.

지금은 동그란 눈을 깜박이며 나를 보고 있었다.

입을 오물거리며 나를 보더니 방긋 웃는다.

“......!”

아기의 웃음이 어찌나 예쁜지 내 심장이 철렁한다.

수호, 그토록 멋없는 녀석이 아기 때는 이토록 예뻤다니.

신기하면서도 내 안에서 애정이 용솟음쳤다.

나는 아기를 품에 안아 들었다.

* * *

나는 사과나무 네 그루를 그림으로 그렸다.

커다란 나무를 그릴까 하다가 작은 묘목을 그렸다.

아직 매개 능력의 수치가 적은 탓이다.

정원으로 나가 적당한 곳에 이르러 그림을 실물 전환했다.

그러자 그림이 실제 나무로 변해서 4그루가 정원에 우뚝 섰다.

1미터가 조금 넘은 크기.

가느다란 가지에 작게 초록빛 싹이 돋고 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나무다.

나는 그 나무들에 매개 능력을 사용했다.

평범하던 사과나무의 모습이 변모했다.

외양은 딱히 변한 게 없는데, 뭔가 본질이 변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사과나무의 가느다란 가지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부러질 만한 나뭇가지.

그런데 겉보기에도 미약해 보이는 그 나뭇가지는 내가 아무리 힘을 주어도 끄떡도 없다.

마치 재질이 금속이라도 되는 것처럼.

붉은 유성과 멸망의 별의 재질이 다이아몬드보다 강했던 것처럼.

이 사과나무도 그런 모양이다.

그때 한나가 저택 본관에서 나오다가 나를 발견하고서 다가왔다.

“어? 못 보던 나무가 있네요? 사과나무?”

나는 그녀를 돌아보며 답했다.

“네, 사과나무입니다.”

“언제 심은 거예요? 어제만 해도 없었는데.”

“새벽에 정원 로봇이 심었습니다.”

대충 둘러댔지만, 한나는 내 말을 믿는 눈치다.

“예쁘네요. 아직 작긴 해도 올해 사과가 열린다면 좋겠어요.”

“열릴 겁니다.”

나는 사과나무를 보며, 이 나무가 이후 어떤 모습으로 자라게 될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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