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27화 (127/153)

놓치고 싶지 않은 것

고수와 수호가 아포칼립스 원흉이라고 부르는 존재.

그가 베이징의 어느 건물 부근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목과 발목엔 흉터 같은 게 남아 있다.

나이는 이십 대 중반으로 보였다.

전에는 이십 대 후반, 또는 삼십 대 초반으로도 보였던 그였는데.

그의 외양은 다시 어려진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머리 색은 약간 잿빛이 감도는 흑발.

눈동자 색은 회색.

그는 안경을 끼고 평범해 보이는 옷차림으로 거리에 섰다.

그의 기색은 어딘지 조심스럽다.

뭔가를 경계하는 기색.

그의 눈동자가 끊임없이 움직였다.

혹시라도 고수가 조종하는 드론이 발견할 경우, 그는 재빨리 몸을 움직일 생각이었다.

원흉은 언제라도 고수와 그의 사람들을 제거할 능력이 있었지만.

굳이 고수를 건드리진 않았다.

고수는 시간 능력과 창조 능력을 사용하는 자였기에.

무턱대고 건들 수는 없고.

한반도를 벗어난 먼 지역이라면 괜찮겠다고 여겼다.

그래서 한반도 밖의 강력한 최초 능력자 중에 ‘장위’를 타깃으로 삼았다.

물론, 베이징도 한국과 가까운 터라 고수가 얼마든지 시간 능력을 발현하여 반격해올 수 있다는 걸...

원흉도 알고 있긴 했다.

그의 입매가 비릿하게 비틀렸다.

고수, 그는 덫을 놓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가 여기까지 와서 공격하려 든다면, 오히려 그가 덫에 걸리는 순간이 될 것이다.

전에는 고수에게 당했었지만.

이젠 그의 시간 능력을 깨뜨릴 수 있다.

약간 버겁긴 해도 시간 능력은 기어코 깨뜨릴 수 있다.

만일 고수가 원흉을 죽이기 위해 직접 베이징까지 오게 된다면...

원흉은 거꾸로 고수가 비운 저택까지 빠르게 도달해서 그의 아들과 조력자를 쳐내버릴 심산이었다.

원흉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고수의 능력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에.

줄곧 경계하며 장위의 거처까지 이르렀다.

그의 발길이 장위의 거처 현관문 앞까지 이르렀을 때, 그의 시선에 숨겨진 드론 한 대가 발견되었다.

투명한 금속으로 제작된 초소형 드론.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물건이다.

하지만 원흉의 시야에는 금세 포착되었다.

원흉은 가소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그는 자신의 침입을 발견하고서 시간 능력을 사용해서 서둘러 베이징까지 날아올 것이다.

굳이 장위를 구하고 그를 죽이려 한다면 말이다.

고수는 이전처럼 염력으로 날아오지 못할 터였다.

염력은 장위의 능력이고.

고수가 장위의 능력을 공유한다고 해도.

지금은 서로 떨어져 있으니 그는 장위의 염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는 헐레벌떡 비행기를 타고 날아올 테지.

그것만으로, 애플 수는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여 시간 능력을 사용해야만 한다.

설사 애플 수가 장위가 있는 곳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대로 원흉은 나쁘지 않았다.

애플 수만큼이나 눈엣가시인 장위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장위를 죽인다면 훗날 한반도는 그의 세력을 방어하는 일이 더 어려워지게 될 거다.

원흉은 드론을 눈치챘지만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드론을 그저 정찰 용도로만 생각했다.

애플 수가 이제 곧 시간 능력을 사용하겠지.

그의 짐작대로 이곳 세계의 시간에 간섭하는 거대한 능력이 감지되었다.

그는 시간 능력을 깨뜨리기 위해 에너지를 집중했다.

하지만.

“......?”

잠시 멈췄던 시간은 얼마 안 있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덕분에 시간 능력을 깨뜨리려는 일에 집중하던 그의 힘도 함께 흩어졌다.

애플 수의 시간 능력이 깨어진 것인가?

아니다.

그의 시간 능력은 애플 수의 의지로 다시 풀어진 것이다.

아마도 시간은 1분 정도 거꾸로 되돌려졌을 거다.

원흉은 주변을 살폈다.

혹시 그가 온 건가 해서.

그러나 애플 수의 기척은 없다.

원흉의 뇌리에 의구심이 스쳤으나 지체할 겨를이 없다.

그는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원흉의 발길이 곧바로 장위가 머무는 집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혀 있어도 그에겐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때까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장위.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원흉을 보고서 벌떡 일어났다.

“원흉?”

장위는 경악한 표정을 짓더니 그의 염력을 발동했다.

그래 봤자 원흉 앞에선 미약한 힘일 뿐.

원흉은 코웃음을 치며 손을 뻗었다.

이대로 원흉이 염력을 사용한다면, 장위라는 인물은 목이 꺾이고 숨통이 끊어지게 되리라.

그러할지라도 장위가 신뢰하는 애플 수는...

고수라는 이름의 그 작자는 아직도 도와줄 생각을 못 할 것이다.

그때 그의 귓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위잉-

초소형 드론이 비행하는 소리.

원흉은 고개를 돌려 의아한 눈빛을 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

저 드론은 어떻게 들어온 거지?

작은 틈이 있었던가.

그의 고개가 살짝 갸웃하며 기울어졌다.

그의 눈에는 드론 앞에 떠 있는 3D 디스플레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 디스플레이는 오직 고수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기에.

원흉의 눈에 고수가 그린 그림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무슨 속셈인 거지?

설마 저 미약한 드론으로 공격이라도 할 셈인가.

그 순간, 드론에서 실물 전환 능력이 발현되었다.

그것도 연속으로 두 차례나.

“......!”

두 차례 그림이 실물 전환된 것만으로도 원흉의 목이 거의 떨어지려 했다.

그는 검붉은 피를 흩뿌리며 노면에 쓰러지면서 의문을 품었다.

어째서?

어떻게?

무슨 수로?

애플 수는 이곳에 없는데 어떻게 창조 능력이 나타난 거지?

원흉은 드론에서 능력이 나타날 거로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어쨌거나 고수로 인해 그의 목이 남아나질 않는다.

원흉은 결국 두 번째 죽음을 맞는 것이다.

* * *

나는 능력을 부여한 초소형 드론을 통해 원흉의 목을 또다시 끊었다.

이번에는 아예 원흉의 육신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릴 심산으로 실물 전환 능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원흉은 도중, 공간 이동 능력을 사용해서 저번처럼 도주하고 말았다.

육신이 죽음에 이르렀어도 원흉의 의지는 여전히 살아 존재하는 것처럼 꺾이질 않는다.

그의 의지는 초월 능력을 지닌 존재답게 육신의 상태에 구애받지 않는다.

시간 능력을 사용해서 그가 도망치는 걸 묶어두고 싶었다만.

시간을 멈춘 채, 드론으로 실물 전환 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멈추면 드론의 기능도 멈추는 까닭.

그 탓에, 원흉은 또다시 줄행랑을 친 것이었고.

이대로는 또 원흉을 놓치게 되는 건 명백했다.

나는 수호가 이곳 저택으로 아바타 접속했을 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아버지는 실패하셨지만 저는 다시 말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원흉은 강하고 그 능력은 초월적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세력은 강력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일지라도 아버지가 이길 수밖에 없는 건...”

나는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했었지.

그의 말이 옳다.

수호가 겪은 시간에서 나는 이번에도 원흉을 놓쳤었지만.

이후 그가 어디로 도망을 치게 되는지 위치를 알아내어 수호에게 남겼다고 했었다.

그렇게 내가 남긴 드론과 원흉이 도주한 위치를 간직하게 된 그.

시간이 흘러 2052년, 수호는 전송 기계를 사용하여 초소형 드론을 보냈다.

내가 남겼던 원흉의 위치로 좌표를 삼고서 말이다.

나는 3D 디스플레이를 바라보았다.

AI 2050의 메시지가 나타나 있다.

더불어 드론이 촬영하는 영상도 분할되어 있다.

<고수님, 수호님이 전송 기계를 통해 고수님이 만드셨던 드론을 보내셨습니다. 드론에 저장되어 있던 그림을 실물 전환합니다.>

“그래.”

나는 답하며 드론이 촬영하는 영상을 바라보았다.

어느 산기슭 노면에 원흉의 시신이 뒹굴고 있다.

원흉의 의지는 아직 살아있기에 시신이라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다만.

그가 나에게 또 한 번 목숨을 잃은 건 명백했다.

미래의 드론은 원흉에게 연달아 실물 전환 능력을 발현했다.

내게 있던 에너지로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세 차례 절대 창조력이 발현되어 그림은 그대로 실현되었고.

우리의 시야에서 원흉의 시신은 흐려져서 온전히 지워졌다.

그리고 내게 보상이 주어졌다.

나는 내 능력 스탯을 확인했다.

『창조 능력자 50레벨

시간의 문 : 63

재능과 능력의 주인 : 63

절대 창조력 : 63

공간 이동 : 10

매개 능력 : 1

그랜드 코인 : +9999999.』

매개 능력?

이건 또 무슨 능력이지?

원흉을 죽일 때마다 내게 새로운 능력이 생기네.

이또한 원흉에게 있던 능력 중 하나겠지.

나는 스탯을 보다가 퍼뜩 드는 생각에 핸드폰을 들고 수호에게 톡 메시지를 남겼다.

- 고수 : 수호야, 혹시 거기 무슨 변화 있어?

- 고수 : 이대로 원흉을 끝낸 거면 좋겠는데. 아포칼립스는 여전히 오게 되는 건지 답변 부탁한다.

* * *

2052년도의 한반도.

방금, 수호는 쉘터 건물의 지휘실에서 고수와 협력하여 2023년도의 원흉을 죽였다.

아니, 죽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아예 그의 시신을 지워버렸다.

이곳 세계에서 존재 자체를 지워버린 것이다.

2023년도, 그 시기에 고수는 후일을 도모할 목적으로 그림을 남겼었다.

원흉의 시신을 지우는 그림이었다.

고수가 그린 그림은 수호가 맞닥뜨린 것과 조금 다른 형태였다.

그림과 실물 형태가 다르니, 평소라면 실물 전환 능력이 실패해야만 마땅했을 터.

그런데도 실물 전환 능력은 성공했다.

고수의 능력 명칭이 ‘절대 창조력’으로 바뀐 까닭이었다.

‘절대’라는 명칭이 붙은 이후로, 그림이 실물과 약간 차이를 보일지라도 실패를 허용하지 않았다.

명칭 그대로 그림이 절대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수호는 3D 디스플레이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지켜보면서 눈매를 좁혔다.

아포칼립스 원흉을 끝낸 건가?

그렇다면 이곳 세계의 역사는 이제 급변하게 될 터다.

그의 삶도 바뀔 것이다.

바라고 바라던 일.

그의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츠츠-

이내, 그가 선 곳에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휘실을 나갔다.

어찌 바뀌게 될지 직접 창밖을 내다보며 이곳의 변화를 확인하려는 거다.

츠츠, 츠-

수호는 지휘실을 나와 복도의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 * *

AI 2050의 답변도 금세 오질 않아서 나는 조금 걱정했었다.

그러다.

까톡!

2050의 메시지가 왔다.

- 2050 : 고수님, 2052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아직 파악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 고수 : 수호는?

- 2050 : 외출하셨습니다.

- 고수 : 그래. 오면 연락 바로 달라고 전해줘.

메시지를 보내고서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띠리리링-

장위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그의 전화를 받으며 영어로 말했다.

내 옆에 켜진 3D 디스플레이에서 장위가 말하는 영어가 한국어로 변역되어 표기된다.

“장위, 괜찮습니까? 방금 많이 놀랐겠습니다.”

<제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시는군요.>

“네.”

<원흉은 어떻게 된 겁니까? 내 앞에서 끔찍한 몰골로 죽는 걸 보긴 했는데, 지금은 감쪽같이 사라졌네요. 시신과 핏자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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