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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25화 (125/153)

그의 기억 2

창문을 열지 않았는데도 창문으로 돌진하며 날아가던 드론이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드론에 내가 심어놓은 공간 이동 능력이 발현되어 외부로 이동해간 것.

드론에는 시간 능력과 공간 이동 능력이 심어져 있다.

만일, 내 능력 스탯이 이후에 또 올라간다면 이런 드론을 추가로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시선을 옮겨 3D 디스플레이에 눈길을 주었다.

거기에 드론이 촬영하는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다.

영상은 올차드 저택 건물 밖의 풍경을 비추고 있다.

드론은 어느새 허공으로 높이 떠올라 비행했다.

조종은 AI 수가 했다.

조금 후 드론이 꽤 높이 올라갔을 때, 나는 수에게 말했다.

“수, 지금 실물 전환 능력을 시험해봐야겠어.”

<네, 지금 시행하겠습니다. 고수님의 타블렛 펜에 저장되었던 그림을 드론으로 전송하겠습니다.>

이윽고, 수는 조종하는 드론에 저장된 그림을 불러왔다.

3D 디스플레이 기능이 있어서 드론은 공중에 화면을 띄울 수 있었다.

이 디스플레이는 내가 사용하는 타블렛 펜의 디스플레이처럼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수는 디스플레이를 열어 저장된 그림을 불러오더니.

그중에서 드론 그림을 열었다.

<드론 그림을 실물 전환하겠습니다.>

수의 조종에 의해 내가 심어둔 능력이 발동할 수 있었다.

내게서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싶더니 수가 조종하는 드론은 두 대가 되었다.

물론, 방금 실물 전환된 드론은 그냥 평범한 초소형 전투 드론이었다.

내가 보고 있던 화면에 두 개로 분할된 영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수님, 실물 전환에 성공하였습니다. 고수님이 드론 그림을 더 추가로 주시면 많은 드론을 실물 전환하여, 능력이 심어진 드론을 경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조만간 그림을 추가로 보내지.”

나는 수에게 답하면서 영상을 신기해하는 눈으로 보았다.

내 능력이 이렇게 활용될 줄은 몰랐다.

그림으로 시작된 능력.

진화하면서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스킬 트리가 뻗어 나가고 있다.

* * *

2052년, 한반도 통일 시.

수호는 그곳 어느 빌딩의 꼭대기 층에서 수뇌부 회의에 참여했다.

한반도 군사령관으로서 회의에 참여한 것이다.

수호는 상석에 앉은 채 한반도군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보고를 들었다.

한반도군.

현재 병력은 2만 명이나 된다.

과거가 비틀려 역사가 바뀌기 전, 한반도에 남아 있던 생존자 수를 생각하면...

지금의 상황은 대단한 쾌거였다.

수호는 회의실 중앙에 뜬 3D 디스플레이를 차분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이주혁 대령이 진행하는 브리핑을 듣는 중이다.

수호는 이주혁 대령을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는 본래 한반도에 생존자로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이주혁 대령만이 아니라 여기에 모인 이들 중 대부분이 운명이 바뀐 셈이었다.

수호는 다시 디스플레이를 바라보았다.

태양 에너지로 작동하는 소형 무인 전투기 1000대.

수천 대의 전투 드론 군대.

1000대의 장갑차.

5대의 전투 비행선.

한반도 곳곳에 설치된 최첨단 방어 시스템.

또는 방어탑과 방어막 시스템.

강력한 미사일들.

그 외에 수호의 쉘터 못지않은 지하벙커 건물들.

이처럼 한반도의 방어 체계와 군대 전투력은 강력했다.

아포칼립스가 나타나고 그 이전에 있던 군사 체계는 거의 무용지물이 되었고.

대신 지금 사용되는 무기와 시스템이 대체되었다.

저 모든 건, 그의 아버지.

고수가 그림으로 실물 전환하여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고수는 2026년이 되기까지 저 많은 것들을 만들어냈고.

일부 전투 무기들은 인접 국가에 지원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현재 한반도에 몇몇 나라에서는 ‘고수’와 ‘애플 수’라는 이름이 위대하게 변모해 있었다.

고수가 애플 수로 활동하던 그때에는 그저 천재적인 인기 화가였지만.

지금은 한반도를 구하고 무수한 생존자를 구한 위대한 인물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고수의 아들인 수호 역시...

서른 살이라는 젊은 나이임에도 생존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본디 그의 재능은 통솔력이고 리더 능력이라서, 이전에도 사람들은 그를 따랐었지만.

과거가 비틀려, 변화한 지금은 그의 권위와 위치는 현저하게 높아졌다.

아버지인 고수에 이어 한반도를 지키고 적의 영역을 정복한 인물이 된 것이다.

2021년의 고수를 만나기 전까진, 수호의 기억에선 한반도군은 없었고.

한반도 통일 시도 존재하지 않았었기에.

오늘 그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은 새삼 경이롭다.

수호는 이런 날들을 어릴 적부터 바랐었다.

그가 이를 악물고 다짐했던 일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희생.

무가치하게 잊혔던 아버지의 이름이.

반드시 세상이라는 수면 위로 끌어올려 빛나게 하겠노라고 다짐했었다.

평범한 코흘리개라 하더라도 고수라는 이름을 알게 할 것이고 마음에 새겼었다.

그랬는데, 그러한 수호의 바람은...

이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2023년의 세상에서도 고수, 애플 수라는 이름은 더욱 높이 빛나고 있으니까.

이준혁 대령은 계속 브리핑을 했다.

“현재 정복된 중국의 적의 영역은 13개 지역입니다. 더불어 파괴된 탑도 13개입니다. 2024년부터 2052년까지. 중국에 나타나고 몰려들었던 멸망의 별 300개 중의 35개가 파괴된 상태입니다. 여전히 적의 괴수와 멸망의 별은 중국과 일본 쪽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의 최대 쉘터이자 새로운 베이징 시의 ‘장위’는 어제도 대규모를 치렀다고 합니다. 그는 또다시 한중 연합군대로 중국 내 적의 영역을 토벌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수호는 잠잠히 듣다가 입을 뗐다.

“그 부분은 이후에 다시 논의하도록 하죠. 잠시 10분만 쉬었다가 다시 회의를 재개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수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기억은 계속 변하는 중이다.

최근 과거 역사의 큰 물줄기가 변하였던 탓에 작은 여파가 남아서 사소한 기억들이 변하고 있다.

그런데 방금은...

기억이라기보단 기억에 가까운 어떤 광경이 그의 뇌리에 새겨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 그는 도중 회의를 중단했다.

수호는 휴게실 창가에 가서 도시 풍경을 굽이 보았다.

그러면서 방금 떠오른 기억을 곱씹었다.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기억이다.

평범한 대학 건물과 교정.

그곳을 무수히 오가는 대학생들.

그 안에 수호도 있었다.

마치 대학생이 된 것처럼 보인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기억인가?

그래서 꿈결처럼 흐릿하고 불현듯 떠오른 데자뷰처럼 짧고 분명하지 않은 건가.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도시 풍경을 무심히 응시했다.

그때.

츠츠, 츠-

한반도 도시 풍경에서 이상 현상이 짧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수호의 눈이 조금 커다랗게 떠졌다가 가늘게 좁혀졌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

온전하지 않다.

이또한 확정되지 않은 현재인 것이다.

물론, 2052년의 한반도는 지금의 상황에서 멈춰서는 안 되긴 하다.

과거는 계속 비틀리고 변화해서 아포칼립스가 전혀 없었던 시간선으로 나아가야만 할 것이니.

그때 수호의 기억에 또 다른 기억도 끼어들었다.

끝없이 폐허만이 펼쳐진 대지.

파괴된 도시.

반쯤 파괴된 쉘터에서 소수 생존자만 남은 광경.

그곳엔 어머니가 없고 테이도 없고 유하준과 강민철도 없다.

이전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

그곳에 수호는 홀로 버려진 것처럼 홀로 망연히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다.

핏빛 하늘 저편에 공중 괴수 떼가 다가오고 있다.

마치 그의 뇌리에 온전한 기억으로 자리 잡겠다는 듯이 고개를 들이미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다른 시간선의 기억 부스러기.

수호는 혼란스러운 듯 관자놀이를 꾹 누르다가, 그의 팔찌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3D 디스플레이가 나타났다.

수호는 AI에게 말을 걸었다.

“준, 아버지에게서 온 톡이 없었나?”

기계적인 음성이 답했다.

“없었습니다.”

수호는 더 뭔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방금 그의 뇌리에 떠올랐던 그 광경은 어째서 나타났던 걸까?

결코, 실현되어선 안 되는 일들.

그러니 그와 같은 시간선이 나타날 수 있을 만한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한다.

* * *

수호가 아바타 접속을 한 건 오래간만이다.

그는 2023년의 올차드 저택으로 아바타 모습으로 와 있다.

나는 서재에서 그를 만나 대화했다.

“수호야, 내가 여기 온 건 처음이지? 2023년의 올차드 저택에 말이야.”

“네, 처음이군요.”

“오늘은 저택을 거닐면서 대화하자.”

“그러죠.”

나는 수호를 데리고 서재를 나왔다.

“그 전에 너 어렸을 적의 모습을 보여줄게.”

“......”

나는 침실로 들어갔다.

마침 루나는 갓난아기인 수호를 안고서 분유를 먹이는 중이다.

루나는 나를 보더니 방긋 미소지었다.

그녀의 눈에는 미래의 수호가 보이지 않다.

아바타 기계 전용 안경을 써야만 하는 까닭이다.

“오빠, 우리 수호 봐요. 너무 잘 먹죠?”

“그러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꾸하자 루나는 조잘거리는 어조로 물었다.

“우리 수호는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자라게 될까요?”

“우리 수호는 나보다 멋지고 유능한 리더로 자라게 될 거야.”

“프흣, 또 그 소리.”

“사실인걸.”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그렇게 될 것 같긴 해요. 오빠는 수호가 내 배 속에 있었을 때부터 아들이라는 걸 맞췄잖아요. 음, 잘생기고 똘망한 것도 맞추긴 했어요.”

수호는 말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섰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어머니를 본다는 것.

그리고 갓난아기였던 자신의 모습을 본다는 건, 그로서는 기이한 체험일 것이다.

수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따뜻하군요.”

“그렇지?”

“지키고 싶습니다.”

“그래.”

내가 답하자 루나는 이상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부드럽게 웃었다.

“잠시 정원 좀 거닐고 올게.”

나는 수호를 데리고 정원으로 나갔다.

저택의 로비를 나와 정원에 이르자 연초록빛 싹이 움트고 봄꽃이 피는 정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봄의 정취가 묻어나기 시작하는 정원을 둘러보았다.

“수호야, 이 정원 기억나?”

나는 그의 어릴 적 기억을 물었다.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기억나긴 합니다만. 이곳처럼 평화롭거나 아름다운 정원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겠네.”

“제가 오늘 여기 온 건, 할 말이 있어서이기도 합니다.”

“할 말?”

우리는 조금 걷다가 정원의 정자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아버지가 만든 드론, 2052년도에 한 대가 남아 있습니다.”

“드론이라면?”

“아버지의 능력을 심은 드론 말입니다. 아버지가 2026년도에 AI를 통해 기록을 남겨서 알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만드신 드론은 결국 파괴될 것입니다.”

나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파괴된다고? 드론으로 원흉을 잡으려는 내 계획이 실패한다는 건가?”

“네. 하지만 아버지는 그 후로 드론 한 대를 만들어 남겨두셨습니다.”

나는 말 없이 수호를 바라보았다.

수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아버지는 실패하셨지만 저는 다시 말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내가 의아한 시선으로 보자 그는 말을 이었다.

“원흉은 강하고 그 능력은 초월적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세력은 강력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일지라도 아버지가 이길 수밖에 없는 건, 시간은 우리 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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