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기억
그렇게 호텔에서 인터뷰를 마친 후, 늦은 저녁.
나는 저택에서 돌아와서 강민철과 유하준, 정테이와 함께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고를 당하면서 입은 부상이 아직 완치되지 않았지만.
평안히 쉬면서 시간을 보낼 여유가 내겐 없었다.
내가 한 이야기를 모두 들은 강민철은 심각해진 표정으로 입을 뗐다.
“원흉을 여러 번 죽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자를 추적하기가 쉽지 않군요.”
“그자를 추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
“어렵지 않다면 원흉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요?”
테이의 질문에 나는 답했다.
“네. 원흉은 이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최초 능력자를 미리 알아내서 제거하려들 겁니다. 이번에 원흉은 우리가 행하는 방식을 알아챘을 겁니다. 미래의 수호가 과거에 간섭하여 우리와 협력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챘고요. 그래서 원흉도 이전과는 달리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원흉은 우리의 전력이 되거나 아포칼립스를 막을 능력이 될 이들을 제거하려는 거군요. 그럼 최초 능력자들을 미리 살피고 있으면 원흉을 추적할 수 있겠네요.”
“네. 수호가 알려준 바로는 첫 번째 희생자가 중국의 장위라고 하더군요. 물론 그 순서가 뒤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요.”
“그럼 고수 씨, 중국에 직접 가실 건가요?”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전 여기 계속 있을 겁니다.”
“어, 그래요? 어쨌거나 원흉도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는 셈이네요.”
“그렇죠. 이전에는 그저 멸망의 별을 통해 자신의 세력과 힘을 서서히 키우며 아포칼립스를 준비했다면, 이제는... 자신을 적대시하는 세력을 견제하는 일에 마음을 두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가 우리를 언제든 죽이려 들지 않을까요?”
유하준이 불안해진 태도로 말하자 테이도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나는 그들을 안심시키려 말했다.
“당장 위험하진 않아요. 원흉은 우리를 주목하기 시작했지만 제가 있는 한, 손을 대지 못할 겁니다. 우리를 공격해봤자 지금은 내게 외려 반격당하게 된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으니까요.”
묵묵히 내 말을 듣던 강민철이 동의했다.
“그건 화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화가님이 원흉의 표적이긴 해도, 여기 화가님이 계시는 한 우리는 오히려 안전할 거라는 건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렇게 말하니 고수 씨 존재 자체가 우리의 보루가 된 것 같은 기분이네요. 루나 씨도 언젠가 비슷한 말을 했어요. 이제까지는 올차드 저택이라는 건물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 여겨졌었는데. 이젠 생각이 바뀌었다네요. 이젠 고수 씨가 있는 곳이 가장 안전하고 든든한 곳이래요.”
“하하, 그래요?”
루나가 했던 말이 귀엽다는 듯 유하준이 웃는다.
나 역시 옅게 웃었다.
그러다 유하준이 물었다.
“그런데 원흉이 한 번 죽은 게 맞다면 그에겐 목숨이 여러 개라는 걸까요? 아니면 분신 같은 게 있는 걸까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워낙 원흉이란 존재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존재라서 추측하기 어렵습니다만. 제 생각엔 원흉의 몸은 여러 개인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러면 몸은 하나지만 목숨은 여러 개라는 걸까요?”
몸은 하나지만 목숨은 여러 개라...
테이의 말에 나는 불현듯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 시각, 피투성이가 된 회색 머리의 남자가 서울 인근 야산에서 쓰러져 있다.
그곳은 인적이 없는 곳이었고.
남자는 목 부근과 입고 있는 옷이 검은빛에 가까운 붉은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분명 분리되었던 그의 목이었건만.
지금은 붙어 있다.
하지만 그는 치명상을 입은 게 확실했는지.
그저 죽은 듯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다.
그는 쓰러진 채 하늘을 응시하다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그의 회색 눈동자에 붉은빛이 어렸다.
근처 상공에 고수가 보낸 초소형 드론이 뜬 것이다.
드론을 발견한 원흉은 홀연히 그 모습이 사라졌다.
심지어 검붉은 핏자국까지.
그 탓에 드론은 원흉을 발견하지 못한 채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원흉의 육신은 다른 곳에서 스르르 나타났다.
그는 쓰러진 채 눈을 감았다.
그의 육신이 회복되려면 시간이 걸릴 듯하다.
그는 고요히 누워있다가 으득 이를 갈았다.
존재하는 동안, 이 같은 굴욕을 처음 겪는다.
조만간 애플 수와 그의 가족,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것에게 갚아줄 것이라 다짐하는 그다.
다소 계획보다 늦어지긴 했지만.
몇 개월만 무사히 기다리면 될 것이었다.
이제 곧 있으면 그의 능력은 세상을 뒤엎고 멸망시킬 만큼 완전해질 것이니.
한동안 쓰러져 있던 원흉.
늦은 밤이 되자 그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 색이 짙어졌다.
우주 저 멀리에서 작은 별 하나가 이곳으로 긴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고 있다.
유성이다.
그 유성은 불타오르며 원흉이 있는 곳까지 이르렀다.
쿠구구구구-
화르르륵!
쿠쿵!
그가 있는 곳으로 유성이 떨어졌다.
요란한 굉음과 격렬한 여파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찰나의 순간, 강렬한 섬광이 이곳의 암흑을 삼켰다.
그러다 다시 짙은 암흑이 회복되었을 때, 유성은 온데간데없어졌다.
다만 유성이 떨어진 그곳에 산기슭 노면이 움푹 파인 것과 근처 수풀과 나무가 훼손된 것만 보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던 원흉은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우뚝 서 있었다.
놀랍게도 그의 모습은 멀쩡해져 있다.
그는 유성이 떨어진 흔적을 물끄러미 보더니 어떤 능력을 사용했는지.
그의 눈동자에 붉은빛이 어리자, 유성이 떨어져 훼손되었던 흔적이 한순간에 복원되었다.
그의 흔적과 별이 떨어졌던 증거를 지운 것이다.
원흉은 돌아서서 어디론가 발걸음을 내디뎠다.
늘 그러했듯, 그의 발걸음은 단숨에 수십 수백 킬로미터를 훌쩍 뛰어넘고 초월할 터였다.
* * *
며칠이 흘러갔다.
얼마 전에 뉴스에서 유성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긴 했으나.
그게 정말 유성이었는지 아니면 마른하늘에 난데없이 떨어진 벼락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어느 곳에도 유성이 떨어진 흔적은 없었고, 벼락이 떨어진 자취도 없었기에.
그저 미스테리한 의문만 남긴 채 사람들의 관심에서 지워졌다.
어느새 겨울이 지나가고 온 곳은 화사한 봄으로 옷을 입었다.
노란 개나리가 피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루나와 함께 정자에 앉아 정원의 풍경을 응시했다.
정원에선 유하준이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이 정원관리를 하고 있다.
루나는 그 광경을 보다가 내게 입을 열었다.
“오빠, 요즘 저 매일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있어요.”
“뭐를?”
“오빠에 관한 거요. 오빠 만난 지 벌써 횟수로 3년째에요. 생각해보면 그 나날은 내게 꿈 같고 기적 같았어요.”
“그래?”
“작년 이맘때만 해도 나는 그저 평범한 대학생이었잖아요? 애플 수가 내 남편이 되고 내게 수호가 생기고 올차드 저택에서 살게 될 거라고,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그래서 참 신기해요. 그때는 그냥 오빠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한 강변에 일부러 자주 나가곤 했어요. 우연을 가장해서 더 자주 마주치려고.”
그러면서 루나는 웃는다.
나도 작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나도 그랬어. 2021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짧은 세월이긴 하지만 그사이에 내겐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가끔 생각했지. 사람 앞일은 정말 모르는 거구나.”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틀 전에 2052년에서 수호를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아바타 기계를 통해 2052년의 세상에 접속을 했었다.
수호가 또 한 번 전투를 치렀기 때문이었다.
이젠 수호도 나도 어느 정도 능력 스탯이 오른 상태라서, 전투가 이전에 비해선 수월해졌다.
덕분에 생존이 아니라 스탯 보상을 얻기 위해 우리는 전투를 치를 수 있게 된 듯했다.
중국 영역에서 전투하며 멸망의 별 하나를 또 제거하고 난 후.
수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2052년까지 이어지는 제 기억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가 이전과 다르게 흐르는 탓입니다.”
“그래.”
“중국의 상황도 전보다 한결 좋아졌습니다. 만주 지역과 하얼빈, 베이징까지 많은 적의 영역을 정복했습니다.”
수호는 2052년의 세상에서 거의 쉬지 않고 전투를 했었다.
내가 그의 전투에 참여하는 건, 적의 탑을 파괴하거나 멸망의 별을 제거하는 순간뿐이었다.
나는 아바타 접속을 오랫동안 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정복된 영역은 다시 괴수들로 넘쳐나곤 하는군요. 중국 전역과 러시아, 몽골에서 이동해온 괴수들이 있으니.”
“멸망의 별도 중국으로 몰리고 있는 거지?”
“네. 세계 곳곳에 고르게 퍼져 있던 멸망의 별도 다시 중국으로 몰리고 집중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인간형 멸망의 별이 중국이나 한반도를 공격하기도 하고요.”
“장위도 중국에서 꽤 어려웠겠네.”
그러자 수호는 입꼬리를 미미하게 올리며 답했다.
“장위는 아버지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강해져 있습니다. 그의 능력으로는 멸망의 별이나 적의 탑을 파괴하지 못하지만. 괴수들은 전부 그의 손에 괴멸합니다. SS급 괴수도 충분히 감당하는 그입니다.”
“잘 되었군.”
“그가 있어서 한반도의 평화가 유지된 부분도 있습니다. 장위는 괴수가 몰려드는 그곳에서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원흉이 장위를 죽이려는 거구나. 그는 우리 못지않게 그의 눈엣가시가 되었을 테니.”
“그럴 겁니다.”
수호는 그렇게 답하다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과거에 대해 제 변한 기억 중에는 아버지에 관한 부분도 있습니다.”
“나?”
“아버지도 장위처럼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이전보다 훨씬 강해지셨습니다.그래서 저는 아버지 능력의 진화된 형태를 좀 더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
“절대 창조력. 그 능력의 위력은 제법 클 겁니다. 만약, 2026년이 지나기 전에 원흉이 아버지에게 발각되었다면 그는 온전히 소멸했을 겁니다.”
나는 수호에게 물었다.
“변하는 기억 때문에 혼란스럽지 않아? 과거가 비틀리기 전의 기억을 온전히 붙들려고 애쓰는 건, 2052년의 세상에서 너 혼자잖아. 테이나 강민철은 너만큼 이전 기억을 애써 붙들고 있진 않으니까.”
“제가 이전 기억을 빠짐없이 기록하며 기억하려고 늘 애쓰는 건... 원흉에게 대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수호는 나를 보며 옅게 미소지었다.
전보다 표정이 조금이나마 부드러워진 수호다.
“...또 한편으로는 이전 날의 세월이 그저 불행하다고만 여겨지진 않습니다. 특히 아버지를 만났던 2050의 시간 이후로는 제게 특별합니다.”
수호와 대화했던 일, 그 부분까지 생각했을 때.
루나는 앉았던 곳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빠, 수호 분유 먹이고 올게요.”
그녀가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내 재능 스탯을 열어보았다.
『창조 능력자 50레벨
시간의 문 : 58
재능과 능력의 주인 : 58
절대 창조력 : 58
공간 이동 : 5
그랜드 코인 : 5319730.』
멸망의 별 하나와 적의 탑을 몇 번 제거했더니, 이만큼의 보상이 들어왔던 터였다.
절대 창조력.
명칭이 달라져 있다.
이 능력은 어떤 방식으로 발현하게 될지, 누군가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절대라는 명칭이 붙은 이 능력은 한 번 발현되면, 결코 실패가 없게 될 것이었다.
* * *
그다음 날, 나는 서재에서 초소형 드론 두 대에 내 능력을 심었다.
절대 창조력과 공간 이동 능력.
이 두 능력을 드론에 심었다.
나는 옆에 떠 있는 3D 디스플레이를 보며 말했다.
“수. 이 드론 한 대는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도록 베이징에 있는 장위에게 보내. 그리고 은밀히 장위를 살펴.”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대는 어떻게 할까요?>
“나머지 드론 한 대는 여기 올차드 저택에 두어야지. 그래서 혹여 루나가 수호를 데리고 외출하거나 하면, 그녀와 수호를 보호하면 좋을 것 같아.”
<네. 고수님 말씀대로 행하겠습니다. 드론에 저장된 고수님의 능력은 어떻게 사용되나요?>
AI 수의 질문에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그건 지금 시험해보도록 하지. 너에게 저장된 내 능력은 원한다면 네 조작에 의해서도 발현될 거야.”
<네, 알겠습니다.>
AI 수는 즉각 드론을 조종했다.
위잉-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드론 한 대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창문 쪽으로 돌진했다.
이대로 가다가 드론은 창문과 충돌할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느긋하게 드론을 바라보기만 했다.
창문에 충돌할 듯 돌진하던 드론은 갑자기 홀연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