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을 잡기 위한 덫을 준비하다 5
회색 머리의 청년은 코웃음을 쳤다.
“그런 얄팍한 수로 나를 낚을 생각인 건가? 사고 소식은 속임수다.”
“속임수라기엔 사실처럼 보입니다. 실제 병원에 실려 온 애플 수를 봤다는 목격자도 제법 있었습니다. 현재 애플 수의 얼굴이 공개된 상태라서요.”
“목격자?”
“네. 사고 현장을 목격한 자도 있고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온 모습을 봤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병원에 있는 건가?”
“네. H 종합병원입니다.”
“그렇다면 직접 확인해봐야겠군.”
회색 머리의 청년의 눈동자가 돌연 붉게 물들자, 그에게 말하고 있던 중년 남자의 눈동자도 순간 붉은빛이 감돌았다.
그러다 그의 눈동자가 잿빛으로 옅어졌다.
남자는 말 없이 돌아서더니 오피스텔을 나섰다.
제법 넓은 평수의 고급 오피스텔.
이곳은 그의 소유였다.
그의 이름은 지형석.
작은 사업체를 운영 중인 그는 오피스텔 건물을 소유하고 있을 만큼 부유했다.
회색 머리의 청년은 정형외과 내에서 머물고 있다가 고수에게 발각된 까닭에 이곳으로 은신처를 옮겨왔던 터였다.
지형석은 오피스텔을 떠나 고수가 실려 왔다던 H 병원으로 왔다.
고수는 VIP 병실처럼 1인실로 마련된 중환자실에 있어서 아무나 접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포칼립스 원흉과 능력이 연결되어 있던 지형석이었기에.
그가 중환자실에 허가 없이 들어서도 가로막는 이가 없었다.
복도에 루나와 고수의 어머니가 앉아 있었으나, 그들은 마치 지형석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형석은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고수를 내려다보았다.
광고에서 보았던 그 얼굴, 애플 수였다.
그의 반듯한 얼굴엔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다.
고수를 물끄러미 보던 지형석.
어쩐지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그의 눈동자가 찬찬히 고수의 모습을 스캔하듯 보았다.
고수는 의식이 없는 상태가 맞다고 그가 판단했을 때.
그의 등 뒤에서 강민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누구요?”
지형석이 그를 돌아보았다.
강민철이 중환자실 문앞에 서 있었다.
지형석은 강민철에게 다시 한 번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는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나 가로막힐 뿐이다.
강민철은 관측의 눈이라는 스킬을 통해, 지형석이 원흉에게 조종당하고 있음을 즉각 알아보았다.
“당신!”
그가 사나워진 태도로 성큼 다가오자 지형석은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더니 돌아서서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났다.
* * *
내가 사고가 난 것처럼 일을 꾸미기 이틀 전.
나는 시간을 마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벌써 2월도 훌쩍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외 팬미팅이 끝나고 초청되었던 이들은 다들 각자 나라로 돌아갔으나.
나노카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았다.
나는 H 호텔을 나와 저택으로 돌아가려고 로비를 지나는데, 나노카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영어로 나를 불렀다.
“선생님!”
나를 부르는 듯해서 무심코 돌아보자, 나노카는 다가오더니 내게 메모지를 보였다.
미리 적어둔 한글이다.
<나는 나노카 스즈키입니다. 나는 당신이 애플 수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이곳을 지나게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내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당신을 만나면 해답? 정답을 얻게 될 거라는 것을 먼저 보았습니다. 나는 한국어를 알지 못해서 번역기의 도움으로 원하는 말을 한글로 적었습니다.>
나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그리고 일본어로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제가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알아요. 일본어로 대화하죠. 언젠가 나를 찾아오실 거라고 생각은 했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다행이라는 기색으로 반색했다.
“아, 일본어를 하세요? 다행이에요. 사실, 걱정 많이 했어요. 쉽지 않은 대화를 하게 될 건데. 언어마저 통하지 않으면 더 어려웠을 테니까요.”
“네. 조금 천천히 말씀해주세요. 제가 유창한 편은 아니라서요.”
“아, 네네.”
우리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 대화를 했다.
나노카는 약간 상기된 얼굴이었다.
“믿어지지 않아요. 내가 애플 수와 대화하고 있다니.”
“그보다 믿기 힘든 건, 나노카 씨의 예지 능력일 겁니다.”
“맞아요. 믿기 힘들죠. 내가 예지로 보게 된 내용은 더더욱 믿기 힘들고요.”
“네.”
“꿈에서 내 눈앞에 능력 창 같은 게 나타나는 것을 보고 내 능력 사용법을 알게 되었어요. 내 능력을 인식하게 되니,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고요.”
“그랬을 겁니다.”
“진즉 일본으로 돌아갔어야 했지만 저는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애플 수를 만나야만 한다는 생각이 저를 사로잡았거든요. 저는 이 호텔에 더 연장해서 머물며 무수한 미래 환영을 보았어요.”
그녀는 내 눈을 직시했다.
“어제는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어요. 내가 본 미래는 너무 충격적이었고 비참했으니까요. 믿고 싶지 않았어요.”
“그 마음, 이해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두렵고 무섭고 그런데 이상한 건요.”
말하는 동안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던 그녀.
나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그녀의 얼굴에 혼란스러운 기색을 잠식하듯 부드러운 미소가 어렸다.
“당신을 만나고 나니 조금 안정이 되고 무서운 마음도 사라지는 기분이네요.”
“그래요?”
“이제까지 애플 수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니, 모든 사람이 생각했던 것보다 당신은 훨씬 더 특별한 사람인가 봐요.”
나는 흐릿한 미소만 머금었다.
“당신이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는 걸 알고 있어요. 내가 오늘 당신을 만난 건, 그런 당신을 도와주고 싶어서예요.”
비록 환영이지만 많은 걸 직접 보고 나서 찾아온 그녀였던 터라.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이 대화할 수 있어서 편하다.
“도움을 주시겠다니 고맙군요. 나노카 씨는 이곳 호텔에 일주일만 더 머물러 주시면 됩니다. 식사는 호텔 내 레스토랑에서 해결하시거나 룸서비스를 사용하셔도 좋고요. 필요한 모든 비용은 제가 낼 것이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호텔에 머물기만 하면 되나요?”
“네. 여기 머물면서 미래 환영을 수시로 봐주세요. 만일 본 게 있으면 제 연락처 알려드릴 테니. 봤던 미래 환영 내용을 기록해서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네, 그럴게요. 호텔 비용도 감사해요.”
나는 그녀에게 연락처를 알려주었고 그녀는 내 번호를 핸드폰에 저장했다.
“전 이만 일어나야겠군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저도 반가웠어요.”
그녀와 일별하고 카페를 나오면서, 나는 내가 조만간 벌일 일에 관해 생각을 정리했다.
조금 있으면, 내 사고 소식으로 세상이 떠들썩해질 것이다.
온 세계를 속이는 일이기도 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한다.
이 일을 위해서 나는 2052년의 인물과 2023년의 인물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의료 기술이 있는 2052년의 이 박사, 강민철, 정테이. 유하준. 그리고 수호.
진구는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지만 그에게도 몇 가지 부탁을 해 놓은 상태다.
이번에 부디 아포칼립스 원흉을 제거함으로,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종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
* * *
2월 마지막 날.
나는 실제로 사고를 일으켰다.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원흉을 속이는 일이었고.
전 세계를 속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를 걱정할 가족에겐 못할 짓이었지만.
모든 이를 속이기 위해서 나 자신을 실제로 내던지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밤.
아우디로 외진 도로를 달리다가 갓길 벼랑에 의도적으로 굴렀다.
사실, 사고를 내기 전.
나는 본디 나약한 인간이었던 터라 두렵고 걱정이 되었다.
크게 다치게 되는 것도 싫었고 가족이 나 때문에 충격을 받게 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렇기에 이 일을 벌이기 전, 나는 만반의 준비를 했었다.
내가 사고 낼 위치가 어느 정도 위험한지.
얼마나 다치게 될지 계산도 해두었고.
사고를 내기 직전에 내가 먹을 알약까지 마련해두었었다.
사고 내기 전, 나노카가 보낸 까톡 내용을 떠올리기도 했다.
- 나노카 스즈키 : 오늘 밤 11시 3분 즈음에 화가님에게 사고가 있는 걸 봤어요.
- 고수 : 제가 어느 정도 부상을 입게 되죠?
- 나노카 스즈키 : 차가 망가진 것에 비해 화가님의 부상은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 나노카 스즈키 : 그래도 화가님이 이 사고를 피하셨으면 좋겠네요.
그와 같은 그녀의 말은 내가 조금이나마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었다.
사고를 내도 크게 다치진 않을 것이니.
나는 아우디로 홀로 운전을 하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2분.
미리 준비해둔 알약을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11시 3분.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 핸들을 힘껏 틀었다.
끼이익-
빗길에 타이어가 미끄러지며 차는 갓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을 했다.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알약 효력은 1분 정도 경과한 다음 나타날 터.
내 의식이 돌아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30시간이 지나야 알약의 효력은 다할 것이지만.
30시간이 미처 지나지 않았을지라도,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깨어나 움직일 수 있다.
이 알약의 효력은 그러했다.
몸은 마치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되지만, 정신은 반쯤 깨어있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원한다면 의지적으로 의식을 회복할 수도 있게 되는 거다.
쿵!
난생처음 겪어보는 강렬한 충격에 나는 잠시 기절을 했다.
* * *
고수가 사고가 나기 전
그가 찍은 핸드폰 광고가 대대적으로 TV 방영이 되었다.
애초 광고 콘티는 가면으로 살짝 그의 얼굴을 가린 채 촬영하는 거였다.
그런데 당일, 그 광고 콘티는 수정되었다.
고수의 의견에 따라 광고 마지막 장면에 얼굴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광고주 입장에선 당연히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
애플 수가 광고를 통해 얼굴 공개를 하면 전 세계가 주목하게 될 터였다.
애플 수의 광고가 나오기 전, 그에 관한 인터넷 기사가 계속 쏟아졌었다.
<애플 수, S 핸드폰 광고 계약 체결!>
<애플 수의 얼굴 공개? 과연 그의 비밀이 드러날지 기대!>
이와 같은 제목으로 기사들이 쏟아졌었고.
대중은 페라리를 이은 애플 수의 다음 광고에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핸드폰 광고가 공개되어 TV에 방영한 그 날.
사람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 김지은 :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애플 수의 얼굴을 보게 되다니. (좋아요 2653, 답글 34개)
└ MD103 : 와! 애플 수 잘 생겼다고 사람들이 노래 부를 때마다 비웃어주곤 했었는데. 진짜 잘 개생겼을 줄은. 매력 쩌네. (좋아요 1712, 답글 19개)
└ 올차드 멤버 : 미쳤다... (좋아요 590, 답글 5개)
└ 지누맘 : 부럽다. 다 가졌네. 재능만 천재가 아니라 얼굴도 천재였네. (좋아요 710, 답글 42개)
└ 지니 : 저 얼굴을 왜 꾸역꾸역 가렸었을까. 오늘부터 다시 애플 수 덕질한다! (좋아요 279, 답글 15개)
└ 애플 쑤 : 역시 K-애플! 지금 전 세계가 다 뒤집어졌어요. 미국, 유럽, 아시아. 다 난리났어요. 대한민국 역사상, 그림쟁이가 이렇게 인기 있었던 적 있었어요? 이 정도로 전 세계가 인정한 천재가 있었어요? 우리는 애플 수를 국보로 지정해야 합니다! (좋아요 207, 답글 21개)
핸드폰 광고는 대한민국 말고도 해외에서도 방영되었고.
광고 너튜브 영상은 전 세계에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신비주의와 천재성, 화제성으로 그 이름이 명성을 떨치던 애플 수였는데.
이젠 그의 그림만이 아니라 그의 이름과 존재 자체에 세계 대중이 뜨겁게 끓어올랐다.
그러다 폭발하는 대중의 관심이 정점에 올랐을 때.
애플 수의 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당연히 충격을 받는 대중이었다.
고수가 원흉이라 부르는 자.
그자는 사고 소식을 듣고도 속임수라 일축하고 꿈쩍을 하지 않았으나.
그가 조종하는 지형석의 눈을 통해 고수의 상태를 직접 확인한 데다가.
무수한 자들이 고수의 사고 소식에 애통하니, 그도 조금씩 휩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