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19화 (119/153)

뱀을 잡기 위한 덫을 준비하다 4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나노카 스즈키와 따로 만나 대화를 해야 할까.

그녀에게 아포칼립스와 원흉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까.

특이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을 말해야 할까.

그러다가 그녀와 따로 접촉하는 건 그만두었다.

그녀에겐 내가 따로 아포칼립스와 그 원흉에 관해 설명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녀의 특이 능력, 예지를 일깨운다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많은 걸 알게 될 것이었다.

현재 ‘재능과 능력의 주인’이라는 이 능력으로 내가 누군가를 각성시킬 기회는 1회가 남아 있다.

그래서 일본의 최초 능력자가 될 나노카의 능력을 일깨웠다.

『예지몽 능력자 1레벨

예지몽 : 1

요리 능력 : 1

간파력 : 1

코인 : 0.』

나는 쓴 표정을 지었다.

코인이 전혀 없으니 그녀의 스탯을 올리려면 내 블랙카드를 긁어야만 한다.

나노카, 그녀는 내가 그녀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수백 억원을 블랙카드로 긁게 되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할 것이다.

나노카는 자신의 능력이 각성되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 얼굴이다.

나는 곧바로 블랙카드를 사용하여 그녀의 스탯을 올렸다.

『예지 능력자 22레벨

예지 능력 : 22

요리 능력 : 1

간파력 : 1

코인 : 0.』

무려 207억 6691만 원이나 결제했다.

기대감으로 가득해진 얼굴로 팬미팅 자리에 와 있던 나노카.

문득 그녀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듯했으나 금세 팬 미팅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기묘한 기분이 들었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모양이다.

사실, 능력을 각성해도, 딱히 누군가가 일러주지 않으면 금세 알기가 어려웠다.

재능 스탯 창이란 건, 내가 의식적으로 그것을 불러내야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조만간 자신의 능력을 알아채긴 할 거다.

나는 ‘재능과 능력의 주인’ 능력을 통해, 그녀의 예지 능력을 잠시 내게로 가져왔다.

그녀의 능력을 빌려 사용하는 것이다.

부디 아포칼립스 원흉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아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예지 능력을 발현했다.

곧, 내 시야에 환영 같은 게 보이기 시작했다.

눈앞에 나타난 환영에 내 눈이 크게 떠졌다.

미래 환영을 보면 그 시기가 어느 때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2024년 봄.

내가 있는 곳은 서울의 도심.

도시 일부분이 파괴된 풍경이 내 눈동자에 비쳤다.

그곳에서 나는 가족을 전투 비행선에 태우고 다른 나라에서 온 인간형 멸망의 별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때 진구가 내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거는 게 들려왔다.

“야! 왜 그리 얼빠져 있어? 나가서 멘트 해야지.”

진구의 목소리를 인지한 순간, 내 눈에 펼쳐졌던 환영은 금세 안개 흩어지듯 사라졌다.

나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 앞에 섰다.

줄곧 가면을 쓴 상태다.

열렬한 박수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안녕하세요, 애플 수입니다. 갑작스러운 초청이었을 텐데. 먼 곳에서 이곳까지 귀한 발걸음을 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그와 같이 입을 떼며 간단한 인사말을 했다.

애초에 팬미팅을 하는 건 좋아하지 않았고 구실이었을 뿐이기에.

이곳에 온 이들과 직접적인 접촉은 길게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저 이들은 내 얼굴을 보고 사인을 받으며 내가 주는 선물을 받고.

서울 관광을 하다가 돌아갈 것이었다.

그 외에 재단에서 후원을 받는 이들은 재단의 혜택을 받고 한국을 떠나갈 터다.

나는 인사말을 끝내고 자리에 앉으며 진구에게 말했다.

“오늘 저들의 일정을 내게 줘. 오늘 나 여기 호텔에 묵을 거야.”

“어? 그래? 집에 안 가고?”

“응. 강 회장님도 여기 묵으실 거야.”

나노카라는 저 여자가 이곳 호텔에 머무는 동안, 나 역시 여기 머물고 있으면 예지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터다.

그녀가 가까이 있으면 나는 그녀의 능력을 빌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 * *

H 호텔 객실에 머물며 초저녁 무렵에 잠시 눈을 붙였던 나.

밤이 되어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객실의 창밖을 굽이 보며 오래도록 서 있었다.

밤새 예지 능력을 반복해서 사용한 것이다.

어느덧 새벽 4시.

늦은 밤까지 화려한 야경으로 반짝거리던 도시는 새벽녘이 되자 조금은 그 빛이 아득해졌다.

몸과 정신이 이제 꽤 지친 상태.

내가 본 짧은 토막 미래 환영은 랜덤으로 나타나곤 했는데.

거의 2년 안에 이루어질 일들이었다.

아마도 능력 스탯이 더 올려야 먼 미래를 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미래를 선택해서 볼 수 있는 듯했다.

대부분 미래 환영은 암울하고 비극적인 내용이 많아서 예지 능력을 사용하던 내 마음은 더 쉽게 지쳤다.

나는 나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괜찮아. 어차피 나타나지 않을 미래니까. 내가 다 바꿀 거니까. 수호가 믿었던 대로 아포칼립스는 오지 않아.”

그러면서 홀로 주먹을 꽉 쥐었다.

반복해서 능력을 발동했던 터라 당장 쓰러질 만큼 지쳤을 무렵.

마침내 내 눈앞에 어떤 환영이 나타났다.

내 시선은 창밖을 향하고 있어서, 그 환영은 창밖에서 나타났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미래 환영을 통해 아포칼립스 원흉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이틀 후의 미래다!

위치는 대한민국의 서울?

이제껏 서울에 있었단 말인가?

환영에서 보이는 공간은 어느 병원의 입원실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고요히 누워있었고 그에게 조종받는 것처럼 보이는 한 의사가 그를 은밀히 돌보고 있었다.

나는 눈매를 가늘게 했다.

어느 병원이지?

병원 실의 풍경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환영 속 의사가 잠든 원흉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이제 회복되셨으니 계획하셨던 바를 행하셔도 됩니다.”

그러자 원흉은 눈을 떴다.

“충분히 무르익을 때까지 애플 수는 피할 생각이다. 그는 생각보다 강하다.”

“그를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그의 능력 속성은 창조다. 속성만으로도 나를 대적하고 내 능력과 상극을 이루지. 나는 그를 두려워하진 않지만 내 능력과 내 모든 결과물은 그의 능력을 두려워한다.”

“그와 그의 아들을 죽이십시오.”

“내겐 그자를 죽일 능력이 있지만 그건 그자도 마찬가지야. 내가 불시에 그를 기습한다 할지라도 그는 시간 위에 선 자처럼 내 공격에 대비하고 나를 오히려 반격할 거다.”

“......”

“내가 그를 죽일 수 있으려면, 그가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야만 하지.”

“네.”

“나는 조급할 필요 없어. 어차피 내 목적은 그가 아니야. 이곳 세상이지. 지구의 모든 살아있는 것이지.”

원흉은 섬뜩한 미소를 머금었다.

나는 그 환영을 보며 의사의 가운 왼쪽 가슴에 있는 주머니를 확인했다.

거기에 의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정형외과 박광호.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렇게 되면 내가 굳이 미끼 노릇을 하며 원흉을 낚는 행동을 할 필요가 없게 된 건가.

예지 능력을 발견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잘하면 원흉을 잡을 수 있을 듯하다.

어느 병원인지는 가운에 적혀 있지 않다만.

상관없다.

요즘은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도 내가 원하는 정보가 다 나올 것이니.

나는 예지 능력을 거두고 침대에 걸터앉아 잠시 쉬었다.

아까 저녁때 사다 놓은 만두를 집어 먹으며 허기를 채운 다음.

3D 타블렛 디스플레이를 켰다.

조금 전, 환영을 통해 본 원흉의 모습을 그림으로 빠르게 그려냈다.

그사이, 외양이 조금 더 변했던 아포칼립스 원흉.

이제 나이가 20대 후반으로 보인다.

얼굴선과 몸선은 전보다 굵어진 듯했고, 목과 두 눈엔 짙은 흉터가 남아 있다.

하지만 완치된 상태.

그만하면 대단한 회복력이다.

나는 그림 한 장을 완성해낸 후에, 핸드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

서울 시내에 정형외과 중에 박광호 의사가 있는지 찾아보려는 것이다.

* * *

그날 초저녁 무렵, 나는 어느 정형외과 건물 앞에 당도했다.

캡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한 행색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원흉의 그림은 6장.

넉넉하게 완성해두었다.

조금 전, 강민철의 ‘관측의 눈’을 빌려 사용해서 원흉이 이곳에 있음을 알아내어 온 터다.

내가 들어선 정형외과는 경기도 어느 지역에 있는 동네 병원.

3층짜리 작은 건물을 병원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관측의 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있는 의사 두 명과 간호사들은 전부 원흉에게 조종당하고 있음을.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정상으로 진료를 보고 있었다.

아포칼립스 원흉은 사람들의 의심을 받지 않고, 이곳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을 생각이었나 보다.

내가 병원 카운터를 지나 곧바로 입원실로 성큼 걸어가자, 카운터에 있던 간호사가 재빨리 다가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예약하셨어요?”

나는 미소 띤 얼굴로 그녀에게 대꾸했다.

“병문안 왔습니다.”

“병문안이요? 지금은 여기에 입원 환자가 없어요.”

간호사는 집요하게 나를 가로막으려 했지만 나는 무시하고 입원실로 걸어갔다.

타블렛 펜을 작동하여 3D 디스플레이를 열어 저장된 원흉의 그림을 불러왔다.

원흉이 누워있을 입원실.

간호사가 나를 제지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의 문을 벌컥 열었다.

곧바로 그곳에 있을 원흉에게 실물 전환 능력을 행할 심산이었다.

그런데.

“......!”

입원실 안엔 아무도 없었다.

빠져나간 건가?

고개를 돌리고 다른 입원실 문도 열어보았다.

그곳도 비어있다.

간호사가 내게 외쳤다.

“이봐요!”

나는 나직이 읊조렸다.

“이곳 근처를 수색해.”

그러자 디스플레이 화면에서 AI 수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네, 알겠습니다. 고수님.>

그때 진료실에서 박광호가 나오더니 내게 말했다.

환영에서 보았던, 원흉에게 조종당한 그 의사다.

“누구십니까? 지금은 입원해 있는 환자가 없습니다만.”

나는 그를 돌아보고는 옅게 미소지었다.

“제가 병문안 시간을 잘못 맞춘 모양입니다. 그새 환자가 퇴원했나 봅니다. 실례했습니다.”

“......”

나는 아쉬운 표정으로 병원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아무래도 원흉은 눈치채고 미리 피해버린 듯하다.

내가 본 미래 환영은 내일 나타날 일이었는데도.

원흉은 내가 올 것을 미리 눈치채고 사라진 것이다.

역시, 내가 그를 추적해서 잡는 건 애초에 되지 않을 일이었던가.

그렇다면 별 수 없다.

테이가 말했던 대로 내가 미끼가 되어 원흉을 사냥하는 수밖에.

* * *

회색 머리칼의 청년.

그는 어느 고급 오피스텔로 보이는 곳의 소파에 앉아 TV 뉴스를 보고 있다.

그곳에 대기업의 핸드폰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다.

무척 화려하고도 감각적이고 세련된 영상으로 광고가 이어졌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핸드폰.

늘씬한 여배우가 그 핸드폰에 매료되어 손을 뻗지만 그것은 애플 수의 그림이었다.

그림인 줄 모르고 그림을 집으려 했던 여배우는 깜짝 놀란다.

다시 장면이 바뀌고 광고 후반 부분엔 애플 수가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전보다 얼굴 생김이 좀 더 드러나 보이는 면모.

그의 잘생긴 모습을 회색 머리의 남자는 냉혹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남자의 눈동자에 이채가 띠었다.

광고 속의 애플 수는 놀랍게도 자신의 가면을 벗어던진 것이다.

사람들이 이제껏 상상했던 이미지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단정한 외모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 영상을 보던 회색 머리의 남자, 비웃듯 중얼거렸다.

“이젠 숨길 이유가 없다는 건가.”

그 시각, 핸드폰의 광고가 방영되어 애플 수의 얼굴을 보게 된 무수한 이들.

그들의 반응은 뜨겁고 열렬했다.

너튜브, SNS, 커뮤니티, 팬클럽 공식 블로그, 인터넷 기사 등등.

온라인 상에서 애플 수라는 이름은 뜨겁게 달구어졌다.

그 외 오프라인에도 어디서든 애플 수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애플 수라는 이름은 단숨에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애플 수의 화제성은 이전보다 더 크게 일었고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회색 머리의 남자에게 다가왔던 어떤 중년 남자.

그가 넌지시 말했다.

“애플 수가 사고를 당했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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