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18화 (118/153)

뱀을 잡기 위한 덫을 준비하다 3

나는 서재에 있는 책상 앞에 앉아 유하준에 보낸 이미지를 들여다봤다.

이번에 유하준이 설계하여 이미지화한 것이다.

초소형 드론.

크기는 말벌만 해서 이전 드론보다 약간 작았다.

이것 역시 유리 금속으로 제작되어 투명하다.

유하준의 말로는 비행할 때 소리도 거의 나지 않는다던데.

나는 3D 타블렛 디스플레이를 열어 방금 본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렸다.

이젠 그림 작업 속도가 47배속에 이르는 탓에 금세 완성되었다.

그림을 실물 전환을 하자 내 앞에 홀연히 나타난 드론.

그것을 들어 자세히 살펴보다가 책상 위에 두고, 핸드폰을 들었다.

까톡을 확인하니 장위에게서 온 메시지가 있다.

메시지는 영어로 적혀 있다.

- 장위 : 고수. 현재 중국에선 붉은 유성에 관해 보도하는 매체가 없습니다.

- 장위 : 민간에 혼란을 주는 내용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고 여긴 것인지. 중국의 상공에 수백 개의 붉은 유성이 나타났다가 일시에 사라졌는데도, 이걸 보도하는 곳이 없더군요.

- 고수 : 그렇군요. 네, 알겠습니다.

그에게 답장을 하고 있을 때.

우우웅, 우우웅-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테이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나는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네.”

<고수 씨가 선정해준 30명의 최초 능력자에게 일단 접촉을 시도했거든요.>

“네.”

우선 30명을 선정해서 연락을 보내라고 해두었었다.

그들 30명은 한반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거주하는 이들이었다.

<그들 중에서 현재 21명이 연락이 닿아서 한국으로 오겠다고 했어요. 왕복 항공권과 주소를 보내두었어요. 이들이 도착할 날짜는 앞으로 열흘 후입니다.>

“그들을 초청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네, 쉽지 않은데. 애플 수 그 이름을 이용하니 쉬워지던데요.>

“제 이름이요?”

<이번에 올차드 팬클럽과 애플 수 재단이 협력해서 해외 타깃으로 대대적인 이벤트를 했어요. 인터넷과 SNS를 통해서 광고도 했었고요. 많은 관심이 쏠리는 바람에, 덕분에 일손이 많아졌었네요. 해외 여러 사람들이 이벤트 공모를 했었거든요. 최초 능력자들이 공모하도록 그들 타깃으로 조건을 설정해두었는데도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다행히, 강 회장님과 올차드 회원, 재단 사람들의 도움으로 잘 해결했지만요.>

“그랬군요. 수고 많았겠네요. 고마워요, 테이.”

<훗, 다 같이 살자고 하는 일인데요. 21명의 명단을 보내드릴게요.>

테이와 통화를 끝내고서 그녀가 보낸 까톡을 확인했다.

그녀의 톡에 21명의 최초 능력자 이름과 프로필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명단을 한동안 들여다봤다.

살펴보니 일본인 40대 주부도 있다.

* * *

나노카 스즈키, 올해 40세 된 가정주부였다.

그녀는 일찍 결혼해서 벌써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나노카는 집에 홀로 남는다.

아들이 어릴 때는 나름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녀였는데.

이제는 하루하루 일상이 무료해졌고 무력해졌다.

나노카는 친구와 통화를 하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미야, 나도 이제 슬슬 일을 시작할까 봐. 내가 유일하게 자신 있는 게 요리잖아. 식당을 해보고 싶어.”

<힘들게 왜 식당을 해? 남편도 돈을 잘 버는데. 요즘 식당 창업, 어렵다던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직감이 강하잖아. 만일 식당을 하면 잘 될 것 같아.”

<직감만으로 성공을 자신하는 애는 너밖에 없어. 그나저나 요즘은 악몽 안 꿔? 너 그것 때문에 우울증까지 왔었잖아.>

“지금도 여전해. 매일 악몽을 꿔. 사실, 그것 때문에 식당 할 생각을 하는 거야. 좀 바쁘고 몸이 고되면 악몽을 꾸지 않게 될까 싶은 거지. 솔직히 악몽을 멈추게 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하고 싶어.”

<그 악몽, 네가 죽는 내용이라고 했던가?>

“응. 내가 죽는 꿈을 꾸는데, 그게 꿈 같지가 않아. 너무 생생해. 그 공포와 두려움, 심지어 내가 죽을 때 겪는 고통까지. 너무 생생해. 이걸 나는 매일 꿔.”

<힘들겠네. 나노카, 네 이야기 들으면서 드는 생각인데. 오해하지 말고 들어. 어떤 꿈을 반복해서 꾼다는 건, 그 사람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어서 그런 꿈을 꾼다고 들은 적이 있어. 그렇다고 꿈대로 네가 죽을 거라는 건 아니고. 다른 숨겨진 의미가 있다거나 그런 게 아닐까.>

나노카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괴롭다는 듯이 대꾸했다.

“미야, 내 꿈에서 벌어지는 내용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닌 것 같아. 내 꿈에선 많은 사람이 죽어. 내 가족이 죽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나도 죽게 돼.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지. 만일 내 꿈이 경고 같은 거라면, 일본이 멸망하기라도 한다는 거잖아.”

<......>

나노카는 한숨을 지었다.

“미안. 우울하고 이상한 이야기를 해서. 그만 끊을게.”

통화를 끝내자 그녀의 공간은 다시 적막함으로 채워졌다.

그때 그녀의 핸드폰으로 문자 하나가 왔다.

그녀가 가입한 올차드 팬클럽에서 진행하는 이벤트.

애플 수와의 팬미팅을 할 수 있는 이벤트에 당첨이 된 것이다.

무려 왕복 항공권과 숙박권이 주어지는 이벤트였다.

나노카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 내용을 보다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럭키!!”

언제 우울했나 싶은 그녀다.

* * *

이틀 노가다 끝에 나는 초소형 드론 700대를 추가로 그려서 실물 전환을 했다.

AI 수는 그 드론으로 전국을 은밀히 정찰했다.

또한, 아포칼립스 원흉을 지속해서 추적했다.

나는 오늘 진구와 함께 광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진구는 운전하면서 내게 연신 떠들었다.

“야, 기사 뜬 거 봤냐? 해외에서도 네가 찍는 광고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 너 해외에서도 팬 많은 거 모르지?”

“알아. 네가 많이 떠들었잖아.”

“내가 그랬었나.”

“나도 가끔 찾아보곤 해. 인터넷 기사나 SNS.”

세계적으로 인기가 솟은 데다가 내 자선 사업도 알려져서, 사람들은 내게 호의적이었다.

그들은 내 그림과 신비함으로 구축된 내 이미지에 열광했다.

그 덕분에 최초 능력자를 한국으로 초청하는 일이 어렵지 않기도 했다.

이윽고, 진구는 어느 건물 앞에 차를 주차했다.

차에서 내리기 전, 나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며 진구에게 물었다.

“오늘 촬영도 기자들에게 비공개인 거 맞지?”

“응. 다만 주혜 씨만 촬영하는 거를 허용했어.”

“그래.”

나는 차에서 내려 촬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에게 배정된 대기실로 가는 도중, 기다리고 있던 스태프들이 달라붙었다.

“안녕하세요? 애플 수 작가님. 제가 작가님을 메이크업 해드릴 거예요. 와, 실물 처음 보는데. 멋있으세요.”

“오늘 촬영은 밤늦게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화가님, 대기실은 저기입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생기셨네요. 얼굴을 가리는 게 아까울 정도로 잘 생기셨어요.”

“애플 수 작가님, 오늘 힘내세요!”

관계자와 스태프들, 나를 보는 이마다 내게서 시선을 떼질 못했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내 실물을 보는 것이기도 했고.

처음 얼굴을 드러낸 나였기에 다들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들에게 웃는 낯으로 응수했다.

“감사합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벌써 광고 촬영만 몇 번째라서 그런지.

연예인이라도 된 기분이다.

“애플 수 작가님, 오늘 의상은 전에 페라리 광고 때 입었던 의상과 컨셉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가면도 블랙 색상에 화려한 장식이 들어갔어요. 다만 오늘 쓰게 될 가면은 얼굴이 좀 더 드러날 겁니다.”

전문가가 컨셉에 맞게 메이크업을 해주고 헤어 스타일링을 해주었다.

거기에 의상을 입고 거울 앞에 서니,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카리스마 있어 보이면서도 아이돌 같은 느낌.

메이크업을 한 내 얼굴은 눈매가 한결 강렬해져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가면을 썼다.

눈만 겨우 가린 가면.

확실히, 얼굴의 이목구비가 훨씬 드러난다.

오늘 촬영한 광고 영상이 TV에 방영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

조바심이 난다.

* * *

어느덧 2월 말, 아포칼립스와 맞닥뜨리지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내 마음은 평안치가 않았다.

그저께 광고 촬영이 끝난 후 이틀이 지난 오늘, 나는 H 호텔로 향했다.

이곳에서 애플 수 팬 미팅 겸 애플 수 재단에서 개최한 행사가 열리게 된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초청된 인원은 50명.

이 중에서 최초 능력자 21명이 섞여 있었다.

명목상, 최초 능력자가 아닌 사람도 초청했던 터였다.

나는 이곳에서 초청된 인물을 훑어볼 생각이었다.

이들 중에서 적합한 능력을 지닌 자가 있다면 따로 만날 계획이었다.

올차드 팬클럽 회장인 강민철이 초청된 이들 앞에 서서 명목뿐인 인사말을 했다.

“저는 올차드 팬클럽 회장인 강민철입니다. 2021년 이후 줄곧 애플 수 화가님의 골수 팬이었습니다. 제가 올차드 팬클럽의 회장이 된 것은 언젠가 애플 수 화가님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굳이 올차드 회장이 되지 않았어도 화가님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네요, 하하.

오늘 먼 곳에서 여기까지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여기 계신 분 중에는 중국과 일본에서 오신 분도 있고, 베트남, 필리핀, 대만, 러시아, 몽골에서도 오신 분이 있습니다. 정말 다양한 곳에서 오셨죠?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올차드 팬클럽과 애플 수 재단에서 마련한 왕복 항공권과 H 호텔의 숙박권을 선물로 받으셨을 겁니다. 2박 3일 일정으로, 애플 수 화가님과의 만남 외에도 여러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모쪼록 즐겁고 값진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강민철이 자리를 뜨자 김수연이 마이크 앞에 섰다.

“저는 애플 수 재단의 이사장, 김수연입니다. 저도 앞서 말씀하신 강 회장님과 비슷한 이유로 재단 이사장이 되었습니다. 자선 사업이 목적이 아니라 애플 수와 늘 가깝게 지내고 싶어서 재단 이사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강 회장님 못지않게 애플 수를 사랑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거든요. 오늘 이곳에 오신 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애플 수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죠.

여기 계신 분 중에는 애플 수 재단의 후원을 받게 될 분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초청되었을 겁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 2박 3일 동안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수연이가 멘트하는 동안, 나는 의자에 앉은 채 ‘재능과 능력의 주인’ 능력을 발현했다.

여기 있는 최초 능력자들에게 어떤 능력이 나타날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이내, 최초 능력자들에게서 나타날 능력이 내게 보였다.

노래 재능.

연기 재능.

힘쓰는 일.

생각보다 평범한 재능과 능력이다.

나는 계속 여러 사람을 훑어보았다.

그러다 내 시선이 어느 일본 여자에게서 머물렀다.

그녀를 보던 내 눈동자에 이채가 일었다.

이 여자다!

만일 능력을 각성하게 된다면, 그녀에게 예지 능력이 나타날 것이었다.

나는 옆에 앉은 강민철에게 말을 걸었다.

“강 회장님, 최초 능력자 중에 일본 여자 말입니다.”

“네.”

“그녀가 각성하면 예지 능력이 나타날 겁니다.”

“예지 능력이요?”

“네. 예지 능력이 있으면 우리에게 꽤 도움이 될 겁니다.”

나에게 시간 능력이 있지만 그것은 과거로 돌리는 것일 뿐이다.

혹여 내 계획이 실패하거나 적에게 당해서 과거로 시간을 돌린다면, 실패했던 일은 없던 일이 될 수 있었으나.

어떻게든, 우리의 내면에 작은 흉터나 잔상처럼 기억의 잔재가 남기도 했었다.

악몽으로든, 잠재적인 두려움 형태로든.

그렇기에 일을 당하고서 시간을 되돌리는 일은 웬만해선 없어야 했다.

만일 예지 능력자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러한 일을 방지할 수 있을지 모를 터.

더불어 원흉을 추적하는 일도 어쩌면 수월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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