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을 잡기 위한 덫을 준비하다 2
중국 영역에 포진한 괴수들은 이전보다 강해진 느낌이다.
전투 방식은 저번과 같았다.
비슷한 전투 방식으로 진행하며, 연합하여 적의 영역을 정복하는 일이었지만.
쉽진 않았다.
심지어 멸망의 별은 인간형으로 변모하여 우리를 공격했다.
다행히, 인간형 멸망의 별은 한 명 뿐이었다.
만일 여럿이서 공격한다면 난감했을 터다.
평소에 인간형 멸망의 별은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 그곳 영역에 있는 탑의 기운이 충만해지고 하늘의 빛이 심히 붉어졌을 때.
멸망의 별은 한 번씩 영역을 벗어나 타지역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는 건 대략 5시간에서 6시간 정도.
제법 커다랗게 성장한 별일수록 그 시간은 늘어난다고 수호에게서 들었다.
일전에 수호를 공격했던 적이 있던 인간형 멸망의 별.
그 역시 그런 이유로 근처에 있던 별이 한반도의 서울 지역까지 와서 수호를 공격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한반도에서 가까운 위치의 별들은 대부분 제거하는 게 좋다.
이제까지 수호와 한반도가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
중국의 영역에서 장위가 강성해 있는 탓이었고.
수호와 장위가 연합해서 적의 영역을 한 번씩 정복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또한, 나와 수호가 함께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지역의 별을 두 개 정도 파괴하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오늘 맞닥뜨린 멸망의 별과 적들은 그새 꽤 강해져 있었다.
시간 능력이 없었다면 영역을 정복하고 별을 파괴하기 어려웠을 터.
가까스로 멸망의 별 하나를 파괴했던 나.
전투가 끝나고 나는 비행선 밖에서 장위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우리의 대화는 AI 2050이 동시통역으로 도와주었다.
미래의 장위는 몸 선과 얼굴선이 전보다 더 투박해져 있었다.
눈빛도 전보다 훨씬 예리해 보였다.
그는 내게 말했다.
“고수, 2023년 이후 처음 뵙는군요. 전에 뵈었던 모습 그대로십니다.”
당연히 그대로일 수밖에.
나로서는 겨우 며칠이 지났을 뿐이니.
“장위는 전보다 더 강하고 단단해 보이는군요.”
그러자 장위는 허허 웃었다.
“더 강하고 단단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 강해질 수밖에요.”
“네, 그렇겠죠.”
“암튼 저는 이렇게나마 고수를 다시 볼 수 있어서 기쁩니다. 2023년에 고수를 만난 직후, 늘 감사하고 있었어요. 그날에 고수를 만나지 못했었다면... 아니, 고수가 나를 찾아오지 않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끔찍하고 상상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마도 저는 더 비참하고 더 힘들었을 겁니다.”
“네.”
“덕분에 저는 부모님도 구할 수 있었으니까요.”
“다행이었군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암튼 늘 고맙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수호를 처음 만났을 때 감개무량했었습니다. 수호를 보니 고수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마음도 들었었거든요.”
“그랬군요.”
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2026년에 고수가 생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부디 아포칼립스 원흉을 일찌감치 잡아서 2052년의 세상이 평화롭게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곳에서 나이가 든 고수를 만나 회포를 풀게 되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아포칼립스 원흉을 일찌감치 잡게 된다면 아포칼립스가 오지 않게 될 거고. 고수도 죽지 않게 될 테니까요.”
“그렇게 될 겁니다.”
장위와 대화하고서, 아바타 접속을 끝낼 무렵.
나는 잠시 수호와도 대화를 나누었다.
“수호야, 2023년에서 아포칼립스 원흉 잡기 위해 내가 미끼가 되는 덫을 놓기로 했어. 그러자면 더 스탯을 올려야 할 듯해.”
“11월까지 마냥 기다리지 않을 생각이군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마냥 기다리는 게 더 위험할 수 있을 것 같아. 원흉이 더 강해지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니까.”
“그렇겠군요.”
“그래서 2052년의 멸망의 별을 제거하는 일도 계속해야 할 듯해. 스탯도 올려야 하니까. 이만 가야겠다. 수호야, 몸 잘 챙겨. 넌 살 좀 더 쪄야 해.”
그러고는 아바타 접속을 끝냈다.
2052년에서 2023년의 세상으로 돌아와 눈을 뜨고서 옆에 있는 3D 디스플레이에 눈길을 주니.
AI 수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아바타 접속 시간은 총 6시간 20분입니다.>
<에너지 소모가 극심해서 기력이 쇠해져 있습니다. 속히 음식을 섭취해서 정상 컨디션으로 회복하십시오.>
정말이지 아바타 기계를 장시간 접속하는 일은 피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장시간 접속하고서 눈을 뜰 때면, 이렇듯 구토증과 어지럼증이 일곤 한다.
그래서 잠자코 캡슐 안에 누워있어야 하는 거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미리 준비해둔 에너지 음료와 연어 아보카도 샌드위치로 허기를 채웠다.
그러면서 내 스탯을 확인했다.
이번에 보상이 들어왔을 거다.
『창조 능력자 49레벨
시간의 문 : 47
재능과 능력의 주인 : 46
생명 창조력 : 46
그랜드 코인 : 2890321.』
이번엔 스탯 보상 ‘13’이 들어와 있다.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띠리리링-
진구 녀석이다.
나는 그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고수야, 내일 S 전자에서 광고 건으로 미팅 잡혔는데. 어떡할래? 내일 계약서까지 작성할 것 같은데. 혹시 직접 참석할 생각이 있어?>
“내일 참석할게. 미팅이 몇 시야?”
<오후 3시. 필요하면 내가 픽업할게. 너 이사한 집 어디야? 내가 아직도 네 집을 모르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
그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말이 안 되지. 주소 찍어줄게. 내일 점심때 와라. 밥 줄게.”
<오케이. 알았다.>
* * *
다음날 정오 즈음, 진구가 저택을 방문했다.
화장지와 아기 기저귀 같은 걸 몇 개 사 왔다.
이리저리 저택을 구경하고 잠든 수호의 얼굴까지 봤던 진구.
침실에서 주방까지 가면서 호들갑 떨며 내게 말했다.
“이야, 고수야. 성공했다. 여기가 진짜 네 집이라고? 완전 궁궐이네. 유럽 왕족이 사는 궁전 같다. 아들내미는 너랑 꼭 닮았는데. 이상하게 귀엽다. 왜지? 왜 귀여운 거지?”
“조용히 하고 밥이나 먹어.”
“흐흐, 그래.”
진구는 주방에서 식탁을 차리던 한나에게 꾸벅하며 인사치레를 했다.
“한나 누님, 음식 솜씨는 익히 들었었습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많이 드세요.”
“조만간 결혼하신다고요? 축하드립니다.”
“네, 고마워요.”
그렇게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나는 진구와 함께 주차장으로 왔다.
주차장에서 진구는 또 한번 호들갑을 떨었다.
“아까 보고 감탄했었는데, 너 집에 뭔 차가 이리 많아? 페라리 말고도 무슨 장갑차 같은 차도 있더라? 와, 다시 봐도 멋지네. 이런 건 언제 샀냐?”
“작년에.”
“모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부럽네, 짜식.”
진구는 그가 타고 온 차의 운전석에 올라탔다.
나 역시 그의 조수석에 앉았다.
“너 전생에 나라를 구했었나 보다. 미인 아내에 귀여운 아들, 궁전 같은 집에 고급 명품 차가 몇 대. 도저히 배가 안 아플 수가 없다.”
“밥 잘 먹고 배가 아프긴.”
“흐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부러운 건 사실이잖아.”
“사실 전생에 나라를 구했었다고는 말할 수 있지.”
“응?”
“음, 아니구나. 나라가 아니라 세계를 구하는 것이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답해야겠네.”
진구는 차를 몰아 주차장을 빠져나가면서 대꾸했다.
“뭔 소리냐?”
“그냥 그런 게 있어.”
잠시 후, 우리는 어느 높다란 빌딩에 도착해서 차를 주차하고 미팅 장소로 향했다.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복도를 걷는 동안.
지나던 사람들이 우리를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들의 수군거림도 들려왔다.
“저 사람이 애플 수인가 봐요.”
“그런데 직접 왔네요? 그동안 광고 계약할 때도 직접 나타나지 않았었다면서요?”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애플 수의 매니저뿐이라고 했는데.”
“근데 어느 쪽이 애플 수인 거죠?”
“당연히 키가 큰 쪽이죠. 애플 수는 얼굴을 가렸어도 전체적인 실루엣은 모델 핏이었어요. 아우라가 꽤 신비하고 매력적이었는데.”
“키가 큰 쪽인 것 같네요. 저 사람, 확실히 키가 크고 외모가 수려하네요. 소문대로 애플 수가 잘생기긴 했나 봐요.”
“정말 애플 수에요? 나는 배우인 줄 알았어요. 저 애플 수 팬인데. 실물을 영접하다니 이게 꿈은 아니겠죠?”
회의실에 도착해서 문을 닫고 우리만 남게 되니 조용해서 한결 낫다.
광고주와 실무 담당자도 곧 나타나서 인사를 주고받은 후, 이내 광고 관련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 핸드폰 신제품의 컨셉은 귀족적, 세련됨, 명품, 강렬함입니다. 그런 이미지는 애플 수의 이미지와도 부합한 까닭에 애플 수 작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명품, 귀족적, 강렬.
그런 이미지는 아마도 페라리 광고를 하면서 굳어졌을 거다.
그동안 나는 한 번도 내 모습을 공개한 적이 없었다.
너튜브를 통해 그림 작업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어도.
앞모습을 제대로 보인 적도 없었고.
비록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긴 했어도, 전 세계에 내 모습을 제대로 인식시켜준 건, 페라리 광고에서였다.
그런데 그 광고 컨셉이 강렬함과 명품, 귀족, 그런 거였으니.
아무래도 내 이미지도 그와 같이 굳어진 게 아닌가 싶다.
“네. 애플 수의 이미지는 그런 고급스러움입니다. 거기다 더해서 세련되고 강렬하고 아름다운 색감이 광고 영상에서 보여졌으면 합니다.”
“네.”
“애플 수의 그림이 광고 영상 안에서 나타나도록 할 거고요. 그런데 애플 수 작가님.”
“네.”
“오늘은 얼굴을 가리지 않은 모습으로 직접 나타나신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모든 직원에게 영상 촬영을 금하긴 했었는데. 혹시 이유가 있으신지...?”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조금은 빗장을 풀고 대중을 만나고 싶어졌다랄까요.”
“그렇군요. 그러면 광고에서 작가님의 얼굴을 전부 다 보여도 상관없으신가요?”
“전부 다 보이는 건 그렇고. 전보다 조금 더 드러나는 건 상관없습니다.”
내 답변을 들은 저들은 다소 흥분한 기색을 보였다.
실무 담당자는 얼굴이 상기되어서 고조된 어조로 빠르게 말했다.
“이거 대단하군요. 전 세계가 궁금해하는 애플 수의 얼굴이 우리 회사 핸드폰 광고를 통해 좀 더 드러나게 된다면,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하하, 이거 광고 효과가 대단하겠는걸요.”
그러자 진구는 눈을 빛내며 광고주와 실무 담당자에게 말했다.
“그렇죠. 애플 수의 등장만으로도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될 겁니다. 그런 만큼 그만한 대우를 해주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편당 출연료 30억 원을 드릴 예정입니다. 이는 애플 수 작가님의 그림 가치 때문에 더 드리는 겁니다.”
그 정도면 업계 최고 출연료이긴 했다.
나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언제 촬영을 할지 대략 스케줄을 정했다.
그러다 오후 4시쯤.
계약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진구가 이런 말을 꺼냈다.
“고수야. 생각해봤는데 네 이미지는 지금 이미지로 쭉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페라리 광고 찍으면서 굳어진 그 이미지로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그래.”
“G 건설사와도 광고 협의 중이긴 한데. 거긴 여기보다 광고료가 크지 않을 거야. 그래도 괜찮겠냐?”
“음, 내 입장에선 광고 한 편 찍는 것보다 작품 하나를 더 완성해서 파는 게 더 이득이긴 해.”
“그치?”
“하지만 당분간은 세상에 나를 드러내고 대중과 가까워질 생각이니. G 건설까지만 광고 찍지 뭐. 그 후로는 다 거절해.”
“그래, 알았다.”
진구는 주차된 차 앞에 이르러 운전석 차 문을 열며 내게 물었다.
“근데 고수야, 다음 작품은 뭐로 그릴 거냐?”
“글쎄. 지금 계속 생각 중이야.”
“너 그동안 주로 환상적인 풍경화를 그렸었잖아. 이번에도 풍경화?”
나는 차 앞에서 우뚝 섰다가 그에게 입을 뗐다.
“음, 이번엔 지구를... 그려 볼까? 조금 특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