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16화 (116/153)

뱀을 잡기 위한 덫을 준비하다

아바타 접속을 끝내고 돌아온 후.

나는 여전히 초소형 드론 800대를 전국에 풀어 아포칼립스 원흉을 찾게 했지만.

그자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드론을 대거 풀어서 활동하게 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언제든 사람들 눈에 띌 수 있는 탓이다.

그래서 나는 유하준 박사에게 부탁했다.

정찰 드론에 적합하고 사람의 눈에 쉽게 않을 만한 모델을 이미지로 만들어달라고 한 것이다.

생각지 못하게 내 저택에 머물게 된 장위.

오후 즈음, 나는 서재에서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장위, 베이징으로 돌아가면 강 회장님과 저에게서 들었던 모든 이야기와 2052년에 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걸 제게 약속해줄 수 있어요?”

“네. 어차피 제가 말한다고 해도 증거를 보여주지 않은 이상, 사람들은 쉽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혹시 염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거나...”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별로 그러고 싶진 않거든요. 그랬다가는 ‘공안’에게 잡혀가서 이런저런 조사를 받거나 실험을 당하게 될까 싶어서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실, 장위의 능력은 현시점에선 필요하지 않아서 잠시 봉인해두는 게 어떨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음... 저도 생각 많이 해봤는데요. 솔직히 말하면 이런 능력이 저에게 생겨서 신기하고 놀랍고 또 좋기도 해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요. 능력을 꽁꽁 숨겨두는 일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아마도 저는 일상생활에서 염력을 사용하려 들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무슨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올여름까진 능력을 봉인해두고 있는 거로요.”

“음, 여름까지요?”

“지금 학생이라고 하셨죠?”

“네. 대학원생. 학비와 생활비에 보태려고 학교 다니면서 간단한 일도 하고 있었는데요. 요번에 여기 오는 바람에 일을 나가지 못했네요.”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선 제가 보상하겠습니다. 제가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드리겠습니다. 한국 돈으로 한 달에 500만 원 정도를 올해까지 해드릴게요. 대신 여름 즈음, 방학 기간에 한국으로 한 번 오시죠. 염력과 은신 능력은 여름까지 봉인해두겠습니다.”

“정말 그런 큰돈을 저에게 지원해주시는 겁니까?”

“저에게 협조를 최대한 해주시는 조건으로 지원금을 드리는 거니다.”

“네네, 물론입니다. 고수가 뭔가 요청한다면, 그건 우리 모두의 일을 위한 일이니 돈이 아니더라도 최대한 협조를 해야죠. 암튼 저로선 감사할 뿐입니다.”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저 때문에 하던 일도 못 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 제가 보상을 하는 게 맞죠. 참, 갈아입을 옷도 제대로 못 챙겼을 텐데. 괜찮다면 제 옷과 속옷 줄게요. 속옷은 얼마 전에 잔뜩 사다 놔서 한 번도 입지 않은 게 있거든요.”

“감사합니다.”

“그 외에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손님방에 딸린 욕실에 칫솔과 세안제, 면도기, 타월까지 있어서 부족한 게 없어요. 마치 고급 호텔에 온 기분입니다. 고수는 대단한 부자인가 봅니다. 아내 분도 미인이시더군요. 영어를 정말 잘 하시던데.”

루나가 미인이긴 하다.

루나의 언니인 한나도 그렇고.

그래서 수호도 잘 생긴 거겠지.

새삼 흡족한 기분이 드는군.

“아내는 쿼터 혼혈인데다 미국에서 산 적도 있어서 영어를 잘할 수밖에 없어요.”

“오, 그렇군요.”

“그럼 방에서 쉬셔도 됩니다. 정원을 산책하셔도 좋고. 적적하시면 서재에서 책을 가져가셔도 좋아요. 베이징행 비행기는 제가 최대한 빨리 예약해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위는 다행하게도 소지한 핸드폰에 여권이 저장되어 있었다.

덕분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일은 어렵지 않다.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곧바로 예약해주고 옷과 책을 챙겨주자,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어쨌거나 다시 내 삶은 일상으로 돌아온 듯했다.

하지만 아포칼립스의 원흉을 제거하지 못한 이상.

내게 평화로운 일상이 있다고 해도 경계의 고삐를 조금도 느슨하게 할 수는 없다.

나는 진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 신호가 간 후에 그가 전화를 받았다.

<고수, 바쁜 일은 다 끝났냐?>

“어느 정도. 네가 전에 S 그룹하고 G 건설 회사에서 광고가 들어왔다고 했었지? 그거 어떻게 되었어?”

<지금 협의 중이긴 해.>

“그림만 제공하는 거로?”

<응. 네가 얼굴 나오는 거를 꺼리고 바쁘다고 하니까.>

“진구야, 나 생각이 바뀌었어. 그림만 제공하는 거로 광고 제의 수락할까 했는데. 그냥 직접 광고 모델로 나서도 괜찮을 듯해. 물론 거기서 요청할 경우 한해서.”

<갑자기 왜 생각이 바뀌었냐? 설마 얼굴도 드러내는 건 아니지?>

“굳이 애써 드러낼 건 아니고. 그렇다고 애써 감출 것도 아니라는 거지. 이전처럼 가면은 쓰겠지만, 촬영 스탭들에겐 가리진 않으려고.”

<오! 그사이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는 거구나? 말하자면 서서히 네 모습을 드러내겠다는 거냐?>

“글쎄다. 암튼 그렇게 광고 협의 부탁할게.”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통화를 끝냈다.

* * *

다시 며칠이 지나갔다.

어느새 1월도 훌쩍 지나가고 2월이 되었다.

그사이, 장위가 베이징으로 떠나고 강민철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시린 겨울도 어느덧 막바지.

조금 있으면 올차드 저택의 정원에도 꽃이 피고 초록빛으로 정원이 화사해질 터다.

어느 날 저녁, 강민철이 내 저택을 방문했다.

그는 주차장에서 나와 저택의 정원을 가로질러 걸으며 연신 감탄했다.

“화가님, 집이 대단히 멋지군요. 경기도에 이런 저택이 건축되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작년 12월 이전에 완공되었습니다. 저 곳이 가족이 거처하는 본관이고요. 저기가 미라클 쉘터스 건물입니다. 조만간 미라클 쉘터스 한국지부는 본사에서 독립할 듯해요.”

“그렇군요.”

나는 강민철을 데리고 미라클 쉘터스 건물의 유하준 개인 연구실로 향했다.

거기서 함께 보기로 했던 것이다.

잠시 후, 연구실에 유하준, 정테이, 강민철, 그리고 내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모인 이들에게 지금 상황에 관해 정보를 공유했다.

그리고 아포칼립스 원흉을 어떻게 추적할지 논의했다.

“그, 아포칼립스의 원흉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걸까요? 고수 씨에게 당해서 목에 큰 치명상을 입었다면서요.”

“아쉽게도 그는 건재하고 있을 겁니다. 붉은 유성이 일시에 사라지긴 했어도 11월 즈음에 일시에 멸망의 별이 나타난다고 하니 말입니다.”

정테이는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가 내게 입을 열었다.

“11월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추적해서 그를 잡기는 어려운 것 같으니. 덫을 놓고 유인하는 방법을 쓰면 어떨까요?”

“덫을 놓는다고요?”

“네, 짐승을 사냥하듯 그렇게요.”

강민철이 말을 꺼냈다.

“화가님, 이러면 어떨까요? 화가님의 인기와 명성을 이용해서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겁니다.”

“어떻게요?”

“이를테면 애플 수가 크게 아파서 의식불명이 되었다고 하든지 해서 원흉의 귀에도 들어가게 하는 거죠.”

“그런 게 먹힐까요?”

“원흉은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고 적대하는 가장 강력한 적이 화가님이라고 여길 겁니다. 어떻게든 사실처럼 꾸며서 모두 화가님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원흉도 한 번은 속지 않을까요?

거기다 원흉은 화가님만 없으면 이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될 거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 어떻게든 화가님을 제거하고 싶어할 겁니다. 덫에 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정테이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래도 걱정이 되긴 하네요. 괜찮을까요? 많이 위험할 거라서요. 설령 원흉을 유인해낸다 하더라도 그를 제거하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그자는 초월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서요.”

나는 한동안 묵묵히 있다가 말을 꺼냈다.

“위험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 테이 씨 말대로 제가 미끼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그자를 잡을 방도가 저에게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나저나 그림을 실물 전환을 해서 멸망의 별과 원흉을 제거할 수 있다는 건. 몇 번을 들어도 참 신기하네요. 근데 그 존재도 이런 능력을 알고 있는 건가요?”

테이와 유하준, 강민철에게 내 능력과 미래 상황에 관해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상태다.

아포칼립스를 막는 일에 있어서 그들의 도움도 때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 능력만큼은 그들은 알지 못한다.

“네. 원흉도 그림을 실물 전환하는 능력을 알고 있습니다. 몇 번 직접 당했으니 모를 수가 없겠죠. 어쨌든 그를 상대할 방법은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지금 드는 생각은, 일단 애플 수로서 대중의 관심을 좀 더 저에게 집중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거짓 소문도 효과적으로 퍼뜨릴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위험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방도를 신중히 고민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원흉을 맞닥뜨렸을 때, 놓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끝낼 방도를 확실하게 마련해야죠.”

“네.”

“그리고 미래의 수호가 저에게 최초 능력자에 관한 정보를 주었습니다.”

“최초 능력자요?”

유하준이 묻자 나는 모여있는 이들에게 최초 능력자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중국의 최초 능력자는 두 명입니다. 한반도는 저 한 사람이고요. 일본에도 한 사람입니다. 이제까지 제가 확인한 최초 능력자는 중국의 염력 능력자와 노르웨이의 역사학 능력자입니다.”

“최초 능력자라니. 흥미롭네요. 최초 능력자들은 대체로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어요?”

“수호가 보내온 최초 능력자들의 프로필을 보면요. 그들은 주로 각 나라의 수도에 거주하거나 가장 큰 도시에 머물고 있더군요. 나이는 1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 이들 중에서 일부는 능력에 관한 정보가 있지만 대부분 어떤 능력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강민철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음, 이들을 만나서 능력을 확인해보면 좋을 텐데. 일일이 다 만나보기가 쉽지 않으니.”

그러다가 불현듯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나에게 의견을 꺼내놓았다.

“이러면 어떨까요? 최초 능력자들을 이곳 한국으로 유인하는 거죠. 만일 미국에 최초 능력자가 두 명이고 그들이 학생이라면 장학금 지원 같은 거로 초청해서 그들이 한국으로 오게 만드는 겁니다. 그때 화가님이 그들의 능력을 확인해보면 되지 않을까요? 물론, 돈이 좀 들긴 하겠지만요.”

테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요. 강 회장님이 IT 사업을 하시니 최초 능력자의 직업이 그쪽 관련이라면 회장님의 위치를 이용해도 좋고요. 고수 씨의 재단 이름으로 최초 능력자들에게 지원을 해도 되고요.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이라도 도움이 될 능력자를 만날 수 있고, 원흉을 막는 일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괜찮은 의견인 듯했다.

최초 능력자들의 능력을 살펴보고서 그들 중에서 전력에 도움이 되는 이가 있다면, 능력을 일깨울 수도 있다.

그러자면, 내 능력의 스탯을 더 올려야겠다만.

일단, 2052년의 멸망의 별을 더 파괴해서 보상을 얻어야 할 듯하다.

“그럼 테이 씨가 이 일을 맡아서 추진해줄 수 있어요? 제가 최초 능력자들의 프로필 정보를 테이 씨에게 줄게요.”

“네. 그러죠.”

* * *

다음날 나는 아바타 접속을 해서 2052년의 수호를 만났다.

아바타 기계가 작동해서 내 모든 감각이 그곳의 풍경을 인지하기 시작하자, 내 눈에 비행선 지휘 통제실 내부가 보였다.

그곳에 수호는 강민철과 함께 있었다.

오늘 수호는 장위와 함께 중국에서 연합 공격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고 했었다.

“오셨군요, 화가님.”

“네.”

오늘 우리는 중국에 있는 적의 영역을 정복하고 멸망의 별 한 개를 파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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