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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15화 (115/153)

아포칼립스가 아닌 평화도 대비해야 한다 2

수호는 내게 답했다.

“네. 2023년 11월까지 아무런 기미가 없다가 그 후에 전 세계에 동시에 멸망의 별들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멸망의 별은 지구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회색 폭풍을 일으켜 모든 살아있는 것을 죽이거나 기괴한 변이를 일으키는 거죠.”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아포칼립스 원흉에 대한 흔적은? 혹시, 2023년 1월 즈음에 원흉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알 수 있어?”

“아포칼립스 원흉에 관한 정보는 아쉽게도 없습니다.”

“그렇군.”

나는 복잡해진 얼굴을 했다.

전 세계의 미래에 이런 식으로 변화를 불러오게 되다니.

“한반도의 상황은 다행히 크게 변화가 없습니다. 이전보다 인구수가 조금 줄긴 했지만 크게 줄진 않았습니다. 한반도에 나타났던 멸망의 별도 아버지가 파괴했었고요.”

“그래.”

“멸망의 별은 이전처럼 모든 나라에 고르게 나타났습니다. 다만 아포칼립스가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크나큰 혼란이 곳곳에 일었습니다.”

수호는 우리에게 한반도와 중국의 모습을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한반도는 간혹 푸른 하늘도 보이고 초록빛 산과 들도 보였으나.

중국은 암울하고 끔찍하며 비참한 풍경이 영상으로 보였다.

영상을 보던 장위는 꽤 충격을 받았는지 고개를 돌려버렸다.

“더는 못 보겠습니다. 저 미래가 이제 곧 나타날 비극이라는 사실이 믿기 힘들고 두렵습니다.”

그러자 수호는 영상을 끄고 장위에게 말했다.

AI 2050이 수호의 말을 줄곧 장위에게 통역해주고 있었다.

“우리가 장위에게 이 모든 걸 보여주는 이유는 장위에게 나타난 능력에 대해 책임감을 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장위는 중국에서 많은 생존자를 이끌게 될 사람입니다. 장위 덕분에 살게 된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은 두렵고 혼란스럽겠지만 당신은 굳건한 사람이니, 그 사실을 믿으십시오. 장위 덕분에 살게 된 생존자가 미래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또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장위는 울 것 같은 어조로 물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오늘 장위가 본 모든 것은 미래에 나타나게 않게 될 거라는 점입니다.”

장위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은지 되물었다.

“네?”

“오늘 장위가 본 것은 오지 않을 미래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아포칼립스를 막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아버지와 나는 2021년부터 많은 일을 해왔고 준비를 했었습니다.”

“아.”

“오늘 우리가 모인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포칼립스는 오지 않을 겁니다. 2052년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겪었던 그 모든 일.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겪었던 숱한 비극과 불행도. 우리에겐 이미 나타난 일이지만 결국 나타나지 않게 될 일이라고 장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장위는 마치 홀린 듯한 표정으로 수호의 말을 들었다.

수호에겐 스탯 수치가 꽤 높은 리더 통솔력이 있었던 터라, 그 누구든 쉽게 수호의 말이나 명령에 이끌리곤 했다.

수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분명 아포칼립스는 오지 않게 될 일이지만, 우리는 아포칼립스를 막기 위해 분투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아포칼립스를 대비하는 여러 준비도 그만둘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포칼립스는 오지 않을 것이기에. 평화로운 세상에서의 삶도 대비도 해야 합니다.”

장위는 시선을 약간 떨구며 조용히 말을 듣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아까보다 혼란스러움이 잦아든 것처럼 보였다.

뭔가 그의 내면에서 정리된 게 있는 모양이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내게 능력이 주어진 이상 내겐 책임이 있다는 것도 이해했습니다. 불행과 비극이 다가오고 있으니 그것을 안 이상, 나는 아포칼립스를 대비해야 하고, 동시에 평화로운 삶도 대비해야 한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장위는 그렇게 말하다가 흐릿하게 웃었다.

“이거, 그러잖아도 만만치 않은 삶이었는데. 남들보다 두 배는 치열하게 살아야겠네요.”

“우리는 장위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염력과 은신 능력은 큰 능력인 탓에, 우리는 장위를 줄곧 지켜볼 생각입니다. 만일 능력을 그릇 사용하게 되면 그 능력은 즉시 거두어질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장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같은 대화를 한 후에도, 우리는 한동안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수호와 나는 쉘터 지휘실을 나와 잠시 복도를 거닐었다.

아까 수호가 장위에게 했던 말이 마음에 남았던 터라 그에게 이런 말을 꺼냈다.

“수호야, 우리가 아포칼립스를 막게 되어서 지금의 네 삶이 변하게 된다면 말이야.”

“네.”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아? 그런 생각해본 적 있어?”

“그러고 보니 정작 저 자신은 그런 것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군요.”

“만일 내가 아포칼립스 원흉을 제거하게 된다면, 아포칼립스는 오지 않게 될 거고.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던 최초 능력자의 각성도 없게 될 거라고 여겨져.”

“네.”

“그러면 너와 내게 있던 특별한 능력도 사라지겠지.”

“그럴 테죠.”

“얼마 전에 신생아인 너에게 능력을 일깨워준 적이 있었거든. 너에게 나타났던 능력은 리더 통솔 능력이었어. 원래 특이 능력이란 게 재능에 따라 나타나는 거라서, 굳이 각성이 아니더라도 너에겐 리더로서 재능이 있다는 거지.”

“......”

“넌 어떤 상황이든 어떤 곳이든, 머문 그곳에서 사람들의 중심에 서게 될 거야.”

“언젠가 말씀드린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어릴 때부터 내내 평범함을 원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가장 원하는 삶은 평범한 삶입니다.”

나는 옅게 미소지었다.

“그래. 아주 어릴 적부터 아포칼립스 세상을 살았던 너였으니. 평범한 삶을 꿈꾸는 게 당연해.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삶은 평범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일지 모르겠다.”

수호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말을 꺼냈다.

“아버지를 만남으로써 제 삶은 조금 변화하긴 했지만. 저는 바뀌기 전의 제 삶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과거가 뒤틀려서 현재가 계속 바뀌고 제 기억이 달라지기도 해서, 저는 AI 준의 도움으로 기록을 해두고 있습니다.”

“그래?”

“제 과거의 시간이 달라지기 전, 어릴 적 저에겐 이런 기억이 있었습니다. 2026년, 아버지께선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호야, 내가 죽음을 선택한 건, 너와 모든 사람의 미래를 위해서야. 당장 너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지금 내가 이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어. 당장은 슬픔을 모면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앞날에 희망이 없게 되는 거야.”

“......”

“어머니를 참혹하게 잃고 연이어 아버지를 잃어야 했던, 이전의 제 기억은...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존경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꺼내놓지 못했던 말 중 하나다.

나는 말 없이 그의 말을 들었다.

“그 탓에 저는 성장하며 철이 들면서 결심한 게 있었습니다.”

“그게 뭔데?”

“‘고수’라는 이름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한다고?”

“아마도 저는 우리 가족의 행복까지 희생해가며 죽음을 선택한 아버지였는데도, 아무도 알지 못하며 기억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저는 억울하고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수호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응시했다.

“2025년의 어느 날, 아버지는 어머니와 저보다 사람들을 먼저 구하셨습니다.”

“......”

“생존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쉘터로 받아들였던 거지요. 하지만 아버지가 받아들인 생존자들은 괴수들을 몰고 왔던 탓에 어머니가 당하셨습니다. 당시, 쉘터는 그저 창고 건물일 뿐이라서 그다지 안전하지 않았던 거죠.”

“그랬었구나.”

나는 시선을 조금 떨구었다.

“사람들을 구하려 한 덕분에 어머니가 괴수들에게 참혹하게 당했었는데. 어머니는 나를 살리려고 꼭 끌어안아 괴수들의 사나운 공격이 닿지 않게 하기까지 하셨었는데. 아버지 덕분에 살게 된 사람들은 아버지가 했던 일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어렸던 저는 당시 한 토막의 기억으로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괴수들에게 물어뜯겨 살점이 떨어져 가던 중에도 어머니는 나를 끌어안아 보호하며 감추었다는 것을. 그 당시의 자세한 상황은 이후에 나를 키웠었던 분에게 들었었습니다.”

수호는 오래도록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내게 하고 있다.

이제는 일어나지 않게 된 일이긴 해도.

그 이야기를 듣기가 힘들긴 해도.

나는 귀담아 수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에 아버지가 나와 모든 사람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말하며, 생명을 포기하는 선택을 했어도.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고수’라는 그 이름을 알지 못했고, 알았던 사람도 쉽게 잊었습니다.

제가 성장한 후에는, 이제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저뿐이더군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고수’라는 이름을 모든 사람에게 기억되게 할 거라고.”

생각해보면, 수호는 내 그림을 실물 전환할 때마다 매번 ‘고수’라는 이름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곤 했었던 것 같다.

나는 무겁게 입을 뗐다.

“단순히 코인을 얻기 위해 명성이 필요한 탓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마음도 있었구나.”

“물론 코인을 얻기 위함이었지만. 코인이 아니었더라도, 저는 여전히 ‘고수’라는 이름과 ‘애플 수’라는 이름을 사람들이 기억하길 원했을 겁니다.”

“그래.”

“비극의 가장 밑바닥이라고 여겨졌던 어릴 적 그 기억은, 이제 제 삶에는 없습니다. 그 삶이 여전히 제게 남아 있다 하더라도, 이젠 아버지를 원망하던 마음은 없습니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경하니까요.”

다 자란 아들에게서 존경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이 울컥하면서도 어색했다.

수호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니저러니해도 나는 수호와 루나에게 미안할 뿐이지 않던가.

내 나이 서른.

그러해도, 동갑내기 아들과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2021년 이후, 아버지의 이름을 감추고 애플 수라는 화명이 드러나게 했던 이유. 언젠가 나타날 아포칼립스 원흉으로부터 안전하길 바라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2023년의 세상에 ‘고수’라는 이름을 드러내도 좋습니다. 애플 수가 고수라는 것을 이젠 밝혀도 좋은 것입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지금 상황으로선 11월 전까지 아포칼립스 원흉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선 그 시간 동안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아포칼립스를 막기 위해 원흉을 계속 추적하면서, 네 말대로 평화에도 대비해야지. 만일 내 능력이 사라지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그림도 좀 그려둘 거야.”

그러자 수호는 미미하게 미소를 보였다.

미소를 띤 그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웃으면 이렇듯 보기 좋을 것을.

이 녀석은 늘 딱딱하고 진중하기만 하다.

좀 더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그렇군요. 그럼 많이 그려두십시오. 저는 이왕이면 부자 아버지가 좋습니다.”

생각지 못하게 수호가 농담 같은 말을 한다.

순간, 나는 잘못 들었나 했다.

부자 아버지가 좋다니.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래.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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