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12화 (112/153)

멸망이 두려워하는 힘

내 눈앞에 하얀 섬광이 번쩍하더니 ‘시간의 문’ 능력이 발현되었다.

이내 이 세계의 시간이 멈추어버렸다.

모든 것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공허한 고요가 임했다.

소리와 물질의 움직임이 일시에 멈추었다.

내 앞에 보이는 3D 디스플레이의 화면이 멈추었고.

침실을 어지러이 날던 드론도 움직임이 그대로 멎었다.

시간이 정지했을 때의 순간은 몇 번을 경험해봐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이내 시간은 거꾸로 거슬러 흐르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거슬러 흐르다가 점차 빠르게 시간이 되감아졌다.

마치 영상이 되감기가 되는 것처럼 내 시야의 풍경이 빠르게 흘러갔다.

너무 빨라서 어지러울 지경.

6시간 전으로 되돌아가자, 시간의 움직임이 멈췄다.

시간 정지 상태가 1초 정도 유지되었다가 다시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8시.

내가 묵는 스위트룸 거실에 강민철과 장위가 앉아 있다.

강민철은 장위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있다.

나는 이때 붉은 유성 그림을 그리려고 했을 것이다.

아마 두 시간 동안 집중해서 그림 작업을 했을 터.

아까는 장위의 능력도 미처 일깨우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 시간으로 또 한 번 되돌아온 나는 붉은 유성을 그리지 않을 생각이다.

지금 급한 일은 붉은 유성을 파괴하는 일이 아니다.

아포칼립스 원흉, 그를 잡는 일이 먼저다.

나는 장위에게 다가가 ‘재능과 능력의 주인’ 능력을 발현했다.

아마도 그에게 세 가지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어?”

장위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능력 스탯을 확인했다.

『보이지 않는 능력자 1레벨

보이지 않는 힘 : 1

보이지 않는 능력 : 1

용기 : 1

그랜드 코인 : 5794160.』

보이지 않는 능력자? 이름이 이상하다.

현재 장위는 이곳에서 평범한 대학생이다.

그래서 명성도 없고 특출날 것도 없으나, 미래에선 커다란 활약을 했던 터라.

그랜드 코인이 꽤 쌓여 있다.

중국에서 거의 마지막까지 버틴 쉘터의 리더답다.

강민철이 내게 입을 열었다.

“화가님? 방금 혹시?”

그가 묻자 나는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네. 방금 장위의 능력을 일깨웠습니다.”

“네?”

장위는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강민철은 내가 갑자기 장위의 능력부터 각성시킨 것을 의아해하는 눈치다.

“지금 시간이 촉박합니다. 조만간 아포칼립스의 원흉이 서울에 나타날 겁니다.”

“서울이요? 그게 사실입니까?”

“네. 지금은 고민한 틈도 없고 붉은 유성을 파괴한 시간도 없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전세기를 움직일 수 있는지 연락해볼까요?”

“아뇨. 그러기엔 늦었습니다.”

나는 장위에게 시선을 주었다.

“장위. 지금 당장 당신의 능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바로 능력을 일깨웠습니다. 장위가 능력 명칭을 말하면 그것의 수치가 눈앞에 보일 겁니다.”

“음, 제 능력의 명칭이 뭔데요?”

“그건 나중에 일러주죠. 뭐, 금세 알게 되겠지만. 장위의 능력 수치는 제가 올리겠습니다.”

“네? 아, 네.”

“저는 장위의 능력 수치를 최대로 바짝 올릴 겁니다.”

장위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이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제대로 설명해줄 시간이 없다.

나는 장위의 코인을 처음부터 쓰는 것이 아까워서 블랙카드를 사용했다.

블랙카드로 긁어서 능력 수치를 올리는 것이다.

블랙카드의 금액으로 스탯을 한동안 올리다가 다음엔 코인을 사용했다.

지금 장위의 코인은 그냥 코인도 아니고 그랜드 코인이라서, 처음엔 그랜드 코인 ‘1’만으로도 스탯이 여러 차례 올라갔다.

잠시 후, 그의 코인을 전부 소진하자 장위는 제법 강해진 능력 수치를 지니게 되었다.

『염력 능력자 69레벨

염력 : 40

은신 능력 : 36

용기 : 1

그랜드 코인 : 5.』

전체 레벨 면에선, 그가 나보다 높다.

하지만 그는 나처럼 붉은 유성이나 별을 파괴해서 보상을 얻은 적이 없었기에.

나와는 달리 레벨이 높아도 스탯 수치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장위에게 말했다.

“지금 최대로 능력 수치를 올리긴 했는데. 이 정도면 능력과 힘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군요.”

“제 능력이 최대가 되었다고요?”

“네. 음, 먼저 저기 놓인 의자를 조금만 위로 떠올려봐요.”

“의자를 들어요?”

장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직접 들라는 게 아니라 손을 안 대고 의자를 위로 떠올리라는 겁니다.”

“어, 어떻게요?”

“장위에겐 이미 능력이 있으니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저 의자를 위로 천천히 떠오르게 하고 싶다고 원하면 됩니다. 장위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날지 마음속으로 이미지를 그려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장위는 눈을 부릅뜨고 의자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눈으로 힘을 쓰는 건 아닐 텐데.

의자가 덜그덕거리며 움직이자 장위는 화들짝 깜짝 놀라며 염력을 사용하는 걸 멈췄다.

“헉! 방금 의자가 움직였어요!”

그의 능력에는 ‘용기’라는 명칭의 능력도 있건만.

지금의 장위는 소심하기 그지없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의자가 움직이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저 의자를 조금 움직이고 말 것이 아니라 떠오르게 해야 합니다.”

“네, 네.”

장위는 다시 염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의자가 갑자기 위로 솟구쳤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쿵!

요란한 소리가 난다.

여기가 아파트였다면 당장 층간 소음으로 민원이 들어왔을 거다.

“힘을 제어해야죠. 무조건 힘만 쓸 게 아니라 부드럽게 의자를 움직여요.”

“네.”

장위는 긴장해서 식은땀이 나는지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며 의자를 위로 올렸다.

이번에는 의자가 부드럽게 들렸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볍게 들리는군요. 그렇다면 더 무거운 테이블을 들어보죠.”

장위는 자신의 능력을 신기해할 겨를도 없었다.

그는 내 요청에 따라 염력을 테스트했다.

그는 무거운 테이블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음, 좋군요. 그럼 이번엔 저를 위로 1미터 정도 들어 올려서 그대로 떠 있게 하세요. 전 바닥에 앉아 있겠습니다.”

내가 거실 바닥에 양반 다리하고 앉자 장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다치시면 어떡해요?”

“제가 안 다치도록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솔직히 불안하긴 했지만 테스트는 필요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가 내게 집중하자 내 몸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졌다.

그 힘은 이내 나를 들어 올렸다.

내 몸이 금세 둥실 떠올랐다.

처음엔 약간 기우뚱하는 것 같다가 곧바로 중심을 잡았다.

내 몸이 염력에 의해 떠오르는 경험을 해보는 건 기이한 체험이긴 하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흥미로워하고 재미있어했을 텐데.

이를 지켜보던 강민철의 눈이 동그래진 게 보인다.

금방이라도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긴 했어도.

나는 짐짓 담담한 얼굴로 장위에게 말했다.

“그럼 이 상태에서 장위의 몸도 동시에 떠올릴 수 있는지 봅시다.”

“네.”

장위는 진지해진 태도로 자신의 몸을 허공에 띄웠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몸은 허공에 머물러 있다.

신기한 능력이다.

그를 보면 힘들어하거나 하는 기색이 없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다시 요청했다.

“그럼 이 상태를 유지한 채 우리 두 사람의 몸을 숨겨봐요.”

“네?”

“장위에겐 몸을 적으로부터 감추고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한 번 해보겠습니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이내, 내 몸이 반투명하게 변하였다.

완전히 투명해진 것도 아니고 반쯤 투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나는 내심 감탄했다.

와, 대단한 능력인데?

“지금은 밤중이니, 이 정도면 괜찮을 듯하네요. 장위, 지금 이 상태로 능력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어요?”

내가 묻자 장위는 허공에 떠 있는 상태로 곰곰이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보면, 기묘한 풍경이다.

우리를 지켜보는 강민철의 입은 좀처럼 다물어질 줄 몰랐다.

장위는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더니 내게 답했다.

“한계치까지 능력을 사용한다면요, 한 번에 5시간 동안은 유지할 수 있어요.”

그의 대답에, 나는 진해진 미소를 머금었다.

“좋군요. 저 좀 내려주세요.”

“네.”

강민철이 내게 물었다.

“화가님,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말도 안 되는 방법을 사용하는 거긴 하지만, 장위와 나는 두 시간 후에 출발할 겁니다.”

“네?”

“강 회장님께서는 여기 머물러 주십시오. 저희는 내일 아침에 돌아오겠습니다.”

“그자와 맞닥뜨릴 때 방법이 있는 겁니까?”

“네, 있습니다. 우선 강 회장님께선 장위에게 현재 상황에 관해 설명해주십시오. 저는 잠시 그림을 그려야 할 듯합니다. 붉은 유성은 내일 해결하도록 하죠.”

“아, 네. 알겠습니다.”

나는 침실로 들어가 타블렛 디스플레이를 열었다.

조금 전에 사진을 통해 면밀하게 보았던 아포칼립스 원흉.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생명 창조력’ 의 스탯이 꽤 높아진 후로는 잠시 보았던 실물이나 사진도.

그림을 그리려는 목적이라면 얼마든지 완벽하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

나는 아포칼립스 원흉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 * *

건물 자체가 요새처럼 보이는 저택.

잿빛 머리의 청년이 저택으로 접근하자 방어벽에 설치된 방어 시스템이 곧바로 작동했다.

평소에는 숨겨져 있던 방어 무기가 나타나 그를 공격하는 것이다.

치익!

하지만 청년의 몸에 짙은 회색 오라가 나타나자, 그를 공격했던 레이저 빔은 오라에 막혀버렸다.

수차례 레이저 빔 공격이 이어져도 남자의 회색 오라를 뚫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에, 남자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저택의 벽에 다가갔다.

그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그는 저택의 방어 시스템이 가소롭다는 표정이다.

나름 저택을 방비해놓았으나, 이 정도는 그에게 장애가 되지 못한다.

그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이대로 저택 안으로 침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애플 수, 그의 가족을 해할 수 있었다.

잿빛 머리의 남자는 애플 수의 아들을 가장 먼저 제거할 생각이다.

그래야 애플 수의 가장 커다란 힘과 도움이 꺾일 거라고 여겼다.

지금쯤 애플 수는 베이징에 있을 것이다.

제아무리 그림을 실현하는 신묘한 능력을 지닌 그라고 해도.

이제야 침입을 눈치챈 애플 수가 그곳에서 여기까지 단숨에 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설사, 그가 전투기를 뚝딱 만들어서 이곳까지 날아온다고 해도.

그의 아들은 이미 죽은 후일 것이다.

애플 수의 아들을 해하는 데에는, 이제 5분도 걸리지 않을 터.

그때, 누군가가 빠르게 이곳으로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잿빛 머리의 남자는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두 눈동자는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다.

흉터가 남긴 했어도 그의 시력은 거의 회복된 상태.

설마? 애플 수?

그럴 리가 없다.

그가 이곳에 나타났을 리가 없다.

잿빛 머리의 남자는 부정하듯 생각하면서도 가늘게 뜬 눈으로 다가오는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는 눈을 크게 떴다.

다가온 자는 애플 수였다.

그가 입을 열어 말을 걸어왔다.

“네가 무슨 속셈인지 알아. 하지만 어쩌나? 내게 딱 걸렸네.”

잿빛 머리의 남자는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바가 있다.

애플 수와의 만남은 일단 피해야 한다.

도망치려고 몸을 틀려는 순간, 비행기 기장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신비한 능력이 그를 휩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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