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11화 (111/153)

최초 능력자들 3

나는 장위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장위!”

그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오자, 나는 강민철에게 입을 열었다.

“강 회장님께서 중국어가 가능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러자 강민철이 겸연쩍게 대꾸했다.

“중국어가 가능하다기보단 회화 정도만 간신히 되는 수준입니다. 장위가 영어가 된다면 영어로 대화하는 게 서로 편할 듯싶습니다.”

장위가 중국어로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십니까? 장위입니다. 두 분은 고수 씨, 강민철 씨 되십니까?”

우리를 자리에서 일어났고, 강민철이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여기 이 분이 고수 화가님이시고, 저는 강민철입니다. 반갑습니다.”

“아, 네.”

서로 악수를 주고받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장위는 이제 25살 정도 되어 보였다.

인상은 평범했고 턱은 살짝 각이 졌다.

나는 그를 유심히 보다가 '재능과 능력의 주인' 능력으로 그의 능력을 확인해보았다.

확실히, 그에게서 염력이 나타날 것이었다.

하지만 염력 외에도 또다른 능력이 있다.

그것은 은신 능력이었다.

은신 능력은 왜 2052년도에서 정보에 없는 거지?

염력이 공격 능력으로 유용하다면, 은신 능력은 방어에 좋은 능력이다.

강민철이 장위에게 물었다.

“혹시 영어 가능하십니까?”

“유창하진 못하지만, 대화는 가능합니다.”

“잘 되었네요. 그럼 영어로 대화합시다.”

“네.”

영어로 대화한다면 나도 대화에 참여할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장위는 머뭇거리는 태도로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말을 꺼냈다.

“솔직히 여기 오는 일은 주저했었습니다. 지금도 혼란스럽고 믿어도 되는 일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그가 혼란스러운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서툰 영어로 그에게 말했다.

“우선 식사부터 하시죠. 자세한 이야기는 객실로 옮겨서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 * *

우리는 이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위는 불편해 보이는 태도로 소파에 앉은 채 이리저리 눈동자만 굴렸다.

나는 3D 디스플레이를 연 다음, AI 기능을 활성화하여 ‘수’에게 명령을 했다.

“수, 1시간 정도만 타인의 눈에도 화면이 보일 수 있게 해줘.”

<네, 알겠습니다.>

“저택에는 별다른 일 없지?”

<네, 저택은 별다른 이상이 없습니다.>

이윽고 디스플레이 바탕색이 바뀌자, 강민철과 장위의 눈에도 화면이 보이는지 그들의 표정이 변했다.

장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 이게 무엇입니까?”

“미래형 3D 디스플레이입니다.”

나는 수호에게서 받아둔 영상 파일 하나를 열었다.

그 영상은 수호가 2052년도의 장위에게서 받아낸 영상이었다.

파괴된 도시 풍경이 먼 곳에서 촬영되었다.

저 멀리 공중 괴수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괴수의 포효 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려온다.

장위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그 영상을 바라보았다.

강민철은 유창한 영어로 장위에게 설명했다.

“이것은 영화도 아니고, 실제 풍경을 촬영한 영상입니다. 이곳은 2052년의 상황입니다. 이 영상을 보낸 건, 다름 아닌 2052년의 ‘장위’입니다.”

장위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2052년의 저라고요?”

“네.”

강민철은 장위에게 영상으로 보이는 내용에 관해 한동안 말해주었다.

2023년에 나타나는 아포칼립스로 인해 2052년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아포칼립스가 중국에서 시작된다는 것도 일러주었다.

강민철도 아포칼립스와 미래 상황에 관해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번에 동행하는 동안,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었고.

내가 아는 정보를 꽤 말해주었던 터였다.

장위는 강민철이 말한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이 버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영상에 나이가 들어 보이는 장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늙고 초췌한 몰골로 호소했다.

“현재 우리 쉘터는 아포칼립스 이후 가장 위험한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중국에 남은 쉘터는 우리가 있는 곳까지 모두 세 군데입니다. 어제 강력했던 요새 한군데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어서, 우리 쉘터의 생존자는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만일 우리 쉘터도 무너지게 된다면 중국에 남아 있던 생존자는 전멸하게 될 것이고. 그 여파는 한반도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도 이제 위협받게 되는 것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우리 쉘터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합니다.”

장위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꽤 충격을 받은 듯했다.

“저 사람이 저라고요? 믿기가 힘듭니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서툰 영어로 말했다.

“장위. 2052년도에서 이미 메시지를 받아 알겠지만 우리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벌써 중국은 아포칼립스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저장된 영상 하나를 열었다.

그 영상은 오늘 드론을 통해 촬영한 베이징 상공에 떠 있는 붉은 유성이다.

강민철이 장위에게 말했다.

“지금 보시는 것이 베이징에 나타난 붉은 유성입니다. 조금 전에 찍은 사진이죠. 저 붉은 유성이 진화하여 멸망의 별이 된 순간, 본격적인 멸망 징후가 베이징에 나타나게 될 겁니다.”

“잠시만요.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세요.”

“그럼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저희도 할 일이 있어서요.”

장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잠시 시선을 떨구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니바 안에 들어있던 맥주와 생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혹시 목이 마르시면 마셔요.”

“감사합니다.”

장위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조금 전에 찍었던 붉은 유성의 그림을 빠르게 그렸다.

42배속의 작업 속도.

집중하면 그림 완성에 30분 만에 그려낼 수도 있다.

붉은 유성을 정밀한 사진으로 찍었다면, 즉시 그림으로 그려서 실물 전환을 하는 게 좋다.

왜냐면, 붉은 유성이나 멸망의 별은 시간이 흐르면 실물과 사진의 모습이 달라지는 탓이었다.

두 시간 동안, 4장의 그림을 빠르게 완성한 후에, 거실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그저 어둡기만 한 밤하늘이 보였다.

하늘에 구름이 조금 낀 상태.

‘관측의 눈’을 발현하는 일이 방해를 받을 듯했다.

나는 붉은 유성이 떠 있는 부근에 구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능력 발현을 시도했다.

* * *

그 시각, 인천 공항에 다시 나타난 잿빛 머리칼의 청년.

일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소년이었을 때였다.

하지만 1년 만에 재방문한 그는 이제 소년이 아닌 청년의 모습이다.

그의 나이는 이제 이십 대 후반으로 보였다.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자라나 있어서 그는 머리카락을 묶었다.

두 눈에는 짙은 흉터가 나 있다.

마치 오래전에 치명상을 입었다가 나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흉터를 가리려는 목적인지 선글라스를 꼈다.

그는 캐리어 가방 하나를 끌며 걷다가 뭔가를 감지한 듯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베이징에 떠 있던 유성 하나가 방금 파괴된 것이다.

그는 우뚝 선 채로 미동도 하지 않더니.

순간, 공항 건물과 노면에 미미한 진동이 일었다.

쿠구구-

작은 지진이었다.

공항에 있던 무수한 이들이 동요했다.

갑작스러운 지진에 당황한 것이다.

동요하는 이들 중에 홀로 차분한 태도의 한 남자.

방금 지진의 원인은 바로 그였다.

작은 지진.

그것은 그가 표출한 분노의 감정이었다.

우뚝 멈춰 서 있던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걸음을 옮겼다.

고수가 아포칼립스 원흉이라고 부르던 그.

그의 힘과 능력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그의 외양의 성장과 비례하듯 능력이 날로 커져만 가깄다.

그의 힘은 붉은 유성과도 관련이 있었다.

붉은 유성이 모여든 그곳에서 가까우면 그의 힘도 강력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그 붉은 유성이 나타났다가 파괴될수록, 고수의 능력도 강해져 갔다.

조금 전에도, 베이징의 붉은 유성 하나가 파괴되지 않았던가.

중국으로 거점을 바꾸었음에도, 고수가 중국까지 쫓아와서 붉은 유성을 파괴하니.

그는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동시에 얕은 두려움도 일었다.

처음엔 우습게 여겼던 존재였건만.

날이 갈수록 신경 쓰이고 거슬린다.

그러다 이제는 그의 마음에 두려움마저 일기도 한다.

어째서 애플 수는 이토록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지?

전에 비행기에서 그와 대면해서도 느끼긴 했었지만.

그의 능력은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만이 아닌 것 같다.

사실, 이전부터 그의 계획은 어그러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 역시 미래의 상황을 조금씩 감지하고 있던 차였다.

예지 능력까진 아니어도, 그 역시 미래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그가 더 강해지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이대로는 자칫하면 그가 패배하고 말 것이었다.

먼저, 애플 수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제거한다.

그는 본능적으로 애플 수의 아들을 없애야만 한다고 여기는 중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중국에 모여든 붉은 유성이 몇 개 없어지는 것 정도는 감수할 생각이다.

적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그에게 있던 장기 말 정도는 내어주는 것이다.

만일, 이 일도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면...

다른 수가 없다.

애플 수와 전면 대결하는 수밖에.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공항을 빠져나갔다.

* * *

툭!

새벽 두 시 경에, AI 수가 드론을 조종하여 나를 깨웠다.

나는 눈을 뜨고 방안을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드론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 침대 곁에 활성화해둔 3D 디스플레이에 눈길을 주었다.

수의 메시지가 나타나 있다.

<올차드 저택에 잿빛 머리의 남자가 침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행기에서 고수님을 공격했던 남자와 인상착의가 90% 일치합니다. 저택의 방어 시스템이 작동하여 적을 공격하는 중입니다.>

그 메시지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너무 놀라서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포칼립스 원흉이 내 저택에 나타난 거야?”

<그렇습니다.>

“그가 나타난 건 언제지?”

<2분 전입니다.>

“내 가족들은?”

<아직 잠든 상황입니다. 적이 방어벽을 뚫게 되면 저택 내에서 경보음이 울리고, 가족은 지하벙커로 안내될 겁니다.>

“어쩌면 지하벙커로 피신하는 것도 소용없을지 몰라. 되돌려야겠어.”

<네?>

“그 전에, 원흉의 사진을 정밀하게 찍어서 나에게 보내줘. 지금 당장.”

<가족의 피신은 어떻게 할까요?>

“먼저 원흉의 사진을 찍어.”

<네, 알겠습니다.>

수는 이내 원흉의 정밀한 입체적인 사진을 찍어서 내게 보내왔다.

나는 수가 보낸 사진을 열었다.

3D 디스플레이에 원흉의 사진이 열리자, 그것을 크게 확대했다.

나는 사진을 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외모가 변했군.

더 성장했나?

외양이 달라지면 내가 그림을 그려봤자 소용없을 거로 생각했을 테지.

내가 그림을 그려도 실물과 달라지면 그림이 실현되지 않을 것이니.

서울과 베이징은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이니, 그가 내 집을 침범하여 공격해도 나는 속수무책일 거로 생각했겠지.

하지만 아포칼립스 원흉, 그는 내 능력을 여전히 간과하고 있다.

그가 미처 알지 못하는 능력.

이제 내게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다.

나는 조금 전에, 붉은 유성 두 개를 파괴하는 데 성공했었다.

그 시간은 자정 즈음.

두 개의 붉은 유성을 제거한 덕분에 스탯이 ‘20’ 정도 오른 상태다.

나는 원흉의 외양을 꼼꼼하게 머릿속에 새겼다.

그러고는 시간의 문 능력을 발현했다.

이젠 스탯이 올라서 시간을 6시간 이전으로 되돌릴 수가 있다.

물론, 6시간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내 스탯은 보상을 받기 전으로 돌아갈 터다.

그러해도 6시간 이전으로 돌아갈 만한 가치가 내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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