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능력자들 2
다음 날 아침.
강민철과 나는 호텔을 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호텔을 나오기 전, 나는 ‘관측의 눈 능력을 발현했었다.
어제는 깊은 밤중이라 이 시간엔 다들 잠들었을 시간이라서.
’엠마 요한슨‘이라는 이름의 인물은 위치만 확인해두었었다.
어차피 관측의 눈은 벽면이나 장애물이 있으면 관측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대상이 외부에 나와 있고, 내가 그를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있어야 보기가 용이했다.
나는 몇 번 능력을 시도해본 끝에, ‘오슬로 대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그녀를 찾아냈다.
최초 능력자 중의 한 명인 그녀.
수호에게서 이미 프로필과 인물 사진까지 건네받았던 터라,
강민철의 능력인 ‘관측의 눈’으로서 그녀를 찾아낼 수 있었다.
먼 곳에서 인물을 찾아내서 볼 수 있다는 점이 꽤 신기하다.
나는 ‘관측의 눈’ 능력을 발현한 상태에서 ‘재능과 능력의 주인’ 능력을 행했다.
이 능력을 사용하면, 상대의 능력을 일깨울 때 어떤 능력이 나타나는지.
미리 알 수 있었다.
특히, ‘재능과 능력의 주인’ 능력 스탯이 높을수록, 타인의 능력을 일깨울 수 있는 횟수가 늘어나기도 하지만.
일깨운 그 능력의 진화 형태가 어떻게 나타날지도 대략 알 수 있었다.
음, 엠마 요한슨은 역사 지식에 능력이 나타나는구나.
지식 습득 속도에도 능력이 나타날 거고.
나는 창조력이지만 엠마는 비상한 기억력이 나타날 거다.
일반인들과 달리 최초 능력자는 나처럼 두세 가지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모양.
저 재능 또한 업그레이드가 많이 된다면, 꽤 유용할 테지만.
전투적인 능력도 아니고 당장은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내가 능력을 일깨워줄 기회는 한정되어 있으니.
엠마 요한슨은 제외해야겠다.
거기다 이젠 노르웨이는 위험 지역이 아니다.
잠시 후 강민철과 나는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한 다음, 전세기에 탑승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우리는 기장, 승무원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선생님들께선 괜찮으십니까? 그날 무척 놀라셨을 텐데.”
“저흰 괜찮습니다. 그날 아무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어요.”
“예.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그날 자칫하면 큰일이 벌어졌겠다는 생각에 지금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네.”
“그런데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의아스럽더군요. 그자는 왜 갑자기 두 눈에 상처를 입었을까요?”
그들 눈에는 내가 사용하는 3D 디스플레이가 보이지 않았을 테고.
내가 사용하는 실물 전환 능력도 알지 못하니, 아포칼립스 원흉이 혼자 치명상을 입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는 근처에 선 승무원을 바라보았다.
승무원은 그때의 상황을 해결한 건 ‘나’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는 듯했으나.
그녀의 직감을 설명할 길은 없다.
“그자가 두 눈에 상처를 입은 건, 아마도 그자의 약점 같은 문제였나 봅니다. 어쨌거나 우리로선 다행한 일이죠.”
“네, 다행한 일입니다. 그자는 홀연히 나타나서 홀연히 사라진 데다 다른 피해는 없고. 그자에 관한 건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그 사건은 적당한 선에서 보고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네.”
이윽고, 비행기가 이륙하자 우리는 객실 안에서 잠시나마 쉼을 가졌다.
중국에 도착하려면 또다시 긴 비행을 해야 할 듯하다.
나는 좌석에 앉은 채 수호가 보내주었던 프로필을 바라보았다.
중국에는 최초 능력자가 두 명이 나타난다.
아마도 중국은 땅이 넓은 나라라서 그런가 보다.
한 명은 30대 나이의 여자.
다른 한 명은 ‘장위’라는 이름의 젊은 남자.
특히 장위는 나중에 수호와 협력하는 쉘터의 리더가 된다고 들었다.
내가 알아낼 필요도 없이, 이 남자는 염력 능력자라는 것을 수호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전투 능력자인 셈.
나는 수호에게 톡을 보냈다.
- 고수 : 수호야, 장위라는 인물은 믿을 만할까? 내가 지금 그의 능력을 각성시켜주어도 문제없을까?
염력은 다른 재능에 비해 조금 위험한 능력이다.
아포칼립스가 아닌 평화로운 세상에서 유일한 염력 능력자라면...
그가 그 능력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세상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기다리니 수호가 답을 보내왔다.
- 2050 : 2052년도의 중국은 그자의 능력이 있어야 무너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무수한 생존자들이 살아남을 수가 있어요.
- 2050 : 그자의 능력은 최초 능력자 중에서도 탁월해서, 덕분에 중국에서 가장 큰 쉘터를 구축할 수가 있었습니다.
- 2050 : 하지만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릴 것은, 탁월하고 강력한 그의 염력이라 하더라도. 그자의 능력은 아포칼립스 원흉을 제거하지 못합니다.
- 2050 : 또한 멸망의 별이나 붉은 유성을 파괴하지 못합니다.
- 2050 : 아버지의 능력만이 아포칼립스 원흉을 제거하여 이 상황을 종식할 수 있습니다.
- 고수 : 그래.
- 2050 : 그래도 그자의 능력은 필요하니 그자의 능력을 일깨우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나는 수호와 대화하다가 퍼뜩 깨달아지는 부분이 있었다.
‘재능과 능력의 주인’ 능력을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을 알게 된 것이다.
능력 명칭에 ‘주인’이라는 단어가 붙은 탓일까.
이 능력을 발휘하면, 타인의 능력을 묶어둘 수도 있었다.
타인의 능력을 일깨워주고 회수하고.
그게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말, 말 그대로 모든 능력 그 자체에 주인이 되어, 능력을 다스릴 수가 있게 된 것.
아무리 최초 능력자라 해도, 이 정도까지 능력이 진화할 수 있는 건가?
문득 의구심이 든다.
나라마다 한두 명뿐인 극소수의 최초 능력자.
이들도 나중에는 강력해지지 않을까?
- 고수 : 수호야, 나라마다 최초 능력자가 있다고 했었잖아? 그들도 나처럼 이런 식으로 진화 능력이 나타나는 걸까?
-고수 : 생각해보면 시간을 다루고 타인의 능력을 제어한다는 게 대단하게 여겨져서.
- 2050 : 전 세계에서 나타난 최초 능력자는 기억하기로 300명 정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 2050 : 그중에서 제대로 능력을 키워보지 못하고 죽어버린 자가 70명, 2052년 이전에 전투 도중 사망한 각성자는 64명, 질병이나 수명이 다해서 죽은 자가 72명.
- 2050 : 현재 남아 있는 최초 각성 94명입니다.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쉘터의 리더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 2050 : 하지만 그들 모두가 중국의 ‘장위’만큼 탁월하진 않습니다. 대부분 재능을 근간으로 능력이 발휘되는 거라서 생각만큼 전투에 유용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 고수 : 내가 그림 재능을 근간으로 능력이 나타난 것과 같은 이치겠군. 그림 자체가 전투에 당장 쓸모가 없었던 것처럼.
- 고수 : 하지만 재능 스탯을 업그레이드하니까 나에게 엄청난 초월적인 능력이 나타났는데. 그들도 그러하지 않을까?
- 2050 : 그들과 아버지의 차이점은 명백합니다. 그들의 능력은 아무리 스탯을 올려도 아버지와 같은 초월적인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 2050 : 장위도 아버지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2026년에 아버지가 했던 선택 때문입니다.
내가 했던 선택.
스스로 생명을 불 태워 능력을 증폭했던 그 일을 말하는 거군.
- 2050 : 최초 능력자들은 그와 같이 자신의 생명을 태워서 능력을 한 번에 증폭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 2050 : 그런데 그들 중에 단 한 명도 그러한 선택을 했던 자가 없었습니다.
- 2050 : 그렇기에 아버지가 유일합니다. 아포칼립스, 그리고 멸망의 문을 닫을 수 있는 자는 아버지뿐입니다.
* * *
장위는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었다.
최초 능력자는 대부분 각 나라의 수도에 거주하는 것 같았다.
어느덧 베이징에 이른 강민철과 나.
공항에서 멀지 않은 위치의 호텔에서 짐을 풀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음식을 먹으면서 강민철이 내게 말했다.
“화가님, 생각보다 붉은 유성이 많습니다. 조금 전에 회사와 통화해서 보고를 들어봐도 중국 대기권에 갑작스레 나타난 붉은 유성이 수백 개입니다. 거기다 크기는 노르웨이보다 더 큰 것도 수두룩합니다.”
중국에서 상황을 역전시키겠다는 건가.
입맛이 쓰다.
능력을 사용하려면 에너지가 과하게 필요해서, 지금은 억지로 음식을 삼킬 뿐이다.
“착륙하기 전에 베이징 대기권에 뜬 붉은 유성은 사진으로 촬영해둔 상태니, 오늘 안에 유성 하나를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화가님이 고생이십니다. 전 근처 붉은 유성의 위치를 다 파악해두고. 주변에 조종당하는 물건이나 사람이 있는지, 지속해서 살펴보도록 하죠.”
“네. 그리고 잠시 후에, 장위라는 사람이 호텔로 찾아올 거예요.”
그러자 강민철은 의아한 눈빛을 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알고 이곳을 찾아오는 건가요?”
“2052년의 수호가 장위에게 전송 기계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아.”
“저녁 7시 즈음 호텔에 도착한다고 하더군요.”
“7시라면 이제 곧 도착하겠군요.”
그의 말에 나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다가,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한 젊은 남자에게 눈길을 주었다.
핸드폰에 있는 프로필 사진과 그를 비교해보았다.
“그가 왔군요.”
그는 최초 능력자가 될 ‘장위’였다.
* * *
2052년, 중국의 최대 쉘터라 불리던 이곳.
얼마 전에 이곳에 이상 현상이 나타나더니 생존자가 반토막이 났다.
중국의 상황은 급격하게 변해갔다.
원래 좋지 않았던 이곳이지만 이곳의 하늘은 더욱 핏빛으로 짙어져서, 이젠 햇볕도 제대로 들지 않았다.
이전엔 하늘이 핏빛으로 짙어지는 시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없어졌다.
늘 핏빛 하늘이었다.
적들은 언제든지 쉘터를 공격할 수 있어서 생존자들은 늘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툭하면 회색 폭풍이 거세게 일었고, 항상 짙은 스모그에 휩싸여 있었다.
곳곳에서 자라던 기괴한 식물은 더욱 크게 자라났다.
한때는 거대 도시였던 곳은 괴수가 우글대는 거대 영역으로 변해버렸다.
괴수들은 이전보다 더 수가 불었고 S등급의 괴수도 꽤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지옥 같고 암울해진 그곳.
장위의 쉘터 생존자들은 한순간에 절반 넘게 줄어들었음에도.
그들은 처음부터 줄곧 그들만 살아남았던 것으로 기억할 뿐이었다.
과거가 비틀려 미래가 변하면서 그들의 기억도 변한 까닭이다.
장위는 쉘터의 파수탑 꼭대기에 서서 저 멀리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절망의 빛으로 짙어졌다.
쉘터가 이만큼 버틴 건 그나마 그의 능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젠 얼마 버티지 못한다.
무수한 쉘터와 생존자들이 그러했듯.
그들도 이젠 무너질 터다.
장위는 이곳으로 다가오는 괴수들을 염력으로 적의 머리를 꺾어버렸다.
공중 괴수들이 다가올 때면, 적의 날개를 찢어버렸다.
그런데도 적은 끊임없이 몰려왔다.
한 남자가 다가와 비통한 어조로 보고했다.
“장위! 적의 군대가 몰려옵니다.”
군대.
조금씩 몰려오던 것도 겨우 막고 있는 상황인데.
이제는 적의 군대가 몰려온다고 한다.
장위는 슬픈 눈빛으로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았다.
이젠 못 버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에 그 기회가 주어졌을 때 붙잡은 거였는데.
생명을 불사르는 그 기회.
아주 오래전에, ‘고수’라는 자가 그 기회를 붙들어 자신의 생명을 불살랐다고 했다.
최초 능력자가 생명을 불살라서 능력을 증폭하여 새롭게 각성할 기회는 2026년까지.
그 이후에는 생명을 소진해서 새롭게 각성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최근, 고수의 능력에 관해 언뜻 들었었다.
고수가 남긴 능력으로 인해, 수호가 멸망의 별을 파괴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장위는 절박하게 깨닫는다.
고수가 했던 그 선택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기회였다는 것을.
장위는 옆에 선 자에게 토로하듯 말했다.
“진. 나는 말이다. 그때는 내 능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강하니 지킬 수 있다고 여겼었지.”
“장위.”
“아포칼립스의 세상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렇기에 만족하며 살기도 했었어. 고수라는 자의 선택을 비웃기도 했었다.”
“......”
“생명을 태워서 능력을 증폭해봤자, 강한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은 단 며칠이니까.”
장위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는 눈을 들어 저 멀리 새카맣게 몰려오는 괴수 군대를 바라보았다.
저 군대가 이곳에 이르면, 모두 죽게 될 거다.
30년을 버티고 살아남았었지만, 결국 오늘 모두 죽게 되는 거다.
“단 한 번이라도, 기적이 주어진다면, 우리에게 기회가 준다면... 진, 나는 그 기회를 비웃지 않을 거다. 뭐든 할 거다. 놓치지 않을 거야.”
그러자 진은 죽음을 초연한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장위, 절망의 끝이라 해도 기회는 항상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 이 순간일지라도요. 하지만 기회라는 건 그렇더군요. 매번 다른 형태, 다른 모습입니다. 장위, 기회라는 게 만일 다시 당신을 찾아온다면 이번엔 알아보십시오. 반드시 붙잡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