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08화 (108/153)

파괴되는 붉은 유성 4

북부 노르웨이.

이곳의 겨울은 여느 곳보다 더욱 춥고 길다.

오랜 기간 하얀 눈이 쌓인 산들과 숲.

아름다운 호수.

때때로 볼 수 있는 하늘의 오로라.

추운 날씨 때문에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이어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곳 일부 지역에 회색 스모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세먼지라고만 생각했다.

생각보다 짙은 미세먼지에 의아하기도 여겨졌지만.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러다 사라지겠지, 다들 그렇게만 생각했다.

하지만 스모그는 점차 짙어졌고 범위가 넓어져 갔다.

이후에는 스모그가 나타났던 지역에 식물들이 시들어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추위도 이전보다 극심해졌다.

항간에는 북부 노르웨이의 상공에 기이한 유성이 관측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으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은 그들의 삶에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저 오늘 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북부 어느 작은 마을의 집.

그곳에 단란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올리버가 집안에서 창문 밖을 내다봤다.

스모그가 있는 날은 절대 바깥으로 나가지 말라고 부모님이 말씀하셨지만.

결국, 모자와 마스크, 코트로 단단히 여미고 집 밖으로 나갔다.

뽀득, 뽀득.

쌓인 눈 위로 작은 발자국이 남는다.

올리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

청명한 하늘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회색 스모그가 점차 옅어지는 것이 보였다.

올리버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

올리버는 돌이켜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엄마, 엄마! 스모그가 사라졌어요!”

* * *

그 시각, 핀란드의 어느 산간 지역.

잿빛 머리의 한 청년이 우뚝 선 나무줄기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그곳은 몹시 추워 보였으나 청년은 얇은 옷차림이었고 별로 추운 기색이 아니었다.

그는 상처 입은 두 눈을 감은 채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눈을 감쌌다.

처음으로 입은 치명상에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상관없다.

기다리면 된다.

상처는 회복될 것이었다.

그는 곱씹으며 생각했다.

뭔가 잘못되었다.

조금씩 어그러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건, ‘애플 수’라는 이름을 인식할 즈음부터였다.

이 모든 어그러짐은 그가 가져온 게 틀림없다.

얕잡아본 게 잘못이었던가.

곳곳에서 특이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나타날 거라고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는 한참 후일 거로 예측했었는데.

그의 예상은 처참하게 빗나갔다.

그림을 자기 뜻대로 그린 후에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이라니!

모든 생명체가 아포칼립스와 죽음, 멸망에 대항하듯.

특별한 능력을 지닌 극소수의 인간이 나타날 거라는 건 예측했었지만.

이 정도로 강하고 초월적인 능력이 나타날 거라고도 생각 못 했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눈은 감고 있어도 마치 뭔가를 보는 듯하다.

일이 틀어지고 있다면 그도 이제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차근차근 이 세계를 잠식할 계획이었던 그.

상대가 먼저 앞서 있다면, 그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본래 계획보다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

그는 눈을 감고 고개를 든 채, 그의 별들을 불러들였다.

그것들은 그의 힘을 더 강하게 해줄 것이었다.

이미 그는 첫 번째 거점이 되었을 북부 노르웨이의 별을 하나 잃었다.

애플 수는 노르웨이의 또 다른 별도 파괴하려 할 터.

어차피 지킬 수는 없으니, 그 별은 애플 수에게 내어준다.

이제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선 애플 수를 첫 번째 제거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니 아포칼립스의 시작 거점은 노르웨이가 아닌 ‘중국’이다.

대한민국과 가깝다는 점, 썩 기껍다.

상처 입었던 그의 두 눈.

어느 순간 그 상처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잿빛 머리카락이 빠르게 자라났다.

그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입매가 비틀리며 입꼬리가 섬뜩하게 올라갔다.

* * *

북부 노르웨이의 붉은 유성을 제거하는 것에 성공했던 나.

호텔에서 룸서비스로 식사한 후에 잠시 쉬었다.

그러고는 루나와 잠시 통화하고.

2052년의 수호와도 톡 대화를 했다.

- 고수 : 수호야, 2052년의 세상이 또 변해 있을 거야.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려줄래?

- 2050 : 네, 이곳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상황 정리해서 다시 톡을 드리겠습니다.

- 고수 : 그래.

나는 호텔 침실에서 내 재능 스탯을 확인했다.

붉은 유성 하나가 사라지자, 내 재능 스탯에 보상이 들어왔다.

그랜드 코인이 들어오고, 스탯은 ‘10’ 정도.

붉은 유성이라 그런가 보다.

멸망의 별을 파괴했을 땐 ‘12’정도 스탯이 올라갔었는데.

『창조 능력자 49레벨

시간의 문 : 39

재능과 능력의 주인 : 39

생명 창조력 : 38

그랜드 코인 : 10020.』

나는 강민철의 스탯도 확인했다.

『관측 능력자 41레벨

관측의 눈 : 41

그랜드 코인 : 583.』

붉은 유성을 파괴한 주된 공로자는 나라서, 강민철의 보상은 나에 비해 적다.

그래도 그의 스탯은 ‘3’이 올랐고 그랜드 코인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타블렛 펜을 작동하여 3D 디스플레이를 열었다.

AI 기능을 활성화하여 ‘수’에게 음성 인식으로 말을 걸었다.

“수, 아포칼립스 원흉을 추적하는 일은 어떻게 되었어?”

디스플레이에 수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불새는 고수님이 원흉이라 불리는 자에 의해 소멸되었습니다. 불새는 핀란드까지 그를 추적했었습니다. 아마도 현재 그는 핀란드에서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 저택은 아무 이상 없는 거지?”

<올차드 저택은 현재 별다른 이상이 없습니다.>

그때 강민철이 내 침실의 방문을 노크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내가 답하자 강민철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화가님. 뭔가 이상합니다.”

“뭐가요?”

“다가오는 붉은 유성은 여기 ‘오슬로’뿐이 아닌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연락을 받았었는데요.”

“네.”

“노르웨이 오슬로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붉은 유성이 관측되었답니다.”

“다른 나라라면 어디인 거죠?”

“중국과 대한민국이랍니다. 특히 중국에 붉은 유성이 모여들 듯 한꺼번에 나타난 모양입니다.”

중국과 대한민국에 붉은 유성이 먼저 빠르게 나타나다니.

원래는 유럽이 먼저였는데.

미래가 바뀌고 있다.

혹시, 아포칼립스가 더 앞당겨지는 건 아니겠지.

강민철이 내게 물었다.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여기 오슬로에도 붉은 유성이 가까워지고 있어요. 어떻게 할까요?”

“이왕 여기 왔으니 이곳의 붉은 유성을 제거하고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이제 곧, ‘관측의 눈’ 능력으로 붉은 유성이 보일 테니 말입니다.”

* * *

2052년의 한반도.

이전엔 올차드 저택이었던 건물의 쉘터.

그곳의 2층 회의실에서 수호는 몇몇 인물과 회의 중이었다.

수호의 이마 부근에는 며칠 전에 다쳐서 찢긴 상처가 있다.

쉘터의 주요 인물 13명이 기다란 탁자에 둘러앉았다.

그들 중에는 정테이, 유하준도 있었다.

수호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뗐다.

“이제까지 여러분에게 말하지 못한 사실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그 일을 여러분에게 털어놓고 협조를 구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한 남자가 수호에게 물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저는 이제까지 역사의 흐름을 비트는 일, 과거를 바꿔 좀 더 나아진 현재를 가져오는 일을 해왔었습니다.”

“네?”

회의실에 모인 몇몇 인물이 서로를 보며 웅성거렸다.

“실은 저는 오래전부터 이 일을 계획해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철이 들기 시작할 그 무렵부터 저는 조용히 이 일을 준비해왔었습니다.”

회의실에 모인 이들은 잠잠히 수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젊은 리더인 그가 어릴 때부터 일을 계획해왔던 일이 뭘까? 하는 궁금증이 그들의 얼굴에서 떠오르긴 했어도.

여느 때처럼 수호를 존중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모두 수호를 신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을 아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내 아버지, ‘고수’는 시간을 제어하는 능력을 지니셨습니다. 아버지는 그 능력을 그의 핸드폰에 심어두어, 핸드폰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도록 해두셨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현재에서 과거에 간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믿기지 않는 일이로군요.”

“과거에 간섭하다니.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네,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계획했던 바를 실행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그 계획은, 과거의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었고. 그의 능력을 원래보다 일찍 일깨우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수호의 말이 놀라웠는지 술렁였다.

수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그들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오늘 여러분이 보시는 현재는 어떠합니까?”

“네?”

“오늘 우리가 있는 이곳, 한반도의 평화는 처음부터 줄곧 지켜졌던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회의실에 있던 이들 중에 몇몇 사람의 표정이 변했다.

“혹시, 현재 우리가 누리는 한반도의 평화는 수호가 도중에 역사를 바꾸고, 과거에 간섭하게 되어서 얻어진 거라는 말씀입니까?”

수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은 모두 이전 날의 기억이 있습니다. 단순히 악몽으로만 치부되었던 그것이 시간의 흐름이 비틀리기 전의 기억입니다.”

“악몽이 우리의 기억이었다고요?”

“그것은 그저 흘러간 꿈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현실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수호의 말을 듣던 이들은 경악했다.

그들에겐 악몽으로만 여겼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 악몽은 대다수 일맥상통하거나 일치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 사실은 충분히 기묘했지만.

그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악몽일 뿐이고 현실이 아니니까 다행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악몽이 아니라 한때 현실이었었다고?

“제가 이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꺼내는 이유는... 우리의 미래가 또 한 번 급격히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긍정적인 변화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불리한 변화도 함께 나타나고 있어서, 저는 이제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나은 미래를 가져오는 일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함께 하려고 합니다.”

그때 잠자코 있던 정테이가 입을 열었다.

“저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불행했던 내 이전의 기억을요. 그때 저는 시력을 잃었었고 한쪽 팔을 못 쓰고 있었습니다. 아포칼립스가 된 이후, 오랫동안 폐인처럼 지냈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 기억 속의 나는 매일 하늘에 호소했었습니다. 제발 구해달라고. 살려달라고.”

“......”

“그런데 놀라운 건요. 수호와 고수 씨가 2021년의 과거에서 미래를 비틀었어요. 다가올 불행 한 가지를 막은 덕분에 제 운명과 삶이 바뀌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일은, 저만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도 해당할 겁니다. 한반도 전체가 그렇죠. 죽었을 이가 살게 되고. 불구가 되었을 자가 멀쩡해지고.”

사람들은 조용히 테이의 말을 들었다.

“그렇게 수호와 고수 씨는 숱한 불행을 막고 제거하면서 미래를 바꿔왔었어요. 우리의 악몽. 그건 흉터 같은 거예요. 심각한 병에 걸렸다가 다 나은 흉터. 그러니 이제는 수호와 고수 씨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바꿔나가는 일에요.”

그러자 한 남자가 오른손을 소심하게 들면서 물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동참해야 할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뭔가요?”

이제까지 표정 없이 담담한 얼굴이었던 수호.

그의 얼굴에 옅은 감정 조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의 표정은 한결 편안하고 따뜻해 보였다.

수호는 조용한 어조로 입을 뗐다.

“여러분은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과거에 관여했던 저는 명백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반도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역사 흐름에 변화가 일었습니다. 지금 제가 말하고 있는 도중에도 역사가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과 중국, 한반도에서 말입니다.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시간과 역사의 폭풍우에 처해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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