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되는 붉은 유성 3
내가 정신을 차리자 우리가 탄 전세기는 긴급 착륙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대로 노르웨이까지 향하게 된 것이다.
승무원은 우리에게 기내식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선생님, 아까 정말 감사했습니다. 혹시, 몸이 좋지 않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보통은 손님이라 부르던데.
그녀는 내게 선생님이라 호칭했다.
기내식을 건네는 그녀는 아직도 놀란 게 가라앉지 않았는지,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그녀에게 기내식을 받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저에게 감사를. 전 아까 한 게 없었는데요.”
“아까 선생님이 나타나셔서 기장님도 무사할 수 있었고. 그 후로 그자가 사라졌잖아요.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 죽게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는데. 아까 그자가 사라진 것도 선생님 덕분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요?”
“사실, 우리는 지금도 두려워하고 있어요. 그자가 다시 나타날까 봐서요. 우리가 본 그것의 정체가 뭘까요? 그는 놀랍게도 홀연히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졌어요.”
“......”
“그자는 영화에서나 나오는 그런 초능력자인 걸까요?”
나는 기력이 떨어진 상태라 음식부터 먹었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다시 쓰러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자가 초능력자인지, 인간인지 아니면 다른 존재인지.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게, 그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네. 아까 보셨겠지만 그건 두 눈에 상처를 입고 사라졌어요. 다시 나타나기 힘듭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염려가 섞여 있다.
“그자는 더는 전처럼 사람을 해하지 못할 겁니다.”
아포칼립스 원흉은 두 눈을 상처 입었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회복할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그녀를 안심시키는 내용으로 말했다.
그녀는 조금 안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요. 그는 두 눈을 잃었으니. 노르웨이 공항에 도착하면 선생님이 곧바로 병원으로 가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보다시피 전 다치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은 크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저희 신상이 알려지는 것도 원하지 않고요. 조금 전의 일로 공항에서 시간 낭비하게 되는 것도 원치 않아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기장님과 의논드린 뒤에 두 분 선생님에게 피해가 없도록 최대한 조치하겠습니다.”
승무원이 자리를 뜨자 나는 강민철의 재능 스탯을 확인했다.
『관측 능력자 38레벨
관측의 눈 : 38
코인 : 241850.』
강민철이 올릴 재능은 한 가지뿐이다.
오로지 관측의 눈만 올린 상태라, 그것의 스탯 수치는 꽤 높아져 있다.
감시의 눈이었던 능력 명칭은 이제 관측의 눈으로 바뀌어 있다.
그의 능력도 진화한 탓일 거다.
강민철은 내 옆에서 조용히 물었다.
“화가님, 정말 치료를 받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우선 먹고 쉬면 컨디션이 차차 나아질 것 같아요. 지금 제 상태는 에너지를 생명에 위협을 줄 정도로 끌어다 쓴 거라서 안 좋아졌던 거니까요.”
“조금 전의 일은 어떻게 된 겁니까?”
“아까 그자는 아포칼립스의 원흉입니다.”
그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가 아포칼립스의 원흉이라고요?”
“네. 저도 그자를 직접 본 건 처음입니다. 그자는 장차 전 세계를 아포칼립스로 몰고 가게 될 존재이죠.”
“그는 초능력자 그런 겁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는 우리가 붉은 유성을 파괴할 목적으로 왔다는 걸 알고 있더군요.”
“그래서 우리를 해치려고 나타난 거군요. 그자는 초능력으로 기내에 잠입한 거겠죠? 화가님이나 저나 특별한 능력이 나타난 걸 보면, 아포칼립스 원흉도 특별한 능력이 있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네.”
강민철에게도 기내식이 주어졌으나 그는 식사를 하지 않았다.
그는 수저를 들었다가 도로 놓았다.
“또 나타날까요?”
“나타난다면 회복하고 난 이후겠죠. 그러니 우리는 그 존재가 어디로 도망친 것인지 추적해야 합니다.”
“음.”
“원흉은 그렇다 하더라도, 붉은 유성은 강 회장님의 능력으로 관측할 수 있는 거 확실하죠?”
“네. 물론입니다.”
강민철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내게 말을 꺼냈다.
“화가님, 제 능력의 명칭은 감시의 눈이었잖습니까? 그 능력을 발휘되면 일시적으로 주변에 뭔가를 감지하는 능력이 높아집니다. 그 능력이 진화해서 지금은 관측하는 눈으로 바뀌었죠. 그런 능력인데 아까는...”
“네, 아까는 우리 둘 다 잠들어 있었죠. 능력이 발휘되려면 집중을 해야 할 테니. 그가 접근했어도 알아채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까 제가 깨어서 그 원흉을 목격하고 있었을 때도 저는 그자를 감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육안으로만 그를 볼 수 있을 뿐이었어요.”
“그래요?”
“네. 그자는 내 감지 능력을 압도하는 능력을 지닌 자 같았습니다.”
“흠.”
내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포칼립스 원흉은 감지되지 않는다는 게 아쉽다.
“그, 관측하는 능력은 정확히 어떤 식으로 나타나죠?”
“감시의 눈은 그냥 제 직감이나 주변을 관찰하는 시선이 예민해지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요?”
“관측하는 눈으로 명칭이 바뀐 뒤로는 일시적으로 먼 곳을 볼 수 있습니다. 초능력이나 마찬가지죠.”
“어느 정도 멀리까지 볼 수 있어요?”
“대기권 안까지요. 볼 수 있는 시간은 짧아요.”
“대단하군요.”
“하지만 정밀하게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어렴풋하게 볼 수 있어요.”
내가 강민철과 동행한 이유는 이 부분에 있었다.
그의 능력이 필요했던 것.
그의 활약이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그의 능력 자체가 내게 필요했다.
내 능력 중에서, ‘재능과 능력의 주인’ 능력은...
내가 열어주었던 타인의 재능이나 능력을 회수할 수도 있었지만.
일시적으로 내게로 가져올 수도 있었다.
이건 수호에게는 없는, 내게만 가능한 능력이었다.
‘재능과 능력의 주인’ 능력을 발현해서, 강민철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사용하려면...
강민철이 가까이 있어야 했다.
붉은 유성을 실물 전환하려면 사정거리, 즉 가시권 안으로 붉은 유성에 접근해야 했다.
여기는 2052년도가 아닌 2023년도.
아무래도 개인이 항공기를 타고 붉은 유성에 접근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터.
그렇기에 나는 그와 필히 동행해야 했다.
그래야 그의 관측하는 눈을 사용해서, 지상에서도 붉은 유성을 실물 전환할 수 있을 테니.
나는 기내에 두었던 초소형 드론 두 대를 회수해서 도로 그림으로 되돌렸다.
그때 강민철이 내게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화가님, 괜찮다면 제 것까지 드시겠습니까?”
기내식을 방금 먹어치웠던 나는 겸연쩍게 웃었다.
“그럼 제가 먹겠습니다.”
강민철의 음식까지 입에 넣다가 그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강 회장님, 혹시 이러한 건 감지 가능합니까?”
“어떤...?”
“아포칼립스 원흉이나 멸망의 별은 때로 뭔가를 조종하기도 합니다. 무기나 소형 항공기 같은 것도 조종하기도 하죠.”
강민철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거 무서운 능력이군요.”
“특히 원흉은 사람을 조종합니다. 그런 조종당하는 자가 주변에 있다면, 감지가 가능할까요?”
“네, 감지가 가능해요. 혹시 우리 주변에 그런 자가 있다면 제가 즉각 말씀드리겠습니다.”
* * *
노르웨이의 호텔에 도착하고 조금 있으니 날이 밝아왔다.
우리가 있는 곳은 수도인 ‘오슬로’였다.
현재 노르웨이 북부는 회색 스모그가 꽤 짙게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곳에 직접 가는 건 위험한 셈.
우리가 묵는 호텔 객실은 테라스가 있는 가장 높은 층이었다.
우리는 테라스로 나왔다.
나는 테라스에서 3D 디스플레이를 연 다음, AI 기능을 활성화했다.
그러고는 그려놓은 드론 그림을 열어서 초소형 드론 6대를 실물 전환했다.
강민철은 예리해진 시선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붉은 유성을 보려는 것일 테다.
그는 한동안 하늘을 보다가 들고 있던 태블릿으로 노르웨이 지도를 확대해서 내게 보여주었다.
“화가님, 현재 붉은 유성이 떠 있는 곳은 이 지역입니다.”
나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지역을 바라보다가 ‘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수, 지금 가리킨 지역 보여?”
드론 한 대가 위잉 소리를 내며 태블릿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더니 디스플레이 화면에 수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위치 확인했습니다.>
“드론 한 대는 여기 주변을 정찰하고, 나머지 다섯 대는 지도로 확인한 그곳으로 보내. 거기서 붉은 유성의 사진을 촬영 부탁할게.”
<네, 알겠습니다.>
내가 ‘수’와 대화하는 동안, 강민철은 계속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능력을 사용하며 하늘을 보다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입을 열었다.
“저 노르웨이 수도가 있는 쪽으로 붉은 유성 한 개가 더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요?”
“계속 지켜봐야겠습니다.”
* * *
어느덧 늦은 오후가 지나 노르웨이의 해가 저물어갔다.
북부 노르웨이의 열권에 머물러 있던 붉은 유성.
며칠 전에 이곳 대기권에 와서 자리를 잡았던 그것.
최근 들어 그 크기가 커져만 가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 유성에 기이한 현상이 일기 시작했다.
붉은 유성 주변으로는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것에 접근하는 것도 없는데도.
붉은 유성은 홀로 파괴되어갔다.
쩍-
겉으로 보기에는 암석처럼 보이는 유성이지만.
그것은 다이아몬드보다 더 강했다.
그런데 그것의 표면에 저절로 금이 갔다.
조금 전에 붉은 유성에 접근했던 초소형 드론 5대.
그중에서 4대가 붉은 유성에 의해 조종되고 있었다.
드론에 회색 오라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방금 유성에 금이 간 순간!
회색 오라가 나타났던 4대의 드론 중에서 한 대의 회색 오라가 사라졌다.
그러다 두 번째로 붉은 유성에 변화가 나타났다.
곳곳에 자잘한 금이 갔던 붉은 유성은 이번엔 더 크게 갈라졌다.
금방이라도 조각날 듯하다.
쿠구구-
붉은 유성이 진동을 한다.
그 진동하는 소리가 마치 짐승의 괴성처럼 들리기도 해서, 별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회색 오라가 여전히 있는 3대의 드론 중에서, 이번엔 2대의 드론에서 오라가 사라졌다.
점점 커지며 강력해지던 붉은 유성의 힘이 꺾이고 있다.
쿠구구구-
붉은 유성이 저항하는 듯하다.
그것은 공중에서 부르르 떨더니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우주 멀리에서 지구의 대기권까지 왔을 유성은...
도로 지구에서 멀어지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또 한 차례 붉은 유성에 파괴의 변화를 주는 초월적인 능력이 나타났다.
지구의 대기권에서 벗어나려던 붉은 유성.
결국 유성을 파괴하는 힘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성은 더 크게 파괴되었다가 어느 순간 그것의 재질은 평범한 암석으로 변화했다.
크게 진동하던 것이 순간 그쳤다.
붉은 유성의 힘이 사라진 것이다.
드론에 나타났던 회색 오라도 온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타오르는 푸른 불꽃의 날개를 퍼덕이며 어느새 다가왔던 푸른 불새가 붉은 유성을 불태웠다.
그렇게 아포칼립스의 시작을 알렸던 붉은 유성 하나가 종말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