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의 별 4
수호에게 톡 메시지를 적었다.
- 고수 : 나 역시 고맙다. 네가 별 탈 없이 잘 자라줘서. 이번에도 이렇게 무사해줘서.
- 고수 : 나 때문에 아프기도 했던 날이 많았을 텐데. 아버지라 불러줘서 고맙고. 감사하다고 해줘서 고마워.
내 눈가가 붉어졌다.
- 2050 : 2026년도에 아버지가 자신의 생명을 불사르는 선택을 했을 때 말입니다.
- 2050 : 그날 이후, 아픈 건 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달리 생각됩니다.
- 2050 : 아버지의 마음이 더 아팠을 거고. 또 그때의 아버지 선택은 우리 모두 감사하게 여겨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2050 : 저를 구해줘서 감사하고, 또 그때의 선택도 마음 아프지만 감사드립니다.
수호가 갑자기 달라진 것 같다.
적응이 안 될 정도.
혹시 미래가 변한 것이 수호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나?
아니면, 멸망의 별과 맞닥뜨려서 다쳤던 일이 심경의 변화를 불러일으킨 건가.
- 고수 :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네.
- 고수 : 다쳤던 곳은 괜찮아?
- 2050 : 네, 괜찮습니다.
- 고수 : 조만간 노르웨이로 가서 붉은 유성을 제거할 예정이야. 강민철 회장과 동행하기로 했어.
- 고수 : 혹시 2052년도에 가야 할 일이 있을까 봐. 유 박사님에게 간소한 형태의 아바타 기계를 만들어달라고 했어.
- 2050 : 노르웨이는 아포칼립스의 시작점이 되었던 곳이라 많이 위험할 겁니다.
- 2050 : 혹시 위험하다 싶으면 도중에 그만두더라도 목숨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아포칼립스를 막는 일에 후일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 고수 : 그래. 알아. 이런저런 많은 준비를 해둘 생각이야.
- 2050 : 여전히 이런 얘기는 우습지만. 블랙카드 32레벨은 노르웨이의 붉은 유성 그림으로 하겠습니다.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 고수 : 그래. 블랙카드 레벨. 잠시 잊고 싶었네.
수호가 블랙카드 다음 레벨 이야기를 꺼낸 건, 아마도 1310억 7200만 원이라는 돈을 더 긁게 해주고 싶었던 것일 테다.
하지만 나는 현재 블랙카드 28레벨로 정해졌던 금액도 아직 다 쓰지 못한 터라, 돈은 충분했다.
저택의 서재로 가서 수호가 보낸 이메일을 확인했다.
영상 파일 하나가 온 게 있다.
나는 그 파일을 열었고, 3D 디스플레이를 통해 보았다.
내가 연 영상은 도망친 멸망의 별을 잡는 과정을 촬영한 것이었다.
멸망의 별이 발각된 그곳.
북한 지역을 넘어 만주 지역이다.
초소형 드론으로 어떻게 그곳까지 멸망의 별을 추적했었는지 모르겠다.
영상에선 전투기 50대가 출격한 상황.
전투기 20대는 두세 사람이 직접 타서 조종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무인 전투기였다.
수호는 전투기 중 한 대에 타고 있는 듯했다.
무인 전투기가 선두에 서고, 그 뒤를 이어 사람이 탑승한 전투기가 뒤따랐다.
전투기 형태는 전부 같다.
어느 것이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느 전투기에 수호가 타고 있는지도 분별하기 어려웠다.
멸망의 별은 전투기를 조종하는 능력이 있었기에.
이들의 출격은 다소 위험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부 수호를 따라서 목숨 걸고 출격했던 터다.
멸망의 별 위치를 파악한 수호는 그것이 미처 대항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속도가 빠른 전투기로 한꺼번에 즉시 출격한 모양이었다.
쿠구구구궁-
잠시 후, 영상 속에서 무전기로 보고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전투기 K8호의 1시 방향. 멸망의 별을 발견했습니다!”
“앗! K8호가 조종이 안 됩니다!”
“K12호도 조종할 수가 없습니다!”
“K20호도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모두 조심하...”
전투기 세 대가 금세 멸망의 별에게 조종당하게 되었다.
상황은 급박해졌다.
영상을 통해 그 광경을 보는 내 눈에도 드디어 멸망의 별 모습이 보였다.
다행이랄까.
별의 머리에 나타난 상처는 그대로다.
전에 입은 상처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거다.
수호는 별을 보자마자 곧바로 실물 전환 능력을 사용했는지.
그녀의 머리에 있던 상처가 더 깊어지고 많아졌다.
끼아아아아악!
듣기만 해도 소름 돋는 비명을 지르는 멸망의 별.
그녀는 수호가 탄 전투기 위치를 알아챘는지, 고개를 홱 돌려 붉어진 눈을 번뜩였다.
그녀는 박쥐와 같은 잿빛 날개를 퍼덕이며 수호의 전투기까지 날아들었다.
멸망의 별에게 조종당하던 전투기가 수호의 전투기에 레이저 빔 공격을 가했다.
함께 탑승하고 있던 조종사는 공격을 피하려고 애썼다.
쿵!
멸망의 별이 전투기의 앞부분에 올라탔다.
증오의 빛으로 번들거리는 그녀의 섬뜩한 붉은 눈.
그녀는 조종석 유리창을 내리치기 위해 주먹을 들었다.
하지만 수호는 그녀에게 연달아 실물 전환 능력을 행했다.
수호가 실물 전환 능력을 사용하자, 이번에는 머리에만 있던 상처가 몸통과 양팔에도 나타났다.
마치 암석이 쩍쩍 갈라지듯 그녀의 피부가 여기저기 갈라졌다.
콰광!
수호의 전투기가 다른 전투기의 공격을 받았는지 충격으로 크게 흔들렸다.
조종사가 황급히 외쳤다.
“방어막이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더 공격을 받으면 추락합니다.”
그 와중에도 수호는 실물 전환을 또 시도했는지.
멸망의 별 잿빛 날개가 일부분 찢긴 것으로 변화했다.
끄아아아악!
그녀는 고통스러운지 괴성을 질렀다.
그 괴성은 얼마나 듣기 괴로운지 영상으로 지켜보는 나도 귀를 막게 되었다.
멸망의 별은 중심을 잃고 날개를 파닥거렸다.
무전기를 통해 보고하는 말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전투기를 조종하는 힘이 약해졌습니다! 조금씩 제어가 됩니다.”
조종당하던 전투기 한 대.
금방이라도 추락할 듯 갑자기 위태롭게 빙글빙글 돌다가 가까스로 멈췄다.
수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실물 전환 능력을 사용하는 듯했다.
어느 순간, 멸망의 별의 모습은 날개가 반쯤이 날아간 모습이 되었고.
그것은 결국 아래로 추락했다.
무전기로 보고가 이어졌다.
“추락한 별을 추적하겠습니다!”
“전투기의 조종이 풀렸습니다. 현재 안전합니다.”
그때 AI 2050의 음성도 들려왔다.
“수호님, 조심하십시오. 이 근방 적의 영역에 있던 공중 괴수들이 몰려옵니다.”
그러자 수호가 명령을 하달했다.
“무인 전투기 30대는 다가오는 공중 괴수들을 방어합니다. 나머지는 추락한 멸망의 별을 추적하여 공격하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영상을 촬영하고 있는 건 수호의 전투기인 것 같았다.
영상 속 카메라 시점은 멸망의 별이 추락한 장소로 쏜살같이 향했다.
“멸망의 별을 발견했습니다!”
전투기들의 레이저 빔 공격이 이어졌다.
“적이 도망칩니다!”
날개 잃은 멸망의 별은 두 발로 달아나고 있었다.
마침내 수호의 시야에도 그녀의 모습이 온전히 포착되자, 그는 다시 실물 전환 능력을 사용했다.
내가 그린 멸망의 별 그림.
그 그림은 다소 잔혹했다.
아마도 인간 형태를 한 별이 단계적으로 파괴되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거라서, 잔혹하게 여겨지는 것일 테다.
처음에는 피부가 쩍쩍 갈라지며 상처 입은 모습으로 그렸었고.
그다음엔 날개를 꺾고, 양팔을 꺾었다.
그렇게 별이 파괴되어갈 때마다, 별의 힘은 쇠락할 것이었다.
그 탓에 전투기를 조종하던 힘도 풀린 거다.
멸망의 별에 마지막으로 타격을 가하는 곳은 머리였다.
마지막 그림은 멸망의 별이 동강 나는 모습이었다.
수호는 마침내 내가 그린 마지막 그림까지 실물 전환에 성공했는지.
무전기를 통한 보고들이 이어졌다.
“멸망의 별이 쓰러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움직임이 없습니다.”
인간 형태의 별을 파괴하는 건 처음.
이윽고, 내가 보는 화면에도 쓰러진 멸망의 별이 보였다.
그녀는 목이 잘린 채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마지막 그림은 내가 직접 실물처럼 세밀하게 그렸음에도.
실물로 실현된 모습은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다.
사체는 별의 기운이 다하니, 짙은 회색 입자로 화해 공기 중에 흩어졌다.
2050의 경고 음성이 들려왔다.
“공중 괴수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두 A등급 이상의 괴수들입니다. 무인 전투기 10대가 격추되었습니다.”
수호가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멸망의 별은 파괴되었습니다. 모두 퇴각합니다. 공중 괴수들은 한반도를 넘어오지 못할 겁니다.”
“현재 격추된 전투기는 10대. 인명 피해는 없습니다. 전원 퇴각합니다.”
영상은 거기에서 끝이 났다.
나는 영상 파일을 끄고 서재 의자에 앉은 채로 내 재능 스탯을 확인했다.
멸망의 별을 제거한 것에 대한 보상이 이미 들어와 있다.
이번에도 스탯 ‘12’, 그리고 그랜드 코인.
『창조 능력자 48레벨
시간의 문 : 36
재능과 능력의 주인 : 36
생명 창조력 : 33
그랜드 코인 : 4123265.』
그랜드 코인이 저리 쌓였는데도 다음 업그레이드 비용에 미치지 못한다.
그나저나 창조력 명칭이 달라졌다.
생명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
이렇게 되면 살아있는 생명체를 실물 전환하는 것이 용이해지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젠 노르웨이로 출발하기 전, 본격적인 준비를 해 나가야겠다.
먼저, 내가 부재하는 동안에도 저택이 안전하도록 방비하는 그림을 그려볼까.
손으로 터치해서 타블렛 디스플레이를 크게 확대했다.
내가 그릴 그림은 일전에 그린 적 있던 쉘터의 방어 시스템.
자료 사진이 필요 없을 듯하다.
나는 2023년도의 올차드 저택을 보호할 방어 무기 시스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방어 무기 시스템이 필요 없게 된다면, 도로 그림으로 되돌릴 수 있다.
* * *
수호가 잠든 사이, 루나는 한나와 주방에서 담소를 나누는 듯했다.
나는 2층 침실로 조용히 들어갔다.
아기는 작은 침대 위에서 쌔근쌔근 잠들어 있다.
근처에는 청소 로봇이 아이를 지키는 마냥 머물고 있었다.
‘재능과 능력의 주인’ 스탯이 36이 되어서, 나는 타인에게 또 하나의 재능을 일깨워줄 수 있다.
이번엔 수호의 재능을 일깨울 생각.
능력을 발현하자, 내 시야가 새하얀 섬광을 순간 반짝였다가 눈앞에 수호의 재능 스탯이 보였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리더 통솔자 1레벨
리더 통솔 능력 : 1
그랜드 코인 : +9999999.』
그랜드 코인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다.
하긴, 이 코인이라는 게 현재와 미래까지 연결되어 쌓이곤 하는 것이었으니.
그동안 수호가 했던 활약을 생각하면 당연한 건가.
잠들어 있던 수호는 신생아면서도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는지.
잠에서 깨어 울음을 터뜨리려 했다.
나는 재빨리 아이를 품에 안아 들었다.
부드러운 손길로 아이를 안아 토닥이니 아이는 조금 찡얼대다가 금세 조용해졌다.
작은 입을 오물거리다 아기는 바로 잠들었다.
사랑스럽고 귀엽기 그지없다.
이대로 계속 안고 있고 싶을 정도.
“수호야, 넌 걱정 안 해도 돼. 넌 아포칼립스를 조금도 겪지 않게 될 거야.”
나는 아기를 조심스레 침대에 눕혔다.
아직 신생아이니, 재능을 업그레이드하는 건 나중에 하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