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의 별 3
멸망의 별은 머리에 상처를 입자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어차피 나도 그렇고 비행선의 상황도 그렇고.
멸망의 별을 상대할 여력이 우리에겐 없었다.
이대로 잠시 전투가 끝나게 되었던 건, 차라리 다행한 일.
나는 아바타 접속을 끝내기 전, 침대에 누운 수호를 내려다봤었다.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골절상을 입고 몇 군데 찢겨서 응급처치를 받은 상태.
위험할 정도로 다친 건 아니라고 해서 다행이긴 했다.
그의 의식은 조만간 깨어날 거라고는 하는데.
그래도 크게 다쳐서 의식을 잃은 아들을 본다는 건, 심히 마음 아픈 일이었다.
수호가 루나의 배 속에서 성장하기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부성애도 내 안에서 줄곧 자라나고 있었나 보다.
미래의 수호를 보면 전에는 친구 같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안쓰럽고 마음 아픈 감정이 들곤 했다.
그래서 의식 없는 수호를 내려다보게 되었을 때, 나는 눈물이 났었다.
아바타 접속한 상태라서 몰랐는데, 지금 아바타 접속을 끝내고 나니.
내 눈가에 눈물이 주룩 흘러내려서 알게 되었다.
조금 전, 나는 울었었구나 하고.
평소 눈물을 흘릴 일은 거의 없었던 터라, 내 마음이 이 정도로 말랑말랑해질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나도 이제 ‘아빠’가 되었다는 거겠지.
나는 캡슐에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아바타 접속해 있는 동안 에너지를 너무 써서 몸이 후들거렸다.
근처에 놓인 생수를 들어 마셨다.
조금 나아지는 듯하다.
근처에 떠 있는 3D 디스플레이에 눈길을 주며 입을 열었다.
“2050. 수호가 정신을 차리면 알려줘. 그리고 쉘터와 도시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또한 바로 알려주고.”
그러자 화면에 2050이 적은 문장이 나타났다.
<네, 알겠습니다. 이건 제 의견이지만 도망친 멸망의 별은 당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듯합니다.>
“그래?”
<자신을 해할 만한 능력이 우리 측에 있다고 여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멸망의 별은 모든 것을 회복하고 자신의 전력을 강화한 다음, 나타나려 할 것입니다.>
“그럼 빨리 찾아내서 제거하는 게 좋겠네. 내가 최대한 빨리 멸망의 별 그림을 그려서 보내주도록 할게.”
<네, 알겠습니다.>
나는 조금 쉬는 동안, 옆에 놓인 샌드위치를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저택 본관에 있는 침실로 향했다.
수호가 보고 싶어졌던 것이다.
내가 침실에 이르자, 루나는 아이에게 젖병을 물린 후 품에 안고 있었다.
루나는 나를 보고서 환한 표정으로 반기다가.
내 안색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는지 근심 어린 표정을 했다.
“오빠, 좀 안 좋아 보여요. 괜찮아요?”
“응, 괜찮지 그럼. 나도 수호 안아보자.”
“방금 배불리 먹어서 기분이 좋은가 봐요.”
나는 루나에게서 아이를 받아 품에 안았다.
당연한 거겠지만 아이가 너무 작았다.
새삼 너무 작고 연약한 생명처럼 여겨졌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또 눈물이 나왔다.
이 아이가 아주 어렸던 시절에, 엄마의 죽음을 코앞에서 목격하고 충격으로 4년이나 실어증에 걸렸었다고 했었으니.
이젠 그 불행은 비껴갔다고 해도 가슴이 욱신거렸다.
그 모든 건 전부 내 탓이었고.
그렇게 아팠던 아이가 이번에 또 다쳐서 의식을 잃었다고 생각하니까.
루나 앞에서 눈물을 숨기기가 어려워졌다.
“어? 오빠. 왜 그래요? 정말 무슨 일 있어요?”
아이를 내려다보니 아이는 눈을 깜박이며 얌전히 있다.
아빠, 왜 울어요? 하고 보는 것 같다.
나는 시선을 들어 루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겪은 일, 수호가 겪은 일.
루나도 알 권리가 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어차피 다가오지 않을 불행이고 미래는 바뀔 거로 생각해서 말을 안 했다만.
오늘 같은 날은 그녀에게 털어놓고 싶기도 했다.
“오빠, 무슨 일 있는 거죠?”
미래에선 2026년 이후, 루나는 그 험난하고 무서운 곳에서 수호를 홀로 키워야 했을 테니.
그녀의 고생은 그것으로 족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그녀의 마음을 두렵게 하거나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아니. 피곤해서 잠시 감성적으로 되었나 봐. 수호를 보니까 여러 생각이 들면서 잠깐 울컥했어.”
나는 아이를 그녀에게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늦게까지 그림을 그릴 것 같아. 먼저 자.”
* * *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수호를 물주처럼 여기기도 했던 것 같다.
나에게 블랙카드를 준 이.
능력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
그런 의미에서 그와의 관계가 중요했었다.
아포칼립스가 될 미래를 대비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도.
내게 드는 감정은 막연한 두려움뿐이었다.
아포칼립스를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긴 했어도.
당장은 살 만해진 내 처지가 기꺼웠었고.
얼굴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나와 부모님의 미래를 위해.
다만 그림 작업에 열심을 냈었다.
그런데 지금은.
수호 한 사람 때문에 아포칼립스를 막고자 하는 내 의지에 더욱 불이 붙었다.
노르웨이로 함께 가기로 하기 전, 나는 강민철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었다.
“강 회장님, 조만간 노르웨이로 갈 예정인데 그때 회장님과 동행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쩌면 회장님의 도움이 크게 필요할 듯해서요.”
“음, 제가 1월 중에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미지근한 태도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꺼냈었다.
“강 회장님. 아포칼립스를 막는 일은 모든 이를 위한 일이긴 하지만. 저는 저 자신과 인류를 위해서 이 일을 하기보다, 내 아이를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더군요.”
“얼마 전에 태어난 화가님의 아드님이요?”
“네. 미래에서 내 아들이 아포칼립스 때문에 많은 힘든 일을 겪었다는 걸 아니까. 좀처럼 편히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겠군요.”
“제가 말씀드리지 못한 게 있는데. 미래에서 강 회장님이 저에게 전해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미래의 제가요?”
“강 회장님은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포칼립스 때 10살 난 딸을 잃었었다고. 지금은 강 회장님의 따님이 9살 정도 되었겠네요.”
내 말에 강민철은 충격을 받았는지 낯빛이 변했다.
나는 전송 기계를 통해 미래에서 받은 낡은 사진 한 장을 강민철에게 건넸다.
그 사진은 2023년 가을 즈음에 찍힌 것이었다.
본래 아포칼립스는 2024년도에 올 것이었으나 앞당겨진 상황.
2023년 12월, 본격 아포칼립스에 돌입하게 된다고 들었었다.
이 사진은 아포칼립스 직전에 찍힌 사진인 거다.
강민철은 내가 건넨 사진을 충격 어린 얼굴로 한동안 들여다봤다.
사진을 든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제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네. 그 말을 지금의 강 회장님에게 전해주면 아포칼립스를 막는 일에 필사적으로 될 거라고 했었습니다.”
“아.”
강민철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에게 많은 생각이 오갔던 것 같았다.
그는 한참 후에 고개를 들고 내게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은 많이 복잡해 보였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군요. 생각해보면 아포칼립스가 오면 회사 일도 덧없게 될 일인 것을. 다가올 불행을 막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텐데 말입니다. 내 딸을 잃게 될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그런 대화를 한 후, 강민철은 다음날 내게 연락을 줬었다.
노르웨이에 동행하겠다고.
나는핸드폰을 확인했다.
아직 2050에게서 연락 온 게 없다.
새벽 1시, 서재 안.
2052년도의 일 때문에 내 마음이 평안치 않다.
나는 멸망의 별을 그리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때.
까톡!
까톡!
알림이 울리며 2050에게서 톡 메시지가 왔다.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니.
- 2050 : 조금 전에, 수호님이 기운을 차리셨습니다.
- 2050 : 의사였던 이 박사님에게서 현재 치료받는 중입니다. 골절을 입어서 당분간 거동이 불편하지만 회복될 거라고 합니다.
- 2050 : 아직까진 멸망의 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 고수 : 그래.
- 2050 : 멸망의 별 그림은 어느 정도 작업하셨습니까?
- 고수 : 지금 한 장은 거의 다 그렸어.
- 2050 : 완성하시는 대로 저에게 보내주십시오.
- 고수 : 알았다.
- 2050 : 수호님이 명령하셔서, 저는 초소형 드론 800대를 한반도 전역에 보내서 멸망의 별을 추적하려고 합니다.
- 2050 : 혹여 드론 중 한 대라도 조종하려고 든다면, 제가 즉각 알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 고수 : 그래? 만약 찾아내면 내게 바로 알려줄 수 있지?
- 2050 : 고수님에게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나는 2050과 대화를 끝내고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서재의 책상 위에 쌓아둔 음식에 눈길을 주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그림 작업을 하다 보니 에너지 소모가 많은 탓에.
먹으면서 작업하는 중이다.
우선, 멸망의 별 그림을 두 장 완성한 후에 쪽잠을 자야겠다.
* * *
사흘이 지나도록 2052년도에선 깜깜무소식이었다.
생각해보니 수호가 있는 곳도 2050년에서 어느덧 2052년이 되었구나 싶다.
나는 걱정도 되고 궁금했지만 기다렸다.
수호는 잘 치료받는 중이라 했고, 무엇보다 그를 믿으니 잠자코 기다렸다.
나는 노르웨이에 갈 준비로 바빠졌다.
유하준에게 이야기해서 아바타 기계를 하나 더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었다.
이번에 만들 기계는 좀 더 간소한 형태로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동그래진 눈으로 내게 말했다.
“간소한 형태의 기계를 만들어달라고요? 그것도 며칠 만에요?”
나는 그의 재능 스탯을 확인했다.
『기계 공학자 18레벨
기계 공학 기술 : 18
코인 : 1406097.』
현재 코인이 충분한 상태라서 더 업그레이드가 가능했다.
나는 그의 재능 스탯을 더 올렸다.
『기계 공학자 21레벨
기계 공학 기술 : 21
코인 : 497528.』
그러고는 빙긋 미소짓는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유 박사님은 충분히 제가 요청한 기계를 제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내 말을 들은 그는 문득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어, 방금 이상한 기분이 드는군요. 고수 씨가 그렇게 확신하는 얼굴로 말씀하시니까. 불가능할 것 같은 그 일도 정말 제가 해낼 것만 같은...”
“그야, 박사님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으니까 그렇죠.”
“그건 아닌데. 왜 자신감이 생기지.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원래 자신감을 나타내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요.”
유하준은 재능 스탯이 업그레이드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어도.
재능 숙련도가 달라지는 걸 어렴풋이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럼 제가 노르웨이로 출국할 때까지 부탁합니다. 아마도 밤잠 못 주무시며 일하셔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아도 해야죠. 아포칼립스를 막기 위해 필요한 일이니. 몸이 갈리더라도 해야죠.”
나는 빙긋 웃었다.
“고맙습니다, 박사님.”
자리에서 일어나 연구실을 나오려는데.
까톡!
수호에게서 톡 메시지가 왔다.
나는 저택 본관으로 걸으면서 그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 2050 : 연락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번 일을 해결한 후에 연락 드리고 싶었습니다.
- 고수 : 무슨 일? 멸망의 별 잡는 거 말하는 거야?
- 2050 : 네.
연락 기다리는 동안, 내 마음 애탈 건 생각 안 해봤냐?
왜 혼자서 해결하려고 해?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 2050 : 영상을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한참이나 뜸을 들이기에 다쳤던 곳이 아픈 건가 했다.
- 2050 :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가 보낸 톡 메시지에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섰다.
- 2050 : 서로 있는 시간이 너무 달라서, 같은 나이인 제가 아버지라 호칭하는 게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 2050 : 저에겐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변함없이 그립고 보고 싶었던 아버지입니다.
그가 보낸 메시지는 나를 놀라게 했다.
수호는 이런 메시지를 쉽게 보낼 만한 성격이 되질 못 한다.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건 처음.
그랬었구나.
이런 내가 아버지라고 그리워하기도 했었구나.
나는 또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서 감정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