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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02화 (102/153)

멸망의 별 2

끼이이익-

차 앞 유리 앞에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은 여자.

수호가 그녀를 떨어뜨리려 해도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섬뜩한 미소를 짓더니 오른쪽 주먹을 들어 앞 유리를 깨뜨리려 했다.

수호는 서늘한 투로 말을 내뱉었다.

“금속 유리를 깨려고?”

회색 피부를 지닌 그녀는 비릿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못할 것도 없지. 이렇게 찾아냈는데. 내 형제들을 파괴한 인간!”

수호의 눈매가 예리하게 날이 섰다.

“멸망의 별이로군!”

얼마 전, 도시 지휘부 회의에서 ‘멸망의 별’에 관한 심각한 논의를 한 적이 있었다.

최근 흉측하게 변화를 보이던 멸망의 별들.

수호 역시, 별 표면에 사람 얼굴이 나타났던 것을 목격한 바 있었다.

도시 지휘부 회의에서 멸망의 별에 관해 연구하던 한 남자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었다.

“전부터 제가 말씀드렸었지만, 멸망의 별은 그저 암석이나 금속 덩어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개체입니다. 괴수들을 통제하고 양산하는 아포칼립스의 원흉들이죠! 별들은 지금 위협을 느낀 겁니다. 고 지휘관님이 최근 일본에 있는 별까지 파괴하자, 그 직후부터 한반도 주변 지역의 별들이 변화를 보인 겁니다.”

한반도의 역사 흐름이 바뀐 이후, 그러니까 어렸던 수호가 루나의 손에 의해 성장하게 된 것으로 삶이 바뀌게 되자.

사람들은 수호를 ‘고수호’라 부르고 었었다.

이전엔 수호를 키운 이의 성씨를 따랐지만,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수호의 차에 매달린 멸망의 별이라 불린 여자.

히죽 웃더니 주먹을 내리쳤다.

쾅!

강철보다 강한 금속 유리가 그녀의 주먹에 의해 움푹 파였다.

수호는 계속 운전하면서 다급하게 외쳤다.

“준!”

차량에 설치된 레이저 건이 여자 형상을 한 멸망의 별을 공격했다.

레이저 빔이 그녀의 회색빛 피부에 관통하자, 붉게 물들었다가 금세 흔적없이 사라졌다.

“이딴 거로 나를 공격하겠다고?”

멸망의 별은 주먹을 들어 다시 앞 유리창을 내리쳤다.

쾅!

살벌한 기세다.

곧 앞창이 뚫릴 듯했다.

끼이이익-

수호는 운전하면서 별의 핏빛 눈동자를 쏘아보았다.

“이제 좀 떨어지지?”

수호가 어떤 버튼을 누르자 전투 차량에서 초소형 미사일 2대가 그녀에게 발사되었다.

“큭!”

초소형 미사일이 그녀의 가슴에 명중하자 충격으로 수호의 차에서 굴러떨어졌다.

미사일은 그녀의 몸을 뚫지는 못해도 차에서 떨어지게는 만들 수 있었다.

수호는 엑셀을 밟으며 쉘터와 도시 반대 방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생존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가는 그들이 위험해질 게 뻔했다.

차 내부에 설치된 AI 준의 음성이 들려왔다.

“수호님. 초소형 유도 미사일을 지속해서 발사합니다. 쉘터에서 드론 군대를 불러오겠습니다.”

“드론은 됐어. 저것은 드론도 조종할 거다. 아버지가 그려주셨던 불새 그림을 열어!”

불새는 고수만 다스릴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적의 탑을 파괴하기도 했던 푸른 불꽃뿐이었으니.

멸망의 별도 그러하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적이 비행하여 추격해오고 있습니다. 미사일 공격을 계속하겠습니다.”

멸망의 별 등에 잿빛 날개가 생겨나더니 수호의 차를 단숨에 따라잡았다.

초소형 유도 미사일이 그녀에게 발사되곤 했으나, 미사일에 회색 오라가 나타나더니 그녀를 피해가 버렸다.

수호는 준에게 외쳤다.

“미사일 공격을 멈추는 게 낫겠어!”

미사일 공격은 무의미했다.

수호는 푸른 불새 그림 두 마리를 실물 전환했다.

그러자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는 불새가 달리는 차량 밖에서 생성되었다.

쾅!

멸망의 별은 차량 뒷유리창에 주먹질하다가 불새를 보고서 팔로 후려쳤다.

화르륵!

푸른 불꽃에 피부가 닿자 불길이 화르륵 일어나며 검게 탔다.

수호는 4마리의 불새를 더 실물 전환했다.

하지만 불새를 다스릴 만한 이가 없는 탓에, 두 마리의 불새는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나머지 불새가 멸망의 별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동안.

수호는 멸망의 별을 저지할 방도를 생각해내려 애썼다.

총이나 미사일, 전투 드론으로도 안 된다.

별을 파괴할 방도는 고수의 그림으로 실물 전환하는 것 뿐이기에.

지금은 도무지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이다.

수호는 입술을 짓씹으며 절박해진 심정으로 고수를 생각했다.

이대로 마지막이 되는 걸까.

쾅!

그때 강한 충격이 전해지면서 달리던 차체가 옆으로 뒤집혔다.

그냥 뒤집힌 정도가 아니라 두어 바퀴 옆으로 굴렀다.

그리고 차량에 푸른 불길이 확 일었다.

운전석에 있던 수호는 이마에 피를 흘리며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의식은 갈수록 흐려져 갔다.

AI 준의 다급한 음성이 수호의 귓가에 들려왔다.

“수호님,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고수님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수호는 의식이 남아 있는 동안 무력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과연, 내가 살 수 있을까.

죽음이 문턱까지 이르렀어도 아버지가 나를 구해줄 수 있을까.

* * *

나는 2050의 톡 메시지를 보고서 하마터면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 2050 : 고수님, 수호님이 멸망의 별에게 당하셨습니다.

멸망의 별에게 수호가?

2050에게 메시지를 작성하는 내 손이 떨려왔다.

- 고수 : 수호는 어디에? 아니, 내가 그곳으로 가야겠어. 준비해줘.

- 2050 : 수호님이 탄 차에 불길이 인 상태입니다. 수호님은 의식을 잃었습니다.

- 2050 : 저는 쉘터에서 비행선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나는 미친 듯이 달렸다.

내가 있던 곳은 저택의 1층.

지하벙커까지 이르러 아바타 접속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제법 걸린다.

이러다 수호는 죽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내 재능 스탯 중에서 ‘시간의 문’ 수치는 ‘31’.

나는 이 능력을 발동했다.

시간의 흐름을 멈추게 만든 것이다.

이 능력은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서 한 번 온전히 능력을 사용하면 그날 다시 능력을 재발현하는 게 어려웠었다.

시간이 멈추자, 이곳 세계에서 오로지 나 혼자만 숨을 쉬고 움직이게 되었다.

1층 주방에서 한나가 식사 준비하는 모습이 언뜻 보였다.

그녀는 냄비를 내려놓으면서 멈춘 채로 있다.

1층 본관에서 지하벙커로 가는 길이 그나마 지름길.

그래서 나는 1층 로비에 있는 비밀의 문 앞에 이르러 섰다.

이곳 벽면은 평상시에는 아무것도 없는 벽처럼 보인다.

이곳 너머에 지하벙커로 통하는 길이 있는 것이다.

로비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시간의 문’ 능력을 잠시 풀었다.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수! 로비에서 지하벙커로 통하는 문을 열어.”

그러자 벽으로 위장된 철문이 움직이며 입구가 나타났다.

나는 성큼 안으로 들어섰고, 아바타 기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잠시 후, 아바타 접속을 했다.

내 모든 감각이 이제는 2052년도의 어느 풍경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저만치 푸른색 불길에 약간 시뻘건 불이 섞여 타오르는 차량이 보였다.

2052년도에서도 이 능력이 먹힐지 알 수 없었으나, 곧바로 ‘시간의 문’ 능력을 발현시켰다.

이곳에서의 시간도 흐름이 멈추었다.

다행이다.

이곳에서도 시간 능력이 먹혀서.

아바타 상태에서도 능력이 발현되어서.

나는 불타는 차의 운전석 쪽으로 다가가 수호를 확인했다.

이마에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은 모습이 보인다.

다행히 불길이 아직 수호에게 닿지 않은 상태.

“수호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구해줄게.”

절절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일어섰다.

저만치에 회색 피부의 여자가 서 있다.

저 여자가 멸망의 별?

인간의 형상을 한 멸망의 별이라니!

대체 어디에 있던 별이 인간의 형상으로 변해서 여기까지 온 걸까?

아무튼 여기 한반도는 다시 위험해졌다는 얘기.

이곳에서는 펜을 사용해서 타블렛을 이용할 수가 없으니 어찌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막막하다.

그러다 언젠가 불로 그림을 그렸던 일을 떠올렸다.

가능할까?

나는 허공에 불로서 그림을 그리려고 시도했다.

그러자 점멸하는 빛의 점이 나타나며 차량에 붙어 있던 푸른 불길이 허공으로 옮겨져 왔다.

이게 신기한 점은...

시간이 멈추어 있으니 불로 그림을 그리는 게 오히려 쉬워졌다는 거다.

아무래도 불이란 게 형태가 쉴 새 없이 변하기도 하고.

태울 만한 물건 없이는 불길이 유지되기 어려운데.

지금은 허공에 불로 그림을 그리는 게 가능했다.

시간이 멈춰있을 수 있는 건, 대략 3분 정도.

그림을 그리다가 나는 내 재능 스탯을 열었다.

『창조 능력자 46레벨

시간의 문 : 31

재능과 능력의 주인 : 32

실행 창조력 : 28

그랜드 코인 : 3527519.』

다음 업그레이드 비용은 519168 그랜드 코인.

나는 ‘시간의 문’과 ‘창조력’을 올렸다.

『창조 능력자 48레벨

시간의 문 : 32

재능과 능력의 주인 : 32

실행 창조력 : 29

그랜드 코인 : 1970015.』

능력을 올리고는 다시 그림을 그렸다.

불을 재료로 삼은 그림이 32배속으로 빠르게 그려졌다.

차에 붙었던 불길을 전부 다 가져와서 커다란 불새 한 마리를 완성했다.

물감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실제 불로 그리는 거라서 그림 완성은 단숨에 이루어졌다.

실제 불로 그린 그림이니, 어쩌면 내 창조력 수치로도 실물 전환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밑져야 본전.

한번 시도해보자.

내가 실행 창조력 능력을 발현하려는 순간, ‘시간의 문’ 능력이 풀렸다.

화르륵!

커다란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비정상적으로 적막했던 이곳에 주변 소음이 들려왔다.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탓이다.

그리고.

츠츠-

불로 그린 불새에 창조 능력이 깃들더니.

다행하게도, 실물 전환이 성공적으로 되어 불새가 내 앞에 머물러 있다.

눈은 붉은빛, 몸체는 온통 푸른빛이다.

성공한 거구나.

다행이다.

나는 불새에게 외쳤다.

“저 여자를 막아!”

화르륵!

불새가 날갯짓하며 내 명령에 움직였다.

멸망의 별은 갑작스레 바뀐 상황에 어리둥절해진 얼굴이다.

고개를 갸웃하더니 소름 끼치는 목소리를 냈다.

“어째서?”

나는 수호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수호야, 정신 차려!

불새가 공격하자 멸망의 별은 불새와 엎치락뒤치락했다.

치직 거리며 그녀의 회색 피부가 탈 때마다 타들어 갔지만 금세 재생이 되곤 했다.

이러다 불새가 소멸할 것 같다.

쿠구구구궁-

어느새 비행선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다.

비행선에서 쏘는 레이저 빔이 멸망의 별을 공격했다.

저만치 전투 차량 한 대도 달려오고 있었다.

수호를 구하려 오고 있는 것.

도중에 비행선에서 내려서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는가 보다.

내 눈앞에 반투명한 글자가 나타났다.

<고수님의 아바타를 비행선 내부로 옮겠습니다.>

“뭐? 수호가 아직 여기 있는데.”

<고수님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더 없습니다. 수호님 구출은 다른 이에게 맡기고. 고수님은 비행선에서 저 멸망의 별을 그림으로 그려주십시오.>

뭐라 반응할 새도 없이, 내가 선 곳은 비행선 지휘 통제실 내부로 바뀌었다.

내 앞엔 두 개의 3D 디스플레이가 떠 있다.

하나는 여자 형상을 한 멸망의 별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타블렛 디스플레이였다.

* * *

나는 느리게 눈을 떴다.

방금 아바타 접속을 끝냈던 것.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몸에 무리가 왔나 보다.

구토가 심하게 이는데도, 올라오는 내용물을 게워낼 힘이 없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움직여 옆에 떠 있는 3 D디스플레이를 바라보았다.

화면에 2050의 메시지가 적혀 있다.

<고수님, 위급한 상황은 넘겼으니 이제 고수님의 컨디션을 회복하십시오. 현재 고수님의 맥박과 혈압이 위험한 상태입니다. AI 수가 생수와 샌드위치 하나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나는 계속 누워있는 채로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까 불새가 멸망의 별을 상대하는 동안, 차를 운전하던 사람이 가까스로 수호를 구출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림을 그렸다.

멸망의 별이 비행선에 올라타 부수려 했었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어서.

나는 멸망의 별을 일부만 그렸다.

그녀의 사진에 머리만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머리를 상처입힌 모습으로 그림을 그려서 실물 전환하자, 그녀는 괴성을 질러댔다.

“끼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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