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리는 미래 5
<한반도 멸망의 별 한 개는 2025년, 다른 하나는 2026년에 고수의 능력으로 파괴되었습니다.>
<덕분에 한반도는 다른 곳에 비해 피해가 덜했지만, 다른 나라에서 넘어온 괴수에 의해 큰 피해가 있었습니다.>
나는 영상을 보다가 AI 2050에게 말했다.
“내가 그렸던 도시 말고도 한반도 곳곳에 생존자들이 있는 건가?”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들 때문에 위험해서, 한반도 통일시 주변으로 작은 도시들이 몰려있습니다. 대부분 생존자들은 한반도 통일시 주변에 몰려있는 셈입니다.>
“한반도 통일시?”
<고수님이 그리셨던 작은 도시를 한반도 통일시, 혹은 기적의 도시라 부릅니다.>
“한반도 전역의 생존자는 얼마나 돼?”
<2051년도 한반도의 인구는 980만 명입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980만 명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고수님의 활약으로 미래가 변하여 죽었을 사람들이 죽지 않게 된 이들이 많습니다. 그것 말고도 해외에서 찾아온 생존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수는 맞지 않습니다.>
“어째서? 해외에서 온 생존자들의 수가 많지 않은 거지?”
<다른 지역은 적의 영역과 멸망의 별 때문에 생존자들이 그 지역과 쉘터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수님이 원하시면 낮에 촬영한 한반도 풍경 영상을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래. 다시 보내줘. 좋아진 한반도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고 싶어.”
나는 그렇게 말하다가 수호에게도 변화가 있을까 싶어서 물었다.
“수호는? 뭐 달라진 게 있나?”
<수호님이 고수님과 대화하길 원하십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그래, 알았어.”
나는 2050이 보냈던 영상을 마저 보았다.
밤하늘에 간혹 반짝이는 별이 보인다.
확실히 이전과 달라진 하늘 풍경이다.
그리고 하늘 아래로는 기괴한 식물이 거의 사라진 모습.
이렇듯 미래에 큰 변화가 찾아온 건, 강민철의 능력으로 붉은 유성을 더 일찍 발견해서 제거할 수 있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물론 탁월해진 내 능력 덕분이기도 하겠고.
아, 이러면 내 재능 스탯에도 뭔가 변화가 생겼을 텐데.
나는 보던 영상을 끄고 내 재능 스탯을 확인해보았다.
그것을 본 내 눈은 커다랗게 떠졌다.
생각보다 내 스탯과 코인 수치가 많이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재능 명칭도 달라진 게 있다.
『창조 능력자 42레벨
시간의 문 : 31
재능과 능력의 주인 : 32
실행 창조력 : 24
그랜드 코인 : 4014237.』
미래의 한반도에서 내가 제거한 별의 숫자가 하나 더 늘어난 데다, 생존자의 수도 늘어난 탓일 듯하다.
덕분에 그랜드 코인이 어마어마하게 쌓여서 창조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겠다.
처음엔 현금으로 능력치를 올렸던 나.
능력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곱절의 현금이 소모되는 거 보고서, 과연 어디까지 올릴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다음은 명성을 이용하여 능력 수치를 올리고.
그다음엔 미래의 적을 사냥하여 능력을 올리게 되더니.
이젠 별을 파괴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능력을 제법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곧바로 창조력을 올렸다.
다음 업그레이드 비용은 32448 그랜드 코인.
『창조 능력자 43레벨
시간의 문 : 31
재능과 능력의 주인 : 32
실행 창조력 : 25
그랜드 코인 : 3981789.』
나는 창조력을 한번 올리고는, 다시 연달아 창조력을 업그레이드했다.
『창조 능력자 46레벨
시간의 문 : 31
재능과 능력의 주인 : 32
실행 창조력 : 28
그랜드 코인 : 3527517.』
블랙카드가 생기고 내게 재능과 능력이 나타난 이후, 이런 식으로 코인이 남아돌게 된 것은 처음이다.
아직도 그랜드 코인이 한참 남아 있었지만 업그레이드하는 걸 멈추었다.
다른 이의 재능 스탯도 볼 수 있다는 걸, 돌연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뇌리에 떠오른 내용대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감시 능력자.”
그렇게 읊조리자 내 앞에 낯선 재능 스탯이 나타났다.
『감시 능력자 15레벨
감시의 눈 : 15
코인 : 3735610.』
강민철의 재능 스탯이다.
와, 정말로 다른 이의 스탯까지 볼 수 있게 될 줄이야.
아마도 내가 부여한 능력이나 마찬가지라서 이런 식으로 보이는 것일 테다.
나는 강민철에게 말했었다.
현금보다 코인을 얻는 것이 더 어려울 테니. 처음엔 현금으로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나을 거라고.
그래서 현재 그의 능력이 15레벨인 거겠다.
현금은 8112만 원이 소모되었을 터.
그나저나 생각보다 그에게 쌓인 코인이 많다.
나와는 달리, 그에겐 어느 정도 명성이 있었던 부분도 있고.
강민철 역시 2051년도에서 적지 않게 활약한 부분이 있는 탓일 거다.
조만간 그에게 코인을 사용하여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라고 일러주어야겠다.
까톡!
그때 까톡 알림이 들려왔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수호다.
- 2050 : 시간이 늦었는데 아직 깨어 계시는군요.
나는 입꼬리를 미미하게 올리며 까톡 문장을 작성했다.
- 고수 : 너와 대화하고 나서 자려고. 2051년도의 한반도에 많은 변화가 있는 것을 봤어.
- 2050 : 네. 이곳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전부 아버지 덕분입니다.
아버지 덕분?
수호가 나를 직접 아버지라 부르는 건 처음이라 내 눈이 절로 커졌다.
이게 뭐라고, 심쿵하기까지 하는지.
이 나이에 나와 동갑인 녀석에게 아버지 소리 드는 건 낯설긴 했지만.
그래도 기쁜 마음이 든다.
수호에게 뭔가 변화가 있었던 걸까?
- 고수 : 아버지 덕분이라고 말해주니 고맙네. 근데 나보단 네가 애써서 그곳 세상이 달라진 것일 거야.
- 2050 : 내 어린 시절이 달라진 건 처음입니다.
- 고수 : 네 어린 시절이 달라져?
- 2050 : 지나온 과거 흔적이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사는 곳에선 미래가 비틀리고 있는 거죠. 그래서 저도 기억에 혼란이 오긴 했었습니다. 너무 큰 변화가 있어서요.
- 고수 : 어떻게 변했는지 자세히 말해봐.
- 2050 : 어머니와 이모가 2051년도에 살아 계십니다.
“아.”
수호는 루나와 한나가 쉘터에서 쭉 살아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어린 시절이 달라져서 기억이 변한 것이다.
2051년도는 변하였고, 그곳을 사는 이들의 기억은 달라졌는데.
내 기억은 달라지거나 하지 않았다.
수호의 삶이 달라졌다면, 아무래도 그와 내가 만나는 방식이 조금은 달라졌을 텐데도.
그와 대화했던 내 기억은 변함이 없다.
왜지? 이건 명백히 시간의 오류 아닌가?
- 2050 : 아버지를 다시 볼 수 없게 된 후로, 늘 나는...
수호는 조금 뜸을 들였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수호는 끝내 다음 날을 하지 않았다.
- 2050 : 이만 주무십시오.
그러고는 수호는 더는 말이 없었다.
* * *
도시 회의를 하러 출발하기 전, 수호는 몇몇 이들과 주차장으로 왔다.
쉘터의 주차장에 이르자 그곳에 주차된 여러 전투 차량이 보였다.
그중에는 고수의 소유였던 패러마운트 머로더와 벤츠 차량도 보였다.
그 모든 차는 전투에 걸맞게 개조가 되어 있다.
하지만 유독 한 대만 본래 모습 그대로다.
아버지의 유품.
‘애플 수’라는 이름으로 한창 명성을 날릴 때, 아버지가 페라리 본사에서 얻은 차다.
흰색 페라리.
이 차는 아버지를 떠오르게 했기에.
주차공간에 고이 모셔두었었다.
얼마 전에 쉘터의 전문가 한 명이 이 차량을 손보았었다.
출시된 지 30년이 지난 차지만 별 무리 없이 운전이 가능했다.
수호는 동행하는 이들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저는 이 차를 타고 따로 가겠습니다.”
“괜찮겠어요?”
“이젠 한반도의 도시 영역은 안전하니 괜찮습니다.”
수호는 페라리를 운전하여 ‘한반도 통일시’까지 향했다.
쉘터에서 도시까지 도로가 놓여 있다.
고수가 그린 그림을 실물 전환해서 생긴 도로다.
도로를 달리는 동안, 수호는 이상한 징후를 발견했다.
저만치 보이는 도시와 주변 풍경들.
츠츠, 츠-
조금씩 흐릿해졌다가 다른 풍경으로 겹쳐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수호는 잠시 차를 멈추고 바깥 풍경을 면밀한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그의 눈매가 문득 가늘어졌다.
변하고 있다!
이곳의 시간이.
조금씩 겹쳐 보이는 풍경.
그 풍경은 놀랍게도 초록빛이다.
시커멓거나 잿빛으로 변한 기괴한 식물이 아니라 평범한 나무들.
조만간 이곳의 시간에 변화가 찾아올 듯하다.
그것도 긍정적인 변화가.
시간이 지나 어느덧 날이 어둑해졌다.
그가 도시 안에서 도시 지휘부 회의하고 있을 즈음.
한반도에 변화가 찾아왔다.
수호의 기억이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그는 회의실에서 옆에 앉은 강민철에게 나직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강 지휘관님, 한반도의 변화를 감지하셨습니까?”
그러자 그는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무얼 말입니까?”
그는 달라진 부분을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다.
“모르시겠습니까? 강 지휘관님의 기억에서 달라진 부분을요.”
“......!”
그제야 그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그는 ‘어?’하면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뭔가 혼란스러워진 표정이다.
혼란스럽기는 수호도 마찬가지.
수호는 도시 회의를 끝마치고 쉘터로 돌아갔다.
쉘터로 운전해서 가는 동안, 잠시 뒤섞였던 그의 기억은 점차 분명해져 갔다.
이내 또렷해진 그의 기억에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를 잃고 실어증에 걸려 살았던 고통스러운 세월은 어느덧 악몽 저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잿빛처럼 딱딱하기만 하던 수호의 표정에 균열이 일 듯 따뜻한 빛으로 물들어갔다.
지금 이대로 쉘터로 돌아가면 어머니가 있다.
아니, 이 차를 타고 쉘터를 나오기 전에도 어머니가 계셨다.
그는 페라리 차를 타기 전에 어머니에게 말했었다.
“저는 이 차를 타고 따로 가겠습니다.”
“수호야, 괜찮겠어?”
“이젠 한반도의 도시 영역은 안전하니 괜찮습니다.”
조금 전에 다른 동행인과 나누었던 대화가, 지금은 어머니인 이루나와 했던 대화로 바뀌어 있다.
수호는 차의 속도를 더 높였다.
이건 기억일 뿐이라서.
그는 직접 어머니의 얼굴을 봐야겠다고 여겼다.
잠시 후, 수호는 쉘터에서 이루나와 마주쳤다.
그녀는 일상적인 모습으로 수호를 반겼지만 수호는 울컥하는 심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분이 내 어머니구나.
나는 어머니에게 사랑받으며 어린 시절을 지나왔었구나.
그래서 아프고 슬프고 괴로우며 때로 무섭기도 했던 어린 시절이 마냥 불행하지만은 않았던 거구나.
수호는 그와 같이 생각할 수 있었다.
그의 기억이.
아니, 그의 삶이 생의 노트 위에서 다시 새롭게 써지고 있었다.
* * *
그날 밤, 수호는 쉘터의 지휘관 실에 홀로 있으면서 오래도록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풀이하며 떠올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수호는 여러 날을 통곡했었다.
이전의 기억에선 큰 충격으로 감정마저 닫혔었기에, 실어증에 걸리고 눈물을 잃었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잃은 그 날에도 울음을 터뜨리지 못했었다.
그저 그의 마음은 곪아가고만 있었다.
하지만 변화한 그의 기억에서, 어린 수호는 오래도록 오열했었다.
어린 시절 성장하는 동안, 그는 아버지와 했던 약속을 기억하며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었다.
아버지와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힘과 능력을 키워서, 마침내 쉘터의 지도자가 되었고.
한반도의 리더 중 한 명이 되었다.
오래도록 그리웠고 보고 싶었다.
수호는 2021년을 사는 고수와 처음 대화하게 되었던 날을 떠올렸다.
왜 그때 아버지에게 그토록 딱딱하고 차가웠었을까.
왜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었을까.
정말 아쉽게도 그 기억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고수와 관련된 기억은 변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 기억이 변하지 않고도 이곳의 모든 게 달라질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버지를 오래도록 보고 싶어 했고 그리워했었건만.
수호는 고수에게 지금이라도 말하고 싶었다.
- 2050 : 아버지를 다시 볼 수 없게 된 후로, 늘 나는...
아버지가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그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