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리는 미래 4
나는 회장실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된 아우디에 올라타고는 핸드폰으로 톡 메시지를 보냈다.
- 고수 : 수호야. 대화 가능해?
하지만 AI 2050이 대신 대답했다.
- 2050 : 수호님은 도시에 가셨습니다. 현재 회의 중이실 겁니다.
- 고수 : 그럼 테이라도 대화 가능할까? 미래에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 2050 : 잠시 기다리십시오.
나는 차를 출발하여 이제는 진구의 집이 된 빌라 방향으로 운전했다.
그새 날이 어두워져 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도로가 밀렸다.
까톡!
출발한 지 20분 정도 지났을 무렵, 까톡 알림이 왔다.
까톡을 보낸 이는 수호다.
- 2050 : 고수, 지금 대화 가능합니다.
적당한 곳에 차를 멈추어 대는 동안, 음성 인식으로 까톡을 보냈다.
- 고수 : 수호야, 2051년에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미래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아.
- 고수 : 내가 강민철 회장에게 능력 한 가지를 줬거든.
수호는 금방 답변하지 않았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차를 대고서 핸드폰을 들고 까톡 메시지를 더 보냈다.
- 고수 : 아마 ‘감시의 눈’이 나타났을 거야. 그에게 주어진 능력은 그것 한 가지야.
강민철의 재능을 일깨워주면 IT 기술 개발 능력도 나타날 것이지만.
어차피 내가 각성시킬 수 있는 능력은 한 가지뿐이라 ‘감시의 눈’ 능력만 나타나도록 했다.
그 능력은 현재로서 우리에게 필요했다.
날씨와 별을 미리 관측하는 능력을 탁월하게 해주며, 숨겨진 별마저 찾아낼 능력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각성시켜줄 재능을 택할 권리가 나에게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수호에게서 톡이 왔다.
- 2050 : 달라진 부분을 확인했습니다. 이번엔 변화가 좀 큰 것 같습니다.
- 고수 : 2051년도 한반도 상황이?
- 2050 : 네. 2023년도와 2051년도 사이에는, 거의 30년의 세월이 있으니까요.
- 2050 : 그곳에서 내린 작은 선택 하나가 이곳에 많은 변화를 불러오는 겁니다.
- 2050 : 그것만이 아니라 이전보다 빠르게 탁월해지는 고수의 능력 덕분에, 미래가 비틀리는 일이 가속화되는 것 같습니다.
- 고수 : 미래가 비틀리는 일이 가속화된다고?
- 2050 : 달라진 상황은 정리해서 오늘 밤 중으로 톡을 드리겠습니다.
수호는 그렇게만 말하고는 더는 말이 없었다.
나는 다시 차를 출발하여 진구의 집으로 향했다.
도중에 마트에 들러서 집들이 선물로 화장지와 레드향 한 박스를 샀다.
빌라에 도착하니, 벌써 친구들이 다 모여있었다.
안에서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차를 주차하고서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수연이와 김주혜도 와있다.
수연이, 진구와 친하게 지내고 있어서 주혜도 이번에 초대받은 모양이다.
거실로 들어서자 김주혜가 나를 반겼다.
“고수 씨, 오랜만에 봬요. 잘 지냈어요?”
“네, 주혜 씨 오랜만에 얼굴 보네요. 더 예뻐지셨는데요.”
“호호. 정말요? 이번에 득남하셨다면서요? 고수 씨와 루나 씨 닮았으면 아기가 예쁘겠어요.”
“네, 예쁩니다.”
다른 친구들이 내게 한마디씩 했다.
“여, 고수. 오랜만이다!”
“짜식, 더 훤해졌네.”
“아들 사진 좀 보자, 얼마나 이쁜지.”
“좀 기다려. 나 숨 좀 돌리고.”
나는 외투를 벗고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며칠 전만 해도 내 집이었던 이곳.
그때는 썰렁했는데.
지금은 시끌시끌하고 뭔가 정신없다.
곳곳에 술병이 놓여 있고 소파에는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외투가 널브러져 있다.
주방 쪽엔 화장지와 친구들이 사 온 선물들이 쌓여 있었다.
이런 자리, 오래간만이다.
전에는 친구들과 밥도 자주 먹고, 모여서 술도 마시곤 했었는데.
블랙카드를 얻고 미래의 수호를 만난 이후로는 그저 그림만 그리며 지내왔던 것 같다.
나는 친구들에게 아들 사진을 보여주었다.
태어나고 하루 되었을 때 찍었던 사진.
그리고 내가 수호를 안고 있는 영상.
그런 걸 보여주니 친구들의 이목이 쏠렸다.
“비켜봐. 나도 좀 보자.”
“우오! 겁나 이뻐.”
“신생아가 이리 예쁘기 쉽지 않은데. 아기가 코 오뚝한 거봐라.”
“고수 닮았네. 고수 닮았는데 예쁘다?”
“그래? 나도 봐.”
“이름이 수호라고? 이 녀석, 나중에 크면 여자들 꽤 울리겠다.”
수연이는 내 핸드폰을 가져가서 주혜와 함께 사진을 봤다.
“진짜 고수 미니미네.”
“고수 씨, 아기가 너무 이쁘네요. 부러워.”
“그러게요. 고수 놈, 다 가졌어.”
친구들은 영상을 보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고수, 눈물 글썽한 거 봤냐”
“완전 부럽네. 아, 우리도 이제 삼십 줄이다. 나도 고수처럼 결혼해서 애 낳고 싶다.”
“나도 결혼은 한참 있다가 할 생각이었는데. 오늘 고수 보니까 장가가고 싶어진다.”
“여자는 있고? 여친부터 만들지?”
그때 강재가 핸드폰을 들고 일어났다.
“얘들아, 오늘 이렇게 모인 건 진짜 오랜만인데. 사진 한 장 박자.”
“오! 그래.”
9명이나 모인 우리는 카메라 안에 다 들어오려고 모여들었다.
강재가 맨 앞에 앉아서 쉘카로 사진을 찍었다.
“한 번 더 찍는다.”
카메라를 보며 사진을 찍는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언제까지나 계속 이어지기를.
대강 저녁을 먹은 후, 내가 먼저 일어나자 진구가 주차장까지 배웅했다.
진구는 주차장에서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오늘 와줘서 고맙다.”
“다들 얼굴 볼 수 있어서 나도 좋았지 뭐. 쟤네들은 오늘 여기서 밤새는 거냐?”
“아마도 늦게까지 있을 것 같아. 그리고 페라리 본사와 얘기했었는데.”
“응.”
“그쪽은 어떻게든 너와 광고 계약을 이어가고 싶은가 봐.”
“그래?”
“네 요구조건 들어주겠대. 협찬했던 페라리 신차는 아예 네 소유로 주겠다고 그러고.”
“광고 영상이 만들어지면 전처럼 전 세계에 TV 방영되는 건가?”
“응. 너는 그냥 원하는 그림만 그려주면 페라리 측에선 너와 비슷한 이미지의 인물로 광고 영상을 제작할 듯해.”
“그렇군.”
요즘은 그림을 빨리 완성할 수 있으니 광고용 그림을 그려주는 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그리고 S 그룹에서도 광고 제의가 들어왔어. 핸드폰 광고야. G 건설 회사에서는 고급 아파트 광고 제의가 들어왔고.”
“엄청나네. 나는 연예인도 아니고 얼굴도 가렸건만. 왜 그런 굵직한 광고가 들어오는 거지?”
“그야 네 그림이 인기가 좋아서 그렇지. 너 아이돌만큼 인기 좋은 거 모르냐?”
“아이돌은 무슨.”
“저번에 소더비 경매에서도 최고가 경신한 데다가 네 그림 퀄은 날로 비정상적으로 좋아지니까. 그림에 관심 없던 젊은 층도 너에게 열광하는 거지.”
“그래.”
“너 애플 수 이름으로 이런저런 자선 사업도 하잖아. 기부도 꽤 했고. 그러니까 호감도가 더 올라가는 거야. 너처럼 그림 그리겠다고 뛰어드는 학생들도 많아졌다더라.”
“그림, 쉽지 않은 길인데.”
“그치. 근데 네가 연예인처럼 잘나가니까. 너처럼 되고 싶은 거지. 네 그림은 해외에서도 유명하고 인기가 많으니까.”
“그렇구만. 난 이만 가야겠다. 들어온 광고 제의는 그림만 제공하는 거면 수락 의향이 있어.”
“그래, 협의해볼게.”
내가 아우디에 올라타자 진구는 손을 한 번 흔들어주고는, 몸을 오들오들 떨며 빌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 *
저택으로 돌아와서 수호를 잠시 보다가 서재로 들어왔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2050이 보낸 메시지가 있다.
- 2050 : 고수님, 이메일을 확인하십시오.
나는 책상 앞 의자에 앉은 채 펜을 꺼내 작동시켰다.
곧, 눈앞에 3D 디스플레이가 나타나자 손으로 터치하여 이메일을 열었다.
영상 파일 두 개가 와있다.
하나는 일본 규슈지방에 있는 멸망의 별 파괴 영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의 풍경을 촬영한 영상이다.
나는 멸망의 별 파괴 영상부터 열었다.
디스플레이의 크기를 좀 더 키웠다.
입체적인 영상을 통해 멸망의 별 모습이 보였다.
군데군데 갈라진 별.
이전보다 붉은빛도 옅어졌고, 흉측하게 나타났던 별 표면도 일반적인 암석 형태로 바뀌어 있다.
그러한 별의 모습은 드론이 허공에 띄운 초대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보이고 있다.
도시에 모인 무수한 이들이 거리에 나와서 그 영상을 지켜보고 있는 거다.
마치 멸망의 별이 파괴되는 순간을 생중계 방송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웅성거렸다.
“드디어 두 번째로 별이 파괴되는 것을 보겠군요! 나는 이날을 기다려왔어요.”
“일본이든 중국, 미국이든. 멸망의 별이 전부 파괴되길 바라요!”
“수호님! 힘내세요!”
“세상에! 고수라는 사람, 대단해요. 그의 그림이 있어서 김수호 지휘관이 멸망의 별을 파괴할 수 있는 거잖아요. 한반도에 이어 일본까지.”
“저 흉악한 별이 너덜너덜해진 것을 보니 내 가슴이 다 시원해지네요.”
“앗! 미사일이 발사되었어요!”
멸망의 별에서 제법 떨어진 곳을 비행 중인 비행선.
소형 미사일 3대가 동시에 발사되었다.
쿠구구구그-
하지만 멸망의 별로 향하던 유도 미사일들이 도중 흔들리더니 궤도를 벗어나고 말았다.
보일 듯 말 듯 아주 흐릿하게 미사일에 회색 오라가 나타난 게 보였다.
한반도의 별은 적의 영역이 모두 정복된 상태라서 그런지 무력했었는데.
규슈의 별은 미사일을 조종하는 힘이 남아 있다.
멸망의 별은 이렇듯 전투기나 미사일을 조종한다고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비행선까지 조종하진 못했다는 것.
미사일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 떨어지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술렁였다.
여기저기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 실패인 거예요?”
“안 돼! 미사일을 다시 쏴요!”
그러잖아도 비행선에서 3대의 미사일이 다시 발사되었다.
그것 역시 별에 의해 조종되는 것 같았지만.
수호는 멈추지 않고 미사일을 발사했다.
비행선에서 소형 미사일 2대가 연달아 발사되더니.
커다란 규모의 유도 미사일 2대도 이어서 발사되었다.
미사일의 크기가 3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쿠구구구궁-
콰광!
미사일 하나가 별에 명중되었다.
별이 쪼개지며 벌어졌으나 완전히 두 동강 나지는 않았다.
작정한 듯 비행선에서 미사일이 또 발사되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하는 식이다.
콰과쾅!
결국, 미사일 하나가 더 별에 명중되어 폭발했고.
멸망의 별은 조각나며 불길이 타올랐다.
작은 조각이 무수히 아래로 떨어졌다.
그 광경에 도시의 시민들은 기쁨의 환성을 질렀다.
와아아아!
서로 부둥켜안는 사람.
그저 함성을 지르는 사람.
눈물을 흘리거나 흥분하여 방방 뛰는 사람.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디스플레이를 터치하여 그 영상을 끄고 다음 영상을 열었다.
두 번째로 보는 이 영상은 오늘 촬영되었을 거다.
영상에서 드론 하나가 유유히 비행하고 있다.
위로 밤하늘이 보인다.
영상에서 자막이 나타났다.
<지금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지만, 한반도에서는 운이 좋은 날이면 푸른 하늘도 볼 수 있답니다.>
하늘을 날던 드론, 아래 풍경을 촬영한다.
서울이었던 곳.
그곳 풍경을 본 나는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분명, 한반도는 내가 그림으로 그려서 실물 전환했던...
작은 도시가 전부였는데.
작은 도시 주변으로 여러 건물과 도로가 형성되어 있다.
건물과 가로등 불빛으로 반짝이는 야경이 보인다.
그것만이 아니라, 곳곳에 초록빛 풍경도 보이는 듯하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눈을 깜박이며 영상을 보았다.
자막이 다시 나타난다.
<한반도에 나타났던 붉은 유성은 2024년 1월, 고수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뭐? 한반도 멸망의 별은 얼마 전에 수호와 함께 파괴했었는데.
<하지만 2024년 3월. 붉은 유성 두 개가 한반도에 다시 나타나 급작스레 멸망의 별이 되어버렸습니다.>
자막은 그렇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나는 드론이 촬영하는 풍경을 홀리듯 바라보았다.
내가 그렸던 도시 외에도 다른 도시가 존재한다는 게 놀라웠다.
생존자들이 많아진 건가?
자막으로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