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리는 미래 2
올차드 저택으로 이사 온 후, 수호와 루나의 안전에 대해선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아무래도 저택 내부에 있으면 보안이 더 굳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살던 빌라는 진구에게 그냥 빌려주기로 했다.
월세를 받지 않고 살게 해준 것.
빌라에 있던 가구들도 그에게 주었다.
대신, 빌라에 있던 물건을 정리하는 걸 진구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작업실을 처분하는 것도 진구에게 부탁을 해 놓았다.
나는 대강 옷가지와 루나가 쓰던 물건만 챙기다가.
내 옷장을 정리해주는 진구에게 말했다.
“진구야, 내가 놔둔 물건 중에 너 필요 없는 건 그냥 버려도 돼.”
“아깝게 왜 버려. 다 내가 써야지. 네 집에 있는 물건, 대부분 다 좋더구만.”
“그래. 그럼 네가 써. 참, 강재도 여기 들어와 산다고 했지?”
“어. 강재가 지내는 원룸, 층간 소음이 장난 아닌가 봐. 위층에 어떤 미친놈이 있어서 새벽에도 쿵쾅거린다고 하더라. 옆집에선 툭하면 싸우면서 소리를 지르고.”
“어휴, 그런 곳에서 지내면 아무래도 힘들지. 강재도 지낸다면 잘 되었네. 근데 집들이는 할 거냐?”
“집들이? 그거 해야 하나?”
“집들이라 해봤자, 그냥 친구들 오랜만에 모여서 배달 음식 먹는 거지.”
“그래. 집들이 생각해볼게. 참! 요즘, 네 그림 기다리는 사람들 많아."
"그래?"
"요즘 유화 그림 안 그려?”
“시간 나면 한 점씩 그려둬야지.”
나는 대강 짐을 싼 후에 캐리어 가방 몇 개를 차에 실었다.
진구는 내 가방을 나르면서 말했다.
“벌써 가냐?”
“작업실에 있는 물건도 집으로 옮겨야 해서.”
“쩝. 그래. 아! 그리고 강 회장님 비서에게 연락 왔었어. 전세기 예약하겠다고 하는데. 날짜는 언제인지 묻던데.”
“날짜는...”
나는 진구에게 답하면서 지난밤에 수호와 대화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 2050 : 회색 스모그가 이슈화된 것은 2023년도 여름이었습니다.
- 고수 : 이제 곧 2023년이니 회색 스모그가 곳곳에 본격적으로 나타날 시기는 반년 정도 남은 건가?
- 2050 : 네, 그렇습니다.
- 고수 : 그럼 붉은 유성이 멸망의 별로 변하는 시기는 얼마나 걸리는 거지?
- 2050 : 아마도 3, 4개월 정도 걸리는 것 같습니다. 처음 북유럽에 붉은 유성이 나타나고, 그 뒤를 이어 추운 지역을 중심으로 붉은 유성이 우후죽순 나타납니다. 러시아, 북부 캐나다와 같은 곳입니다.
- 고수 : 그래. 그러면 붉은 유성은 빠르게 제거하는 게 좋겠군.
- 2050 : 아직 고수의 창조력 능력은 숙련도가 낮으니, 위험한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2050 : 조금 더 능력 수치가 올라야 합니다.
- 고수 : 그래. 알고 있어.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진구에게 마저 답했다.
“날짜는 너무 빠르면 안 될 것 같고. 한 달 이내로 날짜를 정해서 계약하면 좋을 것 같아. 전세기 빌리는 건 내 블랙카드로 결제한다고 해.”
“그래, 알았다.”
나는 그 길로 올차드 저택으로 짐을 가져다 놓고.
미라클 쉘터스의 차량인 밴을 빌려다가 작업실에 있는 아바타 기계도 집으로 옮겨 왔다.
아바타 기계를 옮길 때는 유하준 박사의 도움을 받았다.
올차드 저택의 지하벙커의 지하 2층에 아바타 기계를 설치를 끝내고, 유하준이 돌아갔을 무렵.
겨우 한숨 돌리고 있으려니...
까톡!
까톡 알림이 울렸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AI 2050이다.
- 2050 : 고수님, 아바타 접속 15분 전입니다.
- 고수 : 아, 그래? 겨우 시간을 맞췄네. 알았어. 금방 AI 기능 켤게.
나는 외투 주머니에서 타블렛 펜을 꺼냈다.
그것을 손으로 쥐고 있으니 내 앞에 3D 디스플레이가 나타났다.
화면에 있는 아이콘을 터치해서 AI 기능을 활성화했다.
이내 2050이 적은 메시지가 화면에 나타났다.
<초소형 드론 5대를 이곳으로 불러오겠습니다.>
나는 2050에게 답했다.
“그래.”
<드론들이 지하벙커 내부로 진입하는 걸 수락해 주십시오.>
“수락? 그냥 수락한다고 답하면 되나?”
<네, 그렇습니다. 고수님이 내부에서 특정 존재의 진입을 수락하게 되면 생체 인식이 없이도 문이 열리게 됩니다.>
“드론의 진입을 수락할게.”
<지하벙커 출입구에 다른 지켜보는 이가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지하벙커 출입문을 개방합니다. 드론 5대가 지하벙커 2분 후에 이곳으로 도착합니다.>
얼마 안 있어 내가 있는 곳으로 드론들이 날아들었다.
위이잉-
<아바타 접속을 준비하겠습니다. 고수님은 캡슐 안에 들어가 누워주십시오.>
“알았어.”
나는 캡슐 안에 들어가 누웠다.
그러자 2050은 아바타 기계를 조작했다.
기계음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어느새, 내 모든 감각은 2051년도의 비행선 지휘 통제실 풍경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나는 비행선 지휘 통제실을 보다가 수호와 강민철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들은 전처럼 안경을 쓰고 있다.
“오셨습니까? 화가님.”
“네, 다시 뵙습니다. 강 회장님.”
나는 강민철과 인사를 한 후, 수호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늘따라 새삼 수호의 외양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조금 마른 듯한 얼굴.
여기저기 몸에 난 자잘한 오래된 흉터들.
나는 평화로운 2023년도에서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지만.
수호는 이곳에서 여전히 험난한 세월을 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아포칼립스의 위협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수호가 내게 말했다.
“지금 일본으로 향하는 중입니다.”
“그래.”
“오늘 일본 규슈지방에 떠 있는 멸망의 별 하나를 제거할 예정입니다.”
그때 IA 2050의 음성이 이어졌다.
“목적지까지 두 시간이 남았습니다.”
수호는 내게 말을 이었다.
“전에 그려주셨던 불새 그림을 실물 전환을 하려고 합니다. 실물 전환된 불새는 고수의 명령에만 움직일 거라서 지금 전환해야만 합니다.”
“불새를 실물 전환하는 건 이제 버겁지 않아?”
“네. 현재로선 10마리 전환도 가능하지만 우선 3마리만 전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후, 멸망의 별을 파괴하는 데 능력을 사용해야 해서요.”
“10마리나, 대단한데?”
내가 엄지를 치켜세우자 언뜻 수호의 입매가 보일 듯 말듯 올라갔다.
마치 칭찬을 들어 만족스럽다는 듯이.
평소 무뚝뚝하고 딱딱하던 수호였어도, 칭찬을 듣는 건 좋아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런 수호를 보며 어릴 때부터 칭찬을 자주 해주며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강민철이 내게 말했다.
“우리는 불새의 호위를 받게 하여 드론을 멸망의 별 가까이 접근하게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별의 사진을 찍는 거죠.”
“그렇군요.”
“불새를 실물 전환하면 고수가 불새를 다스려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수호는 곧바로 불새 그림을 열어서 연달아 실물 전환을 했다.
확실히 전보다 불새를 실물 전환하는 모습이 수월해 보였다.
비행선 전방 유리 금속 창밖으로 불새 3마리가 홀연히 나타나자, 나는 불새들이 드론을 호위해주길 바랐다.
이런 내 생각은 불새들에게 금세 영향을 주었다.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며 불새들은 드론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비행선 밖에는 드론 두 대가 나와있던 터였다.
중간권에 떠 있는 멸망의 별에 접근할 것이었다.
불새들이 드론의 주변을 맴돌자 AI 2050은 드론을 조종했다.
이제 저 드론이 사진을 보내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한반도 상황에 관해.
며칠 사이에, 한반도를 공격했던 공중 괴수들에 관해.
곳곳에 있는 멸망의 별에 관해.
“멸망의 별은 보통 작은 나라당 하나가 존재하는 셈입니다. 한반도 같은 경우는 별이 한 개였지만, 일본은 별이 네 개나 됩니다. 중국이나 미국 같은 넓은 곳은 더욱 많고요.”
“처음 별이 나타났던 노르웨이는 다른 곳에 비해 개수가 더 많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수호는 3D 디스플레이를 터치하며 사진 파일 하나를 열었다.
그것은 세계지도였다.
지도 위에 붉은 별 그림이 자그맣게 표시되어 있다.
별 그림을 터치하여 확대하니 흐릿하게 찍힌 사진이 보인다.
“현재 중국 일부 지역과 일본에 떠 있는 별을 대강 확인한 결과. 멸망의 별이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는 게 보입니다.”
수호는 이전 사진도 열어서 비교해서 내게 보여주었다.
“그렇네. 색이 짙어졌어. 한반도 주변의 별들만 변한 건가?”
내가 묻자 이번에는 강민철이 답했다.
“세계에 있는 모든 멸망의 별이 변화를 보인 건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네.”
드론이 떠나고 30분 정도 지났을 즈음,
나는 3D 디스플레이에 눈길을 힐끗 주었다.
두 개로 분할된 화면에 드론이 보내는 영상이 보였다.
3마리의 공중 괴수들이 중간권까지 올라와 있다.
상위 괴수들은 높은 고도까지 올라오는 게 가능하다고 했었다.
2050이 우리에게 보고했다.
“S급 괴수가 총 3마리입니다.”
“규슈지방에 S급 공중 괴수가 3마리나 된다고? 거긴 S급 공중 괴수는 없었는데.”
“최근 괴수들이 진화한듯합니다. 별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무리 강한 괴수라도 푸른 불새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꺼린다는 점.
그것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시뻘건 불을 뿜어댔는데.
결국, 피해가 없을 수는 없어서 불새 두 마리가 소멸하고 드론이 전부 파괴되었다.
“방금, 드론이 파괴되기 전, ‘멸망의 별’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진은 전송되었습니다.”
수호는 전송된 사진 파일을 열어 크게 확대했다.
이내 선명하고도 입체적인 사진이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멸망의 별 사진을 본 나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생각보다 더 기괴한 모습이었다.
별의 크기도 약간 커졌고 핏빛으로 짙어졌을 뿐만 아니라 표면이 괴상하게 변했다.
강민철이 중얼거렸다.
“저거 사람 얼굴 같은데.”
과연, 별의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 얼굴 같아 보였다.
어딘지 섬뜩하고 불길해 보이는 형상.
그 모습은 수호도 처음 보는 모양이다.
“그렇군요.”
“어쨌든 지금은 시간이 별로 없으니 그림부터 그릴게.”
나는 멸망의 별 사진을 보고 타블렛 디스플레이를 열어 그림을 그려나갔다.
2051년도의 디스플레이는 간접적인 터치가 가능해서 다행이다.
아바타일 뿐인 내가 터치해도 디스플레이 조작이 가능하니.
“앞으로 1시간이면 그림이 완성 되겠습니까?”
“완성하도록 애써봐야지.”
* * *
1시간을 넘기고 또 10분이 지나서야 나는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2050의 음성이 내게 들려왔다.
“잠시 후 비행선이 중간권에 진입합니다. 수호님의 실물 전환 가능 영역의 진입은 5분 후입니다. 전투 돌입 3분 전입니다.”
“S급 괴수들 상대로 적어도 2분은 버텨야 한다는 건데. 김 지휘관님, 전투 병력을 출격할까요?”
강민철이 묻자 수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일단 초소형 드론 300대만 출격해서 적의 시야를 어지럽히도록 하죠. 우선 방어 위주의 전투를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준, 다른 드론들과 비행선이 괴수의 관심을 끌 동안 내가 실물 전환하고 난 후의 멸망의 별 사진을 찍어줘.”
“알겠습니다, 수호님.”
이윽고, 대형 공룡만큼 커다란 공중 괴수들이 코앞에서 보였다.
언뜻 보면 독수리 같아 보이기도 했고 박쥐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 괴수들이 한꺼번에 육탄전으로 비행선에 덤비면 엄청난 타격을 입고 추락할 듯했다.
괴수의 섬뜩한 포효 소리가 들리며...
크라라라락!
그것의 거대한 입이 벌어졌다.
괴수 중 두 마리는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드론을 파괴하느라 여념 없고.
나머지 한 마리는 비행선을 향해 불을 뿜었다.
비행선의 방어막에 의해 불길이 흩어지자 괴수는 거대한 입을 벌려 비행선을 물어뜯으려 했다.
비행선은 레이저 빔을 계속 발사했으나 괴수는 아무런 타격이 없다.
콰드드득!
비행선에 충격이 일며 크게 흔들렸다.
나는 아바타 모습이라 넘어지거나 하지 않았지만, 수호와 강민철은 휘청했다.
그때 수호의 눈동자에서 번쩍 섬광이 일더니 능력이 발동했다.
쿠구구구그그-
갑자기 하늘이 흔들리는 듯하다.
마치 하늘에서 지진이 난 것처럼.
나는 멸망의 별에 시선을 주었다.
그것은 내가 그린 대로 별에 자잘한 금이 가 있었다.
멸망의 별 기운이 약간 쇠락하게 된 것이다.
괴수들은 별에 영향을 받았는지 괴성을 질러댔다.
쿠에에에에엑!
공중 괴수들이 돌연 몸을 비틀며 괴성을 질러댔다.
괴수를 본 강민철이 외쳤다.
“괴수의 몸체가 변화를 보입니다!”
2050의 음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S급 괴수들이 AAA급으로 몸체가 변화했습니다. 저들의 공격력이 소폭 하락했습니다.”
“수호님, 방금 멸망의 별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진을 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