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리는 미래
잠든 루나와 수호를 지그시 보다가 서재로 꾸며진 방으로 갔다.
조명을 켜고 안으로 들어가니 서재라고 해봤자 책은 거의 없고.
그저 서재용 책상과 의자, 카펫이 깔려있을 뿐이었다.
커튼도 없어서 커다란 창은 횅했다.
나는 창가로 걸어가서 창밖을 내다봤다.
이곳에서 맞는 첫 번째 밤.
창가에 서서 하늘에 눈길을 주었다가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와.”
하늘에 총총하게 뜬 별들이 금방이라도 아래로 쏟아질 듯하다.
마치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이 모이면 아래로 또르르 굴러떨어지는 것처럼.
저 하늘 위의 별들도 영롱함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다.
“역시 여긴 밤하늘이 이쁘네.”
밤하늘을 좀 더 보려고 창문을 열었다.
겨울이라 칼바람이 들어온다.
까톡!
그때 까톡 알림이 울리자 나는 창문을 닫고, 책상 앞 의자로 가서 앉아 핸드폰으로 톡을 확인했다.
수호에게서 온 톡이 있다.
- 2050 : 저에게 달라진 기억이 있습니다. 2051년도의 상황에 변화도 있었습니다.
나는 곧바로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
- 고수 : 달라진 기억이 있다고? 뭐가 달라졌는데?
- 2050 : 우리 쉘터는 그다지 달라진 부분이 없는데. 한반도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생존자 수가 많아졌습니다.
- 고수 : 그래? 얼마나?
- 2050 : 이전 기억으로는 도시에 들어간 생존자 인원이 2만여 명이 되었는데. 지금은 10만 명이 넘어섰습니다.
- 고수 : 갑자기 그렇게 생존자 수가 많아졌다고? 미래가 어떤 식으로 비틀린 거지?
- 2050 : 고수, 재능 스탯과 코인을 확인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코인이 들어온 게 있을 겁니다.
- 고수 : 아, 오늘은 정신없어서 미처 확인 못 했어. 오늘 올차드 저택으로 이사 왔었거든.
- 2050 : 그랬군요. 2023년도부터 2026년도 사이에 고수의 활약이 크게 있었습니다. 그 탓에 달라진 부분이 있을 겁니다.
- 고수 : 아.
- 2050 : 고수의 능력은 이전과 달라졌습니다. 이전엔 능력의 각성이 2025년도였고, 능력이 증폭된 건 2026년도에 들어선 후였는데. 그러했던 고수의 삶이 달라져서 한반도에 영향을 끼친 거죠.
나는 수호의 톡을 잠시 물끄러미 보다가 그에게 말했다.
- 고수 : 더 자세히 말해볼래?
- 2050 : 고수는 2023년도 아포칼립스가 나타난 이후 많은 괴수를 사냥했고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 2050 : 덕분에 우리 쉘터는 생존자들이 많았습니다. 숱한 생존자들이 우리 쉘터로 와서, 고수는 미라클 쉘터스를 통해 건축했던 두 건물로 생존자들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 고수 : 경기도에 있는 기계 공학 연구 센터와 강원도에 있는 환경 연구 센터겠군. 거긴 지하벙커 쉘터 기능이 있으니까.
- 2050 : 네. 그 외에도 여러 쉘터에 생존자들이 많아졌습니다. 본래라면 죽었을 사람들이 고수 한 사람으로 인해 미래가 바뀌어서 살게 된 거죠.
- 고수 : 잘 되었네.
내 입매에 옅은 미소가 걸리었다.
- 2050 : 하지만 변한 건 이것만이 아닙니다. 적들도 위협을 느낀 듯합니다. 한반도 주변에 있는 멸망의 별이 기이한 변화를 보입니다.
- 고수 : 어떤 식으로?
- 2050 : 점차 붉은빛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하늘이 붉어지는 현상은 있었지만, 멸망의 별이 변화를 보이는 건 아포칼립스 이후 처음이라서 모두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나는 심각해진 얼굴을 했다.
혹시 미래가 갑작스레 위험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던 것이다.
전 세계에 있는 강력한 괴수들이 한반도로 몰려와 공격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들었다.
그렇데 되면 수호가 위험해질 텐데.
- 고수 : 그러면 쉘터와 도시의 방어를 좀 더 구축해 놓아야 하지 않을까?
- 2050 : 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 고수 : 전에 그렸던 방어 탑 사진 부탁할게. 내가 그림으로 그려줄게.
- 2050 : 네.
수호와 거기까지 대화한 후, 나는 재능 스탯과 코인을 확인했다.
『명화 작가 40레벨
명화 시간의 고리 : 22
기교의 주인 : 21
실행 창조력 : 13
그랜드 코인 : 16573.』
스탯은 그대로이고 그랜드 코인은 확실히 많이 들어와 있다.
다음 업그레이드 비용은 8112 그랜드 코인.
죽었어야 할 사람이 살게 되면, 그 사람으로 인한 코인도 내게 들어오곤 했었으니.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코인이 꽤 들어온 모양이다.
재능 스탯을 보던 나.
- 고수 : 수호야, 혹시...
조금 머뭇거리다가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 고수 : 내가 알고 있는 이 중에서도 죽지 않고 살게 된 이가 있어?
- 2050 : 가족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없습니다. 그 부분에 관해선 바뀐 부분이 없더군요.
- 고수 :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외할머니는? 한나와 유 박사님도?
- 2050 : 자세한 건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알아봤자 마음이 어지러울 뿐입니다.
- 2050 :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중요한 건 현재입니다. 어차피 내가 겪은 이곳의 일들은 고수의 삶에선 오지 않을 일들입니다.
- 2050 : 우리는 아포칼립스를 분명히 막게 될 테니까요.
- 고수 : 그래. 그렇게 되겠지. 아포칼립스는 오지 않게 될 거야.
수호와 그런 대화를 나눈 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다시 내 재능 스탯을 바라보았다.
지금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이번에도 창조력을 올리자 코인이 차감되며 재능 스탯이 변했다.
『명화 작가 41레벨
명화 시간의 고리 : 22
기교의 주인 : 21
실행 창조력 : 14
그랜드 코인 : 8461.』
* * *
그다음 날, 나는 아우디를 끌고 강민철 회장이 일하는 회사를 방문하기 위해 외출했다.
회사 건물에 도착해서 차를 주차장에 두고 1층 로비로 들어섰다.
1층에는 회사 내의 카페가 보이고, 몇몇 사람이 오가는 게 보였다.
나는 일부러 초침 시계를 차고 왔다.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10시 50분.
명화 시간의 고리.
나는 오늘 이 능력을 시험해볼 생각이다.
시간 능력을 처음 발현했던 때는 12월 25일.
수호가 위험해졌던 그때였다.
3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간을 붙들어 놓았던 그때의 순간이 떠오른다.
시간 능력은, 한번 능력을 발현하고 나면 정신 에너지가 엄청 소모되어서.
현재로선 하루에 한 번 정도로만 능력 발현이 가능한 듯했다.
그동안, 루나와 아기를 데리고 올차드 저택으로 거처를 옮기느라 정신없기도 했어서.
오늘이 되어서야 능력을 시험해볼 생각이 들었던 터다.
나는 시계의 초침을 확인하고 주변의 상황에 눈길을 준 채, ‘시간의 고리’ 능력을 발현했다.
그러자 쉼 없이 이어지는 주변 소음이 갑자기 뚝 그쳤다.
내 손목시계의 초침이 멈췄고 주변에 오가던 사람들은 그대로 박제된 것처럼 움직임이 없어졌다.
시간이 정지되는 건 두 번째로 겪는 일.
내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모든 것이 멈춘 세상에서 나 홀로 서 있다는 건, 정말이지 기묘한 체험이다.
정확히 3초가 지나가자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소음이 다시 들려오고 내 시계의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였으며, 사람들의 움직임이 다시 이어졌다.
인간의 범주를 초월한 영역인 것 같아서, 어쩐지 두렵기까지 한 능력.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뛴다.
나는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내디뎠다.
11시 즈음에 강민철을 만나기로 했었다.
오늘 아침에 그가 내게 급한 연락을 주었었다.
<화가님, 오늘 새벽에 붉은 유성으로 보이는 유성이 관측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까지 왔던 터.
잠시 후, 나는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회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강민철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화가님,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 회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그런 인사말을 나누고는 회장실에 있는 긴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17인치 크기의 노트북이 놓여 있다.
푹신하고 안락한 의자가 3개씩 테이블 양옆에 있고, 가장 상석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어 총 7개이다.
강민철은 상석에 앉지 않고 나와 마주 앉았다.
“소식 들었습니다. 득남 하셨다고요. 축하드립니다.”
“진구 씨를 통해 꽃바구니 보내주셔서 감사히 받았었습니다.”
그는 바로 본론을 말했다.
노트북으로 사진 파일을 열었고는 내게 보였다.
“저희가 발견한 유성은 이겁니다. 맞는지 확인해보십시오. 보통 유성이 이런 식으로 관측되지 않는데, 이건 기묘하게도 지구의 대기권 안에 머물러 떠 있더군요. 종종 제자리에서 붉은 유성이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나는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주었다.
강민철은 모두 3장의 사진을 보였다.
언뜻 붉어 보이는 암석 덩어리.
암석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암석이 아닐 것이었다.
2051년도에서 멸망의 별을 본 적은 있지만 붉은 유성은 처음 보는 거다.
그저 기록된 자료 사진에서나 보았을 뿐.
“자료 사진에서 본 붉은 유성과 거의 흡사하군요. 지구로 떨어지지 않고 대기권에 머물러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게 붉은 유성이라는 증거일 겁니다.”
“그렇군요. 반신반의했었는데 실제로 이런 게 나타나다니. 솔직히 아니길 바랐었습니다.”
“네, 그러셨을 겁니다.”
“영상도 있습니다. 이것도 보시죠.”
그가 짧은 영상도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난 후에 그에게 물었다.
“음, 이 붉은 유성의 크기는 어느 정도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사진에 찍힌 상태로는 지름이 10미터에서 20미터 정도로 보이는군요. 현재 열권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정도 크기의 유성이 지구 대기권에 머물고 있다면 분명 학계와 나사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을 것 같군요, 물론 언론에 아직 드러나지 않겠지만요.”
“......”
나는 대꾸 없이 사진만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강민철이 내게 물었다.
“붉은 유성이 나타났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것이 세상에 멸망을 가져오는 위험한 것이라면 제거해야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작은 미사일 같은 거로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유성은 제거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게 위험한 이유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수호에게 들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수호가 겪었던 2023년도.
그 당시, 사람들은 붉은 유성을 보고 두 가지 반응을 보였었다.
붉은 유성을 불길하게 여기거나, 연구 대상으로 가치 있게 여겼거나.
그때에도 붉은 유성을 불길하게 여긴 자들의 주도로 붉은 유성을 미사일로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은 실패로 끝이 났다.
붉은 유성은 다이아몬드보다 더 강한 재질로 이루어져 있어서 파괴도 되지 않았지만.
유성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아포칼립스 원흉의 짓인지.
붉은 유성으로 향하던 미사일이 돌연 방향을 틀어 도시로 떨어졌던 것이다.
나는 강민철에게 입을 열었다.
“미사일을 사용한다면 붉은 유성은 파괴도 되지 않을뿐더러 더 위험해질 겁니다.”
강민철에게 붉은 유성이 왜 위험한지 대략 설명해주었다.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럼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의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드론을 보내면 오히려 역공격당할 것 같고.
붉은 유성을 파괴할 방법은 수호의 말대로 내 능력뿐인 것 같다.
아직 창조력 수치가 낮아서 그게 문제이긴 하다만.
“현재로선 제가 직접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직접이요?”
“네. 일단 붉은 유성은 조용히 지켜보기만 해주십시오. 그리고 괜찮다면 전세기 한 대 알아봐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이진구 씨에게 연락 주셨으면 합니다.”
“네, 그러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