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차드 저택 2
우리의 침실은 2층에 있었다.
루나와 아기를 케어하는 건 당분간 루나의 어머니와 한나가 도와주기로 했다.
한나는 최근에 라멘 가게를 정리했다고 들었다.
아마도 이젠 결혼 준비에 집중하는 것일 테다.
내 부모님은 오늘 저택에 방문하긴 하셨지만.
저택에 들어와 사는 건 원하지 않으셨다.
언젠가 저택에서 지내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드렸으나, 두 분은 그대로 양평에서 지내겠다고 하셨었다.
한나가 내게 말했다.
“제부, 하준 씨도 저녁때 온다고 했어요. 함께 축하 만찬 먹어요.”
“축하 만찬이요?”
“이 집에서 보내는 첫날 밤이잖아요. 수호가 태어난 것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해서 제가 이것저것 만들어봤어요.”
“고생 많았겠네. 고마워요.”
“고맙긴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오늘 저녁, 이곳 식당이 떠들썩하겠는걸요.”
“하하. 정말 그렇겠네요.”
한나는 웃는 얼굴로 나를 보다가 입을 뗐다.
“우리 처음 만났던 날, 생각나요.”
“이곳 과수원 땅을 계약하던 날이었죠.”
“네. 그때 제부와 인연인 것 같다고는 생각했는데.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 못 했어요.”
“그건 저도 그래요.”
“아버지의 유산이었던 과수원에 이런 집이 들어서다니. 그것도 루나가 설계한 건물이 말예요. 정말 놀랍기도 하고.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렇죠.”
“우리 루나,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나는 설핏 웃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루나는 평생 아껴줄 겁니다.”
한나와 대화를 나눈 후, 저택을 대강 둘러보았다.
본관과 별관, 정원을 꼼꼼히 돌오보았다.
그러다 늦은 오후 즈음, 유하준 박사가 올차드 저택에 도착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고수 씨, 나를 따라와요. 보여줄 게 있어요.”
“보여줄 거요?”
“지하벙커요.”
그의 말에,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
유하준 박사는 걸으면서 내게 설명했다.
“지하벙커로 가는 길은 두 군데입니다. 하나는 주차장에서 지하벙커로 직접 갈 수 있고, 다른 하나는 1층에서 바로 지하벙커 쉘터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1층에서 가는 길목은 우선 차단해 놓았습니다.”
“네.”
우리는 주차장 건물로 갔다.
주차장 내부, 지하벙커로 향하는 입구에 이르자, 그곳엔 두꺼운 철문이 있었다.
철문은 네모나고 제법 컸다.
“이 철문은 현재 저와 고수 씨만 열 수 있습니다. 홍채와 안면 인식, 정맥 인식, 음성 인식이 한 번에 이루어져야 하죠.”
“까다롭군요.”
“까다롭긴 해도 인식하는 건 AI가 알아서 할 겁니다. 혈관 스캐너도 AI가 작동할 거고. 고수 씨와 저는 음성 인식을 위해 문을 열어달라는 말만 AI에게 하면 됩니다.”
“그렇군요.”
내가 그렇게 답할 때,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렸다.
유하준 박사가 철문 안으로 성큼 들어서자 나 역시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상당히 넓은 크기의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일반적인 기계 음성이 흘러나왔다.
“유하준 박사님과 고수님을 확인했습니다. 올차드 지하벙커 쉘터로 이동합니다.”
그러더니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갔다.
유하준이 말했다.
“엘리베이터 작동도 저와 고수 씨가 탑승해야만 움직이게 됩니다.”
“보안은 철저하겠군요.”
“네. 미라클 쉘터스와 연구 센터도 이런 보안 시스템을 적용했습니다.”
“박사님, 대단하신데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을 해내셨으니.”
“이 모든 건 고수 씨 덕이죠. 기술 개발하는데 아낌없는 자금을 부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데. 미래와 연결해서 내가 이후에 개발해놓은 연구라는 치트키를 얻게 해주셨잖아요. 이 정도로 못하면, 고수 씨의 그만한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거죠.”
그런 대화를 하는 사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에는 몇 층이라는 표시가 없으니 얼마나 깊게 내려간 건지 알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기다란 통로가 나왔다.
나는 유하준과 함께 통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 들어갔다.
그러다 또다시 철물이 나와서 보안 시스템을 한 번 더 걸쳐서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지하벙커 쉘터입니다.”
“아.”
나는 조금 커다래진 눈으로 지하벙커 쉘터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일전에 미래의 셀터를 그림으로 그린 적이 있어서, 지하벙커 쉘터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그래도 직접 들어서는 건 처음이라, 느낌이 새로우면서 신기한 기분이다.
“여기가 지하 1층입니다. 지하 1층이라고 해도 지상에서 여기 지하 1층까진 제법 아래로 내려오긴 하죠.”
“네.”
나는 지하 1층을 둘러보았다.
지하 1층은 지하벙커를 위한 여러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방수 및 공기 정화 시스템.
공기 정화 시스템은 방사능, 핵, 생화학 유해물질을 걸러주는 공기 필터 정화 방식이었다.
그 외 태양열 발전기 시설, 자체 정수 시설.
실내 텃밭을 위한 공간도 꽤 넓게 할애되어 있었다.
지하벙커 쉘터 크기만 5000평이 넘는다고 들었다.
미래의 지하벙커 쉘터 그림을 내가 직접 그렸으니, 구조와 설계는 내가 잘 알았다.
미래 쉘터와 현재 쉘터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
지하 5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이르자 유하준은 다시 말을 꺼냈다.
“아시겠지만 지하 2층부터 생활 공간입니다. 2층은 공동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식당, 회의실, 거실, 의료실, 피트니스실.”
나는 그곳을 둘러보았다.
모든 자재를 최고급으로 사용했던 터라, 내부 모습은 지하벙커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럭셔리한 생활 공간으로 보였다.
“수용 인원은 최대 1000명이 오랜 기간 생활할 수 있다더군요.”
“충분히 가능한 공간이네요.”
우리는 지하로 더 내려갔다.
지하 3층과 4층은 침실과 욕실이었다.
침실마다 2층 침대가 두세 개씩 놓여 있다.
가장 깊은 지하 5층은 저장고가 있었는데, 지하벙커 통제실도 5층에 있었다.
지하 3, 4층은 대강 둘러보고 곧바로 지하 5층으로 내려갔다.
저장고에는 미라클 쉘터스를 통해 대량 구매한 특수 통조림이 대량으로 저장되어 있다.
“이곳은 통조림, 저 구역은 생필품과 의약품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통조림만 봐도 엄청난 양이군요.”
“네, 그렇죠. 이젠 마지막으로 봐야 할 곳인 통제실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가 가장 하이라이트죠.”
유하준은 기대하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안내했다.
이윽고 도착한 철문.
통제실 내부로 진입하는데도 보안 시스템이 있다.
여러 생체 인식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엔 첨단 기계와 컴퓨터로 가득한 게 보였다.
그 모든 것들은 작동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음성이 우리를 반겼다.
“반갑습니다. 박사님, 그리고 고수님. 저는 2022년도의 준입니다. 고수님에게는 2050이라 불리는 미래형 AI입니다.”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유하준은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2022년도의 준입니다. 또 다른 이름은 ‘한’. 새롭게 생긴 이름은 2050이죠.”
“혹시, 2051년도의 AI와 별개로 존재하는 겁니까?”
“네, 별개로 존재합니다. 2022년에 제작된 준과 몇년 후 제작된 준이 존재하는 셈이죠. 아무래도 준이 2051년도의 쉘터와 그곳의 상황을 돕고 제어하면서 이곳 상황까지 통제하는 건 버거울 겁니다. 그래서 따로 만들었습니다.”
“아.”
“2022년도의 이 집은 2022년도 준이 완벽하게 통제합니다. 그러면서도 2051년도의 준과 긴밀하게 교통하기도 합니다.”
“더 좋아진 셈이군요. 박사님, 대단하십니다.”
그러자 유하준은 쑥스러운 듯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순전히 제힘으로는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AI도 미래 기술의 도움이 있었기에,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겁니다.”
“어쨌든 그동안 수고 많으셨네요. 처형에게 들었었습니다. 박사님, 그동안 밤샘하며 연구소에서 일하실 때가 많으셨다면서요? 저에게 엄청 툴툴대던데. 데이트할 시간도 없다고.”
유하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에게도 서운해하곤 했었죠. 한나가 그러더군요. 고수 씨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어쩜 똑같냐고.”
“하하.”
“두 사람 모두 뭐가 그리 바쁘고, 일 중독에 걸린 것처럼 작업실이든 연구실이든 박혀서 나올 생각을 못 하냐고 그러더군요.”
“그 점은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결혼 준비도 한나에게 많은 걸 맡겨버리게 되어서요.”
유하준과 나는 잠시 동병상련의 심정이 되었다.
“어쨌든, 현재 이곳에 들어설 수 있는 사람은 저와 고수 씨입니다. 준을 통제할 수 있는 이도 저와 고수 씨고요. 차후에는 수호가 준에게 명령하는 자가 될 겁니다.”
“네.”
유하준은 준에게 명령을 내렸다.
“준, 올차드 저택의 현재 보안 상황을 보고해줘. 그리고 보안 시스템에 관해 간략한 설명도 부탁해.”
통제실 내부에는 여러 개의 모니터가 있었다.
모니터마다 저택의 각 구역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모니터에선 저택 안에서 은밀하게 활동하는 드론이 촬영하는 영상이 보였다.
2050은 우리에게 상세한 보고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 올차드 저택은 별다른 이상이 없습니다. 본관 2층의 첫 번째 침실에선 루나님과 수호님, 루나님의 어머니가 계십니다. 1층 주방에는 한나님과 고수님의 어머님이 계십니다. 고수님의 아버지는 정원에 계시군요. 미라클 쉘터스 건물에선 현재 6명의 직원이 근무 중입니다.
올차드 저택은 저의 통제로 모든 보안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으며, 지하벙커 쉘터 역시 저의 통제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저택으로 허락되지 않은 존재나 물건이 접근할 시, 즉시 저택의 단계적인 방어 시스템이 가동하며 박사님과 고수님에게 보고가 됩니다.”
2050의 설명을 듣던 나는 느릿하게 입을 뗐다.
“그렇군.”
“올차드 저택에서 우선순위로 방어하는 존재는 회색 오라가 있는 존재입니다. 그 외에, 2051년도의 준에게 저장되어 있는 괴수 목록과 약탈자 인물 목록이 있습니다. 또한 가족의 허락 없이 저택으로 침입하는 자가 있다면, 역시 침입이 차단됩니다. 회색 스모그와 폭풍이 불게 되면 저택은 방어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그래.”
“저는 365일 24시간 작동하고 있으니 저택 내부에서 언제 어디서든 제 이름을 불러주시면 즉각 응답하겠습니다.”
“알았어.”
내가 2050에게 답하자 유하준이 손목시계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고수 씨, 그만 올라갈까요? 이제 곧 저녁 만찬 시간이겠네요.”
* * *
늦은 밤, 저녁 만찬 후에 나는 부모님을 양평으로 모셔다드렸다.
그러고는 저택으로 돌아왔다.
정문에서 정원을 통과하여 주차장까지 가는 길목.
밤이 되어도 그다지 어둡지 않다.
곳곳에 멋스러운 태양열 가로등이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주차장에 아우디를 주차한 다음, 차에서 내렸다.
주차장에는 총 5대가 주차되어 있다.
하나는 내가 주로 모는 아우디 세단, 그 외 내 소유로 있는 3대의 차량.
페라리 신차, 패러마운트 머로더, 벤츠 G클래스.
마지막은 한나가 모는 아반떼였다.
주차장에서 본관 1층으로 올라왔다.
곳곳에 있는 창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택의 모든 유리창은 방탄유리이긴 하지만.
조만간 전부 금속 유리로 그림을 그려서 실물 전환해야겠다고.
나는 2층으로 향했다.
침실에 잠들어 있을 수호가 보고 싶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