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호랑이, 그리고 수호의 탄생 5
강민철이 내게 물었다.
“저게 무엇입니까?”
“불새입니다.”
“저런 것도 실물 전환이 가능한 겁니까?”
그의 질문에 나는 수호를 바라보았다.
“가능할까? 일부러 불새의 크기를 조금 작게 그렸어. 아무래도 수호는 생물을 실물 전환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조금이나마 실물 전환에 수월하도록.”
“불새를 실물 전환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번 전투는 크게 승산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능할지는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내가 그린 불새는 비둘기보다 약간 작은 수준이었다.
불새라고 하면, 보통은 붉은색으로 타오르는 모습인데.
이건 온전히 푸른빛이다.
욕심을 부려서, 나는 불새를 100장이나 그렸는데.
이걸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일 실물 전환이 가능하다면 적의 탑에 푸른 불꽃을 붙이는 것이 수월해질 테다.
그러면 S급 괴수도 A급 수준으로 떨어질 거라서 우리 측의 피해가 적어질 터.
“지금 실물 전환을 해보겠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고수의 기교와 창조력 수치가 높아서 실물 전환하는 게 가능할지 모릅니다.”
수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금속 유리창이 보이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준. 그림을 이곳으로 옮겨 줘.”
그가 말하자 2050은 3D 디스플레이를 앞쪽으로 보내주었다.
수호는 바로 불새 그림을 실물 전환을 시도했다.
츠츠-
작은 규모이긴 하나 도시를 실물 전환했던 수호였어도.
생명체를 실물 전환하는 건 분명 난이도가 있다.
거기다 불새는 실재하는 동물이 아니고 상상 속의 창조물이라서 실물 전환하는 게 더 버거울 것이었다.
츠, 츠.
비행선 밖 허공 중에 불새가 흐릿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실패해서 그림이 그냥 사라져도 좋으니 수호가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호야, 그만...”
그때 비행선 밖으로 푸른빛 불새 한 마리가 선명한 자태로 날갯짓하는 게 보였다.
내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강민철도 마찬가지.
수호는 환해진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성공했습니다!"
그가 그런 밝은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본다.
늘 감정 표현에 인색하던 녀석이었는데.
그래서 불새보다 수호의 표정에 내 시선이 빼앗겼다.
수호가 내게 말했다.
“두 번째 그림도 실물 전환하겠습니다.”
“괜찮겠어?”
“물론입니다.”
수호가 실물 전환한 불새는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며 비행선 밖에서 비행했다.
꽤 신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강민철은 경이롭다는 얼굴로 불새에 눈을 떼질 못했다.
“믿기지 않습니다. 저런 불새가 존재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
수호는 두 번째 불새 그림도 실물 전환에 성공했다.
그는 조금 피로해진 기색으로 내게 말했다.
“3마리까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3마리의 불새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그래.”
나는 답하며 유리 금속 창밖으로 보이는 불새에 눈길을 줬다.
비행선 밖으로 무인 전투기 70대가 뒤따라 비행하고 있다.
듣기로는 무인 전투기와 전투 드론을 조종하는 팀의 인원도 70명 정도 된다고 들었다.
그들 역시 여기 비행선에 탑승하고 있는 거다.
나는 지휘 통제실 내부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보이는 비행선 바깥 풍경으로 시선을 옮겼다.
척박함을 넘어서서 위험하고 암울한 풍경.
시커멓게 변색 된 땅과 괴식물, 검붉은 하천.
하늘은 짙게 불길한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다.
그때 2050의 음성이 들려왔다.
“전투 돌입 40분 전입니다.”
나는 저 불새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저 텔레파시를 보내듯 생각만으로 불새들을 다스릴 수 있었다.
“수호야, 먼저 불새들을 출격할게. 이건 내 짐작이지만 괴수들은 불새들을 쉽게 저지하지 못할 것 같아. 푸른 불꽃은 저 괴수들에게 상극일 테니.”
“네, 그렇게 하십시오.”
내가 적의 탑들을 찾기를 원하자 불새들은 즉각 반응했다.
비행선 주변을 날던 불새들이 갑자기 날갯짓하며 비행선을 앞서서 날기 시작한 것이다.
내 생각과 의지만으로도 명령을 듣는 듯했다.
참 신기할 따름.
우리가 탄 비행선이 적의 영역에 가까워지는 동안.
불새들이 적의 탑에 먼저 도착해서 탑을 태울 것이었다.
잠시 후, 2050이 전투 임박을 알렸다.
“6분 후 적의 영역에 도착합니다. 전투 임박 4분 전입니다.”
저만치, 커다란 몸집의 공중 괴수들이 시커멓게 무리를 이룬 게 보였다.
쿠에에에에엑!
그리고 저 멀리, 거대한 탑 하나가 푸른 불길로 타오르는 게 보였다.
3마리의 불새 중에 1마리만 비행선 쪽으로 돌아왔다가 다른 탑을 찾아 날아가는 듯했다.
아마도 2마리는 소멸했나 보다.
그래도 다행이다.
적의 탑을 태워버릴 수 있어서.
푸른빛의 불새.
크기가 작고 숫자가 적어도, 그 존재가 괴수들에게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괴수들은 유독 푸른 불꽃에 약해서 쉽사리 불새에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불새는 푸른 불길을 퍼트릴 수 있었다.
조금 있으니 2050이 우리에게 또다시 알렸다.
“수호님, 괴수들의 이목이 우리에게 쏠린 사이, 방금 초소형 드론이 높은 고도에서 적의 영역을 촬영했습니다. 적의 탑 5개에 푸른 불꽃이 붙었습니다. 탑의 파괴율 50%입니다. 방금 마지막 탑에 푸른 불꽃이 붙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불새는 소멸했습니다.”
수호는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전투 돌입한다.”
그러자 2050과 강민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소형 미사일 30발을 공중 괴수에 조준 완료했습니다. 발사합니다.”
“무인 전투기와 조종팀 출격합니다.”
* * *
이번엔 아바타 접속해 있던 시간이 제법 길었던 것 같다.
몸이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작업실에 켜둔 3D 디스플레이를 확인했다.
화면엔 분할 영상이 나타나 있다.
작업실과 루나의 거처를 살피는 드론이 보내온 영상이다.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인다.
나는 조금 전 2051년도에서 있었던 전투를 떠올렸다.
다행히 중국에서 벌였던 전투는 가까스로 적을 괴멸하고 끝낼 수 있었다.
전투 도중, 무인 전투기를 절반 넘게 잃고 전투 드론도 대부분 잃기도 했었다.
적의 탑이 파괴되어 공격력과 방어력이 한 단계 낮아졌음에도 여전히 강했던 S급의 괴수.
그것을 상대할 때는 아찔하기도 했었다.
비행선이 공격당해서 추락할 정도로 파손되기도 했었지만.
내가 파손된 부분을 보완하는 그림을 그려서, 수호가 실물 전환한 덕분에 위험한 순간을 모면하기도 했다.
내 작업 속도가 시간을 21배속으로 돌린 만큼이나 빨라서 가능했던 일.
만일, 속도 스탯이 14나 15 정도였으면 도중에 손쓰는 게 어려웠을 거다.
어쨌거나 인명 피해 없이 전투는 끝이 났다.
나는 재능 스탯을 확인했다.
『명화 작가 40레벨
명화 시간의 고리 : 22
기교의 주인 : 21
실행 창조력 : 13
그랜드 코인 : 4073.』
전투에서 정복했던 영역은 두 군데였다.
중국의 J와 Y구역.
공중 괴수 중에서는 강한 괴수들을 상당수 괴멸했던 터라.
수호와 나에게 보상이 많이 주어졌던 것 같다.
스탯이 ‘4’포인트나 올라갔고 그랜드 코인도 꽤 들어왔다.
나는 실행 창조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펜을 꺼내 손으로 쥐고 타블렛 디스플레이를 활성화했다.
그러고는 작업실에 필요했던 가구를 그림으로 그렸다.
현재 작업실에 있는 것보다 더 좋은 탁자와 의자였다.
그걸 그린 다음, 완성하여 실물 전환을 시도했다.
이윽고, 내 시야가 새하얀 빛으로 짧은 순간 물들더니 그림이 사라졌다.
그리고 눈앞에 탁자 하나가 홀연히 나타났다.
호두나무 통 원목으로 제작된 긴 테이블.
이런 탁자는 돈 주고 사려면 꽤 비싼 거로 알고 있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는 의자들도 실물 전환을 했다.
이전에 급하게 샀었던 탁자는 능력을 시험해볼 겸, 그냥 지워야겠다.
가능하려나?
나는 탁자가 없는 작업실 공간을 타블렛 디스플레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작업한 후에 그림이 완성되자, 실행 창조력 발현을 시도했다.
츠, 츠-
뭔가 능력 발현이 버거워질 때면,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듯하다.
내가 지워야 할 탁자가 차츰 흐릿해지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방금 ‘유’에서 ‘무’로 되돌려 버린 것이다.
나는 기분이 묘해져서 탁자가 사라진 곳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림을 그려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도 경이로웠지만.
‘유’를 ‘무’로 되돌려버린다는 것은 놀랍다 못해 무섭기까지 한 능력인 것 같다.
나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저녁 8시 반.
루나가 기다리겠다.
저녁도 못 먹어서 몹시 허기진다.
집에 가면 곧바로 먹을 수 있도록, 루나와 내가 좋아하는 메뉴로 배달을 주문을 한 후.
서둘러 작업실을 나섰다.
* * *
며칠이 지나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이브 날에 수호가 태어났던 것이다.
루나와 수호는 다행히 건강했고.
내 부모님과 루나의 어머니, 한나까지. 다들 기뻐해주었다.
수호가 태어나는 순간은 영상으로 담았었다.
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
그것도 나를 닮은 아이가 세상에 나서 첫 숨을 쉬고 첫울음을 터뜨렸다는 사실이...
경이로우면서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 일었다.
25일 오후, 신생아실.
나는 태어난 지 하루 지났을 뿐인, 눈도 못 뜬 수호를 품에 안고서 눈가가 촉촉해지고 말았다.
어쩐지 울컥하는 감정도 들었던 탓.
한나가 이런 내 모습을 밖에서 촬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면회 시간이 끝나서 내가 신생아실을 나오자 한나가 물었다.
“호호, 제부. 조금 전에 울었죠?”
“울기는. 누가 울었다고.”
“눈가가 글썽글썽한데요?”
“그보다 내 말이 맞았죠? 내 아들, 나보다 잘 생겼다니까.”
“그건 인정할게요.”
한나와 나는 이제 서로를 부르는 호칭과 어투가 달라져 있다.
“나는 잠깐 뭐 좀 사러 갔다 와야겠어요. 루나 부탁해요.”
“네, 걱정 마요.”
나는 병원 내에 있는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필요한 물품을 고르고 있는데.
까톡!
2050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 2050 : 고수님, 지금 신생아실로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고수 : 왜?
- 2050 : 의료진 중에 회색 오라가 나타난 사람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가 방금 신생아실로 들어섰습니다.
- 2050 : 저는 공격이나 방어를 하기 위해 드론으로 전기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다른 신생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까톡을 본 순간,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편의점을 뛰어나가 내달렸다.
아, 제발...
달리면서 한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질 않는다.
이제 태어난 수호는 아직 무력하다.
신생아실에 그 아이를 보호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아포칼립스의 원흉에게 조종당하는 자가 여기까지 접근하는 동안, 어떻게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그보다, 만일 수호를 잃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포칼립스를 막을 수 없게 되는 건가?
아니면, 내가 있는 능력이나 블랙카드의 존재에 문제가 생기는 걸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 모든 것보다 수호를 잃으면 나는 견딜 수 없을 거라는 생각만 든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수가 없어서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황급히 달리느라 숨이 막히는 게 아니다.
아들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시간을 붙들어 놓고 싶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내가 신생아실에 이르자 창문을 통해 흰 가운을 입은 한 남자가 보였다.
간호사가 그를 저지하자 그는 간호사를 밀쳤다.
그에게 회색 오라가 나타난 게 보였다.
그의 손에 주사기 하나가 들려 있다.
그가 수호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놓으려는 찰나!
내 뇌리에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명화 시간의 고리’ 능력.
그 능력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즉시 능력을 발현했다.
그러자 내 시야가 번뜩 새하얀 빛으로 물들면서 이 세계에서 흐르던 시간이 무언가에 붙들린 듯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