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호랑이, 그리고 수호의 탄생 3
잠시 후, 나는 작업실에 도착해서 아바타 접속을 했다.
내게 선 곳은 2051년도의 쉘터.
로비의 벽에 걸린 커다란 그림에 눈길을 줬다.
정말 내가 그린 그림이 맞다.
불과 얼마 전에 그린 그림인데.
이곳에선 유리 금속으로 표구가 된 채, 수십 년이 지난 그림으로 변모해 있다.
나는 그림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림이 달라졌네.”
곁에 선 수호가 답했다.
그는 스마트 안경을 쓰고 있었다.
“네. 아버지는 도중 그림을 수정하셨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수호는 담담히 그림만 보고 있다.
“보니까 크기가 달라졌어.”
“네. 실물 전환한 모습은 초창기 모습에 비하면 크다고 하더군요. 무려 높이가 3미터가 되고 길이는 8미터 정도 된다고 들었으니까요.”
“옆에 세발자전거 그림이 있네. 호랑이 옆에 있으니 조그만 장난감 같은걸.”
“호랑이의 크기를 나타내기 위해 그린 것 같습니다. 호랑이가 전투 후에, 부상을 입거나 털이 더러워졌을 경우, 아버지는 그림으로 되돌린 후 수정 작업을 해서 본래 모습을 원상복구 하시곤 했었습니다.”
우리는 잠시 호랑이 그림을 보다가 지휘관 실로 장소를 옮겼다.
지휘관 실에는 3D 디스플레이가 활성화되어 있는 게 보였다.
AI의 기계적인 음성이 우리에게 흘러나왔다.
“방금 드론이 한반도 상공에 떠 있는 ‘멸망의 별’을 촬영해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2050이 디스플레이에 입체적인 사진을 띄웠다.
그러자 멸망의 별 사진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멸망의 별이라는 것을 처음 보는 셈이다.
“저게 멸망의 별?”
2050이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크기가 얼마나 되지?”
“100미터가 넘는 크기였는데, 최근 힘이 약화하여서 40미터로 줄어들었습니다.”
“줄어들기도 해?”
“힘이 약해지면 멸망의 별 크기가 줄어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반도에 있는 별처럼 크기가 절반이 넘게 줄어든 경우는 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렇군.”
“아마도 한반도의 적을 다 제거했던 일로 영향을 받아 별이 약해진 것입니다.”
멸망의 별은 붉은 회색빛의 커다란 암석 덩어리처럼 보였다.
표면이 울퉁불퉁했고 생김새가 어딘지 불길한 느낌을 주었다.
수호가 내게 입을 열었다.
“멸망의 별이 약해진 지금이 제거할 적기입니다. 다시 회복하기 전에 제거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 실물 전환 능력은 아직 천체에 영향을 줄 만큼 되지 않군요.”
“이대로 멸망의 별을 놔두면 어떻게 되는 거지?”
“멸망의 별이 힘을 회복하게 될 수 있습니다. 여전히 한반도에 회색 스모그나 폭풍이 불 테고. 그리되면 다시 적이 나타날 가능성이 생깁니다.”
나는 한동안 별 사진을 들여다봤다.
별을 지우려면 별이 있던 공간을 하늘 풍경으로 대체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수호가 실물 전환을 해야 대상은 하늘 풍경이 되는 것.
하지만 수호의 능력은 천체에 영향을 줄 만큼 되지 않다.
하늘은 이곳에선 볼 땐, 그저 붉은 빛이 도는 풍경일 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곳은 지구보다 큰 스케일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수호의 능력은 하늘의 상태를 바꿀 만큼의 수준에 오르지 못했다.
나는 사진을 보며 입을 뗐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되겠네.”
“무슨 방도가 있겠습니까?”
“실물 전환 능력 범위에 하늘이 들어가지 않게 하면 되는 거지. 내가 멸망의 별만 그리면 돼.”
“네?”
수호가 반문하자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멸망의 별만 고대로 그리되, 바사삭 깨진 모습으로 그리면 되지 않을까?”
“아.”
“그게 아니면 별의 재질을 다른 거로 바꾼다거나. 전에 그랬었지? 멸망의 별은 다이아몬드보다 강해서 미사일로도 깨뜨리지 못했었다고.”
“아마도 별의 재질을 다른 거로 바꾸는 거는 어려울 듯합니다. 멸망의 별을 제거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별 자체에 힘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물 전환하는 제 능력이 별의 힘과 능력을 압도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실패할 겁니다.”
“그렇군.”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얼굴을 했다.
“그렇다면 수호야, 이렇게 하자. 내가 멸망의 별 그림을 여러 개 그릴게. 첫 번째 그림은 약간 금이 간 수준으로 그리고, 두 번째 그림은 좀 더 갈라진 모습으로 그리고. 그렇게 차츰 파괴되는 별을 그리는 거지.
그러다 마지막 그림을 그릴 즈음엔 별이 상당히 파괴된 상태라 힘이 쇠락해 있을 거야. 그때 별의 재질을 바꾸어 그려서 실물 전환을 하는 거야. 너는 첫 번째 그림부터 단계적으로 실물 전환을 해보는 게 좋겠다.”
“그러는 게 좋겠군요.”
“실물 전환에 성공하면 그때마다 멸망의 별 사진을 내게 보내줘.”
“네, 그러겠습니다.”
* * *
나는 그날, 집에서 자정까지 멸망의 별 그림을 그렸다.
작업실이 아닌 집에서 작업한 이유는, 임신한 루나를 홀로 집에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3D 디스플레이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서.
집에 있던 타블렛을 켜두고 다른 방에서 그림을 그리는 척했다.
어쨌거나 수호는 조만간 중국에서 전투가 있을 거라고 하니, 그 전에 멸망의 별을 제거하면 좋을 듯했다.
17배속의 속도로 그리는 거라서 그림 완성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림 한 개를 완성한 후, 2050에게 넘겼다.
어느 순간부터는 2050의 분석 과정이 없어졌다.
내 그림 기교 수준이 따로 보완 작업을 거치지 않을 만큼 높아진 탓.
- 2050 : 수호님이 지금 실물 전환을 시도하러 나가셨으니, 멸망의 별을 찍은 사진을 조만간 보내드리겠습니다.
- 2050 : 방금 완성한 그림이 실물 전환에 성공한다면, 멸망의 별은 곳곳에 금이 간 모습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 고수 : 그래.
나는 그렇게 답하고는 거실로 나와 소파에 몸을 뉘었다.
조금만 눈을 붙여야겠다.
* * *
10월의 어느 날.
잿빛 소년은 출국하기 위해 다시 인천 공항을 찾았다.
한국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아포칼립스의 시작은 유럽이 될 거고.
그곳에서 모든 걸 준비해야만 한다.
소년은 그를 뒤따르는 남자 세 명을 돌아보았다.
남자 세 명에게는 기묘하게도 은은한 회색빛 오라 같은 게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주 옅어서, 지나는 사람들은 회색 오라를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가곤 했다.
소년은 남자들을 무심하게 응시하더니 탑승 수속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 명의 남자들은 멍하니 서 있다가 각자 자기 길로 흩어졌다.
* * *
그새 달이 바뀌어 11월이 되고나니, 날이 쌀쌀해졌다.
이제는 거리에 낙엽이 바람에 굴러다니곤 한다.
그렇게 날짜가 바뀌는 동안.
마침내, 2051년도 한반도에 있는 멸망의 별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멸망의 별을 총 다섯 차례 그림을 그렸었다.
네 차례는 별에 금이 가며 부서지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었고.
그래서 별의 기운이 쇠락한 마지막은 별의 재질을 돌로 바꾸어 그렸다.
다행히 수호는 모두 실물 전환에 성공해서 미사일로 날려 별을 파괴했다.
그 광경은 영상으로 촬영했는데, 조만간 내게 보내준다고 했다.
나는 일단 내 재능 스탯을 확인했다.
『명화 작가 39레벨
명화 시간의 고리 : 21
기교의 주인 : 20
실행 창조력 : 10
그랜드 코인 : 5209.』
재능 스탯을 본 내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스탯이 무려 ‘12’나 올랐던 것이다.
그랜드 코인도 많이 들어와 있다.
거기다 재능 명칭도 달라진 게 보였다.
시간의 고리? 기교의 주인?
달라지지 않은 건 창조력뿐.
코인은 창조력을 한 번 더 업그레이드하기에 충분하다.
나는 4056 그랜드 코인을 소모하여 능력을 올렸다.
『명화 작가 40레벨
명화 시간의 고리 : 21
기교의 주인 : 20
실행 창조력 : 11
그랜드 코인 : 1153.』
수치가 올랐지만 창조력 명칭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능력을 한 번 시험해봐야겠군.
나는 작업실에 서서 3D 타블렛 디스플레이 크기를 작게 줄였다.
그러고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소음기 장착한 K5 권총.
내 작업 속도는 21배속 정도로 빨라졌다.
21배속이 되니까 확실히 속도가 달라진 게 체감이 되었다.
이 정도 속도로 작업을 몰아붙여도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참 신기할 따름.
하지만 내 두뇌가 그만큼 빠르게 일해야 하는 거라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게 소모된다.
권총 그림은 금세 완성이 되었다.
창조력 스탯이 11이 되었으니 실물 전환은 가능할 테다.
권총 그림을 실물 전환 시도하자.
내 시야가 환한 빛으로 짧은 순간 물들었다가 그림이 사라지고.
탁자 위에 권총 한 개가 나타났다.
“오! 되네.”
나는 권총을 한 번 이리저리 살펴보며 신기해하다가, 그걸 다시 그림으로 되돌렸다.
이내, 내 손안에 있던 권총은 홀연히 사라지며 그림으로 되돌아갔다.
그때 까톡 알림이 들려왔다.
까톡!
핸드폰을 확인하니 2050이다.
- 2050 : 고수님, 멸망의 별 파괴 영상 파일을 보내드립니다.
나는 곧바로 이메일을 열어 2050이 보낸 영상을 확인했다.
디스플레이를 터치해서 작업실을 가득 채울 만큼 크게 확대했다.
이내 입체적인 풍경과 생생한 음향이 작업실을 가득 메웠다.
도시 내부의 풍경이 보였다.
도시라 해봤자 규모가 작은 그곳.
도시 중앙에 있는 드넓은 광장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다.
광장 위로는 대형 3D 디스플레이 3개가 허공에 떠 있다.
3개 모두 수호의 얼굴이 비쳤다.
수호는 사람들에게 고양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이제 곧, 여러분은 한반도에 떠 있던 멸망의 별 최후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제껏 우리는 세상에 닥친 멸망에 절망하면서도 그것을 거스를 생각조차 못 한 채 오랜 세월을 보내왔었습니다. 그 누구도 멸망의 별을 깨뜨릴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끝이 난 지 오래이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반도 내의 적을 모두 멸하였으며, 그들의 점령한 땅을 정복하여 되찾았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들을, 우리는 하나씩 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멸망의 별 파괴를 앞두고 있습니다.”
2만 명 가까이 모인 군중들.
이들은 한반도에 남은 생존자들이었다.
그들은 술렁이며 웅성거렸다.
“오늘 정말 멸망의 별을 파괴한다는 게 사실이에요?”
“믿기지 않아요. 정말 가능한 일이에요?”
“제발, 그런 꿈 같은 일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멸망의 별이 사라지면 이제 한반도에선 회색 폭풍이 불지 않게 되는 거잖아요.”
“회색 폭풍이 없고, 자연이 회복된 땅.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공중에 뜬 3개 디스플레이 중에 2개가 멸망의 별 모습을 비추었다.
드론이 공중에서 멸망의 별을 촬영해서 영상을 보내오는 것이다.
사람들이 소리쳤다.
“저길 봐요! 멸망의 별이 이미 파괴되어가고 있어요!”
그들은 여기저기 금이 바사삭 간 별을 목도했다.
지름이 40미터 크기로 줄어들어 초라해 보이는 멸망의 별.
“정말 멸망의 별이 파괴되고 있어요! 세상에!”
사람들이 동요했다.
몇몇은 크게 감동했고 또는 흥분했다.
수호는 군중의 반응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는 다시 목소리를 냈다.
“이제 곧, 멸망의 별을 파괴할 미사일을 발사합니다. 우리는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미사일로 별을 여러 조각으로 나눌 거고. 초소형 미사일을 수차례 쏴서 더 조각조각 나눌 겁니다. 조만간 우리는 멸망의 별이 여러 조각을 난 채로 아래로 추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별의 무수한 조각들은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타버리게 될 겁니다.”
그러자 흥분한 군중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들끓어 올랐다.
“파괴해요!”
“멸망의 별 파괴!”
“파괴해요!”
3개 중 나머지 한 개 디스플레이의 장면이 바뀌었다.
여러 대의 무인 전투기가 비행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광경에 들끓던 광장이 한순간에 고요해졌다.
사람들의 이목이 비행하는 전투기에 집중되었다.
곧, 누군가 초읽기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미사일을 발사합니다. 3, 2, 1.”
쿠구구구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