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호랑이, 그리고 수호의 탄생 2
2051년도의 쉘터.
테이는 쉘터의 로비를 지나다가 걸음을 우뚝 멈추어 섰다.
그녀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로비의 한쪽 벽면에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츠츠-
테이는 동그랗게 떠진 눈으로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벽면을 바라보았다.
분명,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던 벽면이었는데.
그곳에 커다란 그림이 나타나 있다.
츠, 츠츠-
그림 앞에는 박석훈이 홀연히 나타났다.
그 역시, 이곳에 없었던 존재.
죽었어야 할 인물.
과거의 시간이 비틀려 미래가 변한 거다.
테이는 그림을 보며, ‘어?’ 하고 말을 내뱉었다.
2023년도 12월.
아포칼립스가 나타났을 무렵에, 고수가 쉘터로 가져왔던 그림.
본래는 청와대 본관에 걸려 있던 그림이다.
은백색 호랑이가 한반도 지도 모양으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테이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그림을 보면서도 그 그림이 이곳에 있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던 그림으로 기억하게 되는 거다.
그림 앞에는 박석훈이 서 있다.
그는 로비에 걸린 커다란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얼굴과 왼팔의 피부 일부가 어두운 회색으로 약간 변색해 있다.
마치 화상 입은 흉터처럼 약간 울퉁불퉁하기도 하다.
2023년도 12월, 그날에 회색 폭풍은 피했었으나 스모그에 오래도록 노출되었던 탓에.
그의 피부 일부가 변형이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 증상이 미약했고, 쉘터로 와서 치료를 지속해서 받은 덕분에 신체 변형은 멈출 수 있었다.
박석훈은 그림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는 오래 전의 일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탈출하던 그때, 그는 차 안에서 고수에게 물었었다.
“당신, 누굽니까? 쉘터라니요? 거긴 어디죠? 그리고 저 밖에 있는 호랑이는 대체...”
“내 이름은 고수입니다. 화명으로는 애플 수라고 합니다.”
“네? 애플 수요? 당신이 애플 수?”
“네. 청와대 본관에 걸린 그림, 제가 그렸습니다.”
“근데 저 호랑이는 어떻게 된 거죠? 호랑이가 아직도 차 밖에서 따라오는군요.”
“그림이 실물로 변한 겁니다. 물론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저 호랑이는 나로 인해 창조된 존재라서, 나를 주인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네요.”
“주인이요? 창조?”
“네. 저 호랑이는 내 의지와 생각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 의지대로 조금 전에 우리를 보호하고 적과 싸운 겁니다.”
“하, 어떻게 그런 일이...”
박석훈은 거기까지 생각하다 그를 보고 있는 테이에게 눈길을 돌렸다.
원래 죽을 운명이었지만 고수를 만난 기점으로 그의 운명이 바뀌어 흘러서.
이 순간, 그는 살아있다.
쉘터민 중 한 명이 되어 테이를 바라보고 있는 거다.
박석훈은 테이를 본 순간, 그녀와 함께 지내왔던 기억들이 뇌리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그는 테이를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테이 씨,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 * *
오늘은 침대에서 늦게까지 머물렀다.
여전히 잠에 취해 있는데, 내 입술에 뭔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나는 느리게 눈을 떴다.
눈앞에 말간 얼굴의 루나가 보였다.
그녀는 내가 눈을 뜨고 보자 생긋 웃었다.
“오빠, 오늘은 저보다 늦게 일어나네요?”
“응.”
“아침 같이 먹을래요? 어제 엄마가 잠깐 집에 들러서 이것저것 만들어주고 가셨어요.”
나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그래. 같이 아침 먹자.”
“그럼 씻고 나와요.”
루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침실을 나갔다.
나는 몸을 일으켜 습관적으로 핸드폰과 내 재능 스탯, 코인을 확인했다.
수호와 2050에게서 온 톡은 없다.
근데 평소와는 달리 오늘은 그랜드 코인이 꽤 많이 들어온 게 보였다.
『명화 작가 38레벨
명화 시간 : 17
명화 기교 제어 : 16
실행 창조력 : 5
그랜드 코인 : 2180.』
나는 미간을 좁히며 코인을 한동안 들여다보고 있다가, 핸드폰을 들고 수호에게 톡을 보냈다.
- 고수 : 수호야, 지금 보니까 코인이 갑자기 많이 들어왔는데. 이건 왜 그러지?
내가 묻자 수호는 곧바로 답변을 해왔다.
- 2050 : 제 기억 중 일부가 달라진 게 있었습니다.
- 고수 : 달라진 기억?
- 2050 : 최근, 청와대에 걸게 될 그림을 그렸죠?
- 고수 : 응.
- 2050 : 아마도 호랑이 그림 덕분인 것 같습니다.
- 고수 : 호랑이 그림?
- 2050 : 그 그림 속의 호랑이 덕분에 살게 된 사람들이 꽤 됩니다. 고수는 아포칼립스가 시작될 무렵, 청와대의 그림을 실물 전환했었습니다.
- 2050 : 그래서 그 호랑이는 2026년도까지 쉘터에 머물며 많은 활동을 하며 적을 사냥했습니다.
- 고수 : 2026년도까지?
- 2050 : 네. 그때까진 고수가 있었으니까요. 그 호랑이는 고수의 명령에만 움직였습니다.
- 고수 : 내 명령에만 움직인다라...
- 2050 : 호랑이는 고수를 주인으로 인식하며 영향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고수의 감정과 생각에도 영향을 받았었다고 들었습니다.
- 2050 : 호랑이가 적을 사냥했던 결과와 호랑이 덕분에 살게 된 사람들로 인해 그랜드 코인이 추가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 고수 : 그렇군. 그거참 신기하네.
내가 그린 호랑이를 실물하여, 그 호랑이가 내 명령만 듣는다니.
신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의아한 구석도 있다.
- 고수 : 근데 2051년도에서 나에 관한 건 변한 것이 없는 거지? 나는 여전히 2026년도에 죽은 인물인 거고?
- 2050 : 네.
2023년도에 내가 동물을 실물 전환할 정도로 능력이 제법 올랐다면...
2026년도에 굳이 목숨을 불사를 필요가 없을 텐데.
수호의 시간에서, 나는 여전히 2026년도에 죽은 인물이다.
왜지?
“아!”
불현듯, 누가 일러준 것이 아닌데도, 의문에 대한 해답이 내 뇌리에 스쳤다.
그때의 선택이 지워지게 된다면, 지금의 혜택도 사라지기 때문이구나.
2026년도에 목숨을 불살라서 능력을 증폭했던 내 선택.
그 일이 수호의 시간에서 사라진다면, 현재 누리고 있는 능력의 혜택도 사라지게 되는 거다.
공짜로 얻어지는 능력이 없고.
거저 얻어지는 열매도 없기에.
현재, 시간을 거스르고 과거와 미래에 간섭하게 되었어도.
그 사건만큼은 변하지 않은 채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미 바뀐 미래라 해도, 내가 2026년도의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미래를 바꿀 근원적인 촉발이 없어지는 셈.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2026년도까지 시한부 인생이 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짓다가 어떤 생각에 도달했다.
침실의 허공을 응시하던 내 눈빛에 결연함이 어렸다.
2026년도 전까지 아포칼립스의 원흉을 제거하면 된다.
그리되면, 2026년도에 하게 될 선택은 필요하지 않게 될 터.
까톡!
메시지가 들어오는 알림 소리에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 2050 : 그림 속 호랑이는 고수의 영향을 받아서, 쉘터민들에게 든든한 수호 동물이 되었지만. 고수가 없다면 위험한 맹수가 될 뿐이었습니다.
- 2050 : 그래서 고수는 그 호랑이를 그림으로 되돌렸고. 현재까지 쉘터에 보관 중입니다.
- 고수 : 그랬군.
나는 그렇게 답하다가 최근에 찍은 태아 초음파 사진을 까톡으로 보냈다.
수호가 루나의 뱃속에서 8개월째 되면서 찍은 초음파 사진이다.
추석 때 가족끼리 양평에서 찍은 사진도 첨부했다.
내 부모님이 태아 초음파 사진을 보고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이다.
- 고수 : 수호야, 점점 성장해가는 널 보며 우리는 모두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있어. 너에겐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
- 고수 : 너는 잠시 가족과 떨어져 있는 거로 생각해.
- 2050 : 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덕분에 회색빛이던 내 기억이 따뜻한 빛깔로 덧칠해지고 있습니다.
몇 달 전과 비교하면 수호는 제법 변한 것 같다.
용건만 간단히 대화하고 먼저 사라져버리거나 대답을 안 하거나 하는 태도는 사라졌다.
나는 홀로 빙그레 미소지었다.
그때 침실 문이 열리며 루나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오빠, 뭐해요? 아직 안 씻었어요? 밥 다 차려놨는데.”
“응, 금방 나가.”
나는 답하고는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창조력을 업그레이드했다.
그랜드 코인 ‘2028’이 소모되었다.
『명화 작가 39레벨
명화 시간 : 17
명화 기교 제어 : 16
실행 창조력 : 6
그랜드 코인 : 152.』
* * *
며칠의 시간이 별 탈 없이 흘러갔다.
어느덧 가을의 빛깔은 모든 곳에 짙어졌다.
루나의 배는 제법 불러서 몸이 꽤 무거워졌다.
12월이 예정일.
수호가 태어나는 건 아마도 크리스마스 그즈음이 아닐까 여겨진다.
나는 오전 무렵, 유하준의 연구실에 들렀다.
유하준의 연구실은 미라클 쉘터스에 속한 연구소 건물에 있었다.
그는 박사 학위를 받고 졸업한 후에, 이전에 했던 약속대로 미라클 쉘터스에 소속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던 터다.
유하준을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던 중,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소개해줄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온 의학자인데, 이 사람은 그 분야에 탁월한 사람입니다. 그라면 회색 변이에 관해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낼 겁니다.”
“회색 변이요?”
“그는 회색 변이 치료제와 백신 연구에 성과를 낼 인재입니다.”
회색 변이에 관해선 얼마 전에 유하준에게서 들었었다.
회색 변이란, 회색 폭풍에 노출된 생명체가 괴생명체로 변이되는 것을 말하는 거였다.
아포칼립스의 괴식물과 괴생명체는 회색 변이의 결과물이었다.
보통 회색 폭풍에 장시간 노출되면 전부 사망에 이르게 되는데.
어느 정도 몸집이 있는 생명체는 변이가 일어난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다.
작은 생명체는 대부분 사망으로 끝나고 변이가 나타나지 않는 거다.
나는 유하준이 건넨 의학자의 이력서와 관련 문서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이름이 ‘존’이군요. 이 사람, 만나볼게요. 이 사람이 치료제와 백신을 연구할 수 있다는 거죠?”
“네.”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보다 박사님, 처형과 결혼하신다면서요?”
그러자 유하준은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네. 12월이면 처제의 출산 예정일이기도 해서, 3월로 결혼식 날짜를 잡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결혼하시면, 신혼집은 어떻게 하실지 생각해보셨어요?”
“그러잖아도 그 부분을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한나는 처제와 고수 씨에게 폐를 끼치고 싶어 하지 않아서요.”
“루나가 이미 처형 내외와 부모님이 지내실 침실까지, 전부 꾸며놨어요. 당장 같이 지내지 않아도, 2023년 겨울이 다가오게 되면 거처를 옮겨야 할 겁니다.”
“네, 물론입니다.”
“과수원 땅에 건축되는 건물 말고도, 그 옆에 건축되는 미라클 쉘터스 한국지부 건물도 완성되어 가고 있어요. 거기서 테이 씨와 그 외 직원이 일하게 될 겁니다. 박사님은 기계 공학 연구 센터를 관리해주시면서, 그곳과 오가며 일해주셨으면 합니다.”
“예.”
미라클 쉘터스 직원은 지하 벙커 관련 기술자라서, 만일 아포칼립스의 상황에 이른다면 쉘터에 필요한 인재들이었다.
연구원들 역시 마찬가지.
그래서 쉘터 건물 옆에 건축했다.
“그 건물은 언제 완공이죠?”
“음, 10월 말이면 완공될 겁니다.”
“얼마 안 남았군요. 미리 준비해두겠습니다. 참! 일전에 부탁하셨던 드론 개조가 완성되었어요.”
유하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초소형 드론 10대를 금고 같은 데서 꺼내 왔다.
드론을 본 나는 빙긋 웃으며 그에게 답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박사님.”
잠시 후, 연구소 건물을 나와 주자창에 있는 아우디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확인하니 AI 2050에게서 톡 메시지가 와 있다.
- 2050 : 고수님, 블랙카드 31레벨에서 그릴 사진 자료는 2051년도에서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 2050 : 오늘 아바타 접속이 가능하십니까?
- 고수 : 가능해. 그런데 왜 사진 자료를 직접 보여준다고 하는 거지?
- 2050 : 이번에 제가 보여드릴 사진 자료는 2051년, 한반도에 존재하는 멸망의 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