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81화 (81/153)

올차드 팬 미팅

명화 시간의 수치가 ‘1’이 올라가고 코인이 좀 쌓였다.

작업 속도가 좀 줄어들겠군.

나는 핸드폰으로 진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 신호음이 가다가 그가 전화를 받았다.

<어, 왜?>

“진구야, 너 올차드 회장 연락처 알지?”

<응. 이메일 주소를 받아두긴 했지. 근데 왜?>

“올차드 회장이 강민철 회장이던가?”

<어, 맞아. 기업 회장이 팬클럽 회장이래서 듣고 놀랐었어.>

“그 회장과 좀 만나고 싶은데?”

진구는 놀라며 대꾸했다.

<네가? 갑자기 왜?>

“그냥, 그를 만나보고 싶어졌어.”

<기업 회장님이라고 해서 만나고 싶어졌냐?>

“그건 아니지.”

<하긴 올차드는 공식 팬클럽인데 한 번은 만나보는 것도 좋긴 하겠지. 그동안 올차드가 애플 수를 위해 애쓴 것도 있고.>

“옥외 대형 전광판에 올차드가 내 그림 넣었다고 했었지?”

<응. 온라인상에서 네 인지도가 오르는데 긍정적인 역할도 했고. 그 외에도 너와 관련된 일에 앞장선 게 많아.>

“고마운 일이네. 작은 보답 같은 걸 하는 게 좋겠지?”

<올차드에 성의를 보이는 거라면, 회장 한 사람만 만나는 것보단... 아예 팬 미팅을 하는 건 어떨까?>

나는 얼마 전에 애플 수 행세를 했던 남자 3명이 감전사할 뻔한 일을 떠올렸다.

아직은 보이지 않은 적이 오리무중이라서, 팬 미팅을 하는 건 신중해야 할 듯했다.

“팬 미팅은 좀 그런데.”

<왜? 그럼 팬 미팅이 부담스럽다면, 올차드의 핵심 인물만 선택해서 비공개적으로 소규모 팬 미팅을 해도 되겠지.>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 간단했으면 좋겠어. 예산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간단하지만 고급스럽게.”

<그래. 그럼 내가 팬 미팅을 추진할게.>

“아, 그리고 내일 점심때 주혜 씨랑 수연이하고 저녁 먹는다며?”

<응, 너도 올래? 너 오면 다들 좋아할걸?>

“음, 어차피 점심은 먹어야 하니까. 내가 식당 예약해 둘게.”

나는 통화를 끝내고는 펜을 꺼내 손에 쥐었다.

조금 있으니 손에 쥐었던 펜에서 빛이 들어오며 내 앞에 3D 디스플레이가 나타났다.

자료 사진과 타블렛 창을 열면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제 노가다 좀 해볼까?”

* * *

다음 날 점심 무렵에 작업실을 빠져나왔다.

아우디를 끌고 강남에 있는 한식 레스토랑에 이르렀다.

전날에 예약을 해두었다.

이곳은 한식당이지만 레스토랑처럼 와인도 곁들일 수 있었고.

1인당 독상으로 나왔으며 코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점심은 1인당 10만 원.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곳이다.

내가 식당 홀에 도착하자 다들 와 있었다.

진구는 나를 보며 말했다.

“주인공이라 제일 늦게 나타난다는 거냐?”

“미안, 늦었지?”

“고수 씨, 오랜만에요. 이렇게라도 다시 얼굴 보고 밥도 먹게 되니까 너무 좋네요.”

“네, 오랜만입니다. 주혜 씨.”

수연이도 내게 말을 꺼냈다.

작년 이맘때는 단발이었는데 1년 사이 머리카락이 많이 길었다.

살도 조금 빠진 것 같다.

“고수야, 굳이 레스토랑 아니어도 좋으니까. 종종 이렇게 같이 밥 먹으면 좋겠어.”

“그래.”

“근데 팬 미팅한다며?”

“응, 조만간.”

“너 8월 초에 생일이잖아. 그때 맞춰서 팬 미팅을 하면 어떨까? 음, 생일은 가족과 오붓하게 보내고 싶다면, 팬 미팅은 하루만 앞당겨서 해도 되고.”

작년 생일에 수연이가 내 생일 챙겨주려 했던 일이 떠오른다.

진구가 수연이에게 물었다.

“너, 너 고수 생일도 기억하고 있었냐?”

“기억하지. 진구, 네 생일도 기억하는데?”

“역시 너밖에 없다.”

그때 주혜가 내게 말을 꺼냈다.

“팬 미팅은 H 호텔에서 하는 게 어때요? 팬 미팅을 간소하면서도 고급스럽게 진행할 생각이라면, H 호텔 괜찮을 것 같은데.”

“H 호텔이요?”

“아는 사람이 H 호텔 사장이라서 저렴하게 장소 빌릴 수 있거든요. 괜찮다면 제가 생일 선물로 장소 협찬할 의향이 있어요.”

“생일 선물로 받기엔 너무 큰 선물인데요.”

“부담가질 필요는 없어요. 사실 저도 팬이라서 마음 같아선 H 호텔을 통째로 빌려드리고 싶거든요.”

“네?”

진구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주혜 씨, 평소 애플 수라면 앞뒤 안 가리시는 줄 알고는 있었지만. 호텔을 통째로 빌리신다는 건 너무 나가셨는데.”

“호호, 통째로 빌리는 건 그냥 제 마음인 거고요. H 호텔 장소 협찬은 부담 안 가지셔도 돼요. 전혀 안 그래 보이겠지만, 이래 봬도 저 H 그룹 손녀딸이거든요. 저에겐 부담 없는 일이에요.”

“대박, 진짜요?”

“네. 암튼 이번 팬 미팅 기대되네요. 다들 모르죠? 애플 수 추종자 중에 특이한 사람들 얼마나 많은지?”

김주혜가 재벌 딸이라는 건, 내심 놀랍다.

그녀는 재벌 2세 같지 않다고나 할까.

지금도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재미있는 일을 모의하듯 말하고 있었다.

“제가 올차드와 애플 덕후 모임에 다 가입했잖아요. 그래서 아는데, 그들 중에 쟁쟁한 사람도 있고 특이한 사람도 있고 집요한 덕후도 많아요.”

“그래요?”

“애플 덕모의 정모에서는 애플 룩을 입고 모인 적도 있어요.”

“애플 룩이 뭐예요?”

“검정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박스한 티와 진을 입거나, 아니면 화가 작업복을 입는 거죠. 페라리 광고에서 입었던 차림새를 그대로 따라 하거나. 애플 덕모는 젊은 층이 많아요. 반면, 올차드는 연령층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꽤 있고요.”

“헐, 대단하네.”

나는 조금 생각에 잠겼다가 진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진구야, 올차드 회장은 팬 미팅 전에 개인적으로 만났으면 하는데.”

“그래, 연락해볼게.”

“그리고 수연아, 이번에 애플 수 재단에서 또 한 번 기부하려고 하거든. 20억 정도. 국내 소외 계층한테 의료비 지원하는 거로.”

“이번에 또?”

“응.”

그러자 주혜가 내게 물었다.

“고수 씨, 그런 기부 이야기는 제가 기사로 써도 되는 거죠? 최근 58억 원의 그림 수익을 낸 유명 화가. 또다시 통 큰 기부를 하다.”

“네, 물론입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사실, 주혜가 있는 곳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기사가 나가길 바라는 얄팍한 속내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애플 수라는 그 이름.

나는 지속해서 명성 관리를 해야만 한다.

* * *

장마가 끝이 나고 나니 본격적으로 더워졌다.

이틀 이 더 지나는 동안, 수호는 북한 땅이었던 지역의 위험 지역을 대부분 토벌했다.

2051년도의 한반도는 당분간은 안전해진 셈이다.

그러는 동안, 내 재능 스탯은 보상이 더 들어와서 올라갔다.

『명화 작가 36레벨

명화 시간 : 14

명화 기교 제어 : 14

실행 창조력 : 2

그랜드 코인 : 519.』

나는 3D 디스플레이를 활성화하고서 전에 호텔에서 그렸던 커피 한잔 그림을 불러 왔다.

이번에는 될까?

실물 전환이.

나는 전에 서리태 한 알을 실물 전환했던 것처럼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되지 않았다.

실행 창조력 ‘2’의 능력으로는 커피 한잔 그림을 실물 전환하는 게 버거운 거다.

“흠, 커피 한 잔 마시기 쉽지 않네.”

작년 여름, 수호가 블랙카드 2레벨로 인절미 그림을 그리라고 했던 일이 떠올렸다.

그렇다면 실행 창조력의 수치를 업그레이드해야겠다.

마침, 다음 업그레이드 비용은 512 그랜드 코인.

곧바로 재능을 업그레이드하자 스탯이 바뀌었다.

『명화 작가 37레벨

명화 시간 : 14

명화 기교 제어 : 14

실행 창조력 : 3

그랜드 코인 : 7.』

이젠 커피를 실물 전환하는 게 가능하겠지?

나는 그 그림에 실행 창조력을 발현했다.

그러자 내 시야에 순간 하얀 섬광이 스치는 듯하더니.

그림이 사라지고 대신 탁자 위에 커피 한 잔이 나타나 있다.

그림과 똑같은 모습이다.

“와, 이게 되네.”

커피잔을 들어 가까이 들여다봤다.

커피 향이 은은하게 풍긴다.

커피는 차갑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그리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한 번 마셔볼까.

천천히 음미하듯 한 모금 입안에 머금었다.

평범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듯하다.

아니, 평범하지 않다고 해야겠다.

이 정도로 향과 맛이 좋은 커피를 마셔본 적은 별로 없었으니까.

그림 기교가 좋았던 탓일지 모르겠다.

퀄리티가 좋은 그림을 실물 전환한 탓에 질 좋은 커피가 나온 거다.

나는 맛만 볼 생각이었다가 결국 홀짝홀짝 한 잔을 다 마셔버렸다.

우스운 생각이지만 커피 그림을 하나 더 그려서 또 마시고 싶을 정도.

만족스러운 미소가 내 입가에 절로 걸리었다.

띠리리링-

그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려서 확인해보니 진구 전화다.

나는 그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고수야, 강민철 회장에게서 연락받았는데. 언제든 좋대. 네가 좋다면 당장 오늘이라도 시간 낼 수 있다는데? 언제로 약속 잡을까?>

나야 빨리 보는 게 좋지.

“음, 오늘 저녁이나 내일 저녁 뵈었으면 좋겠네. 조용하고 정갈한 한정식집에서. 룸에서 식사하는 게 좋겠어.”

<오키. 오늘 아니면 내일 저녁으로 말할게. 한정식집은 내가 적당한 곳으로 예약 잡을게.>

“그래, 고맙다.”

나는 통화를 끝내고선 3D 디스플레이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곳에 2050이 조종하는 드론의 영상이 6개의 분할 영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드론으로 나와 루나, 그 외에 중요한 장소를 매일 살피고 있었다.

언제고 또 위험한 일이 생길 수 있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뭔가 수상한 점이 발견되면 즉각 2050이 내게 알려올 터.

나는 핸드폰을 들고 2050에게 톡을 보냈다.

- 고수 : 2050. 지금 수호는 어때?

- 2050 : 수호님은 현재 한반도의 쉘터 지도자들을 만나고 계십니다.

- 고수 : 그들을 만나는 이유는 한반도 방어를 위한 연합 목적인가?

- 2050 : 그것도 그렇지만. 오늘은 수호님이 그들에게 약속했던 부분을 이행하는 부분을 논의하고 계십니다.

- 고수 : 수호가 약속했던 게 뭔데?

- 2050 : 한반도 도시 건설입니다. 고수님이 그리셨던 작은 도시 그림. 그곳이 실물 전환되면 한반도의 생존자 대부분이 그곳으로 이주하게 될 겁니다.

- 고수 : 한반도 도시라... 한반도의 생존자가 그 작은 도시에 전부 살 수 있을 만큼 적다는 건가?

내가 씁쓸해진 마음으로 묻자 2050이 답했다.

- 2050 : 전부는 아니고 대부분입니다. 현재 수호님이 계신 쉘터는 계속 유지될 거고. 그 외에 10개의 쉘터 정도는 유지될 듯합니다.

- 2050 : 도시는 평범한 시민들이 이주해서 살게 될 예정이고, 도시를 둘러싼 쉘터와 요새는 군사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입니다.

- 2050 : 한반도 도시의 군사 지휘관은 수호님이고 도시의 시장은 다른 인물로 곧 선출될 예정입니다.

- 고수 : 그렇군.

- 2050 : 한반도 북쪽 끝과 남쪽 지역은 아직 남아 있는 적과 흩어진 생존자들이 있어서, 도시 이주는 금세 완료될 것 같진 않습니다.

- 고수 : 그래. 그리고 2051년도의 한반도에 위험한 일이 있을 것 같으면 재깍 나에게 알려.

- 2050 : 수호님의 수락 하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 고수 : 내가 수호 아빠거든? 수호가 허락 안 해도 그렇게 하라는 거다.

- 2050 : 죄송합니다. 저는 수호님의 명령을 우선으로 듣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있습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수호의 명령을 우선으로 한다라...

2050, 믿을 만한 녀석이군.

- 고수 : 그래. 그리고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어.

- 2050 : 무엇입니까?

- 고수 : 오늘 저녁, 강민철 회장 만나러 가거든. 혹시 2051년도에 뭔가 달라진 점이 있는지 체크해달라는 거야. 혹시 미래가 부정적으로 비틀리게 되면 안 되니까.

- 고수 : 사소한 거라도 달라진 부분이 있으면 즉각 내게 알려줘. 수호와 테이 씨에게도 이 사실 알려주고.

- 2050 : 네, 알겠습니다.

2050과 톡 대화를 끝내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휴,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은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리는 거다.

나는 수호에게 건네줄, 블랙카드 29레벨 그림 작업에 집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