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 창조력으로 파괴될 별 2
나는 차를 운전하여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루나가 좋아하는 체리와 키위, 메론을 사 들고 집에 들어갔더니.
루나는 집안에 반짝거리는 풍선을 잔뜩 붙여놨다.
직접 만든 케이크도 있다.
허물어져 가는 모양의 케이크를 들고 루나는 해맑게 말했다.
“오빠, 다섯 번째 작품 경매 들어간 거. 축하해요!”
이런 일로 축하받을 거라 생각 못 했던 터라, 놀랍기도 하고 감동도 인다.
내 그림이 몇십억에 낙찰 받아도 이제껏 축하받아본 적이 없었다.
진구 녀석은, 낙찰가 기록에 호들갑을 떨기 했어도 제대로 축하해줄 만한 섬세함은 없었고.
그 외에 가까이에서 함께 기뻐해 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저 아포칼립스를 막으려는 목적으로 삭막하게 전력 질주하듯 그림을 그려왔을 뿐.
이런 기분이구나.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따뜻하게 채워지는 기분.
이런 기분은, 예전에 누군가와 연애할 때도 별로 느껴보지 못했었다.
감정을 소모해야 했던 순간이 더 잦았었기에.
“오빠, 케이크 촛불 불어요. 얼른.”
“응.”
나는 케이크를 내려다보았다.
울퉁불퉁하게 생크림이 발라진 케이크.
초콜릿과 체리, 포도로 장식이 되어 있지만.
그 장식이 무색하게도 못생긴 모양이다.
이걸 만들려고 주방에서 얼마나 애썼을지 눈에 선하다.
그래서 더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거겠지.
“이 케이크, 너 닮았네.”
“너무해, 못생겼다는 거죠?”
“아니, 달콤하게 생겼다는 거지. 사랑스럽고.”
나는 촛불을 훅 불었고.
루나와 함께 소파에 앉아 TV로 너튜브 라이브 영상을 시청했다.
프로처럼 보이는 경매사가 나와 미술품 경매를 진행했다.
경매사의 진행은 거침이 없었다.
앞선 미술품들이 낙찰되는 과정을 보다 보니 드디어 내 작품이 등장했다.
“우아, 믿기지 않아요. 저런 아름다운 그림이 오빠가 그린 거라니. 시작가가 30억이라는 것도 진짜 대단해요. 그림 한 작품에 30억 이상을 투자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보통 미술품 큰 손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기관이 많대. 하지만 요즘은 개인투자자도 꽤 많아서 작정하고 준비해서 입찰에 참여한다고 들었어.”
“그렇구나.”
우리가 대화하는 사이, 사람들이 내 그림에 응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30억 원이던 시작가에서 단숨에 가격이 올라갔다.
그걸 본 루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는 뺨이 상기 되어 외쳤다.
“어, 오빠! 36억이래요!”
“응.”
“어! 오빠, 37억. 40억도 나왔어요!”
크리스티 홍콩에서 경매하던 때와 비교하면, 이번엔 내 그림이 꽤 주목을 받는 느낌이다.
응찰하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현재가가 계속 올라가다가 58억에 낙찰되자 루나는 존경한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가 왜 부자인지 이제 알겠어요.”
하지만 나는 TV 화면을 계속 응시한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58억이라는 저 돈도 이 세상이 지켜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겠지.”
“네?”
탁월해진 재능 탓에 돈을 버는 건 이렇듯 쉬워졌는데.
코인을 얻는 건 쉽지 않다.
명성과 여러 보상 외에 코인을 얻을 방도가 또 뭐가 있을까?
나는 그런 고민을 하며 생각에 잠겼다.
* * *
유럽 루마니아의 어느 커다란 저택.
폐가처럼 을씨년스럽고 고요하며 적막하기 이를 데 없다.
이제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피부가 유난히 창백했고 눈동자 색과 머리카락 색은 잿빛이다.
소년은 전기도 끊긴 그 집에서 홀로 TV를 보고 있다.
인터넷도 끊겼을 그곳인데.
TV에선 너튜브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다.
애플 수가 ‘생명의 나무’ 그림을 작업하는 모습을 편집한 영상이다.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와 퀄리티.
이미 천재의 영역마저 넘어선 듯하다.
소년은 메마르고 무감각한 시선으로 영상을 응시했다.
영상 속 그림이 완성될 즈음, 리모컨으로 영상을 정지했다.
그림은 마치 사진처럼 보였다.
극사실주의 그림.
하지만 그림 속의 풍경은 지극히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일출로 황금빛이 물든 하늘.
높은 산봉우리엔 낮은 구름이 걸쳐있다.
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은백색 강줄기.
너른 들판, 그리고 산봉우리보다 훨씬 높고 거대한 한 나무.
세상을 품은 듯한 나무.
그것은 생명의 나무였다.
수백만 개의 열매가 무르익었다.
작은 열매들이 빛을 머금었다.
사방이 좀 더 어두웠다면 나무에 무수한 별이 뜬 것처럼 보였으리라.
충분히 익은 과실들은 껍질이 벌어지며 안에서 투명한 과즙이 아래로 쏟아졌다.
생명의 과즙은 비처럼 떨어져서 세상을 적셨다.
소년의 시선은 정지된 영상에서 그림의 어느 부분에 머물렀다.
그곳은 유독 식물이 기괴하게 자라나 있다.
하지만 생명의 비에 적시는 순간, 이전의 아름다운 자연으로 회복되는 것이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그것을 본 소년의 눈매는 가늘어졌다.
잿빛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소년은 입술을 달싹이며 중얼거린다.
“애플 수. 창조 능력자.”
* * *
강민철은 그날의 일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타블렛 창에 저절로 그려지던 그 그림.
푸른 불꽃.
처음엔 뭔가 싶어서 스치듯 눈길을 줬지만.
전투가 임박한 긴박한 상황 중에도 자꾸만 타블렛 창에 시선이 갔다.
그 그림은...
어떤 이름을 떠오르게 했다.
애플 수.
대한민국에 혜성처럼 나타난 천재 화가.
역사상 그 사람만큼 그림을 잘 그리는 이가 없었고.
그 사람보다 더 탁월한 화가는 없었다고 여겼었다.
‘황금 나무’라는 제목의 그림을 너튜브 영상으로 처음 접한 이후.
애플 수의 작품에 매료된 그는 거금을 주고 황금 나무 그림을 경매로 샀었다.
그 후로 강민철은 애플 수의 열렬한 팬이 되어 1년이 넘는 시간을 ‘올차드’의 회장으로 활동했었다.
하지만 아포칼립스가 나타난 이후, 그는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며 세월을 보내야만 했었다.
그러다 보니 애플 수라는 그 이름을 잠시 잊고 지냈었는데.
그날 놀랍게도 그는 애플 수의 그림을 다시 보게 된 거다.
이제는 볼 수 없을 거로 여겼던 애플 수의 그림을.
수호는 분명 그날에 그렇게 외쳤었다.
“강 지휘관님, 보십시오! 방금 완성된 이 그림은 애플 수라 불렸던 고수의 그림입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오늘.
강민철은 다시 푸른 불꽃을 그린 그림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거대한 푸른 불꽃 회오리.
수호는 그 그림을 실물 전환하여 오늘 치른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전투가 끝난 후, 그날 지휘 통제실에서 휴식하며 테이블의 의자에 앉았는데.
수호가 그에게 스마트 안경을 건넸다.
“강 지휘관님, 이걸 쓰십시오.”
“이건, 왜...”
그런 반문을 하면서도 안경을 썼던 강민철은 깜짝 놀랐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그의 옆 자리에 젊은 남자가 앉아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고수였다.
“헉! 누구? 누구십니까?”
고수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언젠가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못 알아보시는군요.”
“예?”
“제 이름은 고수입니다.”
“아! 고수요? 전에 김 지휘관님이 애플 수라 말한 그 고수요?”
강민철은 그렇게 말하다가 혼란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애플 수라고 말하기엔 너무 젊은데. 애플 수는 2022년도에 활동하던...”
그러다가 그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AI가 아니라면, 말도 안 되는 말이긴 한데 혹시 유령 같은 겁니까?”
고수의 단정한 입매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고수로선 유령 오해를 받을 만하긴 하다.
“아닙니다. 유령은 아니고, 지금 저는 실사형 아바타 모습으로 여기 있는 거라고 해야겠네요. 2022년도의 인물인 제가 2051년도에 존재할 수 있는 건,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은 덕분입니다.”
“2022년이요? 과학기술?”
강민철은 어리벙벙한 얼굴로 되묻자 수호가 말했다.
“저에게 실물 전환 능력이 있는 건 아시죠? 그처럼 고수에겐 그림 관련 능력과 시간 관련 능력이 있습니다. 애초에 제가 처음 고수와 연결될 수 있었던 건, 고수의 특이 능력 덕분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바타 기계라는 과학기술도 도움을 받았고요.”
“아.”
“이런 말씀은 죄송하지만. 저는 강 지휘관님에 관한 지난 이력을 쭉 살펴봤습니다. 2021년도부터 2050년도까지의 행적이 되겠군요. 제가 강 지휘관님에 관해 알아본 것은 애플 수에 관한 내용을 공유해도 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걸 보면, 제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하신 모양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강 지휘관님의 도움도 필요하고요.”
“도움이라면 어떤...?”
강민철은 수호와 대화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자꾸만 고수에게로 향했다.
2022년도의 인물을 만났으니, 담담하게 넘기기가 어렵다.
“2022년도 즈음, 강 지휘관님이 진행하신 사업 중 하나가 가상으로 별자리 관측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인도 PC를 통해 증강현실 기술로 별을 관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거죠.”
“아, 예. 당시 저는 AI 기능을 접목한 날씨 예측 서비스를 사람들에게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가상으로 천문 관측 서비스도 했었습니다. 물리 천문학으로 학위를 받은 저라서 그 지식을 활용한 거죠.”
“그래서 강 지휘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2022년도 그즈음에, 곳곳에 나타날 멸망의 별을 미리 관측해내야 합니다.”
“아, 멸망의 별. 그러면 제가 어떻게 도우면 되겠습니까?”
수호는 고수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강민철을 응시했다.
“2022년도에서 고수가 강 지휘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2022년도 지휘관님의 협조와 도움을 이끌어내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음, 2022년도의 저라면 애플 수에 미쳐있던 시기였으니. 앞뒤 안 가리고 고수 씨의 말을 듣겠지만. 그래도 좀 더 말씀드리자면 당시 저에겐 10살 난 딸이 있습니다. 그 딸을 아포칼립스 때 잃었어요. 그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군요. 아포칼립스를 막기 위해 저는 필사적으로 될 겁니다.”
“네.”
“그리고 2022년도의 저에게 이런 말을 전해주십시오. 강민철, 돈 버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현재 너의 삶이야. 지금 아니면 누릴 수 없는 것을 소중히 여겨. 지금 누리고 있는 소소한 행복을 누려.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네 가까이에 이미 행복이 있어.”
“전해드리죠.”
“2022년도의 저는 아마도 아포칼립스를 막으려는 당신들과 같은 마음이 되어 무소처럼 달릴 겁니다.”
강민철은 그렇게 말하다가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22년도의 제가 애플 수를 만나게 된다면 몹시 기뻐하겠군요. 근데 김 지휘관님과 애플 수는 어떤 관계죠? 이렇게 보니 두 사람, 묘하게 닮은 것이 친형제 같습니다.”
닮았다는 말에, 수호와 고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닮을 수밖에요. 수호는 제 아들입니다. 암만 봐도 제 판박이인 것 같아요.”
“네?”
강민철의 동그랗게 떠졌다.
수호는 쓴 표정으로 고수에게 대꾸했다.
“판박이까진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린 어딜 가도 닮았다는 소리 들을걸? 그건 너도 인정하지?”
“......”
수호가 입을 다물자 고수는 피식 웃었다.
* * *
내가 아바타 접속을 끊을 즈음, 수호와 나만 남았을 때.
수호는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고수. 만일 멸망의 별을 온전히 힘을 갖추며 출현하기 전에 파괴한다면 이제껏 없던 보상을 얻게 될 겁니다. 2023년도 겨울, 아포칼립스가 나타날 무렵. 미국에 예지와 염력을 각성한 능력자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멸망의 별 씨앗 발견하고서 그것을 제거했다더군요. 그 덕분에 엄청난 힘을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멸망의 별 씨앗이 뭔데?”
“붉은 유성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여느 유성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천천히 지구로 다가오다가 멈추고 거대한 별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2022년도에서 강민철의 도움을 받아 붉은 유성을 발견하게 되면, 그걸 실행 창조력으로 지워버려야 합니다.”
그러한 수호의 말을 들은 후, 나는 아바타 접속을 종료하고 2022년도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아바타 기계의 캡슐에서 일어나려 하니 몹시 어지럽다.
너무 오래 접속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날 거라고 듣긴 했다.
구역질도 올라오는 것 같고 한동안 멍해서, 괜찮아질 때까지 잠자코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업실 탁자 위에 둔 커피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라도 마셔야 정신이 맑아질 것 같다.
나는 재능 스탯을 불러왔다.
“2050 고수.”
『명화 작가 36레벨
명화 시간 : 14
명화 기교 제어 : 13
실행 창조력 : 1
그랜드 코인 : 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