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78화 (78/153)

결혼식, 그리고 작은 징조 4

제법 이름난 샵.

그곳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데.

진구가 몹시 부러워하며 내게 말했다.

“부럽다.”

“부러우면 너도 장가 가.”

“특급 호텔에서 예식까지. 짜식, 완전 성공했네. 이런 비싼 샵도 이용하고. 나 이런데 처음 와본다.”

“처음 와보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 너 결혼할 때 내가 여기서 메이크업 받게 해줄게.”

“오, 진짜? 약속했다?”

“그래.”

“그나저나 메이크업 받으니 인물 사네. 너 진짜 배우 해도 될 뻔했다. 루나 씨도 미인이라서 네 2세는 진짜 이쁠 것 같아.”

진구의 말에 나는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쁘지.”

“배 속에 있는 니 자식, 벌써부터 예쁘다고 입 벌어지는 것 봐라.”

“진짜 나보다 훨 나아. 나보다 키도 크고 능력도 있는데 생김새도 잘 생겼어.”

“네 아이가 어찌 생겼을지 마치 본 것처럼 말하네. 루나 씨가 그러던데. 임신한 거 처음 알았을 때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이라고, 이름을 수호라 지었다며? 네가 이런 웃기는 놈이었는지 미처 몰랐다.”

“흐흐.”

“그만 쳐웃어.”

“수호는 다 좋은데. 어릴 때 많이 힘들어서 그랬는지. 감정 표현이 서툴고 인색해. 근데 그마저도 귀여운 구석으로 보인다는 거지.”

“뭐래, 이놈이. 이젠 성격까지 단정 짓네.”

“흐흐.”

“야, 사진 찍는다. 네 바보 같은 표정, 동네방네 널리 퍼뜨려야겠어.”

당연히 진구는 내가 하는 말이 이상하게 여겨지겠지만.

그 누구에게도 아들 자랑을 할 수 없다는 아쉬움에.

이런 식으로라도 떠들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틀 전의 일을 떠올렸다.

전투 중, 지상전이 시작되자 수호는 내게 말했었다.

“고수, 이곳에 더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더 있어봤자 좋은 꼴은 못 볼 겁니다.”

“아니. 더 있을 거야. 네가 이곳에서 어떤 일을 겪는지. 어떤 전투를 벌이는지. 난 적어도 알고 있어야지 않겠냐?”

그렇게 말하며 지상전이 어느 정도 마무리될 때까지.

나는 아바타로 접속해 있었다.

그러다 아바타 모습으로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인체에 무리가 온다는 말에.

다시, 2022년도의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 수호가 전투에서 승리한 결과로, 보상이 내게 주어졌었다.

『명화 작가 35레벨

명화 시간 : 13

명화 기교 제어 : 13

창조력 : 20

그랜드 코인 : 258.』

재능 스탯이 ‘4’ 포인트나 올랐었고, 코인도 꽤 채워져 있다.

다음 업그레이드 가능한 그랜드 코인이 256.

나는 창조력이 또 어찌 진화하게 될지 궁금해서 창조력의 스탯을 올렸다.

『명화 작가 36레벨

명화 시간 : 13

명화 기교 제어 : 13

실행 창조력 : 1

그랜드 코인 : 2.』

창조력은 진화해서 실행 창조력으로 바뀌었다.

실행 창조력이 어떤 식으로 능력이 발현되는지, 아직 확인을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실행 창조력으로 바뀌자 쌓였던 스탯 수치가 다 날아가 버렸다는 거다.

다시 ‘1’부터 스탯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실물 전환 능력이 실행 창조력부터 나타나기에, 그런 것일 테다.

어제는 수호와 잠시 톡으로 대화를 나누었었다.

나는 그에게 루나가 꾸민 아기 방 사진을 보내줬지만.

- 고수 : 수호야, 네 방이다.

- 2050 :

수호는 내 톡을 읽기만 하고 반응이 없었다.

그에게 얼마 전에 나온 웨딩 사진도 보여주고 나니.

그는 마지 못해 대꾸하듯 한마디 했다.

- 2050 : 결혼, 축하드립니다.

초혼인 내가 다 자란 아들에게 결혼 축하받는 기분은 묘했다.

물론, 그 축하 말은 되게 사무적으로 들렸지만 말이다.

나는 업무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수호와 살가운 대화를 나누는 건 역시 어렵고.

그냥 평소처럼 일적인 대화를 하는 게 서로 편하긴 하다.

- 고수 : 며칠 전에 유럽 북부 지역에서 사라졌던 드론 말이야. 그 드론이 서울 도심에서 발견되었던 일, 알고 있지?

- 2050 :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일, 무사히 넘어가서 다행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 2050 : 최근 테이가 바뀐 기억이 있다고 했었는데. 그 기억은 애플 수 행세를 했던 젊은 남자 3명이 감전사 당했다는 기사가 떠서 한동안 시끄러웠다고 하더군요.

- 2050 : 그 시기가 고수가 결혼할 즈음이라고 했습니다.

- 고수 : 아, 그래?

나는 내심 놀랐다.

만일 그때 드론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그 드론을 놓쳤다면...

내 이름과 조금 연루되었다는 것만으로도 3명이 목숨을 잃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50 : 하지만 테이의 기억은 다시 바뀌었습니다. 감전사 당했을 그 3명의 남자들은 죽음을 비껴갔습니다.

- 고수 : 다행이네.

- 2050 : 죽었을 사람이었으나, 그 위험이 비껴가서 살게 되었다면... 그들로 인한 보상도 고수에게 주어졌을 겁니다. 적을 제거한 것에 대한 보상도 따르겠지만.

- 고수 : 아, 그러잖아도 그때 코인이 들어오긴 했었어. ‘1’ 스탯이 오르기도 했고.

알 수 없는 적이 ‘애플 수’라는 이름을 지닌 나를 노리고 있다고 여겨지니.

내 마음은 복잡해지고 심란해졌다.

- 고수 : 어쨌든 이틀 전 전투. 무사히 끝이 나서 다행이야.

- 2050 : 그때, 고수가 있어서 무사히 끝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비행선과 무기만으로 D 구역을 정복할 생각이었지만. 만일 그렇게 전투에 나섰다면 고전을 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어쩌면 큰 피해도 있었겠지요.

- 2050 :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 고수 : 나 역시 너에게 항상 고마워. 네 덕분에 여러 불행이 사라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네 존재 자체가 감사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

내가 이런 말도 하게 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 2050 : 저 역시.

간단하게 내뱉는 말 같지만.

그래도 수호가 이 정도로 내게 마음을 표현한다는 건, 장족의 발전이기도 하다.

- 2050 : 초소형 전격 드론 그림을 추가로 그려서 주십시오. 제가 여기서 실물로 전환해서 전송 기계로 그곳에 보내겠습니다.

- 2050 : 아무래도 고수 주변의 보안을 더 강화할 방도는 이것뿐인 것 같습니다.

- 고수 : 그래, 알았어.

수호와 나누었던 대화를 상기하다 보니, 어느덧 메이크업도 끝났고.

헤어 스타일링도 완성되었다.

턱시도를 입고 나서, 나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루나를 봤다.

루나는 내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예뻤다.

이제껏 내가 만난 여자 중에 제일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공주님이 된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지만.

오늘 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보니, 그녀는 처음부터 공주님이었던 것 같다.

영화나 동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그런 아름다운 공주님.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우러나온 말이 튀어나왔다.

“정말, 예쁘다. 루나야.”

그러자 루나는 발그레해진 얼굴로 사랑스럽게 웃었다.

잠시 후, 호텔 예식 홀에서 예식을 시작되었다.

우아하고도 화려하게 꾸며진 예식 홀에 하객들이 가득 찼다.

테이블 장식도 화려했고, 곳곳에 웨딩 꽃장식이 풍성하다.

저 꽃장식을 하느라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었었다.

하객 식비도 비싸지만 저 꽃들도 비싼 것이다.

호텔 웨딩 홀 계약서 작성하고 금액 지불할 때, 한 번에 블랙카드를 긁었었다.

보통은 몇 번에 걸쳐서 계산을 하는데.

나는 한 번에 계산하겠다고 했었던 것.

예식 총비용은 1억이 조금 넘었다.

식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친구들과 친척, 지인들.

그들의 환호와 축하를 받으며...

나는 이날, 루나를 내 신부로 맞이했다.

* * *

신혼여행은 가지 못했다.

루나는 임신 중이었고 학기 중이기도 해서 신혼여행을 못 갔다는 건 변명일 테고.

루나보단 내가 며칠 동안 여행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불안해서 못 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아포칼립스를 대비하는 일에 하루라도 뭔가를 하지 않으면 괜히 초조했다.

그래서 나는 루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루나야, 신혼여행은 아이 낳으면 적당한 때에 세계 여행으로 가자.”

“오빠, 미안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죠?”

“네가 그러자고 하면 난 세계 여행도 할 의향이 있어.”

루나는 새침하게 대꾸했다.

“음, 생각해볼게요.”

결혼식이 끝난 그 날.

신혼여행은 못 갔지만 대신 5성급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밤을 보냈다.

내게 블랙카드라는 게 생겨서 물질적으로 풍족해졌지만.

특급 호텔의 스위트룸에 와보는 건 오늘이 처음.

루나도 당연히 스위트룸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스위트룸에 들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아. 오빠, 여기 너무 멋져요.”

“그치? 좋네, 여기.”

스위트룸의 거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아름다운 도시의 야경이 보였다.

루나는 동그래진 눈으로 침실로 들어갔다.

클래식하고 아늑한 침실에 킹사이즈의 침대가 놓여 있다.

우리는 신기한 곳을 탐험하듯 스위트룸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커다란 욕조에서 야경이 내다보이는 넓은 욕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욕실이다.

“와아, 이런 곳에서 목욕하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래? 우린 앞으로 여기만큼 좋은 집에서 살게 될 건데? 지금 짓고 있잖아. 과수원 땅에.”

“흐흫, 그렇네요. 그 집에도 이런 욕조가 있는 거겠죠?”

“으음, 아마 그럴걸.”

“뭐야. 오빠도 모르면서.”

“그 집, 네가 설계했잖아. 인테리어도 네가 해. 그럼 되지.”

“돈이 많이 들 텐데요.”

“괜찮아. 나 돈 잘 벌잖아. 나도 그렇고, 네 아들도 그렇고 돈은 많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우리 아들도 부자인 거예요? 아아, 그렇구나.”

루나는 장난기 어린 눈을 반짝거렸다.

우리는 룸서비스를 시켜서 와인도 마시면서 부부로서 첫 번째로 맞는 밤을 보냈다.

그러다 새벽녘.

나는 홀로 깨어 거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지난 1년 사이,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고.

또한, 많은 게 변하기도 했었다.

이젠 나에게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 만큼, 두려워지는 부분도 생기는 듯하다.

나는 소파로 와서 털썩 주저앉았다.

펜을 쥐고 타블렛 디스플레이를 활성화했다.

창을 터치해서 작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원두커피가 든 잔을 그림으로 그렸다.

타블렛 창에 새하얀 빛으로 점이 생겨나고.

내 생각과 시선에 반응하며 그 빛의 점이 스케치를 하고 채색을 해 나갔다.

이제는 13배속으로 작업이 되어서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얼마 안 있어 커피 그림이 완성되었다.

이제, 실행 창조력을 시험해볼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는 이 능력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수호가 행하는 실물 전환 능력.

실행 창조력이 바로 그 능력이다.

나는 실행 창조력을 발현해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안 되네.”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전에 수호가 처음 그림을 요청했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블랙카드 1레벨.

그때 수호는 내게 서리태 콩알 하나를 그리게 했었지.

나는 그때처럼 서리태 콩알 하나를 그렸다.

이전에는 콩알 하나 그리는 것도 제법 시간이 걸렸었는데.

지금은 단숨에 그려졌다.

이전 날에 콩알 하나 그리는 것도 수정 보완 작업을 해야 했던 게, 어이없게 여겨질 정도다.

서리태 콩알 그림을 완성한 후, 나는 그것을 실물 전환을 해보려고 시도했다.

그러자 내 시야가 환한 빛으로 짧은 순간 물들었다.

그림에 시선을 주니, 내가 그렸던 그림이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눈이 절로 커다랗게 떠졌다.

이 일이 막상 내게 이루어지니 놀랍게 여겨졌다.

시선을 조금 내려 탁자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놓여 있는 조그만 서리태 한 알.

“와.”

나는 그 콩알을 손으로 집어 가까이 들여다봤다.

진짜 콩알이다.

내게 머무는 신비한 창조 능력에 의해 나타난...

먹을 수 있는 진짜 콩알인 거다.

* * *

다음날, 나는 유하준 박사의 연구실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함께 연구에 참여할 연구원들을 소개받았다.

회색 스모그와 방어벽을 연구할 연구원들.

그들의 연봉과 연구 비용은 전부 내가 지원하고 있다.

한동안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유하준의 개인 연구실로 자리를 옮겼다.

유하준은 내게 망가진 드론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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