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76화 (76/153)

결혼식, 그리고 작은 징조 2

수호는 한 차례 전투를 마친 후, 비행선 내부의 침실에서 잠시 쉬었다.

비행선은 현재 경기도 외곽 지역이었던 곳의 상공에서 부유하며 비행 중이었다.

비행선은 전투 항공기이긴 하지만, 전투가 없을 시에는 이동형 쉘터가 될 수 있었다.

태양 에너지만으로도 장시간 비행이 가능했다.

수호는 침대에 걸터앉아 손목에 있는 팔찌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3D 디스플레이가 나타나며 침실에서도 AI 기능이 활성화되었다.

수호는 AI에게 말을 걸었다.

“준, 쉘터엔 별일 없나?”

기계적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쉘터는 별다른 일이 없지만 조금 전에 테이님이 수호님에게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테이에게 연락 넣어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조금 있으니, 화면에 테이의 얼굴이 뜨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호, 조금 전에 저에게 달라진 기억이 생겼어요.”

“그게 뭡니까?”

“2022년도 늦은 봄 즈음이요. 정확히 며칠이더라. 고수 씨 결혼할 즈음이요.”

“결혼 날짜는 6월 11일입니다.”

“음, 아마 요맘때인 것 같네요. 당시 애플 수 행세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들 중, 세 명인가. 감전사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어요. 그게 지금 떠오르는군요. 애플 수가 고수 씨라는 걸 아니까. 좀 심각하게 여겨져요.”

“네,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수호는 테이와의 연락을 끊고는 AI에게 말했다.

“준, 전에 2022년도로 보냈던 드론 중에서 한 대가 사라졌다고 했었지?”

“네, 그렇습니다. 드론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애플 수 행세를 했던 인물이 세 명이나 감전사했다는 게 석연치 않아. 2022년도 서울 지역에, 특히 애플 수로 오해받거나 주목받는 인물이 있으면, 그 무엇에도 눈에 띄지 않게 살펴봐. 사라진 드론이 있는지.”

“네, 알겠습니다.”

* * *

아프리카의 최빈국 중 하나인 ‘말라위’.

그곳에도 지하 벙커 기능이 있는 병원 건물을 하나 더 짓기로 했다.

국내에는 환경 연구 센터를 추가로 짓기로 했다.

환경 연구 센터에서는 미세먼지 관련 연구와 재생 에너지와 같은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이 연구소에도 지하 벙커 시설을 하는 것은 물론이였다.

기계공학 연구 센터는 경기도, 환경 연구 센터는 강원도에 짓기로 했다.

이 두 연구소는 아포칼립스를 대비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 될 것이지만.

아포칼립스가 아니더라도, 국내 과학기술 발전에 필요한 곳이 될 터였다.

이런 내용도 김주혜가 기사로 써서 올리자 사람들의 댓글이 엄청나게 달렸다.

그녀의 기사는 열독률이 대단했다.

└ 청년 의사 : 애플 수, 이번에도 좋은 일 했네. 역시 기부 왕이다 (좋아요 2520, 답글 12개)

└ 김뚜껑 : 병원도 짓고, 국내 과학기술 발전에 통 크게 후원도 하고. 돈을 번다면 저렇게 써야지 (좋아요 910, 답글 3개)

└ 만듀조아 : 저는 미술은 잘 모르지만 좋은 일 많이 하시는 애플 수 작가님은 넘 좋더라고요. 그림도 멋지고요. 팬입니다. (좋아요 350, 답글 7개)

└ powersong : 근데 애플 수 기사는 김주혜 기자가 매번 앞장 서서 쓰네. 애플 수가 고용한 기자인가? (좋아요 5, 답글 22개)

└ 맨솔 : powersong 무식한 소리 하네. 김주혜 원래 잘나가는 기자인데 뭔 개소리래. 그리고 재벌 금수저라는 소문 있더구만. 뭐가 아쉬워서? (좋아요 5 답글 3개)

내가 기사 댓글을 살펴보고 있는데.

침실 밖에서 루나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아, 잠깐 와봐요!”

침실 밖으로 나가자 루나는 작은 방 앞에 서 있었다.

“짜잔! 우리 운빛이 방 완성되었어요. 조명까지 켜고 아기 침대에 이불까지 깔아놓으니까 예뻐요.”

비행선에 탑승하여 전투 중일 수호를 위해, 오늘 작업실에서 식량과 생수, 무기 그림을 그려주고 와보니.

루나는 아기방을 완성해놓았다.

붙이는 포인트 벽지로 파스텔한 분위기를 만들어놓았고.

아기 침대 옆에는 토끼 모양 간접 조명을 두었다.

아기용 침구와 장난감, 아기방에 잘 어울리는 수납공간까지.

방안 풍경이 아기자기하게 바뀌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예쁘네. 이걸 혼자 꾸미게 해서 미안해.”

“오빠가 바쁘니 어쩔 수 없죠.”

수호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루나 역시 알 권리가 있지만 그녀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분명 혼란스러워할 테고.

무엇보다 걱정하고 힘들어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리를 굽혀 루나의 배에 눈높이를 맞췄다.

“태동은 아직 안 느껴지겠지?”

“더 있어야 태동이 느껴질 거랬어요.”

“그래도 들을 수는 있을 거야. 나 이런 말 못 하는데. 그래도 해주고 싶어.”

“무슨 말이요?”

“사랑한다는 말.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해. 너는 특별한 아이야. 혹여 어두운 곳에 있게 될지라도 너는 빛날 거야. 너는 항상 굴하지 않고 이겨낼 거고. 우뚝 서서 사람들을 이끄는, 그런 강한 아이가 될 거야. 네가 언제 어디서든 믿을 수 있도록. 지금부터 들려줄게. 사랑한다, 수호야.”

* * *

루나가 침실에서 잠들어 있을 때, 나는 거실로 나와 3D 디스플레이를 활성화했다.

AI 기능이 켜지고 화면에 2050이 적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고수님, 유럽 북부 지역에서 사라졌던 드론 한 대가 서울 지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지금 영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화면에 8개로 분할된 영상이 나타났다.

드론이 전송하는 영상이다.

이틀 전에, 사라진 드론을 서울 지역에서 추적하겠다고 해서 수락했었다.

그날 이후 쭉, 거실 수납장에 있던 드론 스무 대가 바깥에서 활동하고 있던 터였다.

나는 침실에 잠들어 있는 루나가 깰까 봐 톡으로 2050에게 말했다.

- 고수 : 내 눈엔 드론이 잘 보이질 않네.

<제가 포착한 드론의 모습을 확대하겠습니다. 현재 저는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레 접근하는 중입니다.>

분할되어 내게 보였던 영상이 이내 하나의 영상으로 바뀌더니, 드론이 확대되어 보였다.

그 드론은 기묘하게도 주변이 회색빛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마치 회색 오라를 발하는 듯하다.

- 고수 : 사라진 드론이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거지? 약탈자는 이제 전송 기계 쓸 수 없다고 하지 않았어?

<약탈자가 조종하는 건 아닙니다. 저 드론의 회색 오라는 2051년에나 존재하는 상급 괴수에게 나타나는 오라와 비슷합니다.>

- 고수 : 그럼 미래에나 존재하는 괴물이 이곳에도 있다는 얘기야?

<아닙니다. 2022년도에는 그런 존재가 벌써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여긴 회색 폭풍조차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존재는 강력한 회색 폭풍 후에 차츰 변이와 진화를 걸쳐서 나타나는 존재입니다. 아마도 저 드론은 아포칼립스의 원인이 될 뭔가와 연관되어있는 듯합니다.>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아포칼립스의 원인이라.”

화면에 2050이 쓴 문장이 다시 나타났다.

<어쩌면, 저 드론의 등장으로 아포칼립스의 징조가 나타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수 : 징조든, 원인이든. 없애버리는 게 낫겠지?

<네, 맞습니다. 저 드론이 뭔가 눈치채거나, 다른 누군가를 해하기 전에 처리해야겠습니다. 회색 오라가 나타난 거로 보아 일반 드론보다 강할 테니. 인적이 없을 때 한꺼번에 공격하겠습니다. 방금 몇 개의 드론으로 주변 CCTV를 제거한 상태입니다.>

- 고수 : 그래.

디스플레이에 나타난 드론 확대 영상은 다시 8개의 분할 영상으로 바뀌었다.

나는 초조한 마음이 들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위잉-

2050이 조종하는 드론 스무 대가 어느 순간 한꺼번에 움직였다.

드론들은 어느 한 지점을 향해 강력한 전기 에너지를 발산했다.

치지지지직-

늦은 밤, 시간이라 전기 에너지가 나타나자 그 주변이 번쩍였다.

다행히 주변에 행인은 없다.

치지지지직-

회색 오라의 드론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지, 드론들의 공격은 재차 이어졌다.

전기가 번쩍거려서 주변이 환해지기까지 했다.

주먹을 쥔 내 손바닥에서 땀이 흥건해졌다.

저걸 놓치면 다시 붙잡는 게 어려워질 게 분명하다.

이후, 회색 오라 드론을 조종하던 보이지 않는 적은, 우리가 조종하는 드론을 의식하며 움직이게 될 테니.

한동안 번쩍거리더니 드론의 공격이 끝이 났다.

회색 오라 드론을 잡은 건가?

2050의 메시지가 바로 나타났다.

<상대 드론이 망가졌습니다. 회색 오라도 사라졌습니다.>

나는 비로소 안도하며 톡 메시지를 적었다.

- 고수 : 아, 그래. 다행이다.

<망가진 드론은 유하준 박사님의 연구실로 가져다 놓겠습니다. 망가진 드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고수 : 그래. 근데 그거 위험한 건 아니겠지? 유하준 박사에게 피해가 간다거나.

<위험하지 않습니다. 이미 못 쓰게 된 드론입니다.>

그때였다.

내가 재능 스탯을 보려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내 앞에 재능 스탯이 나타났다.

『명화 작가 35레벨

명화 시간 : 12

명화 기교 제어 : 12

창조력 : 18

그랜드 코인 : 100.』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상이 들어온 건가?

기교 제어 수치 ‘1’이 올라 있다.

그리고 코인도 더 불어나 있었다.

* * *

결혼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 지나는 듯하다.

화사하게 꽃 피던 계절, 봄은 어느새 지나가고.

초록빛이 무성해지고 태양 빛은 더 짙어지는 초여름 계절이 되었다.

날이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했다.

루나와 내가 찍은 웨딩 사진도 나오고.

우리가 입을 예복도 준비되었으며, 모든 결혼 준비가 끝이 났다.

결혼식은 분명 기쁜 일이고 내가 집중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내 마음은 번잡하고 초조했다.

결혼 준비도 함께 하지 못할 때가 많아서 루나는 내심 서운한 점이 많았을 거다.

나는 유하준 박사의 도움을 받아 아바타 기계를 작업실로 옮겼다.

요즘은 내 집에 루나가 자주 머물고 있어서 아바타 기계를 쓰려면 작업실에서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바타 기계의 두 번째 구성인 캡슐 안에 누웠다.

처음 이 기계를 사용할 땐, 유하준이 조작해주었지만.

이번엔 AI 2050에게 맡겼다.

기계를 조작하는 건, 2050이 드론을 조종하여 대신 하는 거다.

나는 수호가 지휘하는 전쟁에 함께 하겠다고 했었다.

오늘은 경기도 주변 지역에서 치르는 마지막 전투.

강한 적들이 쏟아질 거라는 2050의 말을 듣고서, 이번 전투는 함께 하고 싶다고 수호를 설득했었다.

아바타 기계가 작동하자 캡슐 안에서 눈을 감았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2051년도에 실사 아바타가 생성되며 접속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비행선 내부의 지휘 통제실 풍경이 보였다.

그곳에 수호와 어떤 젊은 남자, 그리고 나이든 남자 한 명이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곳에서 오직 수호만 스마트 안경을 끼고 있다.

아바타로 이곳에 머물게 될 나를 보기 위해 안경을 쓴 거다.

나는 수호와 함께 있는 나이든 남자를 보고서 깜짝 놀랐다.

나이가 들어서 처음엔 못 알아봤지만, 자세히 보니 그 남자였다.

언젠가 편의점에서 마주친 적 있던 남자.

올차드의 회장이라고 했던 강민철이다.

세월이 지난 탓에 그는 70세 나이가 되어 백발이 성성해졌다.

수호는 나를 힐끔 보았다가 강민철에게 물었다.

“강 지휘관님, 혹시 지금도 애플 수의 그림 좋아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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