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75화 (75/153)

결혼식, 그리고 작은 징조

유라와 통화한 후, 한동안 핸드폰 액정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오래 사귀었던 그녀라 그런지, 대화를 나누었던 여파가 남는다.

띠리리리링-

그때 진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 진구는 대뜸 말을 꺼냈다.

<야, TV 좀 켜봐.>

“TV는 왜?”

<일단 지금 뉴스 채널 한 번 봐봐.>

진구는 자기 말만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나는 리모컨을 들고 뉴스 채널을 틀었다.

그러자 단정한 차림새로 앉아 뉴스를 전하는 앵커의 모습이 보였다.

“최근 천재적인 작품성과 화제성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애플 수 작품 중에서 ‘하늘 호수’ 작품이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애플 수 작가의 인기가 날로 치솟다 보니 이와 비례하여 작품의 가치도 상승하고 있습니다.

애플 수 작가의 그림을 사려는 미술품 애호가들이 많아졌음에도 애플 수의 그림은 몇 작품이 되지 않은 탓입니다. 그 탓에 이렇듯 위작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김주혜 기자가 보도합니다.”

장면이 바뀌고 김주혜가 마이크를 들고 보도했다.

애플 수 전담 작가라 불리는 그녀답게 이번에도 그녀가 뉴스를 전하고 있다.

“며칠 전, 미술품 콜렉터인 김모 씨는 애플 수 작품인 ‘하늘 호수’를 20억 원에 사들였습니다. ‘하늘 호수’는 애플 수 작가가 아트 K에 경매로 내놓았던 작품으로 10억 원에 낙찰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난 후, 김모 씨는 2배 높은 가격으로 ‘하늘 호수’ 작품을 구매했지만, 그 작품은 감정 결과 위작임이 드러났습니다.”

위작으로 밝혀진 ‘하늘 호수’ 그림이 화면에 보였다.

나는 그 그림을 면밀하게 바라보았다.

기교 능력이 올라간 만큼 내 보는 눈도 세밀해지고 정확해졌다.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캐치해낼 수가 있었다.

정말 위작이 맞네.

일반인들이 보면 그럴듯해 보일 수 있겠지만.

내 눈에는 저 그림이 형편없어 보였다.

저 그림도 꽤 사실적으로 그리긴 했지만.

생각보다 섬세하지 않다.

내가 물방울 하나를 그리기 위해 세밀한 붓 터치를 100번을 했다고 한다면.

저 그림은 30번?

다가올 모두의 불행을 막을 수 있기를 바라며.

무수한 날을 지새우며 수고했던 내 노력을 누군가 도둑질해가는 기분이라서 언짢아졌다.

저런 그림을 내 이름으로 20억 원이나 벌어먹다니.

내 사과나무 그림 사진을 보고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예술품 평론가 ‘김학중’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그는 조금 흥분을 했는지 침을 튀어가며 고조된 어조로 말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진품이었던 애플 수 작가의 그림이 10억에 거래되었는데, 위작이 20억 원에 판매되다니요? 애플 수 작가의 작품을 애장하길 원하는 미술품 콜렉터들이 많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만. 이번 일은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위작으로 밝혀진 이 그림은 언뜻 보면 진품과 비슷해 보이지만. 애플 수의 그림을 알고 보아왔던 사람이라면, 이런 위작에 속지 않습니다. 이 그림은 애플 수 그림에만 있는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나는 TV를 껐다.

조금 있으려니, 진구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내가 전화를 받자 그는 다짜고짜 말했다.

<봤냐?>

“응.”

<열 받지 않냐? 넌 저 그림 그리고 수수료 떼고 10억 훨씬 못 되게 돈을 받았는데. 그놈들은 가짜를 그려서 20억 원이나 사기 치네.>

나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대꾸했다.

“이름 있는 작품일 경우, 이런 위작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 뭔가 대책이 필요하겠는데. 서명을 특별하게 한다거나.”

<가짜 문제는 네 그림만이 아니야.>

“또 뭐가 문제인데?”

<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제법 생겨난 모양이야. 애플 수 행세하는 자들이 여기저기 출몰한다는 거지.>

“흠.”

<그리고 애플 수 공식 팬클럽 명칭이 ‘올차드’잖아. 근데 이런 모임도 있다더라.>

“무슨 모임?”

<애플 수 덕후들의 모임. 줄여서 애플 덕모라 부른다던데. 주혜 씨가 알려줬어. 주혜 씨도 거기 가입했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뭐, 그런 모임도 있겠지.”

<애플 덕모는 올차드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하더라. 올차드는 회장이 꽉 잡고 있어서 순수하게 미술품을 애호하고 애플 수에게 호감을 표하는 그런 모임인데. 애플 덕모는 미저리 같은 개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와글와글한 곳이래.>

“미저리? 주혜 씨는 왜 그런 데에 가입한 건데.”

그의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주혜 씨도 약간 그런 기질이 있어 보이던데. 어디 한 곳에 꽂히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애플 덕모가 어떤 곳인지 파헤치고 오겠다고 우리에게 호언장담하더라.>

“하하, 그래?”

<암튼 그 애플 덕모가 애플 수가 출몰했다는 얘기가 들리면 거기에 몰려간다던데. 그래서 그곳은 애플 수 스토커 모임이라는 말도 있대.>

“스토커 모임, 듣기만 해도 부담되는 곳이네. 참, 이번에 그린 유화 그림 작업 영상. 편집 언제 돼?”

<아마도 내일까지? 다하면 연락할게.>

“그래.”

진구와 통화를 끝내고서 AI 2050에게 톡 메시지를 보냈다.

- 고수 : 2050. 누군가가 내 그림의 위작을 만들어서 사기 치는 경우, 그거 내 명성에 흠집이 갈 수 있으려나?

- 2050 : 고수님이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고수님의 명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겁니다.

- 고수 :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아! 누군가가 내 행세를 하고 다니는 경우는?

- 2050 : 그또한 마찬가지로 고수님이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니면 영향을 받지 않을 겁니다.

- 2050 : 그리고 조만간 수호님이 대규모 전투에 돌입한다고 하십니다.

- 고수 : 전투라면 어디?

- 2050 : 경기도 주변에 있는 다섯 개의 구역입니다. 한반도 지역이 안전해지려면 연이은 대규모 전투는 불가피합니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대꾸했다.

- 고수 : 그래. 전투 로봇 2대를 추가로 그려줄게. 요즘은 속도가 빨라져서 금방 완성할 수 있을 거야.

2050에게 톡을 보내고는 홀로 생각에 잠겼다.

얼마나 더 재능을 업그레이드해야 아포칼립스를 막을 능력이 나타나게 될까.

* * *

그날 늦은 오후, 주혜는 대학생 두 명과 함께 어느 장소에 와 있었다.

어느 대학의 캠퍼스였다.

벤치에 앉아 여대생과 노닥거리는 한 젊은 남자.

검정 마스크를 했고 나이는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키는 181센티 정도.

체구는 애플 수와 비슷하지만 머리가 좀 더 컸고.

비율도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이마에 난 여드름이 조금 거슬렸다.

주혜는 따라온 대학생 두 명에게 물었다.

그들은 애플 덕모 멤버였던 학생이다.

“저 남자가 애플 수라고?”

“네, 누님. 한 달 전부터 소문이 자자했어요. 미대생이고요. 인상착의도 애플 수 같아서 은연중에 소문이 났는데요. 본인도 딱히 부정을 안 해서 다들 저 사람이 애플 수라고 여기고 있어요. 사진도 찍혀서 SNS에 떠돌고요.”

“요즘 개나 소나 다 애플 수래.”

“네?”

“저 사람, 여학생들 꼬시느라 여념이 없네. 너희들은 애플 수가 정말 저럴 거라고 생각하니?”

“저희는 잘 몰라서...”

“나만 믿어. 생김새는 정확히 몰라도 대충은 애플 수가 맞는지 확인은 할 수 있어. 너희들 알지? 내가 애플 수 광고 촬영 때도 두 번이나 취재 갔던 거.”

“그럼 알죠. 저희는 누님만 믿겠습니다.”

“사실, 애플 수라고 해서 저 형이랑 사진 찍고서 엄청 좋아했었습니다.”

“쯧.”

주혜는 애플 수 행세하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러고서 천연덕스럽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애플 수 작가님.”

“네? 아아, 안녕하세요.”

“저 아시죠?”

“어음, 어디서 봤더라. 미녀시긴 한데. 훗, 제가 요즘 만나 뵙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말투가 그새 좀 느끼해지셨네요. 저를 몰라보시다니. 커피도 드리고 인터뷰도 하고 그랬었는데.”

“예? 인터뷰요?”

그때 주혜를 알아보는 학생들이 있었다.

“어, 김주혜 기자 아니세요? 안녕하세요? 좋아하는 기자님이시다!”

김주혜는 지나가다가 발길을 멈춘 학생들을 보며 생긋 웃었다.

“네, 안녕하세요. 좋아해 주셔서 고마워요.”

애플 수 행세하던 남자는 낯빛이 변하며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꽁무니를 빼려 했다.

“기자셨어요? 전 바빠서 이만.”

김주혜는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 만나면 인터뷰 응해주신다고 약속하셨죠? 오늘 만난 김에 인터뷰 좀 할게요. 요즘 가짜 애플 수, 가짜 애플 수 작품이 판치고 있다는데 이 부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따라온 대학생 두 명에게 외쳤다.

“카메라 부탁할게요!”

“예? 아, 예. 누님.”

남학생 한 명이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인터뷰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핸드폰 카메라를 이용해야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릴게요.”

“아니, 그게.”

남자는 몹시 당황했는지 어버버했다.

“요즘 애플 수 행세하는 사람이 가짜 그림으로 사기도 친다고 해요. 오늘 위작으로 의심되는 작품을 검증하러 가신다고 들었는데. 저도 그곳에 가는 길이거든요. 인터뷰 마치고 태워 드릴까요?”

“아뇨!”

애플 수 행세하던 남자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찍지 마세요! 전 애플 수도 아니고요! 제가 애플 수라고 말한 적 있어요? 없죠? 괜히 와서 사진 찍고 그래요?”

남자는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 사이, 지나던 학생들이 더 모여들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금 있었던 일을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하는 학생도 있었다.

“뭐야? 애플 수 아니었어? X나 어이없네. 그동안 바친 음료수가 얼마인데.”

“저 가짜 애플 수하고 데이트했던 여자도 꽤 있었을걸?”

주혜는 도망간 남자를 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학생들에게 입을 열었다.

“저 사람, 보다시피 애플 수 아니에요. 제가 아는 애플 수는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앞으로 애플 수 행세하는 사람이 있으면 제 이메일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주혜는 명함 몇 장을 학생들에게 주었다.

* * *

사흘이 지난 후, 지난밤을 꼬박 새웠던 나는 마침내 작은 도시 그림을 완성해냈다.

완성한 그림을 2050에게 보내자.

- 2050 : 고수님의 그림을 확인합니다. 그림 분석하는 데 7일이 소요됩니다.

- 고수 : 많이도 걸리는군.

- 2050 : 고수님, 재능 스탯을 확인해보십시오. 보상이 들어와 있을 겁니다.

- 2050 : 조금 전에 수호님의 지휘하는 연합군이 I 구역을 정복했습니다.

- 고수 : 전투 영상, 내게 보내줘.

- 2050 : 네, 잠시 후에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고수님, 이건 수호님에게도 보고한 내용입니다만. 전에 유럽 북부로 정찰을 보냈던 드론 6대 말입니다.

- 고수 : 응.

- 2050 : 그중 한 대가 사라졌습니다.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 고수 : 그래?

- 2050 : 지금도 계속 수색 중입니다. 뭔가 찾아낸 게 있으면 알려드리겠습니다.

- 고수 : 그래, 알았어.

드론 한 대가 사라진 게 신경 쓰이긴 했지만, 별일 아니겠지 여겼다.

나는 재능 스탯을 확인했다.

『명화 작가 35레벨

명화 시간 : 12

명화 기교 제어 : 11

창조력 : 18

그랜드 코인 : 81.』

명화 시간의 수치가 ‘1’이 올라 있다.

코인도 조금 더 들어와 있다.

* * *

그즈음 사라졌던 드론 한 대는 바다 위를 비행 중이었다.

그 드론은 기묘하게도 회색빛 오라가 둘러있다.

어느 섬을 지날 무렵, 한 갈매기가 초소형 드론인 그것을 부리로 낚아채려다가 봉변을 당했다.

치지지지직-

강력한 전기 에너지가 흘러 갈매기를 공격한 것이다.

드론은 성능이 업그레이드 되기라도 한 듯, 평소보다 세 배 빠른 속도로 유유히 비행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울 도심까지 이르게 되었다.

드론은 도심을 한동안 배회하다가 어느 공원에서 잠시 머물렀다.

그 공원은 애플 수 재단에서 공공 미술 사업으로 참여해서 조성된 공원으로, 사과나무 조형물이 우뚝 서 있었다.

드론은 사과나무 조형물을 촬영하듯 가까이 접근하며 천천히 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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