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72화 (72/153)

아포칼립스의 원인 2

흠, 특정 사람에게서 아포칼립스의 원인이 있다라...

아직은 아무것도 판단할 수가 없다.

그저 추측만 할 뿐.

그나저나 내 명화 기교 능력이 진화해서 ‘능력 제어’ 능력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능력을 각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니.

이 또한 놀라운 이야기다.

나는 수호에게 물었다.

“수호야, 2027년도에 유하준 박사가 죽었으니 2051년 그 시점에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자가 너 혼자뿐인 건가? 초창기에 능력을 각성한 자는 한반도에서 나 한 사람이었다면 말이야.”

“아닙니다. 2051년도의 한반도에는 능력자가 저를 제외한 다섯 명이 더 존재합니다. 유하준 박사와 나를 키웠던 이전 리더가 죽은 이후에도 다섯 명이 살아있는 거죠. 그들은 2026년도에 이곳 쉘터에 머물렀다가 다른 지역으로 가서 쉘터를 구축한 이들입니다. 세 명은 전투 관련 능력, 두 명은 쉘터 보호 관련 능력이 나타난 거로 알고 있어요."

"그래?"

"그들 모두는 2026년도에 고수에게서 도움을 받아 능력 각성이 나타났던 사람들입니다. 덕분에 현재 한반도는 다른 곳에 비해 생존자들이 제법 남아있는 편입니다.”

“그렇군.”

수호는 계속 설명했다.

“그들은 고수 덕분에 능력을 각성했지만. 능력 한 가지를 그대로 이어받은 건 저 뿐입니다. 나에게 있는 실물 전환 능력은 창조력에서 진화된 능력을 받아 얻게 된 거죠."

"그래."

"그래서 이 능력은 그림으로만 실물로 창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능력의 진화는 저에겐 한계가 있습니다. 능력의 한계가 없는 건 당신뿐이죠.”

“......”

“당신은 제한적으로 시간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도 있었던 듯합니다.”

“초창기에 극소수로 능력을 각성했던 사람들도 나 같은 능력이 있을까?”

“잘은 모르지만 창조력은 고수가 유일할 겁니다. 우리는 아포칼립스를 막을 방도가 창조력에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 * *

블랙카드 29레벨.

이번에 그리게 될 그림은 작은 도시였다.

그것도 방어막 시스템으로 보호되는 미래형 도시.

높은 빌딩과 도로와 가로등, 아름답게 조성된 공원과 호수까지 멋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난이도가 너무 올라간 느낌.

건물의 내부를 비롯해서 도시의 방어벽과 주변 자연 풍경까지 그려야 해서.

엄청난 노가다와 시일이 소요될 것 같다.

이걸 그리기 위해선 디스플레이를 최대로 확대해서 작업하는 게 편하겠다.

커피 머신으로 아침부터 달달한 마키아토 한잔을 내려 마시며 그림 작업을 했다.

손놀림이 11배속으로 움직이는 터라, 내 손은 보이지 않을 정도다.

빠른 만큼 근육에 무리를 줬고 에너지 소모도 대단해서.

뭔가 방책도 필요해 보였다.

나중에 속도가 빨라지면 내 팔과 어깨가 견디지 못할 터.

근력 스탯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대로는 어려운 것이다.

그때, 3D 디스플레이에서 저절로 AI 기능이 작동하며 2050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고수님, 드론이 보내오는 영상을 켜겠습니다.>

광속으로 움직이던 내 손이 멈칫하며, 나는 2050에게 답했다.

“그래, 영상을 보여줘.”

내 말이 끝나자마자 6등분으로 분할된 영상이 디스플레이를 가득 채웠다.

위잉-

유럽 북부 지역에서 비행하는 여섯 대의 드론.

수호가 전송 기계로 보냈던 드론이다.

그 드론이 촬영하는 내용을 나에게도 전송해오는 거다.

영상을 보니 미세먼지가 심한 것처럼 대기가 탁했다.

마치 회색빛 안개가 낀 듯하다.

“저게 회색 스모그라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2051년도에 나타나는 스모그나 회색 폭풍에 비하며 지극히 옅은 수준이긴 합니다. 검출되는 성분도 극미한 수준입니다만. 2022년도에 벌써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 좋지 않은 징조입니다.>

나는 드론이 보내오는 영상을 계속 지켜봤다.

<스모그가 더 짙어지거나 주변으로 확대되진 않습니다. 저대로 소멸할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 식물이 조금 시들긴 했지만 죽거나 변이된 흔적은 없고. 아직 하천이나 땅에 영향을 미치진 않습니다.>

“그 지역에 다른 이상한 점은 없는 건가? 혹시 능력을 각성한 자가 있다든지.”

<다른 이상한 점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

<드론이 전송하는 영상을 종료합니다.>

“2050. 스모그가 있었던 풍경들을 전부 사진으로 찍어서 저장해둬.”

<네, 알겠습니다.>

6등분으로 분할되어 나타났던 영상이 저절로 꺼졌다.

띠리리링-

그때 핸드폰 벨이 울리자 나는 전화를 받았다.

유하준 박사다.

<고수 씨, 조금 전에 저에게 전화를 하셨더군요.>

“네. 2051년도에서 자료를 건네받았거든요. 회색 폭풍을 연구한 박사님의 문서와 성분 표본이요.”

<아!>

“제가 지금 외출하려 하는데, 나가는 길에 박사님 연구실에 들를게요.”

<그러시겠어요?>

“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끊고서 드레스룸으로 가서 외투를 꺼냈다.

그러면서 핸드폰의 문자를 확인했다.

문자에 루나가 결제한 내역 문자가 연달아 뜬 게 보였다.

무슨 식기 세트, 조리 세트를 산다고 했었다.

커튼과 카펫, 침구 세트도 구매하고, 아기 방도 꾸민다고 했으니 살 것이 꽤 많았을 것이다.

나는 루나에게 결혼 준비하는 데 사용하라고 신용카드 하나를 줬었다.

블랙카드가 아닌 기존에 사용하던 카드다.

루나가 내게 보낸 톡도 있다.

- 루나 리 : 오빠, 오늘은 오빠 집에서 자고 갈 거예요.

- 루나 리 : 언니에게 허락받았어요. > <

- 루나 리 : 저 요즘 언니에게 요리 배우는 중이거든요. 저녁때 사랑하는 마음 꾹꾹 담아서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요♡♡♡ ㅎㅎㅎ

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 고수 : 기대할게. 이따 저녁때 보자. 카드는 사고 싶은 거 마음껏 써도 돼. 개인적인 용도로 써도 되고. 비싼 거로 사.

- 루나 리 : 그냥 적당한 거로 살게요^^ 오빠가 힘들게 번 돈인데 비싼 거 사기가 그래요.

- 루나 리 : 하지만 우리 아기가 쓰게 될 건 비싼 거 살 거예요. > <

루나는 내게 사진 한 장도 첨부했다.

흰색 페라리 사진이다.

페라리 측에서 내게 줬던 페라리 신차.

내게 협찬해줬던 신차를 관리해주는 기간이 끝나서, 이젠 내가 몰게 되었다.

물론, 그 신차는 내가 직접 몰기보다 루나가 쓰게 되었지만.

- 루나 리 : 오늘 오전 수업이 있어서 학교에 페라리를 처음 몰고 갔었거든요?

- 루나 리 : 친구들이 난리 났었어요. ㅎㅎ

나는 그녀의 톡을 보다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루나는 금세 전화를 받았다.

늘 그러했듯 맑은 웃음소리를 내며 나를 반겼다.

“친구들이 뭐래?”

<부러워해요. 결혼하는 것도 부럽대요.>

“그래?”

<오빠, 저 요즘 저 신데렐라가 되고 공주님이 된 기분이에요. 아빠 돌아가시고 여기 한국에 와서 학교에 다니다가 휴학하게 되었을 때요. 그땐 모든 걸 포기하는 기분이라서 정말 힘들었었거든요.>

“우리 처음 만났을 때가 너 힘들었던 때구나?”

<네. 근데 오빠를 만난 이후부터는 제 삶에 마법이 시작된 것 같아요. 오빠는 제 삶에 온 기적이에요.>

“너 그때 늘 웃는 얼굴이라서 힘든 줄 몰랐어.”

<저 그렇게 잘 웃는 아이 아니었어요. 근데 오빠 만나면 저절로 웃음이 나와요. 실은 저...>

“응.”

<오빠,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 보고서 먼저 제가 말을 걸었었잖아요. 그때, 오빠가 부자일 거라는 생각 못 했어요.>

“그래?”

<사실, 오빠가 가난한 사람이었어도. 전 오빠와 결혼했을 것 같아요.>

그래, 넌 그랬었어.

수호가 겪었던 그 시간에서는.

그래서 넌 많이 힘들었을 거야.

아직 학생일 뿐인 너였는데.

“맞아. 넌 그랬을 거야.”

<오빠, 이 말 너무 부끄러워서 못했는데요.>

“응.”

<사랑해요, 많이.>

“......”

이럴 때, 심쿵한다고 하는 건가.

순간, 생각지 못하게 감동이 되면서 심장이 뛰었다.

<오빠, 이만 끊을게요.>

루나는 부끄러웠는지 내가 제대로 반응할 새도 없이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래서 톡으로 그녀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 고수 : 나도 사랑해, 루나야. 우리 아이 수호까지.

* * *

나는 유하준 박사의 연구실에 들렀다가 양평 부모님 집에 들른 후에, 아우디를 끌고 한적한 강가로 나왔다.

이곳은 오랜만에 온 것 같다.

인적이 없는 이곳.

평화로우며 자연의 소리만 가득한 이곳.

번잡하던 마음이었어도 이곳을 홀로 산책하며 멍하니 흐르는 강물을 응시하다보면...

내 마음도 차분해지고 고요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조금 전, 유하준 박사와 대화했던 내용을 잠시 떠올렸다.

유하준은 내가 건넨 연구 문서를 훑어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었다.

“놀랍고 끔찍하군요.”

“회색 폭풍이요?”

“네. 이게 가져다주는 결과가 치명적이네요. 모든 살아있는 걸 오염시켜요.”

“어떤 식으로 오염시키는 거죠?”

“모든 살아있는 것을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그게 아니면 전혀 다른 존재로 변질시켜 버려요. 회색 폭풍에 가득한 치명적인 성분이 생명체를 변질시키고, 이곳 자연도 그것에 맞게 바꾸어버리는 거죠.”

“그 성분은 지구 밖에서 온 걸까요?”

“아직 모르겠습니다. 지구에 없는 성분이라고 하니 지구 밖 물질이라고 봐야겠죠. 그런데 기이한 점은 제 연구 문서에 이런 기록이 있네요.”

“어떤 기록이죠?”

“이 회색 물질이 살아있는 것 같다고 적어놨어요.”

“예?”

“이 회색 물질 자체가 살아있다기보단 그 물질이 어떤 살아있는 존재에 의해 조종되고 움직이는 것 같다고, 제가 기록을 해 놓았군요.”

“......”

“일단 더 면밀하게 살펴보며, 이 분야의 전문가에게 도움도 받아야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뭔가 알아낸 게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예.”

나는 강가를 산책하며 유하준 박사와 대화했던 것을 곱씹다가.

어느 장소에서 우뚝 멈췄다.

오늘은 이곳에서 산책해도 마음이 여전히 번잡하다.

나는 펜을 쥐고 3D 디스플레이를 활성화했다.

2개의 디스플레이.

하나는 자료 사진을 띄운 거고, 다른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타블렛 창이다.

디스플레이 2개를 손으로 터치하며 겹친 다음, 크기를 한없이 확대했다.

그러고는 빠르게 스케치를 해 나갔다.

조금 시간이 지난 스케치가 마무리된 후, 나는 자료 사진을 조그맣게 축소했다.

하지만 타블렛 창은 여전히 크게 띄운 상태로 그림을 슥슥 그려나갔다.

굳이 자료 사진과 싱크로율이 100%에 이르지 않아도 되었다.

싱크로율을 압도할 퀄리티가 있다면, 반드시 자료대로 그릴 필요는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생각은 계속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내 능력의 창조력은 수호에게 주어져서 실물 전환 능력이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후, 창조력이 진화를 거듭하다 보면 내게 실물 전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거라는 의미.

띠리리링-

핸드폰을 확인하니 진구에게서 온 전화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야, 너 이번에 또 유화 그림 그릴 생각 없냐?>

“왜?”

<소더비 경매 회사에 네 작품 출품했으면 하거든. 이제 뉴욕 미술 시장에도 네 그림이 등장할 때가 된 거 같아서. 네 이름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기회 아니겠냐?>

“음,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작품 구상해볼게.”

<여전히 너에게 광고 제의가 들어오고 있어. 국내 건설 기업에서도 얘기가 있었고. 가전을 만드는 대기업에서도 제의가 있었거든.>

“광고는 아직 생각이 없네.”

<그래, 알았다. 참, 네 청첩장 나왔어.>

“그래? 고맙다, 진구야.”

진구가 내 결혼 준비도 조금 도와주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그림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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