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그리고 보상 2
나는 디스플레이를 터치해서 AI 기능의 음성 인식을 활성화해서 2050에게 물었다.
“저건 뭐야? 방어막 같은 게 쉘터를 둘러싸고 있네.”
그러자 화면에 2050의 메시지가 작성되었다.
<방어막이 맞습니다. 회색 폭풍을 막는 방어막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쉘터에 있는 사과나무와 샘이 오염되지 않게 된 상황으로, 시간의 흐름이 변화한 듯합니다.>
그때.
딩동-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유하준 박사가 내 집에 오기로 했던 것이다.
펜의 전원을 끄고서 현관문을 열어주자, 그가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에게 줄 커피를 내리면서 물었다.
“박사님, 2024년도를 대비하기 위한 무슨 방도가 있겠습니까?”
내가 묻자 그는 검지를 들어 안경을 습관적으로 올리며 대꾸했다.
“여러 방법을 생각해봤는데요. 2024년 아포칼립스가 회색 폭풍에서 시작된다고 하셨잖아요? 그 회색 폭풍을 대비해야 할 것 같아요. 현재로선 회색 폭풍을 막을 과학적 기술은 없지만, 이후라면 방도가 생길 듯합니다.”
나는 그에게 커피를 건네고 소파에 앉으면서 물었다.
“이후요?”
“현재 미세먼지 방어막 기술이란 게 국내에서 연구되고 있거든요. 전기를 이용해서 미세먼지를 차단하는 방법이요. 회색 폭풍은 좀 다른 문제긴 하지만. 지금부터 방어막 기술을 연구해보려 합니다.”
“방어막이요? 지금 방어막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방어막이요. 회색 폭풍을 막는 방어막을 비롯해서 레이저 빔 같은 특수 무기를 방어하는 방어막까지 연구해볼 생각입니다.”
나는 조금 전에 봤던 영상을 떠올리며 대꾸했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리겠군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제가 만들었던 아바타 기계를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 기계는 미래와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유하준 박사는 전송 기계가 존재한다는 건 모르고 있다.
약탈자의 손에 들어가 버려서 그것이 악용되는 걸 막으려고, 한 대만 남겨두고 전송 기계를 역사 속에서 아예 지워버렸던 터.
필요에 의해 또 어쩔 수 없이, 전송 기술이 접목된 아바타 기계를 만들긴 했다.
“제가 수년 후에 기술을 개발하게 되면 그 설계를 아바타 기계를 통해 누가 이곳으로 전해주는 겁니다. 그러면 2022년도의 제가 받아서 방어막 시스템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지는군요.”
“네, 박사님이 말씀하신 그 방법을 활용해야겠군요.”
“이후 어찌 되는 저는 2027년도까지는 살아있을 거고. 그때까지는 방어막 기술도 최선을 다해 개발하겠습니다. 어쩌면...”
“네.”
“고수 씨가 접촉했던 미래의 그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제가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이전과는 달리, 지금의 저는 고수 씨의 지원을 받고 있으니까요.”
그의 말이 옳다.
내가 수호의 도움으로 이전보다 나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도록 기회를 받은 것처럼.
나는 유하준 박사에게 기회를 주게 된 셈이니.
그에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박사님. 조만간 2051년도와 접촉해서 방어막 기술의 설계를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러니 박사님의 결심 그대로 방어막 기술 개발에 힘써주세요.”
“예.”
유하준 박사의 그 결심은, 내 집을 찾아오기 전에 이미 그의 마음에 새겨졌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결심대로 이후의 삶 속에서 기술에 개발에 힘썼던 거고.
그로 인해 미래가 다시 한번 비틀리게 되었던 것이겠다.
하지만 방어막 기술은 아포칼립스 이후의 시기에 개발되었을 테니.
무수한 비극은 막지 못했을 터.
그러해도, 쉘터를 보호할 수 있었기에.
내가 그려서 실물로 바뀐 사과나무와 그 외의 것이 보존되었던 거겠다.
나는 유하준에게 말했다.
“그리고 아포칼립스를 가져왔던 회색 폭풍이요. 거기서 검출된 성분이 지구에서는 현존하지 않은 물질이 검출되었다고 들었어요.”
“아, 그래요?”
“이게 뜻하는 게 뭘까요? 앞으로 다가올 아포칼립스의 원인은 지구 밖에 있다는 걸까요? 외계? 아니면 다른 차원?”
“그건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죠. 그 스모그라던가, 회색 폭풍에서 검출된 물질을 연구해본다면 좋을 텐데요. 이 부분은 제가 아는 어떤 박사님이 탁월하시지만. 연구할 표본이 없으니.”
“아마도 미래의 박사님이 그 또한 분석해놓으신 게 있을 겁니다. 아포칼립스의 원인은 미래에서도 찾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회색 폭풍을 방어할 방도는 생길지 모르니 자료를 요청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유하준은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자택으로 돌아갔고.
다시 혼자 남게 된 나는 펜을 작동하여 3D 디스플레이를 켰다.
조금 전, 미처 다 보지 못했던 영상을 열었다.
수호가 지휘하는 전투 영상.
그 광경이 다시금 내 시야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나는 그 장면을 초조한 심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비행선은 방어막을 지속해서 형성하여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그러면서 아이언 빔이 쉬지 않고 발사하여 적을 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중의 적이 사라졌을 때, 비행선에선 소형 유도 미사일이 다수 도시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위잉, 윙-
이윽고, 비행선에서 천 대 정도의 전투 드론이 빠져나와 빠르게 도시로 하강했다.
비행선의 뒤쪽에서 소형 전투기들이 굉음을 내며 도시로 날아갔다.
대도시였던 그곳의 지반이 진동하며 흔들렸다.
아직 멀쩡하게 남아있던 건물들이 무너지고 폭발이 일었다.
쿠구구구구-
적의 군대가 언뜻 보였다.
도시를 덮을 만했다.
적이 내는 괴음은 편집되었다.
하지만 적의 형태는 이전보다 분명하게 보였다.
그것들은 이 세상의 것들이 아닌 것처럼 흉측했고, 사나웠으며 덩치가 제법 컸다.
위잉-
치지지지직-
두두두두두!
전격 공격을 하는 드론들.
그 외에 기관총을 장착하여 공격하는 드론들.
그 땅에 대규모 전쟁이 시작되었다.
현재 내가 사는 이곳 서울이 수년 후엔 저렇듯 처참하게 변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충격적이고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영상은 끝이 났지만, 수호가 탑승해서 지휘하고 있을 비행선을 한동안 말없이 응시했다.
그러다 펜의 전원을 끄고.
재능 스탯을 바라보았다.
『명화 작가 30레벨
명화 속도 : 8
명화 기교 : 8
창조력 : 16
그랜드 코인 : 93.』
그새 더 코인이 올라 있다.
어느 스탯을 올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속도와 창의력 스탯을 올렸다.
소모되는 그랜드 코인은 16, 32.
『명화 작가 32레벨
명화 속도 : 9
명화 기교 : 8
창조력 : 17
그랜드 코인 : 45.』
TV를 켜면 가끔 나에 관한 내용이 흘러나올 때가 있다.
애플 수 재단에서 벌이는 미술 사업, 자선 사업.
내 유화 그림을 분석하는 이야기들.
내 그림이 어떤 이례적인 기록을 하는지 전하는 소식들.
그렇기에 애플 수라는 그 이름은 지금도 명성이 오르는 중이다.
덕분에 코인은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중이다.
부디, 아포칼립스를 막게 될 능력이 늦게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 *
요즘 진구는 재단 사무실에서 수연이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
내가 오랜만에 재단 사무실에 잠시 들렀을 때, 마침 주혜가 와서 같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주혜는 이곳 재단 사무실에 종종 들락거렸었나 보다.
그녀는 수연이, 진구와 안면을 튼 것뿐만 아니라 어느새 친해져 있다.
“어? 고수 씨,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세요.”
“저희 마침 김밥 먹던 중이었는데. 같이 드실래요?”
“주혜 씨가 여기서 김밥을 드실 줄은.”
“취재거리가 있는지 알아볼 겸, 가끔 여기 놀러 오거든요. 전에 H 백화점 크리스티 홍콩 프리뷰 행사에서 수연 씨를 만난 게 인연이 되어서요.”
“그러셨군요. 근데 왜 김밥으로 때워요? 맛있는 거로 먹지.”
그러자 수연이가 대꾸했다.
“그럼 네가 온 김에 맛있는 거로 쏴. 나 연어 초밥 먹고 싶어.”
“나는 갈비탕! 닭찜도 먹고 싶네.”
“요즘 쭈꾸미가 철인데, 쭈꾸미도 먹고 싶다.”
“이 시기엔 도미회도 맛있지.”
“생각난 김에 조개 구이도 생각나네. 낙지랑.”
사무실에서 점심으로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메뉴까지 저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주혜에게도 물었다.
“주혜 씨는요?”
“아, 저는 앞서 말한 메뉴들 다 먹고 싶긴 하지만, 여기 오래 있지는 못해요. 기사 쓸 게 있어서.”
“그럼 빨리 배달되는 거로 주문할게요.”
내가 핸드폰으로 음식 주문을 하자, 수연이가 물었다.
“고수야, 주혜 씨랑 알아?”
“응, 저번에 광고 촬영 취재에서 뵈었거든. 두 번째 광고 촬영에서 주혜 씨가 나 애플 수인 거 눈치채셔서.”
그러자 진구가 놀라며 물었다.
“헉, 그랬어?”
“제가 기자이긴 하지만. 기사로 안 써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입 꾹 닫을게요.”
“정말요? 주혜 씨만 믿습니다?”
“네, 저만 믿으세요. 그나저나 수연 씨와 진구 씨, 부럽네요. 다들 오래전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인 거.”
“주혜 씨도 지금부터 친구 하시면 되죠.”
“그럼 저 여기 매일 놀러 옵니다?”
“흐흐, 그러셔도 됩니다만. 고수 자식은 바쁘다고 여기 어쩌다 한 번 들르거든요. 저희만 봐도 괜찮겠어요?”
“고수 씨가 아니어도 여기 오는 거 좋은데요? 대신.”
주혜는 다이어리를 꺼내더니 내게 말을 이었다.
“고수 씨는 오늘 만난 김에 저에게 간단한 그림 하나만 여기에 그려주시면 고맙죠. 평생 간직하게.”
“네.”
나는 색연필을 찾아 꺼내, 그녀의 다이어리에 로고로 사용할 간단한 사과나무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리는 시간은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와, 역시 엄청 빠르시네요.”
“애플 수 재단의 로고가 될 그림입니다.”
“예뻐요. 사과나무. 이렇게 애플 수를 직접 만나고 그림까지 얻다니. 성공한 덕후가 된 기분이에요.”
주혜는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참, 그거 아세요? 지금 유럽에 애플 수 붐이 일기 시작했어요. 이번 페라리 광고 보고서 팬이 된 사람이 많은 거죠. 천재 화가의 나라에 방문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꽤 되는가 봐요.”
그러자 수연이 대꾸했다.
“여기 재단에서도 문의가 왔어요. 미술관과 조각 작품으로 애플 수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게 어떻겠냐고요. 애플 수 팬클럽인 ‘올차드’와 H그룹에서 투자하겠다고 연락이 오긴 했었어요.”
“H그룹, 여러모로 인연이 좀 있는 것 같네.”
H 호텔에서 주혜와 부딪혀서 만난 기억도 있고.
거기서 미라클 쉘터스와 업무 회의도 했었고.
나는 수호의 이전 쉘터 건물을 떠올렸다.
기업 창고 건물이었던 그 건물에 H그룹 로고가 있었던 것이 새삼 생각난다.
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H그룹 사람이 있었던가.
“그런데 요즘, 유럽 북부는 좀 안 좋아 보이더라고요.”
“왜요?”
“대기 오염이 심한 건지, 북부 지역에 스모그 현상이 옅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 지역 식물이 이상하게 시든다고 들었어요.”
“스모그요? 그곳이 어디입니까? 자세한 기사 내용 볼 수 있어요?”
내가 심각해진 표정으로 묻자 그녀가 답했다.
“제가 이따 톡으로 링크 보내드릴게요.”
까톡!
그때 내 핸드폰에서 2050이 톡을 보내서 확인했다.
- 2050 : 고수님, 확인하십시오. 2051년도의 서울 지역 정복 전쟁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보상으로 재능 스탯의 수치가 올라가 있을 테니. 확인해보십시오.
나는 까톡 창을 닫고서 수연에게 말했다.
“이만 가봐야겠어.”
“벌써?”
“주혜 씨, 다음에 또 봬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오늘 잠깐이라도 뵈어서 반가웠어요. 다음에 봬요.”
“야! 나한테는 간다는 말도 없냐?”
진구의 투덜거림에 나는 손만 들어 인사를 고하고는 사무실을 나왔다.
주차장으로 걸으면서 나직하게 중얼거려.
“2050 고수.”
재능 스탯을 확인했다.
『명화 작가 32레벨
명화 속도 : 10
명화 기교 : 9
창조력 : 18
그랜드 코인 : 120.』
놀랍게도 재능 스탯이 ‘1’씩 올라가 있다.
더불어 코인까지 제법 채워져 있다.
또 한 번 재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액수.
나는 2050에게 톡을 보냈다.
- 고수 : 2050. 전투가 끝난 그곳의 상황, 영상으로 보내줄 거지? 수호는 어때?
- 2050 : 편집한 영상을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수호님은 무사하십니다.
- 2050 : 비행선을 사진으로 찍어 자료를 보내드릴 테니. 그림으로 비행선의 훼손된 부분을 보수해주시는 것을 부탁드립니다.
- 고수 : 그래, 알았다. 그리고 유럽 북부에 스모그 현상이 나타났다고 하니 알아봐야겠는데?
- 고수 : 혹시 미래가 비틀린 결과로 아포칼립스가 앞당겨지거나 그러는 건 아니겠지?
- 2050 : 수호님께 보고하겠습니다.
나는 아우디가 주차된 곳으로 가서 차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재능 스탯을 다시 확인했다.
명화 속도가 ‘10’.
진화가 가능한 수치다.
속도를 올리면 어떤 형태로 재능 명칭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