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그리고 보상
화면 속, 2050의 메시지를 읽은 유하준.
돌연 그의 눈가에서 눈물방울이 주룩 흘러내렸다.
“어?”
그러다 그는 당황하며 손가락으로 눈가를 닦아냈다.
“왜 눈물이...”
유하준의 반응에 나 역시 놀랐다.
눈물을 보일 줄은.
그는 혼자 헛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갑자기 울컥해서. 내가 왜 그랬지?”
“미래의 박사님이라면 모를까. 박사님은 아직 이 모든 걸 만드시기 전일 텐데.”
내가 그런 말로 중얼거리자자 유하준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네? 미래의 저요?”
“네. 이 모든 건 다 박사님이 만드신 겁니다. 정확히는 미래의 박사님이 말입니다.”
유하준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복해서 되물었다.
“미래의 제가 만들었다고요?”
“이 디스플레이와 드론, 유리 금속, AI, 그리고 아바타 기계까지. 전부 박사님 작품입니다.”
“......”
그는 할 말을 잃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박사님에게 그동안 말씀드리지 않은 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솔직히 경탄했었습니다. 고수 씨가 준 usb 안에 담긴 기술이요. 그 모든 건 제가 꿈꾸던 내용이었거든요.”
“그랬군요.”
“그걸 바탕으로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연구하는 동안 경탄하면서도 부러웠습니다. 이런 걸 개발한 자는 천재겠구나, 하며. 그런데 미래의 내가 만든 것이라고요? 고수 씨는 미래의 내가 만든 걸 어떻게 알며, 또 어떻게 그 모든 걸 지니고 있는 겁니까? 혹시 시간여행 기계가...”
나는 그의 말을 가로채며 답했다.
“아닙니다. 시간여행 기계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 게 만들어지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럼 어떻게...”
“시간여행은 불가능하지만, 시공간을 초월해서 물건을 전송하는 기술은 알고 계시죠?”
“예. 그 기술 자체를 구현한 전송 기계를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했었지만, 그 기술을 접목한 아바타 기계는 만들었었죠.”
아바타 기계는 필요했던 터라, 아바타 기계 한해서만 시공간 초월 전송 기술을 뒤늦게 허락했었고.
그 기술을 유하준 박사에게 건넸었다.
“어찌 된 상황인지는 지금부터 박사님에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앉으시죠.”
“아, 예.”
나는 자리에 앉아 그를 보며 천천히 2024년도의 일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2051년도의 일까지.
내 재능 관련 능력을 제외한, 아포칼립스가 되는 미래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런 후,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세상의 종말과 비극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유하준 박사님과 한나의 불행도 막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믿기 힘들면서도 믿을 수밖에 없군요. 유리 금속 드론과 이렇게 AI를 보고 있자니.”
그는 그렇게 답하면서도 드론 한 대를 손으로 붙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심각한 이야기를 듣는 중에도, 미래 기술에 댄한 호기심과 열의는 포기가 안 되는 모양이다.
“지금 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는 한나와 루나에게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가족에게도요.”
그는 드론을 내려놓으며 진지하게 답했다.
“예, 물론입니다. 저 역시 그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고수 씨의 말대로 아포칼립스는 막을 수 있어서, 이대로 오지 않게 될 수도 있고요.”
그의 표정엔 혼란스러움도 스며있긴 했어도.
미래의 불행을 막아야 한다는 사실에는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앞으로 박사님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죠.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을 테니.”
“저 이제 아바타 기계를 통해 2051년도의 세상을 방문할까 하는데.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도 일어서며 말했다.
“기계를 제가 조작하도록 하죠.”
* * *
잠시 후, 아바타 기계를 통해 나는 2051년도의 세상에 접속할 수 있었다.
이곳에 내 아바타가 형성되어, 보고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곳은 수호가 지내는 쉘터.
방어벽 위로 쉘터민들이 올라와 있다.
수호는 가장 높은 파수 탑에 서 있었고.
쉘터민들은 나를 보지 못하는 듯 다들 수호만 주목하고 있다.
수호는 안경을 쓰고 있다.
그를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
하지만 2051년도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내 시야에 2050의 메시지가 반투명한 창으로 나타났다.
<2051년도를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재 고수님의 모습은 수호님과 정테이님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이 탁하고 우중충하며 붉다.
<방어벽 위로 장소를 이동하겠습니다.>
내가 있던 장소가 한순간에 달라졌다.
내 옆에 나이가 든 정테이가 서 있다.
그녀도 안경을 쓰고 있다.
그 안경으로 나를 볼 수 있는 거다.
테이는 전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사진 속 모습보다 한결 나아 보였다.
나를 보더니 환하게 미소지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고수 씨.”
“아, 안녕하세요. 테이 씨.”
“너무 오랜 세월 뒤에 다시 보게 되네요. 젊을 적 멋졌던 고수 씨를 다시 볼 수 있어서 기뻐요.”
“전에, 수호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일을 도와줬던 거. 감사드립니다.”
“다 같이 살자고 했던 일이었는데요. 고수 씨, 2022년도의 일을 잘 부탁해요. 2022년도의 저에게도 말 좀 전해줘요.”
“뭐라고 전해드릴까요?”
“후회하지 않도록 평화로운 그곳에서 불꽃처럼 살라고요. 그 당시의 나는 지금만큼 절박하지 않았으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젊은 날의 나는 고수 씨의 믿을 만한 조력자니까. 마음 놓고 부려 먹으세요.”
“하하. 새겨듣겠습니다.”
“그리고 한나 씨와 유 박사님도 고수 씨의 조력자에요. 덕분에 이곳 쉘터가 존재하고 있는 거예요. 애초에 사과 과수원이었던 이곳에서요.”
“예.”
내가 답하자 그녀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장소를 다시 이동하겠습니다.>
내가 서 있는 장소가 또 달라졌다.
이번에는 수호가 내 옆에 서 있다.
수호는 내게 고개를 까닥해 보였다.
나는 그에게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2051년도의 쉘터와 방어벽 모습.
쉘터민들과 방어벽 외부 풍경까지.
이 모든 걸 간접적이긴 해도 더 생생하게 보는 거라서 기분이 묘하다.
“고수. 저길 봐. 저기에 비행선이 실물 전환될 거다.”
나는 수호가 가리킨 곳에 눈길을 주었다.
그곳에 대형 3D 디스플레이가 펼쳐져 있었다.
비행선 그림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비행선 그림 주변으로는 무수한 드론이 날고 있었고.
어디서 다 불러모아 집결한 건지, 지상 어느 한 곳에서는 전투 차량이 한가득 모여있었다.
전투 로봇과 소형 전투기도 대기 중이다.
대규모 전투를 앞둔 풍경.
그 광경에 놀라 수호에게 물었다.
“너 어디 침공이라도 하냐?”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부터 쓸어버릴 생각이야. 이제 습격당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 될 거다. 적들의 숫자가 불어나고 있어. 마치 지능이라도 있는 것처럼, 전에 G 구역을 건드렸던 우리를 보복하려는 것 같아. 그 전에 우리가 공격을 감행할 거다.”
내가 근심 어린 눈을 하자 그는 말했다.
“그런 눈으로 볼 필요 없어, 고수. 이제는 파죽지세로 우리의 승리가 이어지게 될 테니. 조만간 너에게 코인이 쏟아질 거야.”
“코인. 그럴 테지. 하지만 수호야,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네 안위야.”
수호는 나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 시선을 돌리더니 내게 말했다.
“고수. ‘승리’라는 가치가 주는 보상은 생각보다 커. 도시를 탈환하고 나면 이제껏 받아본 적 없던 보상이 우리에게 떨어지게 되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대가가 필요해.”
“......”
“네가 옳았어. 내 생명을 붙들고 움츠리고 있으면 모두의 생명을 살리지 못해. 역시 난...”
수호는 눈가가 살짝 붉어졌다.
그의 그러한 모습은 왠지 루나를 떠올리게 했다.
수호의 말이 이어졌다.
“...난, 당신의 아들이었어.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삶과 가치관이 결국 나를 이끌어가고 있고 나 역시 그 길을 걷게 하고 있으니.”
나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수호야?”
"내가 리더가 된 건 그때문이다. 그리고 이젠 모두를 위해 앞장 서려 해."
그러다 그의 어조는 다시 냉랭해졌다.
“...그래도 아버지라 부르진 않을 거다. 내 뇌리에 그날의 일이 지워질 때까지.”
수호로부터 내가 아버지이고 그가 아들임을 인정하는 말을 들었던 이 날.
나는 그곳에서 비행선이 실물 전환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비행선 안으로 집결한 모든 무력이 탑승하는 것도 바라보았다.
그런 와중, 하늘 점차 더 핏빛으로 진해져 갔다.
불길한 그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수호와 나는 서로의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어져 있다고.
* * *
사흘이 지난 오후.
내게 코인이 쌓인 것을 보게 되었다.
요즘 세계적으로 페라리 광고가 TV 방영되어 애플 수 명성이 급격하게 오르는 동시에, 2051년도에서 전투에 대한 승리 보상이 떨어졌는지.
코인이 무시무시하게 쌓이고 있었다.
『명화 작가 30레벨
명화 속도 : 8
명화 기교 : 8
창조력 : 16
그랜드 코인 : 90.』
코인 액수에 놀라면서도 나는 2050에게 계속해서 묻고 있었다.
- 고수 : 2050. 지금 쉘터와 수호의 상황은 어떠하지?
- 2050 : 수호님은 비행선에 탑승하셔서 서울 토벌을 나가셔서 아직 전투 중입니다.
- 고수 : 괜찮은 건가?
- 2050 : 아직 전투가 진행 중입니다만. 지금까진 좋습니다. 고수님께서 이번에 그리셨던 전투 비행선은 차세대 전투 비행체로 꽤 강력하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 2050 : 전투 비행선의 미사일과 아이언 빔으로 먼저 적을 공격하면, 비행선으로 수송했던 전투 차량과 로봇, 그리고 무수한 전투 드론들이 후방에서 전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 2050 : 경기권 생존자 쉘터에서 지원한 전투 차량과 전투 드론이 연합하여 서울 지역을 총공격하는 중입니다. 전부 태양 에너지로 운용되는 무기들입니다.
- 고수 : 그렇군.
- 2050 : 서울 지역의 적을 괴멸하고 나면 보상으로 코인 외에도 들어오는 게 있을 겁니다. 그곳에 남아있던 자원과 물자도 얻을 수 있어서 꽤 이득입니다.
- 고수 : 모쪼록 무탈하게 승리하기를 바라.
- 2050 : 고수님, 마침 첫 번째로 편집한 전투 영상이 완성되었습니다. 지금 이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펜을 쥐어 3D 디스플레이를 활성화했다.
내 시야에 커다란 입체 화면이 펼쳐지자 이메일을 열어 2050이 보내온 영상 파일을 확인했다.
이내 내 눈앞에 생생한 장면이 시작되었다.
나는 화면을 터치해서 디스플레이를 크게 늘렸다.
파괴된 도심을 향해 비행하는 커다란 비행선.오직 태양 에너지로만 비행이 가능하며 길이가 100미터가 넘고 너비는 60미터 정도 되는 초대형 비행체.
비행선을 뒤따르는 소형 전투기가 촬영하는 듯했다.
비행선 앞에 공중을 비행하는 적들이 있었는지.
비행선에서 전방 열 군데에서 아이언 빔이 다양한 각도로 쏘아져 나갔다.
그때.
화르르륵!
커다란 불길이 비행선을 향해 쏘아져 왔고.
비행선에 투명한 방어막 같은 게 생겨나더니 그 불길을 방어해냈다.
그 광경에 나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까톡!
핸드폰으로 2050의 톡 메시지가 들어왔다.
나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 2050 : 방금 2022년도와 2051년도 사이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 고수 : 뭐?
- 2050 : 방금 수호님과 고수님도 알지 못하는 사이, 역사 흐름이 비틀릴 만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 2050 : 지금 촬영한 우리 쉘터의 풍경을 영상으로 전송하겠습니다.
그러자 내가 보고 있던 영상이 저절로 꺼지고.
대신 이메일이 열리더니 거기에 전송된 영상 파일이 열렸다.
2050이 조작한 거다.
내 시야에 다른 영상이 열리며 입체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그건 수호의 쉘터 풍경이었다.
놀랍게도 그곳 쉘터는 투명한 방어막 같은 게 형성되어 있었고.
방어벽 내부에 심겨 있던 사과나무.
이전에 내가 그려서 실물 전환되었지만, 회색 폭풍 때문에 죽어버렸던 그 나무가.
놀랍게도 이전처럼 싱그러운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작은 옹달샘에도 맑은 물이 차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