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미래에도, 조력자였던 자들
요즘 나이지리아에 감염병 전담 병원과 국내 기계공학 연구 센터 건축을 추진하고 있어서, 거금이 연달아 미라클 쉘터스로 빠져나갔다.
루나에게 블랙카드가 아닌, 기존의 신용카드를 내주기도 했다.
결혼 준비에 필요한 걸 내 카드로 준비하라고 준 것이다.
결혼 준비는 루나가 한나와 함께 주도적으로 준비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어머니가 결혼 준비를 도왔다.
이틀 전에는, 루나를 데리고 내 부모님 계시는 양평도 다녀왔었다.
그림 작업하다가 잠시 쉴 겸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어 테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테이 씨.”
테이는 최근 미라클 쉘터스 한국지부장으로 아예 서울에서 머물고 있었다.
<네, 고수 씨. 무슨 일이에요?>
“2051년도에 도움이 될 만한 차량을 구매하고 싶은데요. 전투 차량으로 쓸 수도 있고, 평화로운 시기에 민간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차량으로요. 그런 차량이 있을까요?”
내가 묻자 테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 뜸을 들이더니 답했다.
<패러마운트 머로더, 라는 차가 있는데요. 이 차량은 장갑차처럼 생겼어요. 군용으로 사용되는 차인데 드물게 민수용으로도 판매되고 있어요. 각종 무기와 화기를 제거한 상태로 판매하면 민수용이 되는 거죠.>
“그래요?”
<머로더는 이중 철로 제작되어서 웬만한 폭발물도 견딘대요. 그 외에 벤츠에서 생산되는 G클래스 차량이 있어요. 듣기로는 이 차는 사막이나 산, 계곡, 계단도 돌파한다고 하던데요. 심지어 암벽 등반도 한 대요.>
“허, 암벽 등반이요?”
<네.>
“가격은 어떻게 돼요?”
<둘 다 5억이 훌쩍 넘어요.>
“음, 그러면 그 차량 두 대를 구해줬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짓게 되는 건물의 차고에 뒀으면 하네요.”
<알겠어요. 세상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2051년도를 살고 있을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힘써 차를 구해놓을게요. 근데 예산은 부족함 없는 거죠?>
“네, 예산은 걱정할 필요 없어요.”
<새삼스럽게 놀라는 거지만 정말 대단하네요. 지금도 막대한 돈이 들어가고 있는데도, 고수 씨는 끄떡없네요? 마치 돈이 솟는 샘이라도 고수 씨에게 있는 것 같다랄까. 호호.>
“하하.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그녀와의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TV를 켰는데.
학교 수업을 마친 루나가 내 집에 잠시 들렀다.
가끔 그녀는 내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은 후 '라멘 사랑'으로 가서 한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루나는 내 옆에 털썩 앉더니 조잘조잘 말을 꺼냈다.
“오빠, 오늘 친구들에게 나 결혼한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친구들이 놀라면서 오늘 정신없이 물었어요.”
“뭐라고 묻는데?”
“남편 될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인지, 몇 살인지 묻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애플 수 이야기를 해요.”
“애플 수?”
때마침, 켜놓은 TV에서 페라리 광고가 흘러나왔다.
이번에 새로 찍은 광고였다.
나는 TV에서 방영되는 건 처음 보는 거라 눈길을 줬다.
루나는 TV를 보더니 눈이 동그래지며 손으로 가리켰다.
“앗! 저 광고에 등장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요.”
그녀도 이번 광고를 처음 보는지 시선을 못 떼며 TV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애플 수인가 봐요. 얼굴을 가렸지만 배우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첫 등장은 내가 화려한 저택의 계단에서 내려오는 장면부터 분위기 있게 시작했다.
블랙색상의 고급스러운 프록코트를 입고 가면을 쓴 내 모습.
매력적인 음악이 함께 흘러나왔다.
세트장으로 볼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편집된 영상으로 보니까 정말 웅장하고 화려한 저택처럼 보였고.
나는 진짜 귀족 같았다.
전체적인 이미지가 고급스럽고 매력적이며 강렬하고 세련되었다.
평소 내 모습은 저렇지 않을 것인데.
한껏 꾸미고 영상 기술까지 더해지니, 확실히 사람이 달라 보였다.
광고 음악에 맞춰 영상이 느려졌다가 빨라졌다.
그리고 대형 캔버스에서 스케치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나.
과감하고 주저함 없는 붓 터치에 클로즈업 되고.
화려한 유화 물감의 색감이 신비한 영상 효과를 선보이며 번져갔다.
그림 작업 장면은 짧게 보여졌다.
완성된 그림을 한 발 뒤로 물러나 서서 응시하는 내 모습.
그 움직임도 은근히 고고해 보였다.
내가 저랬었나 싶을 정도.
장면이 차츰 변하는 기법으로 전환되더니.
내가 그렸던 그림은 저택의 태피스트리가 되어 장식되었고.
그림을 응시하던 나는 그야말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태피스트리 안에 있던 붉은 색의 페라리 차량이 스르르 움직였다.
그리고 카메라 시점은 빠르게 저택을 나와 멋스러운 자연 풍경 안에 지어진 저택 전체 풍경을 화면에 담았다.
내가 그렸던 그림과 똑같은 풍경.
그 풍경 안에 그려졌던 페라리 차량은 태피스트리 안에서 움직였던 것처럼.
붕, 부웅-
마치 맹수가 으르렁대듯, 거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페라리 안에는 내가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 대역 배우가 가면을 쓰고서 페라리를 운전했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차량.
저택 정원을 가로질러, 마침내 절경이 보이는 도로를 달리면서 광고는 마무리 되었다.
루나는 광고가 끝나자 정신을 차리듯 내게 하던 말을 이었다.
“제 친구 중에 애플 수를 굉장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거든요. 그 친구 때문에 매일 애플 수에 대해 들어요.”
“너는? 너도 그 화가 좋아해?””
내가 묻자 루나는 생글 웃었다.
“난 친구들에게 매일 입이 아프도록 말해요. 울 오빠가 애플 수보다 더 멋있어! 흐흫.”
오글거리긴 해도 그녀의 대답은 기분이 좋긴 했다.
루나는 내 아내가 될 거고 같이 살아야 하니.
내가 애플 수라는 걸 털어놓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루나에게 입을 열었다.
“루나야, 할 얘기 있어. 사실은...”
* * *
어느덧 시간이 지나, 5일 전에 드디어 비행선 작업을 완성했었다.
전날에 밤을 새서 2050에게 보냈더니 이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 2050 : 고수님의 그림을 확인합니다. 그림 분석하는 데 4일이 소요됩니다.
나는 수호에게 말을 했었다.
- 고수 : 이번에 실물 전환하게 되면 그 광경을 직접 보고 싶다. 편집된 영상이 아니라 직접 내 눈으로.
- 고수 : 나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 고수 : 이젠 너에게서 앞날에 관한 일을 어느 정도 들었잖냐.
그러자 수호는 내게 답을 해왔다.
- 2050 : 그래. 언젠가는 이곳을 보여주겠다고 생각은 했었어.
- 2050 : 네가 아바타 기계를 통해 이곳 2051년도의 세상을 보려면 유하준 박사의 도움을 받아야 할 거다.
- 2050 : 앞으로도 유하준 박사의 도움이 종종 필요하니 이제는 그에게 얘기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고수 : 유하준 박사에게?
- 2050 : 그에게 아포칼립스에 관한 일을 공유해야, 이후 그에게 여러 도움을 받는 일이 편해질 듯해.
- 2050 : 유하준 박사는 믿을 만한 사람이기도 하고. 그는 이후 이한나와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가 되기도 하고.
-고수 : 아! 이번에 한나가 유하준 박사와 사귀기 시작했다고 하던데?
- 2050 : 그래. 한 집안 사람으로 얽히기 시작하는 시점이니, 이제는 그에게 얘기해도 괜찮을 거로 여겨진다.
- 고수 : 아, 그러네. 그가 내 형님이 되겠네. 그럼 유하준 박사와 얘기해 볼게.
그런 대화를 한 후, 5일이 지난 오늘.
유하준 박사가 그의 조수와 함께 내 집을 방문했다.
그가 가져온 기계는 마치 MRI 기계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간소한 형태였다.
아바타 기계의 두 번째 구성.
이게 있어야 내 아바타가 생성되는 게 가능해진다.
상대방의 아바타를 보는 것만 하면, 스마트 안경을 착용하는 거로 끝나겠지만.
내 집의 남는 방에다 기계를 설치한 후, 박사의 조수는 돌아가고.
나는 유하준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에게 라떼를 내려준 후에, 말을 꺼냈다.
“박사님, 지금 하고 계시는 연구는 잘 되세요?”
유하준은 남들보다 일찍 박사 학위를 따고서 이번에 졸업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박사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고수 씨가 줬던 usb의 내용이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요즘처럼 즐거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넉넉한 지원금으로 마음껏 연구를 하는데, 제가 생각했던 부분에 관한 팁 같은 내용도 더해져서 연구가 수월해지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박사님에게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펜을 꺼냈다.
그러고는 3초 정도 손에 쥐고 있자 펜에 빛이 들어오며 내 앞에 3D 디스플레이가 생겨났다.
내 눈에는 디스플레이가 보이지만 유하준에게는 보이지 않을 터.
핸드폰으로 2050에게 톡 메시지를 적었다.
- 고수 : 2050. 펜으로 나타나는 디스플레이. 타인의 눈에도 임시로 보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펜을 통해 작동하는 3D 디스플레이는 내 홍채에만 반응하여 시각화되는 미래형 디스플레이였다.
- 2050 : 그건 제가 조작하겠습니다. 지금 설정을 바꾸면 되겠습니까?
- 고수 : 응.
- 2050 : 지금 설정을 변경했다가 1시간 뒤에 다시 원래대로 복구하겠습니다.
- 고수 : 그래.
내 답변이 끝나자마자, 내 시야에 보이던 디스플레이의 바탕 색상이 조금 달라졌다.
조금 더 진해졌다고나 할까.
동시에, 유하준 박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그를 보며 물었다.
“이제 박사님의 눈에도 이게 보이십니까?”
“이, 이게... 무엇입니까?”
유하준은 말까지 더듬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디스플레이가 떠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나는 디스플레이를 터치하여 이메일을 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건 앞으로 개발될 3D 디스플레이입니다. 지금 박사님이 연구하고 계시는...”
“네, 제가 연구하고 있던 거군요.”
“원래는 조금 더 이후에 개발되는 미래형 디스플레이입니다. 조금 전까지는 제 홍채에만 시각화되었다가 방금 설정을 바꾸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완성형으로 제 앞에 보이는 거죠?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닌데.”
그를 보는 내 얼굴에 깃들었던 미소는 조금 진해졌다.
“또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디스플레이에 설치된 AI 프로그램 아이콘을 터치했다.
음성 인식이 되자 나직하게 말했다.
“2050. 드론을 조종해줘. 거실에 있는 것 중에서 일부만.”
그러자 화면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죄송하지만 지금 드론 50대 전부 테라스에 있습니다.>
“테라스? 언제 나갔었냐?”
<오늘 볕이 좋아서, 아까 고수님이 잠시 창을 열어두셨을 때 태양 에너지 충전하기 위해 잠시 테라스에 두었습니다. 지금 귀가시키겠습니다. 거실 창을 열어주십시오.>
“그래.”
내 대답이 끝나자 화면에 창이 하나 뜨더니 4등분 된 영상이 보였다.
드론 시점으로 촬영되는 영상이다.
나는 거실 창을 열었다.
그러자 50대의 드론들이 한꺼번에 거실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언뜻 봐서는 뭔가 투명하고 반짝이는 것이 어른거리며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위잉-
유하준은 영상을 보다가 거실로 들어오는 드론을 보고서 눈이 커다래졌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던 그의 얼굴에 감동 어린 기색도 스쳤다.
위잉-
드론들 50대가 한꺼번에 거실로 우르르 들어와 비행하니 어지러워졌다.
드론 일부는 거실에 남아있고 나머지는 거실 수납장 문을 끙끙대며 열더니.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왠지 애완 드론을 키우고 있는 기분.
유하준은 쓰고 있던 안경을 검지로 밀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유리 금속 드론?”
나는 그런 그에게 말했다.
“박사님, 2050이 말을 겁니다. 저기 화면을 보시죠.”
유하준은 고개를 돌려 디스플레이를 바라보았다.
화면엔 2050이 적은 문장들이 채워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유하준 박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햇수로 24년 만에 인사를 드리게 되는군요.
저는 고수님이 2050이라고 부르는 AI입니다.
저는 유하준 박사님이 설계했고 개발했으며 완성하여 존재하게 된...
‘준’입니다.
때로는 ‘한’이라고도 불립니다.
이것은 박사님과 한나님의 이름, 한 글자씩 따서 만들어진 이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