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안에 1310억 쓰기 2
내 집에 모인 유하준 박사와 정테이, 이루나.
벙커 내부 저장고와 시설에 관해 잠시 논의를 하다가 나는 루나를 바라보았다.
“루나야, 너 최근에 그린 설계도도 있지?”
“네. 지금 그리는 중인데 거의 완성해가요.”
그러자 테이가 관심을 보이며 루나에게 물었다.
“루나 씨가 또 뭔가 작업하는 게 있어요?”
“이번에도 저번과 비슷한 건축물 설계도를 그렸는데요. 이번에는 조금 성격이 달라요.”
“이를 테면요?”
“음, 저번에 완성했던 설계도는 집이라는 느낌이 강한 지하 벙커 쉘터였어요.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안전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완성한 설계였죠. 그런데 이번에는 지하 벙커 쉘터 성격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집이라기보단 병원이에요.”
“병원?”
“네. 거주보단 의료와 방어에 더 초점을 둔 건축물이에요. 생각지 못한 환경에 놓일지라도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생각하며 설계를 그렸어요.”
루나는 평소 재난 영화와 아포칼립스 영화, 공포 영화를 즐겨 보더니.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는 평범하지 않은 설계도를 주로 그리는가 보다.
“그거참 흥미롭네요.”
테이는 붉게 칠한 입술 한쪽 끝을 미미하게 올리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테이에게 입을 열었다.
“테이 씨, 미라클 쉘터 말입니다. 그 회사는 이제 성장 중인 기업이라고 알고 있는데. 맞아요?”
“네, 맞아요. 최근 매출이 늘어서 괜찮긴 하지만 항상 이렇지는 않을 거니까. 안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회사긴 하죠. 이번에 고수 씨가 미라클 쉘터스의 매출에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신 셈이에요.”
“이번에 다시 미라클 쉘터의 매출을 올려줄까 합니다.”
“네?”
“미라클 쉘터스는 아마도 직원 수를 더 늘려야 할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며 미소짓자 테이는 의아한 눈빛을 했다.
“고수 씨, 또 뭔가 저희 회사에 의뢰하실 게 있는 건가요?”
“네. 이번에 특수한 병원을 지으려고요. 어떤 후원자의 이름을 내걸고요. 설계는 이번에도 이루나의 설계를 바탕으로 건축을 했으면 합니다. 지하 벙커 쉘터 기능이 있는 병원인 거죠.”
“건축 장소는 어디가 되는 거죠?”
“좀 멀어요. 아프리카입니다. 그곳에 에이즈를 비롯한 감염병 전담 병원을 건립할까 합니다.”
“네?”
“그리고 국내에 한 곳도 계획하고 있긴 한데. 이곳은 루나가 아직 설계를 그리지 않았어요. 이곳은 기계공학 연구 센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건물도 지하 벙커 쉘터 기능과 첨단 보안 기능이 있는 건물로 지을까 합니다.”
“아.”
“제가 이런데 돈을 쓰는 이유는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사회에 공헌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발전에 투자를 좀 해야 하니까요.”
“음, 알겠어요. 루나 씨의 설계로 지어지게 될 건물들. 기대되네요. 회사에 보고할게요. 아마도 미라클 쉘터스의 한국 지부가 이번에 제대로 구축이 될 거예요.”
* * *
2051년도의 아프리카 대륙.
언제부터인가 이곳은 나라와 나라의 경계가 불분명해졌고.
지역과 지역 사이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이 의미 없어졌다.
그저 폐허와 공허와 절망만 가득한 땅에 극소수 생존자들의 영역만 존재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생존자들마저도 전부 약탈자들이고 이리와 같은 자들이어서.
생존자가 있는 곳에도 희망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브나’는 절망 어린 시선으로 그저 새카맣게 변한 땅을 응시했다.
약탈자들 무리에서 도망쳐 나오긴 했지만.
그녀는 이제 혼자다.
함께 도망쳤던 동료는 죽어버렸고, 그녀는 이제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
다행히 몸을 지킬 능력이 그녀에게 있는 터라 아직 살아있지만.
이곳저곳을 떠돌며 지내는 이 일도 정말 못 할 짓이다.
오래는 버틸 수 없을 거다.
무엇보다 그녀는 외롭고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목마르다.
기적 따윈 없겠지?
내가 알던 사람들이 죽어버렸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죽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망연자실한 시선으로 앞을 응시했다.
그때였다.
츠츠-
아무것도 없던 공허한 땅에 신기루처럼 뭔가가 흐릿하게 보였다.
아브나는 헛것이 보이나 싶어서 눈을 깜박였다.
그러자 방금 목격했던 그것은 역시 헛것이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분명 봤어.”
병원 건물이었어.
생존자들이 남아있는 병원.
병원 건물에 로고처럼 그려진 문양.
사과나무 그림.
그리고 ‘애플 수’라는 이름.
분명 그걸 봤었다.
아브나는 확연히 느껴지는 게 있다.
이제까지 그녀의 예지적인 직감은 항상 미세한 것이라도 놓치는 법이 없었고.
빗나가는 법도 없었다.
저건, 신기루나 헛것이 아니다.
앞으로 나타날 일 같은 거다.
마침내 희망을 발견한 것처럼 그녀의 커다란 눈가에선 투명한 눈물이 흑진주 같은 까만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여기라면 살 소망이 있을 거다.
애플 수! 그 이름을 이곳에서 기다려야겠다.
* * *
이틀이 지나갔다.
나는 여전히 쉘터 주변 자연 풍경을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것도 조만간 완성될 듯하다.
요즘은 작업실에서 작업하진 않고 집 거실에서 그림을 그리곤 한다.
거실이 넓은 편이라, 3D 디스플레이를 잔뜩 확대해서 그림을 그려도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작업하다가 코인이 어느 정도 모였는지 확인했다.
“2050 고수.”
『명화 작가 27레벨
명화 속도 : 8
명화 기교 : 8
창조 창의력 : 13
그랜드 코인 : 4.』
응? 그랜드 코인?
이게 뭐지?
그리고 숫자는 달랑 4?
전과 다른 코인 명칭에 잠시 당황했다.
이번에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코인은 2097152이다.
이제 어느 정도 코인이 모였겠다 싶어서 확인했더니.
이런 식으로 바뀌어 있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AI 2050에게 물었다.
- 고수 : 2050. 코인 명칭이 그랜드 코인으로 바뀌었는데? 이건 어떻게 된 거냐?
- 2050 : 코인 명칭에 그랜드가 붙었다는 건, 코인 액수가 그만큼 많이 누적되었다는 의미입니다.
- 2050 : 이 정도 코인을 습득한 경우는 매우 드문 일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고수님.
- 고수 : 아,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모아두었던 코인이 갑자기 증발해버렸나 해서 놀랐었는데, 다행이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재능 스탯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번엔 창의력을 업그레이드했다.
『명화 작가 28레벨
명화 속도 : 8
명화 기교 : 8
창조 창의력 : 14
그랜드 코인 : 2.』
뭐야, 코인이 ‘2’ 밖에 소모되지 않았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어제 이후로 코인이 갑자기 급격하게 많이 들어왔다는 의미인데.
수호의 쉘터에 전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내 명성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최근에, 뭔가 달라질 만한 일을 벌인 거라곤...
지하 벙커 병원 건립!
그것밖에 없다.
건물을 완공한 것도 아니고 그저 계획만 했을 뿐인데.
내 선택이 미래에 뭔가 영향을 줬던 건가?
어쨌거나 그제의 내 행동과 선택이 긍정적인 변화를 줬다는 건, 알겠다.
잠시 쉴 겸, 나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내 그림이 경매로 판매되는 곳으로 들어갔다.
어제부터 그림 경매 판매가 시작된 거로 알고 있다.
겨우 두 작품.
최근에 완성한 그림까지 경매에 부쳤었다.
겨울에 핀 봄은 시작가가 12억.
호수에 새겨진 약속은 13억이다.
이번에도 내 그림은 주목을 받는 듯하다.
벌써 응찰을 한 사람이 있어서 현재가가 12억 8천만 원, 13억 5천만 원이 되었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두고 다시 그림 작업을 하려는데.
진구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포장해온 보쌈과 맥주를 주방으로 가져가며 내게 말했다.
“뭐 하냐? 보쌈 사 왔어.”
나는 들고 있던 펜의 전원을 끄며 그에게 물었다.
“특대로 사 왔지?”
“그래, 특대. 너 요즘 엄청 먹는다? 그런데도 살이 안 찌는 거 보면 신기하네. 먹는 게 다 어디로 가냐?”
“팔로 간다.”
“그래, 팔...”
진구는 내 오른쪽 팔에 눈길을 줬다.
그러다 그는 포장되었던 식탁 위에 보쌈을 꺼내놓으며 말을 꺼냈다.
“기사 떴더라. 애플 수 재단에 관한 기사.”
“그래?”
나는 식탁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김주혜라는 여기자도 참 대단한 것 같아. 애플 수에 관한 일이라면 아주 빠삭해.”
“김주혜라는 기자한테 또 기사 내용을 줘야 할 것 같아.”
“무슨 내용인데?”
“애플 수가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 에이즈와 감염병 전담 병원을 건립하는 일에 후원을 한다고, 기사 내용을 줘. 그리고 페라리 광고 소식도.”
“헐, 너 또 기부하냐?”
“뭐, 그렇다고나 할까. 근데 넌 차는 샀냐?”
“응. 샀지. 네가 넘치게 돈을 주긴 했는데. 차는 5천만 원대 국산 차로 샀어. 나머지는 나도 집 장만하는데 보태야지.”
“그래.”
“페라리 광고 촬영 일정 잡혔다.”
“언제인데?”
“이달 말. 이번에는 세트장 같은 데서 그림을 그리게 될 것 같아. 이번 광고 컨셉은 약간 판타지한 것 같던데. 그러면서도 유럽 귀족적인 분위기는 물씬 풍길 거라고 들었어.”
“판타지하다면 어떻게? 유럽 귀족 분위기라면 현지에서 촬영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묻자 진구는 고기를 입에 욱여넣으며 씹다가 대꾸했다.
“너는 그냥 그림 그리는 부분만 촬영할 거지만, 다른 부분은 유럽에서 촬영될 건 가봐. 경치 좋은 곳, 유럽 귀족의 저택. 그런 데서 촬영하는 거지.”
“음.”
“너는 붉은 페라리 차량과 어느 풍경을 그리게 될 거야. 이번에도 그림 2장이 되겠네.”
“그래, 알았다.”
그에게 대꾸하며, 나 역시 고기를 집어 먹었다.
그러면서 핸드폰으로 내 계좌를 살펴보았다.
그동안 얼마나 썼는지 보려는 거다.
30억 기부하고 진구에게 8천만 원을 주고.
재단 사무실을 매매로 구하는데 13억.
빌라 구하는데 32억.
연구 기기와 첨단 장비 구입에 50억.
미라클 쉘터스에 추가 입금.
그 외 인건비와 재단 예산 편성까지.
꽤 목돈이 연달아 들어갔는데도, 아직 블랙카드 24레벨 보상금이었던 1310억 7200만 원을 다 쓰지 못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블랙카드 24레벨 보상 금액 중 남은 돈.
이것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치를 한 번쯤은 해도 괜찮겠지.
* * *
그날 나는 백화점의 명품관을 방문했다.
고급 쥬얼리 브랜드인 티파니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부터 럭셔리해 보이는 그곳은 곳곳에 작은 조명이 있고.
천장엔 화려한 샹들리에 같은 조명도 있다.
고급스러운 매장 분위기에, 괜히 들어가던 내 발걸음이 멈칫거리게 될 정도.
친절하게 맞이하는 점원에게 나는 입을 열었다.
“프러포즈링이랑 웨딩링을 살까 하는데요.”
“프러포즈링과 웨딩링을 따로 보시려는 건가요?”
“네. 다이아로 1캐럿 정도를 할까 하는데. 둘 다 다이아 1캐럿으로 골라야 할까요?”
“요즘은 프로포즈링 대신 프러포즈 목걸이로 대신하는 분들도 많아요. 아무래도 웨딩링이 따로 있으면 프러포즈로 받게 될 쥬얼리는 목걸이가 나을 테니까요.”
“그럼 다이아 목걸이를 다이아 1캐럿으로 보여주세요. 받게 될 사람이 아직 20대 초반이라서 그에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선택했으면 합니다. 웨딩링은 나중에 신부 될 사람과 같이 와서 사야겠네요.”
“네.”
“그리고 50대 중반 나이의 여성에게 어울릴 다이아 목걸이도 하나 사려고 하거든요.”
“먼저 프러포즈 목걸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티파니 쥬얼리 직원은 그렇게 말한 후에 나를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