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 그리고 두 번째 이사 2
며칠이 지나 내가 세 번째 전투 로봇까지 전부 완성했을 무렵.
나는 2050에게 완성된 그림을 보내고서 아트 K의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경매 중엔 내 그림을 확인했다.
황금 나무 그림은 ‘시작가’가 9억.
하늘 호수 그림은 ‘시작가’가 10억.
둘 다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시작하는 거라서 과연 응찰하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내 그림 가격은 화제성과 이슈화 때문에 거품이 낀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첫째 날은 응찰하는 사람이 없어서 초조해졌다.
워낙 고액이니 쉽게 응찰할 사람이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러다 두 번째 날에 응찰자가 나왔다.
어제는 그림 두 개 모두 응찰자가 나왔고.
황금 나무는 9억 5천만 원까지 올라갔다.
나는 거실로 나와 TV를 켰다.
뉴스 채널로 돌리자 때마침 내 그림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내 그림을 응찰하는 사람이 생기자, 조용했던 언론에서 다시 내 그림에 관해 떠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나운서가 단정한 목소리로 보도했다.
“유명 화가 ‘애플 수’의 유화 작품이 아트 K에서 경매가 시작되었습니다. ‘황금 나무’와 ‘하늘 호수’라는 제목의 유화 작품입니다. 이 두 작품의 시작가는 무려 9억과 10억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사려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었습니다. 김주혜 기자가 보도합니다.”
장면이 바뀌고 김주혜의 얼굴이 보였다.
“애플 수 작가의 유화 작품이 두 번째로 경매 출품되었습니다. 애플 수 작가의 그림 가격은 이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고 있는데요. 그의 그림은 그저 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그림 가치가 높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극찬할 만큼, 그의 그림은 그만큼의 예술성이 녹아 있습니다.”
김주혜가 보도할 때, 내 그림으로 화면이 가득 채워졌다.
황금 나무와 하늘 호수 그림이다.
나는 뉴스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걱정했는데, 저절로 홍보가 되겠는걸.
뉴스 장면에서, 아트 K의 경매 사업부장이 나와 인터뷰를 했다.
“애플 수의 작품성은 이미 국내 최고이며 세계 거장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될 만하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니만큼 잠재성이 유망하고, 그가 그린 그림의 작품성은 국내에 희귀한 만큼. 미술품 컬렉터들은 그의 그림을 사는 일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여겨집니다.”
타계한 화가나 원로 작가 정도는 되어야 그림 가치가 그 정도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직 창창한 젊은 작가의 그림이 10억대를 기록하는 건 별로 보지 못했다.
그만큼 이례적인 일.
어제 진구는 내 집에 와서는 이런 말을 꺼냈다.
“야, 고수야. 너 이번에도 그림 가격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10억이나 되는데도 사려는 사람들이 있네. 진짜 후덜덜하다. 이래서 언론에서도 네 그림을 계속 노출하는 것 같아. 이대로라면 낙찰가 올라갈 것 같은데?”
“그러겠네.”
“생각해봤는데. 너 아파트 사는 거 좀 더 보태서 좋은 거 사도 되겠던걸. 어차피, 홍콩에서도 그림 팔릴 거 아냐. 고수, 이놈. 완전 대박이야. 부럽다.”
“그럼 혹시 모르니까. 30억대 신축 아파트도 알아봐 줄래? 한강 변으로.”
“오케이. 근데 나는 차 뭐로 사줄 거냐?”
“음, 좋은 거로 신차 사줄게. 크리스티 홍콩에서도 그림이 팔리면 7000만 원 선으로.”
“오! 친구 잘 둔 덕에 나도 대박이네. 앞으로 충성한다.”
까톡!
그때 옆에 놔둔 핸드폰에서 까톡 알림이 울렸다.
수호에게서 온 톡이다.
- 2050 : 고수. 요즘 블랙카드를 전혀 쓰질 않는군.
- 고수 : 응. 재능 레벨업 비용을 현금으로 쓰지 않으니까.
- 2050 : 쌓아두지 말고 그냥 쓰지? 블랙카드 24레벨 1310억 7200만 원. 다음 3월 말까지 쓰는 걸 권한다.
- 고수 : 뭐? 흥청망청 쓰라는 거냐?
- 2050 : 코인을 얻기 위해 돈을 쓰라는 거다. 네가 사는 곳에서 코인은 명성이 쌓이면 들어오게 된다. 그 명성을 얻을 방법은 꼭 그림으로 유명해져서 얻는 방법만 고집할 필요는 없어.
- 2050 : 애플 수 이름으로 옳은 일에 돈을 사용하면 좋을 듯하다. 그러면 애플 수 이름으로 그림을 팔아 거액을 벌어도, 대중의 이미지는 애플 수를 좋게만 생각할 테니까.
- 고수 : 음, 그렇겠군.
- 2050 : 그리고 개인적인 용도로 블랙카드를 긁어도 된다. 너는 얼마든지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
- 고수 :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나는 머뭇거리다가 수호에게 말했다.
- 고수 : 수호야. 네가 전에 말했었지? 넌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 2050 :
- 고수 : 네가 기억하는 건 부모의 끔찍한 죽음뿐이라고 했었지. 네가 4년 동안 말을 잃었다고도 했었다는 거 기억해.
- 고수 : 얼마나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 나는 가늠도 되지 않지만.
- 고수 : 내가 바꿔 줄게. 네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지워줄 거고. 다른 좋은 기억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수호는 한동안 잠잠했다.
그러다 그가 내게 말을 꺼냈다.
- 2050 : 이미 채워지고 있다. 이전의 아픈 기억은 그대로여도. 그걸 덮을 만한 새로운 기억이 내게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니까.
그는 또 잠잠하다가 다른 말을 꺼냈다.
- 2050 : 고수. 블랙카드로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을 두지 마라. 얼마든지 자원이 있는데, 아포칼립스를 막는 일에 그걸 사용하는 걸 제한하는 건.
- 2050 : 그 또한 ‘악’이다.
- 고수 : 그래. 네 말의 의미 잘 알겠어.
- 2050 : 나는 네가 그려주었던 전투 로봇으로 이곳 세계에서 반격을 시작할 거다.
- 2050 : 고수, 너도 다가오는 재앙에 대하여 그곳 세계에서 반격을 준비할 수 있다. 너의 재능을 올리는 것. 바로 그것이지.
- 고수 : 그래.
나는 수호와 대화를 끝낸 후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진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구야, 애플 수 이름으로 어디 기부 좀 하려고 하거든.”
<응? 갑자기 무슨 기부?>
“우선 30억 정도. 여러 군데에 할까 하는데.”
<너 설마 그림 판 돈으로 아파트 안 사고 그런 데 쓰려는 거냐?>
“하하. 그건 아니지. 실은 얼마 전부터 내게 후원자가 있었거든.”
<내가 모르는? 누군데?>
대충 둘러댔다.
“음, 나도 모르는 사람이라서. 암튼 그 사람이 애플 수 이름으로 기부를 하길 원해.”
<와우, 그 사람 엄청 팬인가 보다. 돈도 엄청 많은가 보네.>
“그리고 김주혜 기자, 너한테 연락처 있지?”
<어, 응.>
“그 기자에게 연락해서 기사 좀 내달라고 해. 애플 수가 30억 기부를 한다고.”
<흐흐흐. 너 기부한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달라는 거구나. 그래, 알았다.>
“애플 수가 독거노인을 위한 기부금 10억을 모 재단에 전달했다. 이런 식으로 기사를 대대적으로 내고 기부금 전달은 네가 해주었으면 한다.”
<어, 어.>
“그리고 너에게 차 사주겠다고 했던 거. 이번에 입금해줄게. 원하는 차 사라.”
<오! 진짜? 고맙다.>
* * *
과수원 땅에 계획했던 건축이 시작되었다.
이젠 올해 내내 그곳에서 건축 공사가 이루어질 것이었다.
루나는 이번 학기에 다시 학교 복학 준비한다고 해서, 한나는 라멘 가게에서 일할 종업원을 따로 구했다고 들었다.
전투 로봇 작업도 이제 끝났으니.
나는 작업실로 와서 유화 그림을 그리려고 카메라 세팅을 했다.
또다시 그림 작업하는 과정을 촬영하려는 거다.
블랙진에 검정 박스티를 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러고는 이번에는 어떤 작품을 그려야 할지 구상하다가 내 코인을 확인했다.
“2050 고수.”
『명화 작가 26레벨
명화 속도 : 7
명화 기교 : 8
창조 창의력 : 13
코인 : 1495627.』
코인 액수를 본 나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 액수가 많이 늘어나 있다.
수호가 전투 로봇으로 어디를 공격하겠다고 하더니.
아마도 그 탓에 코인이 들어온 것 같다.
거기다 2022년도에서 애플 수 명성으로 들어오는 코인도 있을 테고.
이번에 27레벨로 업그레이드하려면 1048576코인이 필요한데.
현재 충분히 업그레이드하고도 남는 코인이 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번엔 속도를 레벨업을 했다.
그러자.
『명화 작가 27레벨
명화 속도 : 8
명화 기교 : 8
창조 창의력 : 13
코인 : 447059.』
재능 스탯이 바뀌었다.
코인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들어오고 있다.
나는 카메라를 켜고서 캔버스 앞에 섰다.
재능을 업그레이드한 후에 능력을 시험해보는 일은 항상 기대되고 설렌다.
내 오른손의 손목을 준비 운동하듯 돌렸다.
평소 빠른 속도로 그림 작업을 하다 보니 오른팔과 어깨를 혹사하는 편이다.
그래서 틈틈이 어깨와 팔 운동을 해둬서, 내 몸은 다른 곳보다 팔에 근육이 더 많이 붙었다.
재능 말고도 체력 스탯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내, 연필을 잡고 눈을 감았다.
내 뇌리에 어떤 풍경이 떠올랐다.
원시적인 느낌이 드는 거대한 자연.
13개의 대형 폭포와 층층이 이어지는 7개의 에메랄드빛 호수.
울창한 초록색 숲과 연푸른 하늘.
숲속의 새와 작은 동물들.
호수 안에서 노니는 물고기까지.
실제 존재하는 풍경은 아니다.
그저 지금 떠오른 상상 속의 자연.
창의력 수치가 높아서 그런지, 구상하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고 바로 떠오른다.
그 모든 걸, 극사실주의로 표현할 것이다.
마치 실재하는 장엄한 풍경처럼.
하늘에 흩어지는 구름이나 바람에 스치는 잎사귀의 미세한 흔들림.
그리고 폭포수의 물방울들과 공중에 날아다니는 벌레까지 세세하게.
폭포수와 호수들 사이로 커다란 무지개가 연하게 걸쳐져 있다.
그림의 제목은 '호수에 새겨진 약속'이다.
나는 이내 스케치를 시작했다.
슥슥-
내 손에만 8배속이 흐르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내 손이 움직였다.
그리고 동시에 내 두뇌와 시선이 함께 광속으로 움직였다.
까톡!
그때 까톡 알림이 울려서 나는 작업을 멈추고 돌아서서 카메라를 껐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AI 2050이다.
- 2050 : 고수님, 이메일을 확인해보십시오. 전투 로봇으로 전투 광경을 편집하여 영상 파일로 보냈습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그걸 작동시켰다.
이내 내 앞에 3D 디스플레이가 나타났다.
손으로 터치해서 이메일을 확인하고 영상 파일을 열었다.
이내 내 앞에 입체적인 광경이 펼쳐지고, 생생한 음향이 들려왔다.
영상은 전투 로봇을 통해 촬영되는 듯하다.
카메라 시점이 전투 로봇이다.
쿠구구구궁-
엄청난 소리를 내며 전투기 형태의 로봇은 어느 도시까지 빠르게 날아갔다.
적의 형태는 여전히 투명하게 편집되어 있다.
하지만 크기와 대략적인 형태는 보였다.
전투기에서 초소형 미사일들이 몇 개씩 발사되었다.
콰광!
콰과광!
지상 말고도 공중으로도 움직이는 적도 있었나 보다.
전투기만 한 크기의 세 개의 개체가 나타났다.
위잉-
그때 함께 왔던 수백 대의 전투 드론이 보이더니.
벌 떼처럼 비행하며 엄청난 에너지의 전기를 발산했다.
치지지지직-
그 일대의 허공에 눈부신 섬광이 연이어 번쩍거렸다.
마치 연쇄 벼락이라도 내려친 것 같다.
금세 공중을 비행하던 적들은 아래로 추락했고.
전투기들은 폐허가 된 도시에 착륙하며 동시에 인간형 로봇으로 탈바꿈했다.
전투 로봇의 레이저 빔이 활성화되더니.
전투 로봇들은 적을 살육하기 시작했고, 영상은 거기서 끝이 났다.
영상 마지막 화면에 쉘터민이 넣은 자막 글귀가 있었다.
<고수님, 다른 지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아포칼립스가 도래한 이후 첫 승리를 거뒀습니다. 우리는 이날 처음으로 승리의 기쁨을 누렸고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습니다.
부모, 형제, 친지의 원수를 갚았던 첫날이었습니다. 최근, 적들이 진화하여 공중으로도 활동하는 개체가 생겨났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바심을 가졌었으나 이제 큰 근심을 덜게 되었습니다.
고수님, 감사드립니다. 저희 쉘터민 전원이 당신에게 드리는 마음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이제 우리의 ‘희망’입니다.>
첫 승리의 날.
그들의 격한 기쁨과 감동이 조금이나마 내게도 전해져서, 내 마음은 뭉클함으로 일렁였다.
나는 의자에 앉아 그 감정에 한동안 머물러 있다가 조용히 갈무리하고 일어났다.
이제 다시 그림을 그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