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59화 (59/153)

반격, 그리고 두 번째 이사

2월 7일 월요일 오전.

이날은 새벽까지 그림 작업을 한 뒤, 조금 전에 일어났다.

몸이 찌뿌둥하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AI 2050에게서 톡이 와 있다.

- 2050 : 고수님, 보내주셨던 그림을 실물 전환한 영상이 있습니다. 영상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 드립니다.

전투 로봇 3대 중에서 지금은 2개째를 완성해둔 상태였다.

새벽에 보냈으니 지금쯤 그 그림을 실물 전환할 듯하다.

나는 로봇을 한 개 완성할 때마다 2050에게 그림을 보내고 있었다.

2050이 보내온 영상은 내가 보냈던 첫 번째 그림을 실물 전환했던 영상일 것이다.

- 2050 : 영상 첫 부분은 쉘터의 주변 상황이 잠시 보일 겁니다.

- 2050 : 수호님은 현재 외부 생존자를 규합하는 일을 추진 중입니다.

- 2050 : 이제까지는 2051년도의 세계를 보여드리는 일에 제한을 두었습니다만. 이후로는 조금씩 고수님에게 드러낼 예정입니다.

나는 펜을 작동시켜 3D 디스플레이를 켠 다음, 이메일을 열어 2050이 보내온 영상 파일을 확인했다.

이내 내 눈앞에 생생하고도 입체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음향마저도 생생하니 마치 그곳에 내가 직접 있는 느낌이다.

드론으로 촬영한 듯, 영상은 쉘터 풍경에서 시작했다.

어느덧 카메라 시점은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불길한 느낌으로 붉은 기운이 도는 우중충한 하늘.

시커멓게 죽어버린 땅.

기괴한 형태로 자라나 있는 알 수 없는 식물들.

그 식물에는 치명적인 독이 있으며, 때로는 사람을 삼키는 것도 있다고 들었다.

촬영하는 드론이 더욱 멀리 날아가니, 파괴된 흔적만 남은 도시의 풍경이 보였다.

그 풍경을 본 나는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생각보다 희망이 보이지 않은 모습이었다.

마치 오래된 백골이 나뒹구는 절망의 폐허를 보는 기분.

그때 뭔가 드론을 향해 공격을 해왔다.

콰득!

그 부분은 편집이 되어 알 수가 없다.

재촬영을 했는지 화면이 바뀌었다.

이전 드론이 보내왔던 영상에 새로 찍은 영상이 이어진 모양이다.

영상 속의 풍경은 다시 이어졌고 어느 외딴 건물에 당도했다.

그곳은 다른 지역의 쉘터로 보였다.

규모는 수호가 있는 곳보다 컸지만, 훨씬 열악했고.

쉘터민들의 상태는 비참해 보였다.

다시 장면이 전환되고.

수호가 있는 쉘터 방어벽 안.

사람들이 나와 있다.

웅성거리는 그들의 앞에 대형 3D 디스플레이가 나타나 있고.

거기에 내 그림이 보였다.

오늘은 쉘터 분위기가 여느 때와 다르다.

사람들은 대부분 흥분해 있다.

다들 호전적으로 날이 섰고 기세등등했다.

“전투 로봇이 실물 전환되면 당장 G 구역을 밀어버립시다!”

“내 부모와 형제를 잃은 원한을 풀어야 죽어도 눈을 감을 것 같소!”

“우리가 얼마나 더 웅크리며 숨죽이며 지내야 합니까?”

그때 수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G 구역을 공격하는 건 전투 로봇 3대가 만들어진 후에야 가능합니다!”

그의 외침에 나는 깜짝 놀랐다.

쉘터의 영역을 목소리만으로도 장악하는 것 같은 그런 음성.

수호는 목소리만으로 쉘터의 소요를 단숨에 가라앉혔다.

화면에 수호의 모습이 잠시 비쳤다.

며칠 전에 봤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

굳건하지만 딱딱한 이미지로 봤는데 화면에선 다른 분위기다.

그의 존재감은 훨씬 무겁게 느껴졌고 장악력이 강력했다.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이는 게 예사 인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새삼스레 그가 낯설게 보일 정도.

역시 쉘터의 리더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나 보다.

저놈이 내 아들이라니,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솜사탕 같은 이미지의 루나 아들이라는 건 더더욱 믿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드는 생각은... 저 녀석 혼자서도 잘 컸구나, 였다.

수호는 사람들에게 말을 이었다.

“이번에 실물 전환하는 전투 로봇은 소형이라 3대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장 작은 G 구역 한 곳을 정복하는 일이 승산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만. 성급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거의 30년의 세월을 참아왔고 기다려왔습니다. 이제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곧 바뀌게 될 것이고. 끊어졌던 희망은 다시 이어질 겁니다.”

수호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옳습니다!”

“우리는 수호의 말을 신뢰하겠습니다!”

“우리가 30년 가까이 참아왔는데 단 며칠을 못 참겠습니까?”

그들의 외침이 잦아진 후, 수호는 그림을 실물 전환을 했다.

이윽고 디스플레이의 그림은 사라지고 대신 전투 로봇 한 대가 홀연히 나타나 있다.

인간형 로봇인 그것은 높이가 거의 3미터 정도 되었으나, 이내 변신하자 소형 무인 전투기가 되었다.

한 남자가 3D 디스플레이를 터치하며 조종하자, 이내 전투기는 위로 바로 떠올랐다.

영상은 거기서 끝이 났다.

디스플레이를 끄고 핸드폰을 다시 확인하니 2050이 남긴 톡이 하나 더 있었다.

- 2050 : 고수님, 전투 로봇 3대가 다 완성되고 나면 그것으로 G 구역을 탈환하는 전투 영상을 보내드리겠습니다.

- 고수 : 그래. 기대할게. 이후로, 승리가 그곳에 늘 있기를 바라.

2050에게 톡 메시지를 보내고는 진구가 보낸 톡도 확인했다.

진구도 내게 동영상 4개를 보내왔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 이진구 : 내가 둘러본 집이 총 네 군데야. 전부 네가 말했던 조건에 부합해. 둘러본 집은 영상으로 찍어서 너에게 보내니까. 보고서 어떤 게 가장 나은지 선택해.

나는 그가 보낸 영상을 열어 핸드폰에서 확인했다.

내가 그에게 말한 집의 조건은 이러했다.

아파트 평수는 25평에서 30평까지.

준공연도는 7년 이내.

위치는 이 지역, 한강 변 근처.

가격은 20억에서 24억까지.

나는 영상을 다 둘러보고서 컴퓨터를 켰다.

아파트를 사려면 그림이 팔려야만 한다.

현재 아트 K에 경매 내놓은 유화 그림 2점.

현재, 황금 나무와 하늘 호수는 프리뷰 일정 중에 있다.

그 일정과 맞물려서 경매가 시작될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인터넷 기사도 떴고.

김주혜는 여전히 내 그림에 관한 소식을 기사로 써서 열심히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새롭게 올라온 너튜브 영상이 없어서 그런지.

내 그림이 주목받는 부분은 이전보다 떨어진 느낌이다.

페라리 광고 효과도 이젠 끝이 나기도 했고.

명성으로 인한 코인도 팍팍 들어오지 않고 있다.

여유가 생긴다면 다음 유화 작품도 그려야 할 터.

그림 작업 과정을 너튜브 영상도 올려야겠다.

대중의 시선을 확 사로잡으면 좋겠는데,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

전에 어느 국내 기업에서도 광고 섭외가 들어왔었다고 했으니.

그 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지.

나는 진구가 보여줬던 아파트에 관한 내용도 인터넷 검색을 했다.

아파트의 위치와 상권, 교통을 다 확인한 다음, 진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그가 전화를 받자.

“진구야, 수고 많았겠네. 고맙다.”

<영상은 다 봤어?>

“응. 세 번째 영상의 집이 젤 괜찮은 것 같다. 가격도 그렇고 위치랑 아파트 조건도 그렇고.”

<나도 그 집이 젤 괜찮긴 하더라. 거기 매물로 나온 집의 주인은 새집인데도 인테리어를 고급지게 해놨던데.>

“그 집은 그림 경매 진행 상황 보고서 계약해야겠다. 전에 페라리 광고료로 받았던 돈을 끌어모으면 계약금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알았다.>

“그리고 진구야, 이번에 그림 팔아서 돈 들어오면 너 차 한 대 뽑아줄게.”

<오, 진짜? 그래도 되는 거냐? 이열~ 고수, 친구에게 차도 뽑아주고. 기대하마.>

“흐흐, 그래.”

나는 통화를 끝내고 나서 욕실로 향했다.

오늘 오후는 루나와 시간을 보내려고 시간을 빼놓았다.

루나가 집으로 오기 전에, 그녀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가야 할 듯하다.

아포칼립스를 대비하기 위해 그동안 그림 노가다를 해오긴 했었지만.

오늘 루나와의 만남은 그림 노가다 못지않게 중요했다.

나는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집 밖으로 외출했다.

* * *

늦은 오후, 루나는 내 집에 와 있었다.

그녀는 오늘도 한껏 예쁘게 꾸미고 와서 미모가 한층 빛을 발했다.

루나는 동그래진 눈으로 내가 건넨 작은 상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작은 상자를 열자 심플한 디자인의 백금 커플링이 들어있다.

"오빠, 반지가 너무 예뻐요."

“이거 말고 나중엔 다이아 반지 해줄게.”

“다이아요? 그거 엄청 비싸잖아요. 저는 이것만으로 충분한데요?”

“프로포즈링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

“프로포즈요?”

루나의 눈이 더 동그래졌다.

나는 겸연쩍게 웃었다.

사실 번갯불에 콩을 볶아먹으려는 태도긴 하다.

이제 사귄 지 며칠 되었는데.

2월 안에 뭔가 해결해야 한다고 여겨져서 조급해졌다.

내 생각은 결혼까지 나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루나는 이제 막 23살이 된 나이라서 결혼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텐데.

“루나야, 네가 설계한 집. 내년이면 완성될 건데. 거기 같이 살지 않을래?”

“같이?”

“네가 좋다면.”

루나는 한동안 눈을 깜박이다가 상기된 얼굴을 했다.

“지금, 저 기분이 이상해요. 믿기지 않아요. 내가 그렸던 꿈이 현실로 실현되는 게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요. 사실 오빠를 만나기 한참 전부터요. 저는 매일 상상했었거든요.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견고하고 안전한 집을 마음속에 그렸어요.”

“그랬어?”

“네. 몇 년 전부터 그 집의 설계를 그려왔었어요. 저는 남들이 하지 않는, 제가 봐도 특이한 생각을 해왔던 것 같아요. 매일 상상하면서 꿈을 꾸고 공부했어요. 해를 거듭할 때마다 제 설계를 보완했어요. 그렇게 그 집과 함께 전 성장했던 것 같아요.

그 집을 설계하면서 매일 생각했던 게... 이 집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살게 되는 거였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는데.”

루나는 나를 보며 반짝이는 눈으로 작게 웃음을 지었다.

“오빠를 만난 순간부터 제 꿈이 실현되고 있어요. 조금씩 차츰. 흐흫. 처음엔 내 설계가 실물로 완성되어서 제 눈으로 보게 되는 것만으로 만족했는데요. 지금 오빠가 하는 말은, 제가 그렸던 마음속 꿈을 완성되게 해주고 있어요.”

“그랬구나.”

“그래서 가슴이 뛰고, 눈물도 막 날 것 같고. 운명처럼 느껴져요.”

나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생각해보면,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루나의 꿈 덕분에 많은 사람이 살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아들이 그녀의 꿈을 잇게 되고.

“루나야, 안아 주고 싶은데.”

루나는 순수하게 방긋 웃었다.

“허그해줄까요? 그건 내가 오빠에게 해주고 싶었던 건데.”

그러면서 팔을 벌리고 내게 다가와 포옥 안더니 내 등을 토닥토닥하는 거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그녀의 가녀린 체구가 내 팔 안에 너무 쏙 들어왔다.

오랫동안 그녀를 안고 있다가 문득 짓궂게 말했다.

“루나야, 너 안은 팔. 안 풀 건데?”

“네?”

깜짝 놀라며 반문하는 그녀다.

* * *

그날 늦은 밤, 나는 루나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왔다.

침실로 들어와 침대에 앉았다가 루나의 긴 머리카락이 침대에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주워 잠시 바라보았다.

갈색빛이 도는 긴 머리카락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지다 끝부분은 살짝 말려 있다.

머리카락마저도 예쁘다.

결국, 나는 오늘 그녀를 놀라게 해 버렸다.

수호의 일이 걸려 있지 않았다면 나도 조급하게 굴 생각이 없었다.

코인을 확인해봤다.

“2050 고수.”

『명화 작가 25레벨

명화 속도 : 7

명화 기교 : 7

창조 창의력 : 13

코인 : 524301.』

겨우, 다음 레벨을 업그레이드할 만한 코인이 쌓였다.

이번에도 창의력을 올려야 하긴 하지만 기교를 올리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래야 명성을 얻는 게 더 용이해질 것 같다.

더욱 유려해진 기교도 슬슬 필요하다고 여겨지기도 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명화 기교를 올렸다.

이내, 내 재능 스탯에 변화가 왔다.

『명화 작가 26레벨

명화 속도 : 7

명화 기교 : 8

창조 창의력 : 13

코인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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