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53화 (5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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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4

2050년도의 쉘터.

테이는 그녀에게 배정된 침실에서 습관처럼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에겐 책이 한 권뿐인데, 그 책을 매일 조금씩 읽곤 했다.

책장을 넘기다가 문득 그녀의 시선이 어느 부분에서 못 박힌 채 좀처럼 움직일 줄 몰랐다.

테이는 돌연 커다래진 눈을 하고 손으로 자기 이마를 짚었다.

조금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걸 언제 써둔 거지?”

그녀가 즐겨 읽던 낡은 에세이 책.

거기에 그녀가 아주 오래전에 메모해 놓은 글귀가 있다.

<2022년 1월 24일. 고수에게 부탁 받다. 2050년 1월 중으로 고수에게 김수호 부모를 귀띔해줄 것. 130P>

그녀는 낡은 책장을 뒤쪽으로 조금 넘겼다.

130P에 또다시 메모가 있었다.

<김수호의 부모 - 고수, 2026년 사망. 모친은 이루나? 김주혜? 둘 중 한 명이 친모. 두 사람 모두 2025년 사망.>

테이는 미간을 좁혔다.

이 내용은 언제 써놨었지?

왜 이렇게 써놨던 거지?

천천히 기억을 더듬던 그녀는 뭔가 생각난 얼굴을 했다.

“아, 맞아.”

이제껏 테이는 수호의 부모가 누군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그녀가 이렇게 메모를 하게 되고, 수호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아두게 되었던 것은...

2021년 1월의 어느 날.

고수, 그 사람을 만났기 때문.

고수에게 부탁받고서, 언젠가 이전 리더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수호의 부모가 누구인지.

하지만 그는 모친에 대해선 이루나와 김주혜 둘 중 한 명이라고 답했을 뿐이었다.

수호도 자신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데도 그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전에 모친을 알아내려고 드론을 보냈다가 도중 그만둔 거로 알고 있다.

테이는 이곳 쉘터에서 초창기부터 지냈던 것이 아니라서 수호의 어린 시절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

쉘터의 초창기 맴버 중에서 살아남은 인물은, 수호가 유일한 셈.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2022년도 그때 수호의 아버지를 만났던 거구나.

세상에!

테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2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녀는 지휘관 실로 향하면서 계속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두통이 일어서 손으로 계속 이마를 짚었다.

아, 근데 뭐가 이렇게 기억이 뒤죽박죽이지.

나이 먹었어도 기억력 하나는 좋았었는데.

마치 꿈으로 기억하던 내용과 현실의 기억이 잠시 섞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가 현실이고 뭐가 꿈인지 잠시 뒤죽박죽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이 기억이 그녀의 안에서 명확해져 가서 차츰 구분할 수 있다.

시력을 잃었었던 삶도 이젠 악몽으로만 기억하게 되었던 것처럼.

테이는 지휘관 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철저한 검증과 보안 시스템을 걸쳐야만 출입할 수 있었다.

오래전 유하준 박사가 설계해놓았다던 시스템.

수호는 지휘관 실에 없었다.

테이는 AI에게 말을 걸었다.

“전송 기계를 사용해야 할 것 같아. 과거의 나에게 건축 관련 자료를 보내고 싶어. 건축 자료는 수호의 승인이 없어도 전송 가능하겠지?”

그러자 기계적인 음성이 들려왔다.

“예, 물론입니다만. 자료를 보내기 전에 제가 잠시 검열을 해야 합니다.”

* * *

다음날, 진구가 치킨을 들고 내 집으로 왔다.

그는 내가 원룸에서 지낼 때도 올 때마다 뭔가 먹을걸 사 들고 오곤 했었다.

진구는 거실에 앉아 치킨을 꺼내놓으며 말했다.

“이번에 아트 K에서 스페셜 경매를 진행한다고 하더라.”

“스페셜?”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경매할 수 있도록 온라인으로 특별 경매를 한 대.”

“그래.”

나는 담담하게 대꾸하며 치킨을 하나 집었다.

진구는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눈을 빛내며 계속 떠들었다.

“내일부터 경매 시작이야. 와, 내가 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네. 이번이 네 그림 첫 판매가 되는 거잖냐.”

“경매 마감은 언제인데?”

“이번 일요일 자정까지. 네 그림 가격 얼마까지 올라갈까?”

“글쎄.”

“아마도 억대겠지?”

“그 정도까지 액수가 올라가지 않을 수도 있어.”

“올라갈걸. 요즘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보면 네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거든.”

“이슈만 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아냐. 무슨 저명한 교수에다 원로 작가라는 사람도 네 그림을 감평했는데. 그림 퀄리티만 놓고 봐도 우리나라 탑급이라고 하더라. 젊은 작가가 빠른 작업 속도로 그렸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던데. 해외에도 눈독 들이는 그런 그림이 처음으로 그림 시장에 나왔는데 미술품 큰손들이 가만있을까? 투자 가치만 해도 대단한데?”

“음.”

“네 그림은 수년이 지난 후에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 만한 거라서, 사려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탑급. 이전 같았으면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

내가 중얼거리자 진구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긴 요즘 넌 너무 많이 변했지. 뭐, 예전은 예전이고. 고수, 네가 미술계의 역사를 새로 써라.”

나는 피식 웃기만 했다.

진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 뭐더라. 갑자기 생각 안 나네. 무슨 다빈치 라는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어어. 그 화가의 작품이 세계 최고가 그림이래. 경매를 통해 공식 거래된 미술품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던데.”

“얼마?”

“5000억 원.”

“어마어마하네.”

“그치. 근데 넌 아직 젊으니까 이대로 더 발전한다면, 네가 그 기록을 갱신하게 될지 누가 아냐. 흐, 괜히 내가 다 기대되네.”

진구는 치킨을 먹으면서 그 후로도 한참을 떠들다가 집으로 돌아갔고.

집안은 다시 적막해졌다.

나는 드론 그림 작업을 마저 하려고 펜을 집어 들었는데.

테이에게서 까톡이 왔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파일 3개가 첨부되어 있다.

- 정테이 : 고수 씨, 2050년도에서 받은 내용을 지금 보낼게요.

테이는 까톡으로 사진 파일 3개를 첨부해왔다.

나는 그녀가 보낸 사진 파일을 열었다.

첫 번째는 건축 관련 기사 문서를 사진으로 찍은 거였는데 김주혜 기자가 쓴 거다.

다른 하나는 내가 그렸던 쉘터 그림.

마지막 자료는 이루나가 작성한 설계도.

그 자료에는 2022년 2월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고.

2050년도를 사는 테이의 자필이 적혀 있다.

<설계도와 기사 내용 중에서 무엇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어. 혹시 정확한 자료를 찾아내면 다시 보낼게. 수호는 설계도와 기사 내용에 대해선 알려고 하질 않아.>

그 내용을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할 즈음.

띠리리링-

테이에게서 전화가 와서 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테이 씨.”

<사진 보셨어요? 미래의 내가 건축 자료를 보낸다는 핑계로 3장의 자료를 보낸 것 같아요. 간접적으로 정보 전달을 하는 거죠. 아무래도 전송 기계는 수호라는 사람의 승인이 있어야 사용 가능할 테니까요.>

“보낸 사진 파일의 의미는 뭐죠?”

<제가 전송 기계라는 걸 통해서 받은 사진 자료는 각각 김주혜, 고수, 이루나가 쓰거나 그린 거죠. 2022년 2월. 날짜를 굳이 쓴 거를 보면 수호 씨의 부모에 관한 내용인 거고요. 결론은 그러니까... 음, 놀라지 말고 들어요. 수호의 부친은 고수 씨에요.>

“......”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은 기분이었으나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침묵했다.

그러자 그녀가 물었다.

<듣고 있어요?>

“네. 듣고 있어요. 그럼 수호의 모친은...”

<좀 당황스럽긴 한데, 미래의 내가 두 여자를 지목해서 보냈네요. 기사를 쓴 사람과 설계도를 그린 사람.>

“......”

<정확한 자료를 찾게 되면 보내겠다고 적은 거 보니까. 미래의 나는 수호 씨의 모친이 둘 중에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나 봐요. 그리고 수호는 설계도와 기사 내용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굳이 적은 걸 보면, 수호 씨는 모친이 누군지 모르거나 기억하지 못하는데 알려고 하지 않고 있다는 거예요.>

“왜...”

나는 그렇게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수호는 부모의 죽음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건 그가 어렸을 적의 일.

수호는 왜 그랬지?

그가 태어나기 이전의 내 시간에 관여했으면서도 어째서 어머니가 누구인지는 알려고 들지 않는 거지.

기존의 역사가 뒤틀려서, 그의 존재가 지워지게 될 수도 있는데도.

“수호의 부친이 나라는 건, 정확한 정보인가요?”

<지금으로선 그렇다고 봐야겠네요. 내 성격상 정확하지 않으면 이렇게 고수 씨만 지목하는 자료를 보내진 않았을 거고, 정확하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겠죠.>

“......”

<조금 더 기다려보죠. 다시 정확한 정보가 올지도 모르니까.>

“예.”

<근데 고수 씨가 수호 씨의 부친이면... 좀 문제가 심각하네요.>

나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녀에게 입을 뗐다.

“예, 심각합니다. 내 시간은 원래의 삶과 많이 비틀려 있어서 거의 다르게 흐르고 있을 겁니다. 만남도 그럴지 모르고. 그에 따른 선택도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대로는...”

<고수 씨.>

“네.”

<이런 말, 알아요? 임금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

“들어본 것 같아요. 조선 시대 사극에서 들어본 것 같은데.”

<호호. 맞아요. 예전에는 임금을 하늘에서 내리는 존재라고 여겨서 임금이 잘못 통치하면 하늘이 벌을 내린다고 생각했대요.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사관을 두고 사초를 작성하고 실록을 편찬해서 후대가 왕을 평가하게 한 거죠.>

테이는 왜 갑자기 조선 임금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그거처럼 세상을 구할 자도 하늘이 내린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선택으로 뭔가 다르게 흘러가긴 했어도, 만일 수호 씨가 세상을 구하는 일에 필요한 사람이라면요.>

“네.”

<그의 존재는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테이는 말끝을 흐리며 조금 뜸을 들였다.

나는 잠자코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세상에 놓인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죠. 수호 씨는 아포칼립스를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에요. 그러니까 고수 씨는... 조금 난감하긴 한데. 이루나와 김주혜라는 여자를 만나봐야겠네요.>

* * *

곤란하게 되었다.

두 여자가 엮여 있어서.

김주혜라는 여자 역시, 루나와 한나처럼 만날 시기만 달라졌을 뿐.

본래 만날 인연이었던가.

대체 나는 뭐 하는 놈이었지?

현재 시점에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긴 하다만.

결혼도 하기 전에 사고 쳤다는 말인데.

믿기지 않지만, 김수호.

그는 미래에서 얻게 될 내 아들이다.

현재 나는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니 부성애 같은 건 알지 못한다.

부성애를 말하기엔 수호는 처음부터 나와 동갑인 상태로 마주했었다.

하지만 그가 내 아들이든 아니든.

이미 수호는 내게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고.

내게 딱딱하고 건조한 태도로 일관하기 했었어도.

그가 좋은 녀석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블랙카드와 아포칼립스 문제가 아니더라도.

그가 내 아들이라는 걸 몰랐어도.

나는 그를 잃고 싶지 않다.

핸드폰을 들고 수호에게 톡 메시지를 보냈다.

- 고수 : 김수호. 나는 포기 안 해.

수호에게서 바로 답이 왔다.

- 2050 : 무슨 말이지?

내 얼굴에 작은 미소가 스치듯 나타났다가 가라앉았다.

대신 마음 아픈 표정이 드러났다.

- 고수 : 그러니 너도 포기하지 마. 세상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인 것은 내가 사는 게 아니겠냐?

수호는 답하지 않았다.

이젠 그러려니 한다.

나는 다음날, 작업실에서 드론 그림을 작업을 했다.

드론 900대도 거의 다 그려간다.

그러다 코인이 얼마나 모였는지 확인했다.

『명화 작가 24레벨

명화 속도 : 7

명화 기교 : 7

창조 창의력 : 12

코인 : 262278.』

라이브 콘서트 이후, 관련 영상으로 인터넷에서 계속 조회수가 올라가는 데다.

내 그림이 경매에 부쳐진다는 소식에 관련 기사도 계속 떠서, 사람들의 관심이 ‘애플 수’라는 이름에 지속해서 쏠렸다.

그 탓에 코인이 쉬지 않고 들어오는가 보다.

나는 창의력을 올렸다.

『명화 작가 25레벨

명화 속도 : 7

명화 기교 : 7

창조 창의력 : 13

코인 : 137.』

그때 세컨드 폰으로 쓰고 있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우웅-

나는 그 핸드폰을 들고 까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김주혜 기자에게서 온 톡이다.

- 김주혜 : 안녕하세요. 고민하다가 연락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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