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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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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바깥은 어둠이 깊이 내려앉아 있었다.
도시의 야경이 반짝거렸다.
나는 진구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차창 밖을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었다.
“고수야, 오늘 너 멋졌다.”
“그 말, 진심이냐?”
“그럼 진심이지. 근데 배고프다. 우리 뭐 먹고 들어갈래?”
“그럴까?”
“한강 변 편의점에 삼겹살도 팔던데. 우리 그거 먹자.”
“그래.”
“아까 라이브 콘서트 있었던 곳 말이야. 네 이름으로 마련된 형식적인 대기실이 있었거든.”
“응.”
“거기에 축하 꽃다발과 꽃바구니랑 팬들의 선물이 산을 이루고 있대. 그거 내일 내가 가져올까 하는데. 아마도 트럭을 빌려야지 싶다.”
"하하."
농담처럼 과장되게 하는 말에 나는 웃었다.
"근데 그 꽃, 어떻게 다 처리해?"
"쓸 곳 많지 않아? 너 부모님 가져다 드리고. 화병에 꽂아서 집에다 장식도 좀 하고. 작업실에다 가져다둬도 되고. 그래도 많으면 누구에게 줘."
"음, 내일 양평에 좀 다녀와야지.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니까 좋아하시겠네."
그렇게 말하며 부모님을 생각했다.
아까 진구가 부모님 얘기를 꺼냈을 때,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셨으면 기뻐하셨을 텐데.
직접 오셔서 응원했을 거고, 동네방네 자랑하셨을 텐데.
그러다가 루나를 떠올렸다.
음, 루나에게 받았던 꽃을 줘도 될까?
“내일은 그림 그리지 말고 하루 정돈 푹 쉬어.”
“그러지 뭐. 내일 도수치료도 받아야 하고.”
“내일은 일요일인데?”
"일요일에도 하는 곳이 있더라고."
* * *
하지만 오늘은 좀처럼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다.
어제 긴장한 상태에서 그림 작업을 해서 그런가.
몸이 물을 먹은 솜처럼 무겁고 어깨와 팔 통증이 나아지질 않았다.
겨우 일어나니 거실에 꽃다발과 꽃바구니가 잔뜩 쌓아있다.
진구 녀석, 언제 왔다간 거지?
그가 두고간 듯하다.
자세히 보니, 꽃다발 외에도 축하카드와 선물들도 있었다.
오전 11시에 진료 예약이라, 나는 후다닥 옷만 챙겨입고 꽃다발 중에서 장미꽃을 골랐다.
그 꽃다발은 유난히 수북하다.
나는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라멘 사랑'에 들렀다.
한창 점심 장사를 앞두고 있는 한나와 루나.
내가 꽃을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루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고수 오빠."
나는 병원 예약 시간이 급해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꽃이 많길래. 너 가져. 그럼 나 간다."
"네?"
내가 다짜고짜 꽃이 많다고 꽃을 던지듯 놓고 가서 조금 황당했을 거다.
꽃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나는 꽃을 좋아할 만한 사람에게 나눌 생각을 했던 것이지만.
잠시 후,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꽃바구니를 정리하다가 '김주혜'가 보낸 축하 카드를 발견했다.
<애플 수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멀리서나마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콘서트가 되길 기원합니다. 김주혜.>
그녀의 카드를 읽고 있는데.
까톡!
수호에게서 까톡 메시지가 왔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 2050 : 고수.
- 고수 : 응.
- 2050 : 이후로는 재능 스탯을 창의력으로만 올려.
김수호, 이 녀석도 참 한결같다.
몇 달이 지나는 동안, 변함없이 딱딱하고 건조하기 짝이 없는지.
간만에 연락이 와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가도, 사무적인 태도에 나를 싫어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었다.
- 고수 : 그래, 알았다.
내가 그렇게 답하자 수호는 더는 말이 없었다.
나는 마침 부모님 생각도 나고 했던 터라 그에게 부모님에 관한 질문을 했다.
- 고수 : 김수호, 너는 부모님 살아계시냐?
그는 말이 없었어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금세 답이 왔다.
- 2050 : 그건 왜 묻지?
- 고수 : 그냥 궁금해서. 난 너에 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잖아. 그동안 알고 지낸 게 몇 달인데.
- 2050 :
역시 반응이 없군.
눈앞에 있으면 표정이라도 볼 텐데.
나는 별수 없이 내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따라 그와 좀 친밀한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와 그가 사는 세계에 관해서도 듣고 싶기도 했고.
- 고수 : 어제 라이브 드로잉 콘서트를 하게 되었어. 그런데 대기실에서 잠시 대기하는 동안 부모님이 떠오르더라고.
- 고수 : 부모님은 내가 애플 수라는 걸 모르시거든. 그래서 그런 마음이 들었어. 부모님께 어제 내 모습 보여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
- 고수 : 네 부모님은 어떤 분이셔? 살아 계셔? 혹시 이곳에서 그 분들에게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
오늘도 나 혼자 떠들게 되는 거려나? 싶어졌을 즈음.
수호가 메시지를 보냈다.
- 2050 : 내 부모님에 관해 기억하는 바가 없다. 지금은 돌아가셨다는 것만 알 뿐.
음, 역시...
아무래도 아포칼립스를 겪었다면 대부분 가족을 잃은 경우가 많으니.
수호도 그때 부모님을 잃었던 거겠지.
- 고수 : 그랬군. 혹시 부모님 기억은 있어?
- 2050 : 없어. 아니, 딱 하나 있군.
- 고수 : 그게 뭔데?
수호는 대답 대신 내게 질문했다.
- 2050 : 너는. 너에겐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지?
김수호, 내게 이런 질문을 하기도 하는구나.
- 고수 : 음, 내 부모님은 평범한 분이시지. 두 분 다, 나 어릴 적부터 시장에서 일하셨어. 반찬을 만들어 파셨거든.
수호는 반응은 없었지만 내 이야기를 계속 듣고는 있었다.
- 고수 : 어릴 때부터 가난했던 기억이 있네. 그게 철없던 시절에는 꽤 힘들긴 했었어.
- 고수 : 나는 어머니와 주로 대화를 많이 해. 아버지는 워낙 무뚝뚝하셔서.
- 고수 : 아버지와 대화를 좀 하려고 노력은 했는데. 생각보다 잘 되진 않더라고.
- 고수 : 두 사람 다 대면하면 서로 할 말이 없거든. ㅋㅋ- 고수 : 밥 먹었냐? 네. 별일은 없고? 네. 아버지는요? 나는 별일 없다. 그러고 끝이야.
- 고수 : 수호야, 요즘 그곳은 어때? 쉘터 분위기는 괜찮아? 사람들, 요즘 더 늘어났다며?
- 고수 : 외부인이 들어와도 별문제는 없는 거냐? 요즘도 계속 전투는 있지?
위험하진 않아? 내가 뭐 그려줄 만한 무기 필요하지 않아?
흠, 그만해야지.
그다지 수다 떠는 스타일이 아닌 내가 이만큼 혼자 수다를 떨었으면,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하것만.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으려 했다.
그때.
까톡!
수호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 2050 : 어쩌면 내 삶도... 평범함을 꿈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
- 고수 : 응?
- 2050 : 이전에는 그런 건 꿈조차 꿔본 적 없었어.
나는 조금 심각해진 얼굴로 그의 말이 이어지길 잠자코 기다렸다.
- 2050 : 다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린 세계가 회복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긴 했어도. 내 삶이 평범함으로 채워지게 될 거라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 고수 : 왜?
- 2050 : 왜인지는 모르겠군. 아마도 내 마음이, 망가져 버린 세계보다 더 참 혹하다고 여겨졌는지도 모르지.
나는 한동안 묵묵히 있다가 그에게 물었다.
- 고수 : 너에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부모님에 관한 기억. 그게 뭐지?
- 2050 : 죽음이다. 나는 부모의 죽음을 기억해. 참혹하고 끔찍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고 할 만한 그런 죽음. 너무 어려서 다른 기억은 없지만 부모의 죽음은 한 토막 기억으로 남아있어.
- 2050 : 나는 그날 이후로 4년 동안 언어를 잃었다고 들었었다.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던 거지.
처음으로 꺼내는 수호의 이야기.
그의 삶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애달팠겠구나 싶다.
만날 수만 있다면 어깨를 두드려주었을 텐데.
- 고수 : 얼마 전에 2050에게 들었었어. 정테이 씨, 시력을 잃었었는데. 2050년도의 삶에서 시력을 잃지 않은 삶으로 바뀌었다고 하더라.
- 고수 : 정테이라는 인물의 불행 한 가지를 행복으로 바꾼 거야.
- 고수 : 나는 그걸 네가 해냈다고 생각해. 나는 그저 그림만 그렸지.
- 고수 : 생각해보면 루나의 삶도, 불행 한 가지를 행복으로 바꾸었잖아. 세계의 불행을 막겠다던 너는...
- 고수 : 가까운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의 불행을 막고 있었어. 바꾸고 있었어. 그 시작은 나였던 것 같고.
- 고수 : 그랬던 것처럼 네 삶 역시, 바뀌게 될 거야. 물론 이미 왔던 불행이었지만, 그러할지라도 바뀌게 될 거야.
수호는 내 말을 보고서도 한동안 침묵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냐? 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그는 말이 없다가 톡을 보내왔다.
- 2050 : 너에게는 미래. 나에게는 과거. 그 시간이 비틀리면, 그 시간에 놓인 당사자는 기억이 바뀌게 돼.
- 2050 : 아직 내 기억은 조금도 바뀐 게 없지만. 너를 만나면서 조금 변한 게 있긴 하다.
- 고수 : 그게 뭔데?
- 2050 :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 없어도, 내게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듯하다.
- 고수 : 아. 내가 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해서?
- 2050 : 그렇다고 해두지.
- 고수 : 그렇다고 해둔다는 건 또 뭐야? 그럼 아니라는 얘기야?
수호는 또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 2050 : 고수. 전에도 말하긴 했지만, 다시 말하지. 너는 지금 그림만 그리고 있는 게 아니야. 이 세계의 불행을 막고 있는 일. 너는 이미 그 일을 시작한 거다.
- 2050 : 정테이도 이루나도, 그리고 2050년도의 이곳 쉘터민들도. 너로 인해 불행으로 치닫던 그 삶이 그 방향을 틀게 된 거야.
- 2050 : 그래서 너에게 말하고 싶다. 절실하고도 간절히.
- 2050 : 이곳 세계를 구해줘.
그의 말에 내 감정이 동요했다.
구해달라는 그의 말은 내 마음에 깊은 파문을 일으켰다.
절박함이 오래도록 뿌리내린 호소 같았기에.
사실, 나 역시도 아포칼립스에 관한 두려움이 있기에.
그가 방도라고 말해준 재능 업그레이드에 최선을 다하며 불행한 미래를 막기를 소원하고 있었다.
- 고수 : 그럼 전에도 물었지만 다시 물을게. 나 이대로 그림만 그리면 돼?
재능만 업그레이드하면 되나?
- 2050 : 그래. 네 재능이 진화하다 보면 모두를 구할 능력이 보이기 시작할 거다.
그는 그렇게 말했고,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 * *
오후 무렵에 양평 집으로 왔다.
집에 잠시 있다가 나는 강가 부근으로 홀로 나왔다.
날이 추운데도 롱패딩을 입고 한동안 거닐었다.
까톡!
나는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루나다.
며칠 전부터 그녀의 톡은 알림이 울리도록 해두었었다.
- 루나 리 : 나 오늘 아침에도 오빠 지정석에 나왔었어요.
그러면서 루나는 한강 변 벤치에 앉아서 찍은 셀카 사진을 첨부했다.
추워서 창백하게 하얀 뺨이 조금 상기되어 있다.
그녀의 사진을 확대해서 보다가 그걸 핸드폰에 저장했다.
- 고수 : 아침에 추운데 거긴 뭐하러.
- 루나 리 : ㅎㅎ 그냥요. 참, 아까 장미꽃 정말 고마웠어요^^ 오늘 계속 장미꽃만 보고 있었어요. 약간 시들었지만 너무 예뻐요 > <
시들었다는 말에 마음이 조금 찔린다.
- 고수 : 내일 가게에 들를게.
- 루나 리: 앗! 진짜요? > < 너무 좋아요.
내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녀와 잠시 까톡을 주고받다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강가 풍경을 응시했다.
지금쯤 코인은 얼마나 들어왔으려나?
“2050 고수.”
작게 중얼거리자 재능 스텟이 나타났다.
『명화 작가 23레벨
명화 속도 : 7
명화 기교 : 7
창조 창의력 : 11
코인 : 195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