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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핀 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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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가격? 그게 어떻게 가격이 매겨지는 거지?
리포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최근 애플 수의 그림이 화제가 되면서 그의 그림을 소장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한국 미술 감정협회에서는 아직 그림 시장에 나오지 않은 애플 수 유화 그림의 가격을 9000만 원으로 책정했습니다.
방송인 박진우 씨는 애플 수의 그림이라면 5억을 주고도 살 의향이 있다고 SNS를 통해 밝혀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대형 미술품 경매사인 ‘아트 K’는, 애플 수의 그림을 소장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만일 경매에 나온다면 그림 1점당 15억까지 치솟을 거로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TV를 켠 채 핸드폰을 들고 습관적으로 까톡을 확인했다.
그러다 루나에게서 까톡이 와있는 걸 발견했다.
- 루나 리 : 오빠,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시간 내줄 수 있어요? 그때 집에 초대할게요. 소소한 크리스마스 홈 파티 해요.
- 루나 리 : 그때 하준 아저씨도 온대요. 언니가 초대했거든요. 언니한테 얘기 들었어요. 하준 아저씨랑 오빠가 아는 사이라면서요?
유하준 박사를 하준 아저씨로 부르는 루나다.
나는 그녀에게 답장을 했다.
- 고수 : 그때 시간 괜찮으면 갈게. 그때 주소 찍어줘.
수연이에게도 까톡이 들어왔다.
- 김수연 : 고수야, 과 동기들이 하는 얘기 들었어?
- 고수 : 무슨 얘기?
- 김수연 : 네가 애플 수 같다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나 봐. 키가 크고 이름도 ‘수’라서.
- 고수 : 그래?
- 김수연 : 근데 그 얘기가 금방 쏙 들어갔어. ㅋㅋ
- 고수 : 그건 또 왜?
- 김수연 : 과 후배나 선배, 동기들 전부 네 그림을 아니까 그렇지. 진짜 너무하네ㅋㅋㅋ 그렇게 쏙 얘기가 사라질 건 뭐야.ㅋㅋㅋ- 고수 : 그러게. 내 그림 실력을 알아도 의심 좀 하지.ㅋㅋ
- 김수연 : ㅋㅋㅋㅋㅋ
그 당시의 내 그림과 지금 내 그림은 하늘과 땅 차이긴 하다.
수연이와는 조금 거리를 둘 생각이었는데.
애플 수 얘기를 꺼내서 대화하게 되고 만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지금쯤 재능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려나?
나는 핸드폰을 내려두고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2050 고수”
『명화 작가 21레벨
명화 속도 : 6
명화 기교 : 7
초월 창의력 : 10
코인 : 32981.』
다음 업그레이드할 재능이 겨우 모인 듯하다.
차감될 코인은 32768.
창의력은 이제 능력 진화가 가능해서 그걸 올리는 게 나을 듯하다.
'초월 창의력 레벨업.' 이라고 작게 중얼거리니.
이내 코인이 차감되고 재능 스탯이 변화했다.
『명화 작가 22레벨
명화 속도 : 6
명화 기교 : 7
창조 창의력 : 11
코인 : 214.』
다음은 속도를 올려봐야겠다.
* * *
며칠이 지나갔다.
일본에서 진행되던 라이브 드로잉 콘서트 기획은 생각보다 우여곡절이 많아졌다.
나는 인터넷 기사와 댓글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 K-사과 : 애플 수는 대한민국이 낳은 천재다! 일본에서 첫 라이브 공연을 한다는 게 말이 되냐! 여기서 먼저 해야지. (답글 20개)
└ 왈왈왈 : 전에는 중국이 애플 수는 중국 거라고 하더니 이번엔 일본이 눈독들이고 있네. 문체부는 뭐 하고 있냐? 일본에 뺏기기 전에 애플 수 모시지 않고! (답글 2개)
└ 니가와 : 애플 수 좋으면 니들이 와. (답글 9개)
└ dovmf : 국산 사과 수출해도 되지요. 그래도 처음 딴 사과는 우리 꺼!
음, 섣불리 결정하고 움직이면 안 될 듯하다.
명성으로 코인 쌓을 생각을 먼저 했다가 다른 부분을 간과한 것 같다.
나는 작업실에 앉은 채 3D 디스플레이로 영상 파일 하나를 열었다.
AI 2050이 보내온 영상 파일이다.
수호가 쉘터를 실물 전환한 모습을 편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영상을 열자 생생한 화질의 영상이 내 시야에 펼쳐졌다.
이걸 3D로 보니까 나 역시 그곳 쉘터에 머무는 기분이다.
웅성웅성 사람들의 말소리.
쉘터에 사람들이 전보다 많아진 듯하다.
사람들은 매우 들뜬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모두 내가 그렸던 쉘터 그림을 보고 있었다.
쉘터 그림이 3D로 그들 앞에 나타나 있다.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겠지요?”
“수호는 이제껏 실패한 적 없었으니 이번에도 성공하겠죠. 너무 떨리네요.”
“저 그림을 보세요! 저곳이 우리가 앞으로 지내게 될 쉘터라는 게 믿어져요?”
“그런데 수호는 괜찮을까요?”
“저 정도 스케일의 실물 전환은 수호도 처음이니 걱정이 되는군요.”
“수호 씨의 능력도 전보다 많이 올라서 가능할 겁니다. 수호 씨, 능력 레벨올리려고 목숨 걸고 G구역까지 가서 적들을 사냥하고 왔잖아요.”
“그래도 무리가 되긴 할 거예요. 에너지 소모가 대단해서 그의 몸에 무리가 오긴 할 겁니다.”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 보니, 나 역시 걱정이 되었다.
내 재능만 올리면 된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라 수호의 능력도 오르고 진화해야, 스케일이 커진 내 그림을 실물로 전환할 수 있는 거다.
그때, 쉘터민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젊었고 약간 저음이었으며 힘이 있고 강단이 있었다.
리더 다운 목소리랄까.
“이 그림을 실물 전환할 내 능력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화가 고수의 능력이 오르는 만큼, 나 역시 능력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으니. 여러분은 이 부분에 관해선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나는 수호의 목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알고 지낸 지 몇 달이 지났는데 이제야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다니.
진작 좀 들려주지.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의 목소리와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이 울컥했다는 거다.
왜지?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사는 저 쉘터민들의 감정이 내게도 전이된 걸까.
수호의 말에 쉘터민들의 불안은 곧바로 잠재워졌다.
대신 그들의 얼굴과 눈빛엔 희망과 기대, 기쁨이 채워져 갔다.
“오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집다운 거처에서 지낼 수 있게 된 겁니다!”
“수호, 고수가 있어서 우리에겐 희망이 있습니다!”
잠시 후, 수호가 그림을 실물 전환하는 듯했다.
그림에서 은은한 빛이 감돌았다.
이전엔 단숨에 실물 전환되곤 했는데.
이번엔 시간이 조금 걸린다.
수호의 능력이 발현되는 동안, 쉘터민들은 숨소리 내지 않고 이를 지켜봤다.
긴장감과 기대, 묵직한 침묵이 그곳에 드리워졌다.
나 역시, 초조해져서 영상을 지켜봤다.
이윽고 그림이 홀연히 사라지며 대신 쉘터 건물이 변화를 보이려 했다.
수호의 실물 전환 능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낡고 훼손된 사물을 새로운 사물로 재창조하는 능력이기도 했다.
낡은 쉘터 대신, 견고하고 아름다우며 규모가 더욱 큰 건축물이 들어서려 했다.
하지만 도중.
츠츠-
스파크 같은 게 일었다.
그러자 형성되려 했던 건축물이 다시 흐려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를 지켜보던 쉘터민들은 동요해서 탄식을 내뱉거나 수호의 이름을 외쳤다.
“수호!”
“수호 괜찮습니까?”
츠으-
혹시 실패하게 되는 건가 싶어서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다.
그러다 이내 수호의 능력이 온전히 발현되었다.
내가 그렸던 그림이 실물로 완전히 전환된 것이다.
곧바로, 쉘터민들이 환성이 터져 나올 줄 알았는데.
짧은 순간, 사람들에게는 여전한 침묵이 있었다.
그러다 그들에게서 탄성과 환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
“수호, 수호!”
“고수!”
그들은 수호와 고수라는 이름을 연호했다.
영상은 거기서 끊어졌다가 장면이 전환되었다.
쉘터 안 대식당 안에서 통조림을 먹는 남자들.
그들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고수, 이런 센스가 있다니. 창고에 통조림을 꽉꽉 채워두었어.”
“그러게 말입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 지금 여기 있으면 내가 큰절했을 겁니다. 하하.”
그들이 맛있게 통조림을 먹는 모습을 보며 나는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자꾸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이 울컥거렸다.
쉘터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쉘터민들을 생각하며 통조림을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가득 그려넣었었다.
“그런데 한호 씨, 이마에 쭉 찢어진 흉터 있었지 않아?”
“어, 그런가? 아냐. 한호 씨, 처음부터 얼굴에 흉터는 없었어요.”
“그랬었나.”
그들을 촬영하던 드론은 식당을 빠져나와 쉘터의 넓은 홀을 지나고.
출입문을 나왔다.
그러고는 공중으로 솟아올랐는데.
그곳에 은빛의 초소형 드론들이 반짝거리며 비행하고 있었다.
영상은 거기서 끝이 났고.
까톡!
AI 2050에게서 톡 메시지가 왔다.
나는 영상 파일을 닫고서 2050의 톡을 확인했다.
- 2050 : 고수님, 영상을 보셨습니까?
- 고수 : 그래, 봤어.
- 2050 : 마지막 장면, 드론들도 보셨습니까?
- 고수 : 그래. 그 드론들 내가 그렸던 드론과 같아 보이던데?
- 2050 : 맞습니다. 그 드론은 고수님이 그리신 드론들입니다.
- 고수 : 응? 난 아직 몇 개밖에 안 그렸는데. 영상에서는 100개는 되어 보이던데.
나는 그렇게 톡을 적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영상에서 본 드론들은 내가 이제 그려서 실물 전환된 게 아니라...
오래전의 드론인 건가?
- 2050 : 영상에서 보신 드론은 2021년도에 그리신, 그러니까 29년 전에 실물전환되었던 드론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겁니다.
- 고수 : 아.
- 2050 : 900대의 드론이 그때 이후로 존재하며 활약해서, 아까 통조림을 먹던 한 남자의 상처가 사라진 거고. 그들의 기억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 고수 : 그랬군.
- 2050 : 이제 고수님이 그려서 실물 전환했던 드론을 전송 기계로 전송할 겁니다.
- 고수 : 지금?
- 2050 : 네. 위치는 2021년도의 현재 고수님의 작업실로 설정하고 전송할 겁니다.
- 2050 : 수호님이 굳이 초소형 드론 군대를 선택하신 이유는, 전송 기계로 보낼 수 있는 한계가 초소형 드론이기 때문입니다. 드론처럼 복잡하고 섬세한 물건은 아주 작은 물건만 전송이 가능합니다.
- 2050 : 고수님, 보십시오. 지금 1대가 전송되었을 겁니다.
2050의 말에 나는 주변을 훑어보다가 탁자에 시선을 주었다.
그곳에 뭔가 은빛으로 반짝이는 게 보였다.
드론이 전송되어 온 것이다.
- 2050 : 제가 조종하겠습니다. 창문 좀 살짝 열어주시겠습니까?
초소형 드론 하나가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츠츠츠-
다른 드론 하나가 또 전송되어 나타났다.
나는 얼른 창문을 연 다음, 그 광경을 놀랍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켜 놓았던 3D 디스플레이에 어떤 영상이 저절로 열렸다.
그 영상은 4개의 화면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드론에 달린 초소형 카메라로 촬영되는 영상인 거다.
위잉-
4대의 초소형 드론들은 이곳으로 전송되자마자 전부 창문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나는 2050에게 톡 메시지를 보냈다.
- 고수 : 2050. 저 드론들, 어디로 보내는 건데?
- 2050 : 최근 고수님과 고수님의 지인들 주변을 살펴본 결과, 수호님이 보내지 않은 드론이 발견되었습니다.
- 2050 : 그 드론은 2050년도에서 주로 사용되는 드론과 70% 일치합니다. 전에 약탈자들이 전송 기계로 보낸 드론을 보고 흉내 내어 드론을 제작한 자가 있었습니다.
- 2050 : 그는 2050년도에서 약탈자로 활동하고 있는 2021년도 젊은 시절의 약탈자입니다.
- 2050 : 약탈자에게 전송 기계가 존재했을 무렵, 그는 2050년도로부터 지시를 받은 게 있어 보이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 2050 : 그는 그저 김수연, 이한나, 이루나 라는 인물을 염탐하기만 했습니다.
- 고수 : 그녀들은 왜? 왜 염탐하는 거지?
- 2050 : 그 부분에 관해서 답변할 권한을 수호님에게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나는 3D 디스플레이로 보이는 영상에 눈길을 주었다.
드론들은 어디론가 빠르게 비행하고 있었다.
서울 거리 풍경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이내, 드론은 어느 숙소 건물로 침투해 들어갔고.
아무도 없는 어느 연구실에 4대의 드론이 이르렀다.
그곳엔 어떤 남자가 한 명 머물고 있었다.
그를 본 나는 놀라서 2050에게 까톡을 보냈다.
- 고수 : 저자는 테이가 미국에서 불러온 팀원 중 한 명 아니야?
- 2050 : 네, 맞습니다. 최근 알아낸 사실인데. 그는 오래전에 정테이에게 해를 끼쳐서 시력을 잃게 만든 자였습니다.
- 고수 : 그럼 그 남자가 나중에 약탈자가 된다는 말이야?
- 2050 : 그렇습니다. 이제 그가 만들었던 드론과 그의 컴퓨터를 못 쓰게 만들고 그의 시력만 가져가려고 합니다.
2050의 말이 끝나자마자 3D 디스플레이로 보이는 영상에 갑자기 어마어마한 전기가 일어나는 게 보였다.
치지지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