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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45화 (4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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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핀 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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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집에 가서 수호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에는 금방 답하는 그였다.

- 고수 : 김수호,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영상으로 올리는 게 있거든.

- 2050 : 알고 있다.

- 고수 : 음, 그래? 근데 그 영상을 편집해주는 친구가 있는데.

이어서 계속 쓰려고 하는데, 수호가 먼저 말했다.

- 2050 : 이진구라는 친구지?

- 고수 : 어? 응.

- 2050 : 내가 드론을 보냈어. 드론으로 조작해서 이진구라는 자의 컴퓨터에 있는 영상 원본을 다 지웠다.

나는 조금 놀라서 그에게 반문했다.

- 고수 : 네가 지웠다고? 너 이곳 시대로 드론 보낸 거냐? 그 전송 기계로?

- 2050 : 그래.

나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다 그에게 메시지를 적었다.

- 고수 : 왜? 혹시 내 친구가 배신이라도 할까 봐 그랬던 거냐?

- 2050 : 그건 아니다. 네 친구는 널 배신하지 않겠지만 세상이 너를 가만두질 않을 거니까.

- 2050 : 어느 순간, 너를 찾고 너의 신상을 밝히려는 세상의 노력은 네 친구인 이진구에게 미치게 될 거다. 애플 수라는 그 이름은 생각보다 매력과 가치의 크기가 거대해질 거야. 2050년에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많은 걸 보면 그러하다.

- 2050 : 나는 이곳 쉘터를 지키고 쉘터민들을 케어하는 것만으로도 바빠. 그래서 2021년도의 위험 요소가 될 만한 건 미리 제거해둘 필요가 있었어.

- 고수 : 그랬군. 근데 그 드론이란 거, 어떻게 생겼어? 혹시 아주 작아? 하얗게 반짝이고 콩알 만한.

- 2050 : 우리가 사는 곳에선 그런 종류의 드론이 있다. 하지만 내가 보낸 건 투명하긴 해도 아주 작진 않아.

나는 얼마 전의 일을 떠올렸다.

내 집에 수연이가 왔었을 때 있었던 일.

그녀와 키스할 뻔했고 정전기라고 하기엔 이상하게 여겨지는 강력한 충격이 있었던 일.

그때는 잘못 본 것이라고 치부했었지만.

수호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신이 들었다.

벌레처럼 작게 반짝였던 그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그건 드론이라 여겨졌다.

그렇다면 뭔가 더 싸해지는데.

그건 정말 크기가 작았었으니까.

수호가 보내지 않은 드론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수호가 약탈자라는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전에, 그들이 조종하는 드론이 내 집까지 왔었던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2021년도에 오지 못한다고 하니까.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때의 일을 굳이 수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나중에 얘기해도 될 거로 여긴 것이다.

* * *

이틀 정도 흘러갔다.

나는 아우디를 끌고 쉘터가 건축될 과수원 땅으로 왔다.

아직은 비어있는 이곳.

조만간 공사가 시작될 거다.

나는 타블렛 펜을 꺼내 한동안 쥐었다.

그러자 펜에서 백색 빛이 들어오며 디스플레이가 나타났다.

2050년도에서 사용될 쉘터의 완성본.

내가 그린 그림을 열었다.

그러고는 디스플레이를 최대로 확대했다.

내 그림이 실물보다 절반 정도 작은 사이즈로 커졌다.

그만큼 디스플레이가 엄청나게 커진 거다.

이곳에서 내 그림을 3D로 보고 있자니, 언뜻 이 땅에 쉘터가 들어선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2050년도의 쉘터민들.

그리고 수호.

그들이 이곳 쉘터에서 어찌 지내게 될지, 조금 상상이 된다.

그림 파일을 닫고 그걸 2050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나는 조금 걸으면서 주변 땅을 둘러보았다.

얼마 전에, 이곳 과수원 땅 말고도 그 주변 땅까지 구매하기로 했었다.

생각보다 건물과 지하 벙커 스케일이 큰 데다가 정원 조성까지 하려면, 과수원 땅 1000평 가지고는 안 되었던 것.

내일 이모부의 회사로 가서 계약하기로 약속을 잡아두었다.

여기 온 김에, 양평에 들러야겠다.

띠리리리링-

진구에게서 온 전화다.

나는 그의 전화를 받았다.

<고수야.>

“응, 말해.”

<페라리 측과 얘기를 해봤거든. 네 요구조건을 말했더니 좋다는 연락이 왔어.>

“오, 그래?”

<앞으로 6개월 동안, 네가 받은 신차는 페라리 측에서 관리하겠대. 그 이후엔 네가 원하면 타도 되는 거고. 아니면 다른 색상의 차량으로 변경해줄 용의가 있대. 다만 페라리에서 신차 광고를 해야만 하는 입장이니, 6개월 동안은 너와 비슷한 체형에다 인상착의의 직원이 나와서 종종 네 차를 주행할 거라고 하더라.>

“아.”

“그러면서 차도 그곳에서 관리할 거고. 어차피, 그 차량은 계약 기간만 협찬으로 주어진 차량이니 페라리가 관리하려는 걸 거야. 대신 애플 수가 페라리를 몬다는 걸 나타내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럼 이제 김주혜 기자가 부탁한 서면 인터뷰를 해야겠네.”

<그렇지.>

“그나저나 내가 페라리를 몬다는 광고를 해도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까?”

<보일걸. 너 요즘 영상 조회수가 수직 상승하는 걸 보면 그런 믿음이 팍팍 든다. 근데 대단한 것 같아. 그 비싼 차를 사는 사람들이 있다니. 신차 주문하면 그제야 주문제작 들어가서 받는 데도 한참 걸린다던데.>

“그러게.”

<이만 끊는다.>

그와 통화를 끝낸 후에, 아우디에 올라타 양평 집으로 운전했다.

집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2050에게서 톡 메시지가 왔다.

- 2050 : 고수님의 그림을 분석한 결과, 블랙카드의 레벨이 25레벨로 상승합니다.

쉘터 그림이 통과된 거다.

* * *

진구가 보내온 김주혜 기자의 질문 수는 무척 많았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 중에는...

『 ◉ 작품을 보면 한자로 빼어날 ‘수’가 서명으로 적혀 있습니다. ‘수’는 혹시 본명에서 따온 화명인가요?

◉ 작가님의 얼굴을 가린 전체적인 분위기를 볼 때, 작가님은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나이일 거로 짐작됩니다. 정확히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알고 싶군요.』

이런 질문처럼 내 신상이 드러나게 할 만한 내용도 있었다.

그런 건 전부 패쓰했다.

나는 노트북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작성했다.

『 ◉ 최근 작가님을 봤다는 여러 목격담이 온라인상에서 떠돌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실은 유명 연예인이라는 소문도 있고, 재벌 2세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실은 외국인이라는 말도 있지요.

얼마 전에는 평범한 미대 출신의 20대 남자가 '수'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로 애플 수가 아니냐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그 모든 소문 중에서 정말 애플수 작가님이신 내용이 있습니까?

- 저도 저에 관해 떠도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소문 중에서 맞는 건 없었습니다. 제가 미술 전공을 한 건 맞지만 소문으로 불거진 그분은 아닙니다. 혹시 저에 관한 소문 때문에 피해를 보신 분이 있다면, 이 기회를 빌려 사죄드립니다.

◉ 작가님이 작업하시는 광경을 보면 작업 속도가 인간적인 한계의 범주를 넘어설 정도로 빠릅니다. 특별한 비결이나 방법이 있는 건가요?

-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 저는 그저 그림을 좋아하는 한 사람일 뿐입니다.

저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저의 재능이 개화하게 된 계기를 굳이 말씀드린다면, 이것이라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의 저는 그림을 그려서 얻게 될 것들을 위해 작품 작업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 그림 때문에 행복해지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림 작업을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기가 달라진 거죠. 이것이 저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 작가님은 최근 페라리 측에서 그림으로 그리셨던 신차 모델을 협찬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작가님은 페라리 신차를 몰고 계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금빛이 도는 옐로우 색상이 마음에 들더군요. 작가님이 그걸 그리셨을 때, 저는 매료되었습니다. 작가님은 아마도 그걸 타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확실히 이번 페라리 신차는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강력하고 특별하죠. 저는 누구보다 먼저 그 신차를 몰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종종 페라리를 몰고 드라이브를 하려 합니다. 아마도 당분간 드라이브는 제 취미가 될 것 같습니다.

◉ 최근 작가님은 많은 여성의 이상형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궁금해 지는데요. 작가님의 이상형은 어떤 여성인가요? 그리고 혹시 결혼은 하셨는지, 아직 하지 않았다면 여자친구는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 저는 지금 미혼입니다. 제 이상형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만. 요즘은 맑고 순수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 같습니다.』

김주혜는 내가 흰색 차량을 탄다는 걸 짐작하면서도 그걸 나타내진 않았다.

나는 몇 가지 질문은 넘기고 답변을 적은 걸 진구에게 보냈다.

페라리 신차를 탄다는 걸 굳이 숨길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어차피 내가 신차를 협찬받는다는 사실은 누구든 알게 될 내용이었으니.

나는 페라리 광고 모델이 된 입장이었으니, 오히려 드러내되 내 정체에 관해 혼선을 주는 편이 나았다.

* * *

나이 31세, 키 181센티에 적당한 체구의 남자.

그는 검은색 캡모자와 검정 마스크를 쓰고 페라리 신차가 주차된 주차장으로 왔다.

페라리 신차는 여기보다 안전하고 페라리에 어울리는 지정 주차 장소로 옮겨질 터다.

그는 별다른 일이 없을 거로 생각하며 차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서울 거리로 나왔는데.

생각보다 이목이 쏠렸다.

페라리를 운전하던 그는 당연하다고 여겼다.

페라리 광고가 나오는 시점이고, 아직 신차가 쉽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으니까.

운전하다가 차가 잠깐 멈춘 사이, 옆에 서 있던 차의 창이 열리며 어떤 여자가 외쳤다.

“안녕하세요!”

“......?”

그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여자만이 아니었다.

조금 더 운전하다 보니, 사진 찍는 사람도 생겨났다.

저 사람들, 페라리 신차가 그렇게 신기했나?

그가 운전하는 차량이 도로 쪽으로 서게 되었을 때, 누군가가 그에게 외쳤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인가 싶어, 이번에는 차창을 내리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혹시 애플 작가님이신가요? 어제 기사 뜬 거 봤어요! 페라리 신차로 드라이 브를 즐기신다고 들었어요.”

애플 작가?

아, 애플 수를 말하는 거구나.

애플 수라는 말에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정말 애플 수에요?”

“꺄아아! 진짜 애플 수야!”

깜짝 놀라 그는 차창을 얼른 닫았다.

애플 수라는 말에 관심을 보이던 한 행인이 실망한 표정으로 말하는 게 언뜻 들려왔다.

“저 사람, 애플 수 아닌 것 같요. 인상착의는 비슷한데. 애플 수는 어딘가 잘생긴 아우라가 있는데 저분은...”

페라리 직원은 당황스럽다 못해 언짢아졌다.

내가 못생겼다는 건가?

모자 쓰고 마스크로 얼굴 가렸는데.

그래 봤자 애플 수도 얼굴 다 가리고 나오더구만, 잘 생기긴.

마침 신호가 바뀌자 그는 차를 출발했다.

* * *

며칠이 지나갔다.

진구가 편집한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진구는 영상을 올리기 전부터 며칠 몇 시에 영상을 올리겠다고 SNS에 게시했었다.

약속한 시간에 내가 작업한 세 번째 유화 그림 작업 영상이 올라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조회수가 미친 듯이 폭발적으로 올라갔다.

나는 그림의 제목을 ‘겨울에 핀 봄’이라고 정했다.

겨울 같은 세상이라도 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목을 단 것이다.

그러다 진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수야, 일본에서 이메일이 왔어. ‘겨울에 핀 봄’이라는 제목과 주제로 라이 브 드로잉 콘서트를 기획하고 싶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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