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44화 (4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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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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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혜.”

그녀다.

광고 촬영 현장에 취재 왔었던 기자.

내게 인터뷰 요청을 했었던 그 기자.

그녀는 지금도 나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다.

호평 일색의 기사들.

그리고 진구에게 여전히 인터뷰 요청을 하는 거로 알고 있다.

김주혜는 이쪽으로 한걸음 다가왔다.

뭔가 낭패인 것 같은데.

마침 신호가 바뀌며 차들이 움직였다.

나 역시 차를 출발하며 여전히 내가 탄 페라리에 눈을 못 떼는 그녀를 힐끗봤다.

그녀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어쩐다지.

이게 흔한 차도 아니고.

약속된 신차라 받긴 받았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이걸 집 앞에 두면 안 될 듯했다.

그래서 근처 민영 주차장에 옮겨두려고 나오긴 했었다.

물론, 페라리 신차를 타보고픈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드라이브할 생각을 했던 바람에.

이런 상황이 불거지긴 했다.

이건 내 잘못이다.

잠시 후, 주차장에 도착한 나는 핸드폰을 들고 까톡 메시지를 보냈다.

- 고수 : 수호야, 만약 내가 애플 수라는 거 세상에 밝혀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 고수 : 아포칼립스를 막는 일이 어려워지는 거냐?

하지만 수호 대신 2050이 대답했다.

- 2050 : 아포칼립스를 막는 일이 어려워지는 여부는 딱히 확언하여 답변드릴 수가 없습니다.

- 2050 : 수호님의 첫 번째 우려는 2050년도의 약탈자였습니다. 그들은 2021년도의 고수님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가 없으니, 위험 요소가 제거된 상태입니다.

- 2050 : 두 번째 우려는 고수님에게 장차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는 위험 요소입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2024년에 가까워질 무렵, 위험 요소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 2050 : 수호님이 고수님의 신상을 세상에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건, 미리 위험이 될 만한 일을 차단하려는 의도입니다.

- 고수 : 흠, 그렇군.

내 얼굴은 조금 심각해졌다.

2050의 톡 메시지는 계속 이어졌다.

- 2050 : 이는 수호님이 유독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태도가 있어서 그런 거긴 합니다. 만일 위험 요소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수호님은 고수님이 세상에 직접 드러나도 무방하다고 여기실 겁니다.

- 고수 : 그래?

- 2050 : 그래야 코인이 좀 더 큰 액수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2050의 답변을 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톡 메시지를 작성했다.

- 고수 : 근데 쉘터에 과학자나 전문가가 있나 봐? 너 같은 AI가 있는 걸 보면.

- 2050 : 저를 만드신 분은 유하준 박사님이십니다. 그분은 2027년, 사망하기 전까지 쉘터에 여러모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 고수 : 그랬군.

- 2050 : 고수님이 사용하시는 새로운 블랙카드 시스템과 타블렛 펜도 그분이 밑 작업을 해두신 겁니다.

- 고수 : 유하준 박사가?

- 2050 : 네. 그분이 설계를 해두시고 완성하신 건 다른 분입니다.

- 2050 : 유하준 박사님이 학교에 계실 때는 그다지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유하준 박사님의 천재성이 두각을 나타낸 건, 아포칼립스 이후입니다.

- 고수 : 흠...

- 2050 : 이한나, 이루나, 유하준은 우리 쉘터 구축에 커다란 비중이 있는 인물입니다. 고수님은 그분들을 모두 만나게 된 것이었지만, 수호님은 그 만남을 의도적으로 앞당기셨습니다.

- 고수 : 그랬군.

생각보다 깊은 인연이다.

얼마 전만 해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실은 내가 깊게 인연 맺었던 인물들이라고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핸드폰을 외투 주머니에 넣고, 혹시나 해서 가져온 모자를 깊이 눌러 썼다.

그러고는 차에서 내렸다.

* * *

다음날 오전, 작업실에 와 있었다.

오늘도 눈이 내리고 있다.

소복이 하얗게 쌓이는 풍경.

작업실 창가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구경하는 일은 소소한 일상이 된 것 같다.

아직 쉘터 그림 분석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 틈새 시간을 이용해서 유화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전에 스케치만 해둔 꽃비 내리는 벚꽃 풍경.

오늘 중으로 완성할까 한다.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작게 중얼거렸다.

“2050 고수.”

그러자 재능 스탯이 나타났다.

『명화 작가 20레벨

명화 속도 : 6

명화 기교 : 7

초월 창의력 : 9

코인 : 19265.』

코인이 생각보다 많이 불어나 있다.

페라리 광고가 떠서 그런가.

그런 것치곤 코인이 상당히 들어와 있다.

재능을 올리고도 남는 코인이 있는 거다.

코인이 왜 이렇게 많이 들어왔는지 궁금해져서 핸드폰을 집어 들고 검색했다.

페라리 광고 관련 영상이 많이 떴다.

페라리 광고 영상, 그 외에 광고 촬영 현장을 편집해서 올려둔 영상도 있다.

다들 조회수가 어마어마했다.

나는 대강 영상을 살펴봤다.

대표 댓글도 살펴봤다.

└ 강한성 : 애플 수는 진짜 천재였네요. 이 영상을 보니 그동안 조작이니 뭐니 했던 말들이 어거지였음을 알겠습니다. (좋아요 1만, 답글 90개)

└ rarara : K-애플 수! 가즈아! (좋아요 1천, 답글 32개)

└ LeeO : 애플 수가 다 발라버린다! (좋아요 219, 답글 32개)

└ 수오빤 빼어나지 : 애플 수, 다음 그림 작업 영상은 언제쯤 올라올까요? (좋아요 3.1천, 답글 145개)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이번엔 어떤 능력을 올려야 하지?

조금 고민하다가, 전에 능력 수치가 ‘5’ 단위로 진화한다고 했던 수호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 초월 창의력이 ‘9’.

이번에 올리면 조만간 능력이 진화할 거다.

초월 창의력을 올려야겠군.

“초월 창의력 레벨업.”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런 식으로 혼자 ‘레벨업’이라고 중얼거리는 게 오글거린다.

곧, 변화된 재능 스텟이 나타났다.

『명화 작가 21레벨

명화 속도 : 6

명화 기교 : 7

초월 창의력 : 10

코인 : 2901.』

다음번엔 능력 진화가 나타날 텐데.

어떤 식으로 바뀔지 기대된다.

오늘도 그림 작업 영상을 찍을 생각이다.

나는 적당한 위치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검정색 모자와 마크스를 썼다.

그러고는 캔버스 앞에 섰다.

번잡하던 마음을 지우고, 전에 봤던 영상 편지 속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포칼립스를 살아가는 아이.

그 아이들은 이러한 봄을 한 번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니.

아름다운 봄을 선물해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전에는 그저 잘 그려야지.

명작을 그려야지, 하는 심정으로 붓을 들었지만.

지금은 봄처럼 따스한 심정이 내 가슴에 스며들었다.

그렇기에 캔버스를 응시하는 내 시선에도 봄이 깃들 듯.

한없이 온화해지고 부드러워졌다.

붓을 들었던 내 손.

돌연 붓을 내려놓고 지우개를 들었다.

스케치했던 일부분을 수정하려는 거다.

스케치한 그림을 보다 보니, 걷잡을 수 없이 영감이 떠올라서 스케치한 부분을 일부 바꿔야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스케치를 마저 끝내고, 곧바로 채색을 들어가 두어 시간 작업 했을 즈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띠리리링-

진구의 전화다.

나는 그의 전화를 받았다.

“응. 이 시간에 웬일이야?”

<고수야, 김주혜 기자 기억해?>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김주혜 기자가 왜?”

<애플 수가 하얀 페라리 신차를 타냐고 묻던데? 이메일로 왔었어. 정말 기자들 대단하다. 이런 내용까지 알아내고.>

“혹시 기사 쓰겠대?”

<아니. 그런 말은 하지 않았고. 비대면 인터뷰를 제안했어. >

나는 잠시 고민했다.

비대면 인터뷰라면 한 번쯤 응해주는 것이 나으려나.

<김주혜 기자라면 인터뷰해주는 것도 괜찮을 듯해. 이 여자, 기사 쓴 거 보니까 애정이 뚝뚝 묻어나던데. 정말 네 팬인가 봐. 인터뷰의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좋대. 어떡할래?>

조금 망설이다 진구에게 답했다.

“그래. 할게.”

나는 그에게 답하고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꼬르르.

뱃속이 아주 요동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끼니를 잊고 있었다.

밤 좀 먹고 해야지.

* * *

아침에 루나는 한강 변으로 하얀 푸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

늘 고수가 앉아 있곤 하던 벤치에 그녀는 털썩 앉더니.

하늘에서 조금씩 떨어지는 눈송이를 손바닥으로 받았다.

루나는 추운지 웅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흐, 추워.”

멍!

푸들이 어서 가자는 듯, 목줄을 자꾸만 잡아당기며 한 번 짖었다.

루나는 푸들을 보며 풋 웃었다.

“잠깐 여기 있자."

"멍!

"오늘도 수는 운동을 하지 않았어. 눈이 와서 그런가 봐. 대체 뭐가 그렇게 바쁠까?”

멍!

“수! 이쁜 짓.”

그러자 푸들이 섰던 자리에서 한 바퀴 뱅 돈다.

“수! 이리 와, 안아 줄게.”

크르르.

“수, 그 표정. 뭐야? 싫다는 거니?”

크르르.

오늘따라 으르릉거리는 강아지가 이상하다고 여겨졌다.

그러고 보니 푸들은 어느 한 곳을 보며 으르릉대고 있었다.

“수, 거기 뭐 있어?”

위잉-

뭔가 자그맣게 반짝이는 게 날아다녔다.

“수, 가자.”

루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끼잉.

푸들은 가기 싫다는 듯 버텼으나, 이내 속절없이 루나를 따라갔다.

* * *

늦은 밤, 진구가 퇴근하고 내 작업실에 들렀다.

그는 내가 방금 완성한 유화 작품을 응시했다.

“이야, 이번에도 걸작이네. 고수야, 네 한계는 어디까지냐? 오늘 그림은 보고 있으면 왠지 감동이 인다.”

“그래?”

“어. 진짜 그림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거, 네 그림을 보고 알았다니까.”

나는 그냥 장난스럽게 웃었다.

“흐흐.”

“너 모르지? 인터넷에 보면 네 그림 소장하고 싶다는 사람, 많아.”

“오, 그래?”

“응. 그 국민배우 박우태도 네 그림을 사고 싶다는 말을 방송에서도 했대.”

“이제보니, 나 완전 출세했네.”

“그치. 출세했지. 지금 인터넷 보니까 그런 얘기도 있더라.”

“무슨?”

“라이브 드로잉 쇼 같은 거 있잖아. 즉석에서 그림 그리는 공연 같은 거.”

“근데?”

“너는 라이브 드로잉이라기보단 극사실주의 그림이긴 한데. 네가 그림 그리는 과정을 공연 콘서트처럼 열어달라고 하는 말들이 일본에서 있나봐. 너 일본에도 팬 생겼더라.”

일본.

그러고 보니 페라리 광고가 일본에서도 방영될 거라고 했었다.

거기서도 반응이 꽤 있나 보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가 제법 있어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걸 테지.

그래서 코인이 제법 들어왔던 건가.

“점점 판이 커지는 것 같아. 나 이제는 정말로 진지하게 이직을 고려해봐야 할 것 같지 않냐?”

“그건 좀 신중해야지 않겠냐?”

“참! 내가 편집할 영상은?”

진구는 영상 편집 때문에 여기 온 거였다.

나는 그에게 usb를 건넸다.

그는 그걸 받다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근데 고수야, 되게 이상한 일 있었다?”

“무슨 일?”

“네가 전에 줬던 영상 원본들.”

“응.”

“그게 전부 모조리 삭제되어 있더라.”

“네가 지운 건 아니고?”

“아냐. 내가 지우지 않았어. 컴퓨터에 비밀번호도 걸어놔서 다른 사람이 만질 일도 없어서, 혹시 해킹 당했나 해서 깜놀했거든.”

“해킹은 아니야?”

“모르겠어. 그게 다른 건 이상이 없고. 그 영상 파일들만 삭제되어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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