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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비트는 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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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묻자 수호의 답변은 1분 정도 지난 후에 왔다.
- 2050 : 이한나, 이루나는 너와 가까운 사이긴 하지.
내가 다시 말하려고 ‘아니, 내 말은... 까지 적었는데, 그의 메시지가 먼저왔다.
- 2050 : 이만 가겠다.
이 녀석, 봐라.
언제는 간다는 말도 없이 매번 사라져 놓고는.
나는 적던 말을 지우고 다른 내용으로 메시지를 작성해서 남겼다.
- 고수 : 야! 김수호, 또 멋대로 사라지는 거냐? 전송 기계가 미래에서 안 만들어지면 넌 블랙카드를 어떻게 보내냐고.
막상 메시지를 보내놓고 보니, 마치 블랙카드가 사라지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쓴 표정을 지었다.
내 걱정은 오로지 블랙카드인 것처럼 보이는군.
그때, AI 2050이 대신 답했다.
- 2050 : 그 부분은 고수님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고수 : 응?
- 2050 : 시공간을 초월하는 전송 기계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어도, 수호님은 전송 기계를 지켜낼 방도가 있습니다.
- 고수 : 그게 뭔데?
- 2050 : 그건 수호님이 지니신 2021년도의 핸드폰입니다.
- 고수 : 핸드폰?
- 2050 : 그리고 고수님의 그림입니다. 전에 전송 기계를 그렸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 고수 : 기억해.
- 2050 : 이번에 그걸 다시 그려서 주십시오.
- 고수 : 그걸 그리면?
- 2050 : 수호님은 전송 기계가 사라지기 전에, 그 그림을 과거의 수호님에게 보내실 겁니다.
- 고수 : 과거의 수호에게?
- 2050 : 네. 고수님에게 블랙카드를 보내던 그 시기의 수호님이지요. 그러면 그 시기의 수호님이 실물전환하실 겁니다.
- 고수 : 뭔가 뒤죽박죽이구먼.
- 2050 : 고수님은 다만 그림을 그려주시고 유하준 박사님을 만나주시면, 나머지는 수호님이 알아서 처리하실 겁니다.
2050이 전송 기계 이미지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나는 3D 디스플레이에서 터치하여 이메일을 확인하고 사진을 열었다.
작업하던 쉘터 그림 파일을 닫고, 이전에 그린바 있었던 전송 기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전보다 작업이 훨씬 수월하다.
* * *
다음 날, 나는 한국대학교 앞 카페에서 유하준을 마주 보고 있었다.
내 옆에는 테이가 앉아 있다.
여기 찾아오기 전에, 테이와 그 회사에 이미 얘기를 해둔 상태다.
유하준 박사, 현재 32세.
한국대에서 기계공학 박사 과정 중에 있는 학생이다.
내가 2050에게 들은, 그의 프로필은 그러했다.
유하준은 두꺼운 뿔테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리며, 앞에 있는 레몬티를 괜히 홀짝거렸다.
그는 딱 봐도 연구원처럼 생긴 젊은 남자.
테이는 그에게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저는 ‘미라클 쉘터스’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우연히 추천을 받아서 유하준 씨의 논문도 읽었고요. 그래서 유하준 씨가 저희 회사에서 필요한 인재라고 여겼습니다.”
유하준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저, 저를요?”
“네. 유하준 씨는 그 분야에서 천재적인 분이신 것 같더라고요.”
“그, 과찬이십니다.”
“유하준 씨가 원하시면 최고의 대우로 모시고 싶습니다.”
유하준은 우물쭈물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지금 하고 계신 연구가 시간여행과 연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예.”
“유하준 씨는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론대로 이루어졌다면 시간여행 기계는 진즉 만들어졌겠죠.”
테이가 유하준에게 넌지시 제안했다.
“그런 불확실한 연구보다 현재 저희 회사에서 진행하는 쉘터 건축에 필요한 기술 개발에 유하준 씨가 참여하는 것이 더 유익하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러자 유하준은 떨떠름해졌다.
“불확실한 연구라고 너무 단정 지으시군요.”
“불확실한 연구라고 제가 단정 짓는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혹시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만. 그래도 말씀드리고 싶네요. 시간여행 기계는 만들어지지 않는 쪽이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런 게 있어서 혹시 악인의 손에 들어가 악용되면, 인류에 큰 해악을 끼치게 되고. 그게 아니더라도 사회가 혼란해질 수 있을 건데.”
“그런 말, 많이 듣긴 했었습니다.
유하준은 갈등하는 얼굴이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테이에게 물었다.
“미라클 쉘터스에서 저에게 줄 수 있는 조건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유하준 씨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졸업하시면 즉시 미라클 쉘터스에서 스카웃할 겁니다. 연봉은 다른 곳에서 제시하는 것보다 20% 높은 금액으로 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졸업 전까진, 여기 국내에서 진행하는 쉘터 건축에 필요한 방어 시스템 구축에 참여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테이는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유하준 씨 졸업까지 금전적인 지원을 일부 받게 될 겁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고수 씨의 후원도 받게 될 거고요.”
유하준의 눈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당장 결정이 어려운 것 같으니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결정되시면 이번호로 저에게 연락을 주세요.”
나는 그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 * *
고수를 만난 지, 5일 째.
유하준은 고수가 건넨 명함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는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며 고민하고 갈등했었다.
사실, 시간여행 기계를 만드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현실의 벽에 부딪힌 부분이었다.
물질적인 문제.
불확실한 앞날의 문제.
하지만 어릴 적부터 꿔온 꿈이라서 금방 포기가 되지 않았다가.
이번에 정테이와 고수를 만난 이후, 그의 마음에서 오래도록 뿌리 내렸었던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하준이 주저하는 사이.
저 멀리서 초소형 드론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2050년도 미래에서 제작된 초소형 드론.
드론의 색상은 은색.
유리처럼 빛이 투과하기도 해서 햇살이 비치면 거의 투명해 보이기도 했다.
위잉-
그런데 한국대학교 건물로 비행하던 드론에 이상 현상이 생겼다.
츠츠츠, 츠-
비행하는 드론이 흐릿해졌다가 다시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위잉-
이제 조금 있으면, 초소형 드론은 유하준에게 도달할 것이었다.
드론은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연구실에 있던 유하준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때, 연구실 문이 열리며 다른 누군가가 들어오자.
그 틈을 타서.
위잉-
초소형 드론이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 누구도 드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위잉-
드론은 유하준의 지척까지 날아왔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마침내 결정한 얼굴로 핸드폰으로 고수의 번호를 찍어 전화를 걸었다.
한동안 신호음이 가고.
상대편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고수가 전화를 받는 순간.
츠츠츠-
유하준에게 코앞까지 접근했던 드론은 홀연히 사라졌다.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 * *
나는 잠시 집 앞 편의점에 왔다.
간단한 먹을거리를 골라 계산대에 올려두고 지갑을 열었다.
지갑 안에 언뜻 보기에도 화려해 보이는 블랙카드가 꽂혀 있다.
나는 블랙카드가 아닌 다른 신용카드를 꺼냈다.
평소 소소한 구매를 할 때는 블랙카드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츠츠-
지갑 속에 끼어있던 블랙카드가 흐릿하게 보였다.
놀라서 손가락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여전히 흐릿해 보이는 블랙카드.
잘못 보는 게 아니다.
그때.
띠리리리링-
유하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의 전화를 받으면서.
“여보세요.”
블랙카드를 내려다봤는데.
방금이라도 없어질 것처럼 흐릿해 있던 카드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다.
<안녕하세요. 저 유하준입니다.>
나는 안도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네, 유하준 씨. 어떻게 결정하신 건가요?”
<예. 정테이 씨와 고수 씨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렇군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나는 옅게 미소 띤 얼굴로 대꾸하며 신용카드를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에게 내밀었다.
* * *
며칠이 지나고 나니 어느덧 겨울이 성큼 와버린 것 같다.
나는 검정 코트를 걸치고 집 밖으로 나왔다.
방금 2050에게 쉘터 그림 1차 완성본을 보내고 나오던 참이다.
2050에게 이런 메시지가 왔었다.
- 2050 : 고수님의 그림을 확인합니다. 그림 분석하는 데 2일이 소요됩니다.
주차장으로 나오니, 페라리 신차가 주차되어 있다.
어제 진구가 여기다 가져다 놓았던 것.
그는 페라리 신차를 주차해놓고는 투덜거렸었다.
“어우씨, 오면서 혹시나 조금이라도 기스날까봐 노심초사했다.”
이곳 주차장과는 안 어울리는 럭셔리 흰색 차량이다.
눈에 띄는 걸 원하지 않아서 페라리 측에게 무난한 흰색으로 받았었다.
나는 운전석에 올라탔다.
핸들 중앙에 있는 페라리 로고 그림이 인상적.
신차를 얻은 기념으로, 잠시 바람 좀 쐬려 드라이브를 할 생각이다.
막 시동을 걸려는데 수호에게서 까톡이 왔다.
- 2050 : 고수.
나는 핸드폰을 들고 그에게 답장했다.
- 고수 : 김수호, 요즘 뭐가 그렇게 바쁘냐? 이제야 톡을 보내네.
- 2050 : 유하준 박사를 만났던 일은 적절했던 것 같다. 위험 요소가 사라졌어.
- 고수 : 그거 어떻게 된 거야? 블랙카드가 사라지려 했던 거 봤었어.
- 2050 : 미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유하준이 개발한 전송 기계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던 거지.
- 2050 : 그 덕에 여기 2050년도에도 전송 기계가 사라졌었어. 네 블랙카드가 사라지려 했던 건 아마도 그 때문일 거다.
- 2050 : 유하준 박사와 전송 기계와 관련된 과거가 변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와 관련된 사람들의 기억도 달라졌지.
- 2050 : 하지만 나는 너에게 블랙카드를 보내기 전 시점의 나에게 전송 기계 그림을 보냈고. 그걸 실물 전환했다.
- 2050 : 이제 이 세계에서 ‘시공간 초월 전송 기계’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유일하게 된 거야.
- 고수 : 거참 놀랍군.
나는 수호와 대화를 끝내고는 운전하여 도로로 나갔다.
조금 가다 보니 차가 많이 막혔다.
괜히 번화가 쪽으로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엔 차도 많고 사람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차가 도로에 멈춰 서있었을 때, 나는 우연히 어떤 여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20대로 보이는 그녀.
그녀는 고개를 들어 빌딩에 있는 대형 전광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보는 곳에 눈길을 줬다.
그 대형 전광판에는 페라리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광고 속에서 유려하면서도 강렬한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는 한 남자.
그는 거침없고 열정적이었으며 대담했다.
그러면서도 강해 보였다.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강해 보일 수도 있다는 건, 저 영상을 보고 처음 알게 되는 것 같다.
저 광고 속의 남자는... 바로 나였다.
내가 저 정도로 멋있지는 않았을 텐데.
확실히 영상 기법과 기술이 남다른 탓이라 그런 걸까.
나의 섬세한 붓질을 따라 마치 창조되듯 금빛에 가까운 옐로우 차량이.
아름답고 우아한 곡선으로 완성되어 갔다.
그리고 내가 그렸던 실물 같던 페라리는 광고 속에서 실물로 변하여 도로를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전광판을 보다가 조금 전의 여자에게 무심코 눈길을 줬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내가 탄 페라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보면서 어디서 많이 본 여자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어떤 이름을 떠올렸다.
김주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