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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비트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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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인 쉘터 이미지를 보며 나는 감탄했다.
“와.”
어떤 건물인지 한눈에 들어왔다.
작업실을 다 채우도록 확대해도 3D 이미지는 세밀하기 짝이 없다.
이걸 작업한 전문가들도 여러 명이 밤샘하며 매달렸을 거고.
거기에다 2050년도로 가서, AI 2050과 미래에서 존재하는 테이의 도움으로.
지금의 최종 이미지가 완성되었을 거다.
도중, 설계자였던 루나의 수정 작업이 있었던 거로 아는데.
2050년도에서 사는 김수호가 쉘터를 급하게 필요로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이미지가 완성되었다.
그나저나 루나가 설계한 건물이 이런 모습이었구나.
전에 설계도로만 봤을 때는 어떤 모습일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는데.
지금 이렇게 보니, 생각보다 꽤 아름다우면서도 독특한 건축물이다.
지상은 겉보기에 호화 저택처럼 보인다.
물론, 저택이라기엔 지상 5층까지도 있고.
지하는 더 방대한 크기라서 규모가 크다.
클래식한 건축 디자인과 미래적인 첨단 설계가 공존하고 있다.
음, 여기 이 부분은 숨겨진 방어 시스템이 있고.
여기는 정화 시스템?
중앙 현관으로 들어서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고.
저쪽은 엘리베이터가 있다.
지하로도 특수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을 거다.
실내 인테리어는 깔끔했다.
나름 고급스러워 보이는 벽지가 발라져 있었고.
곳곳에 세련되고 심플한 등이 있다.
평범해 보이는 침실이 무척 많다.
그 외에 식당도 있고 주방도 있다.
나는 디스플레이를 계속 터치하며 쉘터 내부를 구석구석 살펴봤다.
지하로 이어지는 벙커도 꼼꼼하게 눈여겨봤다.
쉘터 통제실은 지상이 아닌 벙커 내부에 있다.
그곳은 그림의 기교가 더욱 많이 필요한 곳.
그 외에도 내가 알 수 없는 이런저런 첨단 시설이 되어 있다.
“이거 엄청난 노가다겠는걸.”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AI 2050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 2050 : 블랙카드 24레벨에서 긁으실 수 있는 금액은 1310억 7200만 원입니다.
- 2050 : 고수님이 그리셔야 할 쉘터 이미지는 2050년도 버전과 2021년도 버전 중에서 2050년도입니다.
- 고수 : 알고 있어.
- 2050 : 앞으로 재능 레벨 업그레이드는 코인으로만 하시길 추천드립니다.
블랙카드 금액은 늘어나지 않고 당분간 동결됩니다.
- 고수 : 그럴 거로 생각했어.
- 2050 : 2021년의 금전적인 시스템을 고려한 부분입니다. 차후 다시 금액이 올라갈 예정입니다.
나는 다시 쉘터 이미지를 바라보았다.
스케일이 제법 크다.
2050년도의 아포칼립스를 살아가는 이들.
이제는 내가 그린 쉘터로 안전해질 수 있겠고.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디스플레이 하나를 더 열었다.
두 개의 디스플레이가 일치하도록 겹쳤다.
그러고는 펜을 들었다.
미래형 타블렛과 디스플레이를 사용하고 나서 편하게 된 점이 이것이다.
자료 사진을 타블렛 디스플레이에 겹쳐서 작업할 수 있으니.
완벽한 싱크로율로 그리는 게 더 쉬워졌다.
나는 펜으로 그림 작업을 시작했다.
* * *
밤 9시.
나는 작업실의 불을 끄고 밖으로 나와 건물 입구에 섰다.
비가 아직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우산이 없으니 편의점에서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편의점으로 뛰려는데.
띠리리링-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진구 녀석이다.
“응, 왜?”
내가 핸드폰을 받자 진구는 대뜸 말했다.
<고수야, 조심 좀 해야겠는걸.>
“왜?”
<인터넷 보니까 사람들이 널 되게 궁금해하더라. 엄청 핫한데 정체를 알 수 없으니, 사람들이 더 궁금해하는 거지.>
“그렇겠네.”
<그래서 기자들이 너를 알아내려고 애쓰는 것 같아. 네 정체를 추정하는 기사나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너를 봤다는 목격담이 기사로 꽤 올라오기 시작했어.>
“그래? 근데 나를 봤다는 목격담은 진짜야?”
<가짜지. 그냥 어그로 끌려는 사람들이 떠드는 거. 어디서 누굴 봤는데, 애플수 같네 어쩌네 하는 내용이야.>
“흠.”
<조금 마음에 걸리는 건, 네 이름이 ‘수’라는 거랑 그림 그리고 있다는 점이 일치할 수밖에 없으니까. 조심하라는 거야. 나이와 체구도 비슷하고. 준호도장난처럼 그런 말 하더라. 고수가 애플 수 아니냐고.>
“......”
<암튼 네가 신상을 계속 숨기길 원한다면, 지인들에게도 조심하라고.>
“그래, 알았어.”
<이만 끊는다.>
뚝.
진구 이야기 듣고 보니 참 신경이 쓰이네.
수호는 내 신상이 드러나지 않길 원했었는데.
조심해야지.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편의점에서 우산 하나와 맥주, 음료수를 고르는데.
여중생 두 명이 군것질거리를 고르면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겁나 멋있다던데. 수 오빠.”
깜짝 놀라 돌아보니, 여중생 두 명이 떠드는 중이었다.
“오늘 연예 뉴스에서 나온다고 했지? 광고 촬영 현장.”
“응. 나 그거 보려고 학원도 중간에 나온 거잖아.”
“나도. 히히. 너무 좋아. 나중에 애플 수 오빠랑 결혼할 거야.”
“웃기시네. 내가 먼저 찍었거든? 야 빨리 가자. 본방 놓치겠다.”
그 애들은 그렇게 말하더니 나를 보고는 말을 툭 내뱉으며 쌩 지나갔다.
“아저씨, 비켜요! 저희 빨리 가야 해요!”
그러면서 잽싸게 계산대에서 계산하는 아이들이었다.
잠시 후, 편의점을 나와 거리를 산책하듯 걸었다.
눈이 녹긴 했어도 쌀쌀한 날씨.
이윽고 집 현관문 앞에 도착한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현관문 앞에 수연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수연이는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창백한 얼굴로 내게 입을 뗐다.
“고수야, 나 추워.”
“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비 맞은 거야?”
내가 그녀를 일으키자, 비척거리며 일어섰다.
그러다 비틀거리며 주저앉으려 하기에 그녀를 부축해야 했다.
“발 저려.”
“너 여기서 얼마나 이러고 있었어? 무슨 일 있었어?”
그렇게 물었지만, 수연이는 창백한 얼굴로 몸을 떨 뿐이었다.
머리카락과 옷이 조금 젖어 있었다.
“안 되겠다. 우선 들어가자.”
나는 그녀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소파에 앉게 하고, 점퍼를 벗고 욕실로 들어가 마른 수건을 가지고 나오려는데.
그녀가 나를 붙들어서 그녀의 옆에 앉게 되었다.
그녀는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야!”
“잠깐 이러고 있으면 안 돼?”
“따뜻한 물 줄게.”
“지금 너무 힘들어서 그래. 부탁이야.”
“......”
잠시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입을 뗐다.
“미안해. 불편하게 해서. 잠시 이러고 있다가 갈게.”
“너 옷이 젖었는데.”
“겉에만 조금 젖은 거라 괜찮아.”
“......”
“이러고 있으니까 너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 학교 입학하고 처음 수업 들으러 갔는데, 강의실 못 찾다가 마주쳤잖아.”
“그래. 같이 헤맸지. 뭐, 금방 찾긴 했지만.”
“그때, 실은 계속 강의실 못 찾게 되길 바랐어. 처음 만난 남자애와 소소한 대화를 나눈 거였는데도, 난 즐겁고 좋았거든.”
그러면서 수연이는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녀의 낯빛이 유독 창백하다.
지금 이런 생각하면 안 되는 거지만.
젖은 머리카락, 창백해진 얼굴.
그녀가 예뻐 보였다.
그동안 친구로 지내서 별로 의식하지 못했던 거지만, 수연이는 예쁜 축에 드는 외모긴 했다.
분위기가 나를 유혹했던 걸까.
나는 당장 일어나질 못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녀의 얼굴이 가까워졌는데도.
거절하기가 어려워졌다.
자칫, 어쩌면... 내가 주도적으로 이 분위기에 탑승하게 될 상황.
서로의 입술이 닿으려던 순간.
위잉-
작은 모기 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벌레가 들어온 건가.
은빛으로 빛나는 파리 만 한 것이 빠르게 비행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찰나.
치직!
“꺅!”
통증이 제법 느껴질 만한 강력한 정전기가 일어났다.
나는 은빛으로 빛나는 조그만 그것을 눈으로 좇으려 했지만.
금세 어디로 갔는지 발견되지 않았다.
방금, 뭐였지?
잘못 본 건가.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마터면 분위기에 말려들어 실수할 뻔했다.
주방으로 가서 머그컵을 꺼내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고, 수연이에게 건넨다음.
내 외투를 꺼내 수연이에게 주면서 말했다.
“젖은 재킷은 벗고 그걸 걸쳐. 따뜻한 물 마시고 나와. 주차장에 있을게.”
“으응.”
나는 점퍼를 도로 걸치고 현관을 나서다가 그녀를 돌아봤다.
“수연아, 앞으로는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다. 네가 아무리 오랜 친구라 해도, 이러면...”
수연이를 보며 말하다가 상처받을 만한 말일 것 같아 삼켰다.
“암튼 부탁할게.”
그러고는 나는 현관을 나섰다.
* * *
페라리 광고 촬영하기 위해 그림 작업하는 현장 모습이 TV에 방영된 이후, 내 인지도는 더욱 상승했다.
얼굴을 가렸음에도 내 복장과 체구가 매력적으로 보였는지.
여성 팬들이 급격하게 늘어나서 그만큼 내게 코인이 들어오긴 했지만.
막 쏟아지진 않다.
그림이 대중적으로 관심갖는 분야도 아닌데다.
아직은 SNS와 너튜브 동영상을 통해서 퍼진 인지도일 뿐이고.
TV 방송도 사람들이 많이 보는 시간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여느 때처럼 작업실로 와서 쉘터 그림을 그렸다.
그때 김수호가 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 2050 : 고수. 전에 이런 말을 했던 거 기억나나?
그에게 메시지로 대꾸했다.
- 고수 : 무슨 말?
- 2050 : 네가 미래에서 하게 될 일.
내가 하게 될 일?
내가 쉘터를 만들었다는 얘기인가.
- 2050 : 2026년도에 네가 쉘터로 초창기 모델의 전송 기계를 가져다 놓았다고, 너에게 말한 적이 있었지.
- 고수 : 아!
- 2050 : 2026년도까지, 대한민국은 어느 정도 기본적인 기능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었다.
- 고수 : 그러다 2026년도에 커다란 일이 한번 휩쓸고 지나갔던 모양이네.
- 2050 : 그래.
수호는 미래에 관해 나에게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다만, 적절하고 필요하다 여겨지면 말하겠다고만 했었을 뿐.
그가 먼저 말을 꺼내는 걸 보니까, 뭔가 필요해진 시점인 듯했다.
- 2050 : 네가 전송 기계를 쉘터로 가져다 놓은 건 2026년도라서 아직 시간이 있지만.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아졌어.
- 고수 : 어떻게 안 좋아졌는데?
- 2050 : 초창기 모델의 전송 기계가 우리 쉘터에 있는 것이 유일한 줄 알았는데. 또 다른 기계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그 기계가 최근 약탈자의 손에 넘어간 거지.
- 고수 : 약탈자?
- 2050 : 내가 사는 곳에는 약탈자 무리가 있다. 생존자 중 일부가 약탈자로 변해서 오히려 생존자들을 위협하는 거지.
- 고수 : 그렇군.
- 2050 : 그들은 전송 기계를 이용해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래서.
내 표정이 심각해졌다.
- 2050 : 그들이 뭔가를 하기 전에 미래를 또 한 번 비틀려고 해.
- 고수 : 어떻게?
- 2050 : 유하준 박사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애초에 전송 기계가 만들어지는 걸 차단하려고 한다.
- 고수 : 뭐? 그럼 전송 기계가 만들지지 않게 될 텐데. 그럼 애초에 네가 나에게 블랙카드를 보낼 수 없게 되는 거 아냐?
- 2050 : 우선 그를 만나. 그는 언제고 네가 만날 사람이다. 이한나와 친분이 있는데, 그는 이후 이한나와 연인 관계가 될 사이야.
- 고수 : 아.
나는 순간 뭔가 퍼즐이 맞추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수호가 겪은 세상에선, 이한나는 2027년도에 사망했다고 했다.
그리고 전에 전송 기계를 만든 그 박사라는 자도 2027년도에 사망했고.
그때 그의 기술과 기계가 파괴되었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이한나와 유하준 박사는 같은 시기에 사망한 것.
내 미래에 생각보다 한나, 루나 자매와 깊이 엮여 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수호에게 물었다.
- 고수 : 수호야, 혹시 미래에 내가 루나와 각별한 사이가 되는 거냐?